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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58화 (158/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58화

평양 시내에서 평양방어사령부 본부까지의 거리는 직선상으로 40㎞ 정도다.

거리만 따지면 가까워 보이지만 도로가 워낙 험한 데다가 정비까지 안 돼 있는 탓에 한 번 다녀오려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전파가 안 터지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구만.”

정찰총국의 최룡수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불만을 툴툴거렸다. 원래라면 전화 한 통으로 처리될 일을 반나절이나 차를 타고 다녀와야 했던 탓이다.

“참모장!”

그가 직책을 부르자 운전하던 사내가 목소릴 높인다.

“옙! 부국장님!”

“끊긴 통화는 언제 복구되는 기네? 내가 매번 왔다 갔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폭격으로 망가진 통신선 복구는 오늘 밤까지 완료된다고 합네다. 다만, 무선 쪽은 아직 기약이 없습네다.”

최룡수는 상을 찌푸린 채로 먼 하늘을 올려다본다. 평양 상공에는 여전히 드론이 떠다니고 있었다.

“참 징그럽게도 날아오는구만 기래.”

“그러게 말입네다. 남조선 것들은 돈이 썩어나나 봅니다.”

“그래도 비행체 숫자가 줄어든 것 같지 않아? 어제는 저것들이 벌거지 떼처럼 하늘을 꽉 메웠던 것 같은데.”

“그건 비행체를 다른 지역에 날려서 그럴 겁네다.”

최룡수는 처음 듣는 말이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비행체를 다른 지역에도 날렸다니? 그게 무슨 말이네?”

“그거이…… 어제 새벽부터 남조선 국경 지역과 신의주 일대에도 비행체가 날아왔다고 합네다. 그런데 고놈들이 전파 방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폭탄이라도 끼고 온 건 아니갔지?”

“아, 아닙네다. 폭탄은 아니고 무슨 방송을 하는데…… 한번 들어보시라요.”

참모장은 운전대 옆에 달린 버튼을 조작해서 라디오 전파를 탐색한다.

처음엔 ‘지직-’거리는 잡음만 들리던 전파는 얼마지 않아, 어색할 정도로 또렷한 라디오 방송을 잡아냈다.

-평양을 무단으로 점거 중인 민족 반역자집단은 외세에 나라를 팔아먹는 것으로 모자랐는지, 위대한 백두혈통 김여주 동지와 닮은 대역을 내세워서 거짓 위임식까지 꾸미고 있다. 아, 아, 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악랄한 망동을 하는가.

방송을 듣는 동안 최룡수는 실시간으로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김여주와 닮은 자를 대역으로 세운다는 작전은 정찰총국 내에서도 아는 이가 드물었다.

그런데 정보가 새어 나간 것으로 모자라 공개 방송으로 퍼지고 있을 줄이야.

‘군단장들이 중앙의 명령을 듣지 않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평양을 점령한 군대는 평양 시내를 비울 수 없다.

그래서 전방 부대의 지원을 받아서 리권세가 합류한 1군단을 밀어낼 생각이었는데, 저 방송 때문에 계획 자체가 어그러져 버렸다.

“이런 썩어질 것들이.”

최룡수는 답답함에 주먹으로 차 문을 후려친다.

“이대로 전선이 고착화되면 평양에 갇힌 우린 말라 죽게 된다. 그렇다면 그 전에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어.”

“최후의 수단이라면…….”

“핵이다.”

잠시지만 두 사람의 대화가 끊어졌다. 그만큼 핵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 핵을 이번에 꺼낸 것은 실제로 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조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무력 시위용 아니었습네까?”

표면상으론 그렇지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최룡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말을 꺼낸다.

“내 말 똑똑히 들으라. 혹시라도 총국장 동지가 핵을 쏘려거든 몸을 날려서라도 막으라우.”

“제, 제가 말입네까?”

“그럼 자네 말고 누가 있갔어?”

참모장이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대답을 미루는 동안, 최룡수가 대화를 이어간다.

“동무는 우리 공화국이 핵미사일을 쏘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있나?”

“핵을 얻어맞은 남조선의 보복이 시작되갔지요.”

