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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59화 (159/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59화

국경을 넘어 북한에 진입한 이후부터 하늘은 회백색으로 변해갔다. 마치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설프게 정비된 도로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자 하늘로 시커먼 연기가 솟아 오르는 게 보인다.

우리가 가야 할 곳, 평양에서 치솟는 연기였다.

평양과 가까워질수록 도로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폭격으로 바닥이 꺼지거나 깨진 것은 예사였고, 버려진 군용차가 도로를 막고 있거나, 아예 시체가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한참을 더 달려서 평양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우리 앞에 커다란 건물의 잔해가 나타났다.

“끄아아아악! 다리! 내 다리가!”

“우리 아버지 좀 살려주시라요! 제발 여기 좀 봐주시라요!”

“그쪽에 굴러다니는 작대기라도 찾아보시오! 이러다 사람 다 죽갔소!”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질 때 사람이 깔린 듯했다.

잔해에 깔린 사람들의 비명과 그들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그러나 마땅한 구조 장비가 없어서 작업에 진전은 없어 보인다.

“거기, 좀 도와주시라요!”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우린 차를 멈추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돕는다 해도 바뀌는 건 없다. 분명히 그게 맞을 텐데…… 나는 필사적으로 현장에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최대한 멀쩡한 도로를 찾아서 평양 안쪽으로 들어간다.

중심지에 가까울수록 폭격의 흔적들이 잦아진다.

그러다 병원으로 보이는 건물을 옆을 지나가는데, 문 앞에 피가 철철 흐르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사, 살려…… 살려주시오.”

자세히 보니 시체가 아니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 병원 문 앞에 방치된 것이었다.

“으흑흑…… 우리 아버지 좀 살려주시라요.”

“의사 동무,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네다.”

병원 입구에는 환자의 가족들이 문을 열어달라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러나 받을 수 있는 환자가 이미 꽉 찬 건지, 병원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릴 생각을 않는다.

“…….”

이보다 더 최악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 입구 쪽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병원 뒤편에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시체들이 짐짝처럼 쌓여서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다.

개중엔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꿈틀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런 환경에서 살아날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것이…… 전쟁의 민낯인가.’

영상이나 활자는 전쟁의 실체를 1%도 전달하지 못한다고 확신한다. 그만큼 전쟁은 절대 있어선 안 될 죄악이었다.

현기증과 함께 속이 메슥거린다. 밀려오는 구역감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끼익.

차에서 내리자 하늘이 어두워진다. 기존엔 흐릿한 잿빛이었다면 이젠 밤처럼 완전히 깜깜해졌다.

“갑자기 뭔……?”

그때였다. 귓가에 이명과 같은 날카로운 굉음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어서 번쩍하고 터지는 강렬한 빛 덩어리.

콰-앙!

병원에 불길이 치솟았다. 창문이란 창문은 다 깨져나갔고, 그 안에서 새카만 연기가 쉴 새 없이 솟아난다.

“폭격? 어디서 쏜 거지? 미국인가? 아니면 러시아? 그보다 병원은 공격 대상이 아니잖아!”

비틀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병원으로 뛰어간다.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그냥 무작정 뛰었다.

그러다 바닥에서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아챈다.

“동무, 어딜 그리 가는 거요?”

병원 입구에 누워 있던 환자였다. 손을 억지로 떼어내려 했지만 환자는 엄청난 힘으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가기 전에 나부터 책임져야지. 네가 나를 이런 꼴로 만들었잖아.”

“뭔 소립니까? 오해를 하셨나 본데…….”

“네가 용병을 투입하고 러시아에 공격을 사주했잖아.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나?”

피로 범벅이 된 두 손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 내린다. 저항하려 했지만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 잠깐만, 북한을 점거한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 쿠데타가 일어난 원인을 누가 제공했더라?”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개입하지 않았던 역사의 북한은 평온했다. 김정은은 멀쩡히 살아 있었고, 쿠데타는 물론이고, 미사일 폭격에 맞은 적도 없었다.

“너의 그 알량한 정의감이 대참사를 불러온 거다! 이곳 사람들은 전부 네가 죽인 거야!”

내 목을 조르는 사내의 목소리가 기계 변조음처럼 기이하게 갈라진다.

그러다 얼굴 가죽이 울컥거리면서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아는 사람의 얼굴이라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넌 박민교?”

KN케미컬의 박민교.

내게 횡령 누명을 씌워서 죽인 원수.

“전부 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너만 없었어도, 너만 없었어도!”

기이하게 비틀리던 얼굴은 백승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가, 나민성, 마두로, 테일러, 김정은으로 휙휙 변해간다.

그러다 마지막엔 전혀 의외의 얼굴로 바뀌며 변이가 멈춘다.

“대표님, 저를 속이셨네요.”

* * *

“끅…… 끅…….”

깊은 바닷속에 처박힌 것처럼 숨이 안 쉬어진다.

양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강제로 숨을 밀어내자 그제야 막혔던 호흡이 한순간에 터진다.

“허억…… 허억…… 허억…….”

헐떡거리는 와중에도 빠르게 눈알을 굴려서 주변을 살핀다.

내가 있는 곳은 회사 집무실이었다.

그제야 가슴을 부여잡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또…… 그 꿈이었나.”

내가 북한에 다녀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억류됐던 평화사절단은 무사히 귀환했고, 북한 내에 쿠데타도 진압돼서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젠 정말 다 끝났을 텐데, 나는 왜 이런 꿈을 계속 꾸고 있는 걸까?

똑똑.

상념을 깨는 노크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대표님, 저예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이소영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대충 닦아내고 목소리를 짜낸다.

