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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56화 (156/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56화

강원도 1군단을 이끄는 박춘석은 새벽녘 황당한 보고를 받았다.

원산항 인근 해안가에 러시아 전함과 상륙함이 나타났다는 것.

동해안에는 평소에도 러시아 군함이 지나다니긴 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 함선이 동시에 움직인 적은 처음이었다.

“저, 저, 저 로씨아 배들이 왜 륙지에 올라와 있네?”

박춘석이 해안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러시아 군함들이 정박해서 전차를 비롯한 병기들을 내리고 있었다.

“누가 허가했어? 지시한 개나발 새끼는 당장 나오라우!”

박춘석의 일갈에 해안경비를 담당하던 장교가 헐레벌떡 뛰어나온다. 박춘석은 담당 장교가 경례를 붙이기도 전에 발길질부터 날리고 본다.

“끅! 구, 군단장 동지. 제 말을 먼저 들어보시라요.”

“말을 듣고 말고가 어디 있네? 여긴 우리 공화국 땅이야. 아무리 로씨아 전함이라도 들여보내선 안 된다는 걸 몰라?”

“저도 처음엔 정박 요청을 거부했습네다. 그런데 배 안에 타고 계신 분이…….”

“이런 정신 빠진 놈을 봤나. 누가 타 있든 무슨 소용이네? 위원장 동지가 타고 계셔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기야!”

그때 해안 도로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길은 내가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그곳엔 김정은의 이복동생인 김설화와 정치국장 리권세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 당신들이 어떻게?”

“왜 그리 놀랍니까? 우리가 여기 있으면 안 될 일이라도 있습네까?”

박춘석의 머리가 부산히 돌아간다. 여기서 이들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이미 평양은 정찰총국의 군대가 꽉 잡고 있단 말이디. 그러니 줄을 서려면 역시…….’

김설화를 잡아서 평양으로 보낸다면 확실히 정찰총국 쪽의 줄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녀와 동행한 러시아 군대가 마음에 걸렸다.

러시아 구축함 2대와 상륙함 4대, 그리고 저만치 보이는 잠수함까지.

이 정도 병력이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군함을 전부 끌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로씨아가 김설화를 돕는 상황이라면 정찰총국이 밀릴 수도 있단 말이지.’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는 전력만 따지면 러시아보다 정찰총국의 뒤를 봐주는 중국이 우위다.

하지만 중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지 않았던가.

박춘석이 머릿속으로 박 터지게 저울질을 하는 동안, 김설화가 은근슬쩍 정보를 터놓는다.

“군단장 동지의 충정은 우리 위원장 동지도 익히 알고 있습네다. 그래서 이번에도 꼭 먼저 도움을 청하라고 했지요.”

“위원장 동지가 살아 계십니까?”

박춘석은 말을 내뱉은 뒤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김정은이 비행기 테러로 죽었다는 소식은 아직 대외비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살아 계시지요. 당연한 걸 왜 묻는 겁네까?”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김설화는 한 걸음 더 다가와서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위원장 동지가 비행기 사고를 당하신 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은 동지는 간악한 무리의 공격을 예상하시고 특수처리된 비행기 객실에 타고 계셨습니다.”

“…….”

“가벼운 치료만 끝나면 위원장 동지는 공화국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그때가 되면 국가전복 도당들은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요.”

해외로 나간 김정은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김설화는 김정은이 살아 있다며 세력을 모을 텐데, 그건 북한에선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군단장 동지. 저희가 여기 있으면 안 됩니까?”

계산을 끝낸 박춘석은 김설화에게 격식을 갖춰서 경례를 올린다.

“안 될 리가 있겠슴까. 서기실장 동지 지시라면 배를 몇 대 대든 상관 없습네다.”

“고맙습니다. 군단장 동지가 이번에 보여준 충정은 꼭 기억해 뒀다가 보상을 내리겠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한 게 아닙네다.”

김설화는 급하게 고갤 흔드는 박춘석에게 다가가서 손을 붙잡는다.

“이번 일이 끝나면 빈자리가 많이 납니다. 저는 중앙과 가까운 자리일수록 군단장 동지처럼 곧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함다.”