“남조선의 보복은 아무것도 아니야. 진짜 두려운 건 미제 놈들이 쥐고 있는 핵미사일이지.”

북한의 핵무기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정도라면, 미국의 핵무기는 개량의 개량을 거듭해서 20배 더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전쟁으로 우리 같은 군인이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처자식이나 죄 없는 인민들은 살려야 하지 않갔어?”

“부국장 동지…… 명심하갔습네다.”

참모장은 결의에 찬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잠시, 아주 잠시 전방에서 눈을 뗐다가 다시 복귀했는데 그 찰나의 순간, 시커먼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쌔애애애애앵-.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그 무언가를 인지함과 동시에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늘과 땅의 자리가 뒤바뀐다. 지축이 울리는 폭음과 함께 한 박자 늦은 비명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 모든 행위는 불과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것이었다.

“윽…….”

참모장은 한참이나 고통의 신음을 흘리다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저 멀리 무언가에 꿰뚫려 박살 난 군용차가 보인다. 방금까지 자신이 몰았던 그 차량이었다.

운 좋게 자신만 논두렁으로 튕겨 나가며 목숨을 부지한 듯했다.

번쩍!

공포를 채 느끼기도 전에 전방 하늘이 발광한다.

조명탄과 흡사한 번쩍거림이었으나 저곳은 평양 시내가 있는 쪽이다. 조명탄을 터트릴 이유가 없었다.

“또 로씨아에서 미사일을 쏜 건가?”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번쩍거림은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번은 뒤쪽에도 쏟아진다.

정확히 평양방어사령부 본대가 있는 쪽이었다.

“이건 로씨아가…… 아니야.”

이번 공격은 며칠 전의 무차별 폭격과는 달랐다. 아군의 중요 인물과 핵심 시설만 노리는 정밀 폭격이었다.

이런 기술이 있는 군대는 세상에 딱 한 곳밖에 없었다.

* * *

달리는 차 안에서 연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초조했다. 더 빨리 도착했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내가 미국에 있을 때 그 일이 터져 버렸다.

“더 빨리 갈 수는 없습니까?”

운전기사가 놀란 눈으로 백미러를 흘깃 쳐다본다.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계는 이미 130㎞/h를 넘기고 있었다.

나도 안다. 여기서 더 빨리 가달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후…….”

억지로 시선을 창밖에 둔 채, 달리려는 마음을 꾹꾹 누른다.

그렇게 1시간 같은 10분이 흐르자 슬슬 눈에 익은 표지판들이 보인다.

[개성 20㎞]

[평양 160㎞]

통일교를 넘어가자 드디어 차들이 멈춰 서 있는 곳이 보인다.

북한으로 넘어가려는 정부와 기업 측 차량, 그리고 기자들까지 몰려서 일대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대표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길을 열고 가세요.”

“알겠습니다.”

운전기사는 클랙슨을 울리며 막힌 도로를 비집고 들어간다.

빵! 빵! 빠아아앙-!

난데없이 비키라고 클랙슨을 울려대니 당연히 먼저 온 사람들이 인상을 쓰며 이쪽을 돌아본다.

“누가 이리 시끄럽게 굴어? 어? 저 차는……?”

“신우혁 대표가 왔다! 빨리 길 열어주고 카메라 대기시켜!”

“비켜 주세요! 신 대표님 오셨대요! 차 빼주세요! 앞차부터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뒤쪽엔 기자들이 많았는지 알아서 차를 빼고 길을 터준다.

나는 창문을 열고 그들에게 감사 표시를 했다. 그런 와중에 얼굴을 들이밀고 인터뷰를 시도하는 기자가 있었다.

“신 대표님, 이미 북한 측에 용병 부대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지 상황은 어떤가요?”

“WHTS컴퍼니는 북한 투자 전에 쿠데타를 예상하셨습니까?”

“북한 측과 협상의 진전은 있습니까?”

“한 말씀만 해주시죠!”

평소라면 멈춰 서서 짧게라도 코멘트를 해줬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차를 그대로 통과시켜서 앞으로 향한다.

