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57화
평양의 상징인 김일성광장은 항상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특히 경축회, 열병식 따위가 있는 날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군인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요 며칠 간은 아무런 행사가 없음에도 군인들이 광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찰총국 산하의 보병 부대로, 며칠 전부터 광장에 임시 막사를 치고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으음…….”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회의실 안.
정찰총국 국장 림학봉은 테이블에 펼쳐진 지도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지도는 북한 전역의 전황을 간략하게 나타내고 있었는데, 동해안 부근에는 이미 빨간색 마커가 십여 개나 찍혀 있었다.
“저 벌레 같은 것들이 우리 땅에 들어온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단 말이지.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1군단에 빌붙어 있는 게야? 변명이라도 지껄여 보라우!”
모두의 시선이 군사 지휘를 담당한 작전 참모장을 향했다.
그는 최대한 억울한 표정과 손짓까지 더해가며 말을 쏟아낸다.
“이미 강원도 인근의 5군단과 7군단에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만, 군단장들이 남조선 군대 핑계를 대면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네다.”
“접경 지역인 5군단은 그렇다 쳐도 7군단은 왜? 거긴 함경도잖아?”
“7군단은 동해상에 들어온 로씨아 함선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참모장은 말을 하다가 말고 황급히 고갤 숙인다. 얼굴 쪽으로 유리잔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챙강!
“그딴 걸 말이라고 지껄이고 있어? 해상은 해군으로 경계하고 1군단 쪽엔 륙군만 보내면 될 것 아니네.”
“그, 그렇습네다.”
“한심하다. 정말 한심해.”
사실, 림학봉도 군단장들이 꾸물대는 이유 정도는 알고 있었다.
러시아의 개입으로 전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유리한 쪽으로 붙을 셈이겠지.
마음 같아선 병력을 끌고 가서 군단장들의 정신을 개조해주고 싶었지만, 기껏 접수한 평양을 비웠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가서 7군단 군단장에게 똑똑히 전하라. 오늘 내로 1군단을 공격하지 않으면 민족 반역자로 간주하겠다고.”
“알겠습네다!”
참모장에게 지시를 내린 림학봉은 즉각 다음 안건을 내놓는다.
“평양에서 김여주 닮은 애미나이를 찾는 건 어케 됐네? 찾았든 못 찾았든 보고를 해야지 않갔어?”
그 말이 나오자마자 최룡수 부국장이 스프링처럼 앞으로 튀어 나간다.
“안 그래도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슴다.”
“찾았어?”
“예, 확인해 보시겠슴까?”
림학봉이 고개를 끄덕거리길 기다렸다는 듯 회의장 문이 열린다.
초라한 옷차림과 잔뜩 움츠러든 어깨, 바닥을 향한 시선과 지나칠 정도로 떨고 있는 두 손까지.
행색만 보면 김여주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숙이고 있는 얼굴을 강제로 들어서 확인했더니.
“오호?”
림학봉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여인은 김여주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 애미나이를 쏙 빼닮았구나 기래. 여기서 살만 조금 더 덜어내면 애미 애비도 몰라보갓어.”
김여주의 아비는 북한에서 신성시되는 김정일이다.
평소에 이런 말을 했다면 수령 모독죄로 일평생 강제 노역행이었지만, 쿠데타에 성공한 림학봉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어디서 이런 물건이 나왔을꼬? 참 신기하단 말이지.”
북한 서열 2위 김여주와 똑 닮은 얼굴을 보고 있으니 본능이 일렁인다. 도도하고 콧대 높던 그녀를 정복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림학봉은 그녀의 뺨을 시작으로, 귓불, 입술, 마지막엔 가슴 안쪽까지 손을 넣어 휘젓는다.
“여긴 그 앙칼진 애미나이보다 훨 낫구나.”
그러는 동안 김여주를 닮은 여인은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림학봉은 그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머금은 채,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날래 위임식 방송 준비하라우. 내가 정식으로 수령 자리를 넘겨받으면 적통이니 뭐니 하며 눈치 보던 것들도 싹 우리 쪽에 붙을 게야.”
“저…… 총국장 동지, 그게 당장은 힘들 것 같습네다.”
얼른 침실로 갈 생각에 부풀었던 림학봉은 도깨비처럼 인상을 구긴다.
“왜 안 된단 말이네?”
“아시다시피 최근 평양 인근에 전파가 터지질 않습네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방송이 어렵슴다.”
“이익…… 그 남조선에서 보내는 비행체 때문에 그러는 기야?”
“맞슴다. 그 비행체가 주변 전파를 전부 방해하는 터라, 텔레비죤, 라디오는 물론이고 부대에서 쓰는 무전도 먹통입네다.”
림학봉은 창가로 다가가서 밖을 내다본다. 평양 하늘엔 방금 언급된 드론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어제도 저 비행체를 처리하라고 했을 텐데?”
“없애는 속도보다 새로 날아오는 비행체가 더 많아서 소용이 없슴다. 그리고 야산이나 하천에 떨어진 놈들도 전파를 계속 쏘는 터라, 복구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간악한 미제 앞잡이 아니랄까 봐. 하는 짓도 가증스럽구만.”
“유선으로 연결 가능한 평양 주변은 방송을 내보낼 수 있슴다. 거기라도 방송을 하시겠슴까?”
위임식 방송을 하는 이유는 지방 세력의 적통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평양 일대에만 방송을 내보내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평양 외부에서 방송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라우. 비행체도 최대한 빨리 치우고.”