박춘석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같은 직급이라도 평양에 들어가냐 못 가냐로 권력의 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 박춘석, 맡겨만 주신다면 공화국의 번영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습네다.”

* * *

러시아 함선을 살피던 1군단 군단장은 한참이나 알랑거리다가 해가 뜰 때가 돼서야 자릴 떠났다.

그가 완전히 모습을 감춘 뒤, 김설화는 참았던 한숨을 내뱉는다.

“서기실장 동지, 어깨 쭉 펴십시오. 로씨아가 우릴 도와주는 데 뭐가 걱정입네까?”

미국의 지원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포섭하자는 리권세의 계획은 완벽히 들어맞았다.

러시아는 북한과 우호 관계였기에 쉽게 공격할 수 없었고, 공격해서도 안 되는 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설화의 생각은 달랐다.

“방금…… 위험했습니다.”

“뭐가 위험했단 말입니까?”

“군단장의 살쾡이 같은 눈빛을 못 보셨습니까? 제가 위원장 동지의 이름을 대지 않았으면 우릴 공격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1군단 군단장은 심지가 곧기로 유명한 사람입네다. 그러니 위원장 동지 이름을 대지 않았어도 우릴 도왔을 겁네다.”

김설화는 어릴 적부터 눈칫밥을 먹고 살았었기에, 군단장의 무표정 속 감정 변화를 전부 읽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리권세는 그녀가 김정은을 언급한 것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아무튼, 저는 위원장 동지 이름을 대고 다니는 건 반대입니다.”

“이유가 뭐죠?”

“그야 당연히…….”

리권세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한 번 둘러보고 말을 잇는다.

“세상에 죽은 분 이름을 팔고 다니는 경우가 어디 있습네까? 우리가 저잣거리 패당도 아니고, 이건 위원장 동지의 명예가 걸린 문젭니다.”

“국장 동지, 우리는 죽은 사람의 명예를 챙길 정도로 한가하지 않습니다.”

“어디 그런 불손한 말을! 썩어질 남조선 기업가를 따라가는 겁네까?”

김정은의 죽음을 은폐하고 군부를 회유하자는 작전은 신우혁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리권세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콧잔등을 잔뜩 찌푸린다.

“그 남조선 기업가는 도덕이 없슴다. 그를 따르다간 우리도 도덕 없는 사람이 된단 말입네다.”

“국장 동지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됩니까?”

“파악이 안 되다뇨? 뭘 말입니까?”

“우릴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죽은 위원장 동지가 아니라, 도덕 없는 남조선 기업가란 말입니다. 그런데 국장 동지는 거꾸로 그를 욕하고 있잖습니까.”

리권세는 그녀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북한으로 보낼 용병을 모은 것도, 미국에서 무기 지원을 받아낸 것도, 돈을 풀어서 러시아 해군을 움직인 것 역시 그가 한 일이었다.

“저는 공화국을 지킬 수 있다면 도덕쯤은 백번 천번도 버릴 수 있습니다. 위원장 동지도 저승에서 그걸 바라고 있을 겁니다.”

* * *

평양 중심지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위치의 고위층 전용 호텔.

유일한 출입로인 정문은 물론이고 창문까지 테이프로 봉해져 있었다. 외관만 보면 오래된 폐건물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실제론 객실마다 보호 대상으로 지정된 외국인들이 숨을 죽인 채,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면 됩니다. 밥은 시간 되면 재깍재깍 가져다주니까,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됨다. 만약 밖으로 나갔다간 우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슴다.”

이소영을 호텔로 데려온 군인은 주의사항을 몇 번이고 신신당부한 뒤에야 객실을 떠났다.

드디어 홀로 남게 된 그녀.

침대까지 걸어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해낸 건가? 진짜?”

이소영의 손에는 북한군 간부에게 받아낸 위성 전화가 들려 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무모한 짓이었다. 계획이 조금만 엇나갔다면 머리에 총알이 박혀도 이상치 않았다.

그럼에도 이소영은 회사에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북한군 간부와 거래를 성사시켰다.

‘아직 기뻐하긴 일러. 통화가 되는지부터 확인해 봐야 해.’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 버튼을 꾹꾹 누른다. 어찌나 긴장됐으면 전화기를 쥐고 있는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위성 전화 특유의 발신음이다.