북한군이 지키는 입구 부근까지 다가가자 정부 측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끼익.

차를 세우자 정부 측 사람들이 우르르 이쪽으로 달려온다. 그중엔 구면인 통일부 장관도 있었다.

“신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리 직원들을 데려가러 왔습니다.”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북한 측에서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협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북한으로 넘어가는 도로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도로 입구엔 소총으로 무장한 북한군 대여섯 명과 군용차, 철제 바리게이트도 쳐져 있었다.

“길을 제가 열어보겠습니다. 아, 그전에 한국인이 북한으로 넘어가려면 정부 허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던데요.”

“입국 허가는 일도 아닙니다. 길만 열어주신다면야…….”

“알겠습니다.”

북한군이 경계 중인 도로로 천천히 걸어간다. 도중에 방송국에서 플래시를 어찌나 터트리던지, 북한군이 눈을 못 뜰 정도였다.

“거기서 멈추라우!”

나는 일부러 두어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뒤에 입을 뗀다.

“여길 지나가고 싶은데.”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가는 말이 짧으니 오는 말도 짧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계속한다.

“너희는 평양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여길 막고 있는 거냐?”

“평양 일은 우리가 알 필요 없다. 여길 막으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

“그게 누구의 명령이지?”

“네가 알 필요 없다.”

내가 안주머니를 뒤적거리자 놀란 군인들이 총구를 올린다.

“진정해. 별일 아니니까.”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은 휴대폰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가져가라는 뜻으로 손을 까딱거린다.

“빨리 받는 게 좋을 거다. 꾸물거렸다간 여기 지키고 있는 애들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장교는 부하 직원을 시켜서 휴대폰을 가져간다.

“누구…… 앗! 서기실장 동지! 저, 저는 제2군단 1176부대 소속 리문성 소좌입네다.”

북한 장교는 갑자기 기합 든 신병처럼 경례를 붙인다.

그러고는 전화기가 보물단지라도 되는 마냥 소중하게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통화를 이어간다.

“고조 웬 남조선 사내 하나가 여길 통과하겠다고 와서는…… 아이고 무슨 말씀을. 서기실장 동지의 지시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받들어야지 않겠습네까.”

북한군 장교는 통화를 끝내자마자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이분들은 우리 공화국의 중요한 손님이다. 길을 열라!”

도로를 막고 있던 철제 바리케이드와 군용차가 양옆으로 물러선다.

사흘 내내 막혀있던 길이 간단하게 열리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부 측 사람들과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됐다.

“이제 지나가도 됩니까?”

“그러시요.”

넘겨줬던 전화기를 돌려받고 다시 차로 돌아간다.

그러던 차에 장교 옆에 서 있던 북한군 병사가 내게 말을 붙인다.

“저, 저기. 남조선 동무.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갔습네까?”

옆에서 장교가 눈치를 주긴 했지만 제지하진 않았다. 그 역시 궁금한 게 많다는 뜻이리라.

“말씀해 보시죠. 아는 선에서 답해드리겠습니다.”

“그게…… 평양은 어떻게 됐슴까? 이제 전쟁은 끝난 겁네까?”

질문한 북한 군인은 물론이고 뒤쪽에 서 있던 한국인들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대답을 기다린다.

“전쟁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북한 군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를 감싸 안는다.

“다행입네다. 정말 다행입네다. 이제 우리도 한 시름 놓고 근무설 수 있겠슴다.”

“이대로 끝장나는 줄 알았지 뭡네까.”

한국 측에서도 함께 기뻐하며 축하의 말을 건넨다. 덕분에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남북 축제 현장처럼 바뀌게 됐다.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순수하게 기쁨을 나눌 수 없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이후가 더 문제다. 이번 북한 내전에 개입한 중국, 러시아, 미국이 서로 내전 종식의 지분을 요구하고 나설 텐데…….’

누군가가 나서서 강대국들과 협상을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북한 지도자는 현재 공석 상태에다가 유력한 지도자 후보인 김설화는 그럴 능력이 있는지 미지수다.

만약 이대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파벌끼리 사분오열 찢어진다면 북한은 또다시 전쟁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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