“알겠습네다.”
림학봉은 김여주를 닮은 여인의 목을 콱 잡아 쥐고서 회의실을 나선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갈 때쯤, 동시다발적으로 무전이 들어온다.
-치직! 칙! 칙!
-긴급…… 치직…… 칙…… 치익!
-치지지지지…… 피해야…… 칙.
노이즈가 너무 심해서 무전의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다급한 상황임은 확실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으니 날래 알아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삐이이이이잇-’하는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폭음.
쾅-!
김일성광장 한복판에 불꽃이 치솟는다. 어디선가 쏜 미사일이 떨어진 것이다.
미사일을 맞은 광장 일대엔 비상경보가 울렸다. 동시에 주둔 중인 보병들은 바퀴벌레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장교들이 나서서 사태 파악을 해보려고 했으나, 그럴 여유 따윈 없었다.
바로 2타, 3타, 4타…… 연속으로 미사일이 날아와서 일대를 화염과 시커먼 연기로 뒤덮는다.
“총국장 동지, 일단 피하셔야 합네다!”
“무슨 소리네! 어케 된 일인지 파악을 해야 할 것 아니야!”
“무전이 전부 먹통이라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슴다! 먼저 피하십시오!”
이때 또다시 날아오는 미사일 세례가 고막을 찢어발긴다.
쾅! 쾅! 쾅!
무력감에 치가 떨렸다. 본진이나 마찬가지인 평양이 폭격당하는 중인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그는 평양으로 방해 비행체가 날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남조선 개 간나 새끼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 * *
찰칵.
건물 밖으로 나오면 습관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후…….”
하얀 연기가 폐부를 가득 메웠다가 다시 빠져나간다.
최근 들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담배를 태우다 보니, 이젠 담배를 물고 있지 않으면 뭔가 허전할 정도다.
뒤이어 같은 중독 증상을 겪는 박태식이 따라 나온다.
“불 좀 주라.”
나는 녀석에게 라이터를 휙 집어 던져 주고는 밖을 내다본다.
도로를 메운 자동차와 바삐 걸어 다니는 사람들, 가끔 들리는 클랙슨 소리까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도심지의 풍경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선 전쟁이 한창일 텐데, 이곳은 지독하게 평온한 모습이다.
“야, 신우혁. 왜 그리 무게를 잡고 있어?”
“그게…… 최근 들어서 내가 알던 상식이라는 놈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 같아서.”
“그게 뭔 소리야?”
“북한에서 쿠데타가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백악관에 연락해서 군사 개입을 요청했었거든.”
박태식은 삐딱하게 서 있던 자세를 고쳐 잡는다.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기껏 쌓아둔 평화 노선이 무너지잖아. 그래서 당연히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중국이 버티고 있으니 어쩔 수 있나.”
“북한이 기름을 펑펑 뽑아 올리는 산유국이었어도 그랬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북한은 중국과 맞붙을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없기에 버려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움직임도 상식 밖이야. 그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 누가 알았을까.”
“러시아에 그만한 돈을 쥐여 줬으니까 움직인 거 아냐?”
“내가 원한 건 북한 군부를 움츠리게 할 정도의 위협 공격이었어.”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 중심지인 평양에 미사일을 쐈다. 그것도 한두 발이 아니라 수십 발에 달하는 폭격이었다.
“만약 미사일이 잘못 떨어져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죽었으면? 아니, 그 전에 타국 수도에 이렇게 쉽게 미사일을 쏴도 되는 거야?”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던 전쟁이 너무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마치 길을 걷다가 만나는 길고양이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내 앞을 막아선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러다 북한 군부가 항복할 수도 있는 거잖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내가 뭔가를 시도한 이후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비행기 테러로 죽었고, 북한에서 쿠데타가 터졌으며, 러시아는 평양 시내에 미사일을 쐈다.
‘더 끔찍한 것은 이게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지.’
만약 이번 사태가 한반도를 넘어, 러시아와 중국까지 번져서 세계 3차 대전으로 확전된다면 그것도 전부 내 잘못일까?
전부 내 잘못은 아닐지라도 내가 나비효과를 일으킨 나비임은 확실했다.
그러니 내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했다.
삑.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와 달리 트럼프는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오우! 대니얼, 우린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봅니다. 안 그래도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잡음이 들려온다. 트럼프는 파티장이나 회의실처럼 사람이 많은 장소에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있고 말고요. 일전에 대니얼이 부탁했던 북한 건, 거절하고 나서도 제 마음이 아팠단 말이죠. 그런데 이젠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트럼프는 기쁜 듯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북한의 핵 격납고에서 미사일을 반출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북한이 핵을 쏘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움직임을 보인 핵 격납고 위치가 러시아 쪽이 아니라 한국 쪽에 더 가깝더군요.
북한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는 거리가 멀어서 핵미사일로 위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니 바로 아래에 붙은 한국을 인질로 삼겠다는 작전이리라.
“북한이 한국에 핵미사일을 쏘면 방어할 수 있습니까?”
-핫핫핫.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언컨대 북한이 핵미사일을 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 절대라는 게…… 혹시 미군?”
-역시 눈치가 하나는 수준급이로군요.
트럼프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더 짙게 묻어난다.
-북한이 핵을 꺼내준 덕분에 미군이 개입할 명분이 생겼습니다. 내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내일 아침에 뜨는 해를 볼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