그렇게 30초가 넘도록 같은 소리만 이어지다가 처음으로 툭, 하고 걸리는 소리가 난다.

“대표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

대답이 바로 돌아온다.

-소영 씨? 거기 어딥니까? 괜찮은 거예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소영은 눈물이 핑 돌았다. 동시에 하고픈 말 수십 가지가 먼저 나오겠다고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욕구를 꾹 참아내고 준비한 멘트를 먼저 내뱉는다.

“이 전화는 도청당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제가 말할 테니까 대표님은 예, 아니오로만 답해주세요.”

-예.

“먼저 저는 괜찮아요. 평양의 어떤 호텔에서 지내는 중이에요. 이곳은…… 꽤 괜찮아 보여요.”

-평화사절단으로 간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습니까?

“아뇨. 다른 분들은 수용소에 갇혀 있어요. 저만 협상으로 간신히 빠져나온 거예요.”

이소영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물어와서 자신도 모르게 답을 해줘 버렸다.

“제가 예, 아니오로만 말해달라고 했잖아요.”

-이쪽의 정보를 주지 않는 질문은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아무튼 조심하세요.”

-예.

다시 대화가 원래 지점으로 돌아간다.

“운 좋게 북한군 보위부 간부와 거래를 텄어요. 저는 그에게 돈을 주고, 그는 제 안전과 함께, 이번 쿠데타에 관한 정보를 주기로 했죠.”

-전부 다 해서 1,000만 달러면 너무 헐값인데요.

“아이, 참. 제가 이야기한다고 했잖아요. 대표님은 말하지 마세요. 알겠죠?”

-아니오.

이소영은 자신도 모르게 뺨이 실룩거렸다.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거든요? 진지하게 임해주세요.”

-그러죠.

“제가 얻은 정보는 크게 세 가지예요. 첫 번째는 이번 쿠데타에 가담한 북한군 정보예요.”

그녀는 암기해온 쿠데타 세력의 군단 소속과 병력 규모, 배치 현황 등을 최대한 상세하게 전달했다.

-확인했습니다. 다음 정보는 뭔가요.

“두 번째는 쿠데타 세력이 쿠데타 직전에 엄청난 돈을 북한 고위층에 살포했는데 그게 다 중국에서 나온 돈이었다네요.”

-음…… 그렇군요.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중국은 신형 무기를 대량으로 보내고 있어요. 지금 북한 국경까지 왔다니까 적어도 이틀 뒤면 평양에 도착할 거예요.”

지직거리는 노이즈만 간헐적으로 들리고 대답이 없다. 혹시 통화가 끊길까 싶어서 이소영은 급하게 말을 쏟아낸다.

“마지막 세 번째 정보가 핵심이에요. 쿠데타 세력은 김여주를 생포해서 꼭두각시로 만들 계획이었대요. 그런데 김여주가 중태라서 쿠데타 세력은 대역을 준비하고…… 대표님? 듣고 계시는 거 맞나요?”

치직. 치지지직.

노이즈가 아까보다 더 심해졌다. 이소영은 급한 대로 창가로 가서 재차 통화를 시도한다.

“여보세요? 제 목소리 들리세요?”

-듣…… 있습니다. 신호가 이쪽…… 치직…… 끊…… 기는…….

“대표님 목소리가 잘 안 들려요.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으려던 차에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창밖…… 볼…… 있으면…… 확인…… 치직. 치지지직…….

노이즈가 심했지만 ‘창밖’과 ‘확인’이라는 단어는 알아들었기에 창문을 막은 테이프의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본다.

“밖에 특이한 건 안 보여요. 썰렁한 도로와 뿌연 하늘, 그리고…… 어?”

하늘에 시커먼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었다. 곤충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고, 새라고 하기엔 너무 둥글둥글했다.

“저건…… 드론? 대표님, 평양 하늘에 드론이 떠다녀요!”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드론을 북한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소영은 드론을 더 자세히 보려고 창문 테이프를 살짝 뜯어냈다. 그리고 다시 창밖을 확인했을 땐 너무 놀라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우우우우웅-.

돌아다니는 드론은 한두 대가 아니었다. 마치 메뚜기 떼처럼, 수십, 수백 대의 드론이 평양 상공을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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