“예, 들어오세요.”

기다렸다는 듯 이소영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언제나처럼 그녀의 두 손엔 커피와 함께 먹을 간식이 들려있었다. 포장지를 보니 오늘은 도넛인 것 같다.

“안에 계셨네요.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도둑이라도 들은 줄 알았어요.”

“제가 잠꼬대를 했나 봅니다.”

“혹시 또 북한 꿈꾸셨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트라우마가 생긴 거라면 빨리 치료받을수록 좋대요. 제가 아는 병원이 있으니까…….”

“아뇨. 트라우마 같은 게 아닙니다.”

“…….”

내가 너무 완고하게 나가서 그런지 그녀도 더는 권유하지 않고 말을 얼버무린다.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나는 화제를 바꿀 겸 대화를 유도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그게…….”

그녀는 다시 내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TV 쪽을 가리킨다.

“방송국에서 북한 영상을 입수한 것 같더라고요. 특집 뉴스가 나오고 있어서 알려 드리려고 온 거예요.”

“어떤 영상이 나오던가요?”

“김정은 장례식이라고 했어요.”

TV를 켰더니 정말 첫 채널부터 김정은 장례식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장례식 풀영상을 보여주는 건 아니고, 장면마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영상의 뜻풀이를 하나씩 던져준다.

-에…… 먼저 김정은의 장례식은 이전 지도자인 김정일 때와 마찬가지로 공개 장례로 치러졌습니다. 여기서 유심히 볼 부분은 행사장에 배정된 자리인데요.

영상에서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여기 보시면 상석에는 서기실장 김설화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은 그녀의 측근인 통일부국장 리권세가 서 있고요.

이번 쿠데타 사태를 선두에서 진압한 두 사람이니, 실권을 장악한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저 자리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냐는 것.

-김정은 시신이 담긴 관이 떠나면 장례 절차는 끝입니다. 분명 그래야 했는데…… 현 지도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가지 절차를 더 거치게 됩니다.

엄숙했던 장례가 끝난 직후부터 행사장에 긴장감이 흐르는 나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 군인들이 절도있게 들어와서 행사장 중앙에 말뚝을 박기 시작하는데, 그 말뚝 개수가 100개는 넘어 보였다.

-빠밤! 빠밤! 빠밤!

웅장한 나팔 소리와 함께 김설화가 단상에 오른다. 짙은 화장을 한 그녀는 격양된 목소리를 토해낸다.

-친애하는 인민들이여. 우리 위대한 위원장님을 해한 민족반역자들이 이 땅에 살아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있는가? 나는 대역 죄인들을 살려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무서운 눈빛으로 객석을 한 번 둘러보고는 다시 고함을 지른다.

-어서 찢어 죽일 외세의 앞잡이들을 대령하라!

포승줄에 묶인 죄수들이 행사장으로 줄줄이 들어온다. 방금 박은 말뚝은 그들을 포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죠?”

같이 영상을 보고 있던 이소영이 불안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마 소영 씨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 겁니다.”

“저들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도 공개 처형은 너무 하잖아요.”

인권을 존중한다면 사형은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북한은 개개인의 인권보다 통제를 중시하는 독재 국가.

독재의 최대 위협인 쿠데타 세력의 공개 처형은 국가 유지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이벤트였다.

‘공개 처형으로 경각심을 심어주는 동시에 정적을 제거해서 실권을 강화할 셈이로군.’

모든 죄수를 말뚝에 묶었을 때쯤, 행사장으로 커다란 가마솥이 등장한다.

솥에는 펄펄 끓는 쇳물이 담겨 있었다.

-죄인들에게 위원장 동지와 죽어 나간 인민들이 느낀 고통을 똑같이 돌려주겠다.

-집행하라!

쇳물을 퍼 올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멈춘다. 이후의 장면은 방송으로 내보낼 수 없는 장면이라 여기서 끊은 것 같다.

방송을 보고 있던 이소영은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격한 반응을 쏟아낸다.

“정말, 아무리 북한이라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이번에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또 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땐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겠죠.”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라고요!”

이소영이 저러는 이유는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접 보고 왔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는 무작정 그녀를 옹호해줄 수 없었다.

“소영 씨, 21세기라도 전쟁이 지구에서 사라진 건 아닙니다. 시리아, 남수단, 예멘 같은 국가에선 지금도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에 젖어 주변을 못 보고 있을 뿐이죠.”

“그들은 내전이라는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했다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북한에서 내전이 발발하면 강대국들의 대리전이 될 텐데, 그땐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듯한 눈치였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크게 한숨을 토해낸다.

“다들 전쟁을 싫다고 해요. 끔찍한 일이라고 하죠. 그런데 어째서 전쟁을 막는 건 이렇게 힘든 걸까요.”

“전쟁을 지시하는 사람과 전쟁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무 불합리해요. 이건, 이건…….”

그녀의 눈동자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미사일, 폭격, 총기, 전차, 비명, 두려움, 고통, 허기, 절망.

북한에서 이 모든 것을 겪고 온 그녀였기에, 전쟁에 이토록 과몰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게 전쟁을 억제할 방법이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아직 이론상이긴 하지만 성공한다면 북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슬픔에 잠겼던 그녀의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아온다.

“다만, 그 계획을 실행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큰 금액이기에 그러세요?”

“우리 회사가 보유한 자금의 서너 배, 아니, 어쩌면 10배에 달하는 돈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말을 에둘러서 한 셈이다.

그러나 이소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10배라는 단어를 곱씹더니, 갑자기 손뼉을 짝 소리 나게 마주친다.

“어쩌면 올해 안에 가능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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