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55화
한국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남북 평화사절단에는 23곳의 기업이 참여했다.
여기에 정부 관료, 예술인, 경호 인력까지 더해져서 총 4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사절단으로 꾸려졌다.
이들의 출발이 확정됐을 때만 해도 모두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정부는 대규모 민간교류 성공으로 얻을 정치적 이득을.
기업은 기회의 땅인 북한에 선제 투자하겠다는 욕망을.
각자가 원하는 바는 달랐지만, 모두가 평화사절단의 성공 기원하고 있었다는 점은 같았다.
전 국민의 관심과 응원을 받으며 출발한 평화사절단의 버스는 국경을 넘어, 평양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탈해 보였다.
그러나 사절단이 묵을 예정이던 숙소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평양 시내 외곽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찰총국과 평양방어사령부의 쿠데타가 시작된 것이었다.
끼이이이익-.
철컥.
오래된 쇠 마찰음과 철제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들려오는 안도의 한숨 소리, 고통에 찬 앓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도 드문드문 들려온다.
“흑흑…… 흑…….”
이곳은 평양 보위부에서 쓰던 수용소 건물로, 지금은 한국에서 건너온 평화사절단이 갇혀 있었다.
좁은 수용소 안에 400명이나 되는 인원을 무차별로 쑤셔 넣었으니, 갇힌 사람들은 제대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저, 저기요. 너무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져요.”
“조금씩 옆으로 좀 갑시다.”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런데…… 먹을 거 있으신 분?”
콩나물시루처럼 갇혀서 기약도 없는 시간이 흐른다. 허기와 피로, 공포가 사람들의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운 시간이 더 흘렀을 때쯤.
끼익.
북한 군인 하나가 철문을 열고 들어와서 수용소를 둘러본다.
수용소 내부가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 상대가 총을 들고 있었기에 감히 누구도 말을 걸지 못했다.
“허튼짓 말고 얌전히 있으라우.”
군인이 다시 철문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누군가 그를 불러서 멈춰 세운다.
“이봐요.”
군인은 물론이고 갇혀 있던 사람들까지 놀라서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본다. 그곳엔 WHTS컴퍼니의 책임자로 참석한 이소영 부사장 서 있었다.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걸음을 멈춘 군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소리친다.
“이야기 같은 소리 말고, 조용히 있으라.”
“지금 내 말을 안 들으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걸요? 농담 아니에요. 최평우 하사. 이름 기억해 뒀어요.”
“이 애미나이가 겁도 없이…….”
총을 든 군인이 눈을 부라리는 동안에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거부터 받으세요.”
“이게 뭐네?”
이소영이 내민 것은 머리를 묶을 때 쓰는 머리끈이었다.
“여기 달린 장식, 순금이에요.”
“뭐라?”
군인은 머리끈을 받아 가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나중엔 아예 금장식을 깨물기까지 했다.
“어? 이거 진짜 금이었어?”
“그냥 금이 아니라 순도 99.9%짜리 순금이에요.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나머지도 그냥 드릴게요.”
그녀는 철창 밖으로 아까와 똑같이 생긴 머리끈을 살랑살랑 흔든다.
군인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뭘 해달란 거이네?”
“여기 수용소에서 가장 높은 사람과 만나게 해주세요.”
“어허, 어디서 큰일 날 소릴.”
그러나 내뱉는 말과 달리, 군인의 시선은 아까부터 이소영의 손에 들린 머리끈을 향해 있었다.
* * *
정찰총국의 총참모부 부장인 김성해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눈앞의 여인이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그는 깊게 숨을 토해내고는 다시 입을 뗀다.
“그러니까 당신 세대주가…… 남조선의 부호 신우혁이란 말이오?”
“세대주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가까운 관계는 맞아요. 초창기부터 같이한 사이니까요.”
“음…….”
“아, 그리고 북한에서도 요즘 가상화폐 쓰시죠?”
가상화폐라는 말이 나오자 김성해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나, 나는 그런 거 모르오.”
“이상하네요. 제가 본 바로는 북한에서도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있던데요. 참고로 저희 회사가 가상화폐 운영하는 곳이에요.”
“남조선에서 만든 가상화폐면 도토리?”
“모른다고 하더니 알고 계셨네요?”
김성해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갤 옆으로 돌린다.
“그거 제가 만들었어요.”
“뭐요?”
“제가 도토리코인을 만들었다고요. TV에서 제 얼굴 본 적 없어요? 강연도 다니고 했는데.”
기껏해야 스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자가 무슨 수로 가상화폐를 만든단 말인가.
김성해는 비웃음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왜 여기까지 넘어오셨는지 모르겠소.”
“저희 대표님이 혼자서 북한으로 넘어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도움이 되려고 의욕적으로 나서 본 건데 결과가 이렇게 돼버렸네요.”
그녀는 잠시 쓴웃음을 짓다가 말을 이어간다.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죠. 김성해 씨라고 했던가요?”
“맞소만.”
“운이 아주아주 좋으시네요. 혹시 올해 신년 운세 뭐 나오셨어요?”
“무슨 뜻이오?”
이소영은 눈웃음을 치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저를 도와주시면 평생 구경도 못 할 큰돈을 얻게 되실 거예요.”
“여기 갇힌 사람이 돈을 어떻게 주겠단 말이오?”
“아까 말했잖아요. 제가 도토리코인을 만들었다고요.”
허풍도 적당히 쳐야 속아주는 척이라도 하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슬슬 쫓아 버릴 생각을 하던 차에,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 나온다.
“선수금으로 100만 달러. 전화 잠시 쓰게 해주면 바로 가상화폐 계좌에 송금해드릴게요.”
평소의 그였다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거절했을 거다.
그러나 상대의 거침 없는 언행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그녀의 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애미나이는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
전화를 잠시 쓴다고 해봐야 북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김성해는 속는 셈 치고 그녀에게 휴대폰과 계좌를 써서 건넨다.
“통화 시간은 딱 30초만 주겠소. 30초가 넘어가면 강제로 손전화를 뺏을 테니 그리 아시오.”
“필요 없어요. 통화 안 할 거니까.”
“그게 뭔 소리요?”
그녀는 휴대폰을 받자마자 어딘가로 메일을 보냈다. 메시지 입력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김성해가 말릴 새도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거요? 나는 통화를 하라고 손전화를 준 거지…….”
“송금했어요.”
김성해는 뭔 소린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늦게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설마……?”
그는 급히 자신의 가상화폐 계좌에 접속했다. 그리고 계좌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억!’ 하고 비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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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6 21:55
입금 대기 : 100,000 DOT
입금인 : 공식 계좌
발행 상태 : 24시간 후 이체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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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코인 10만 개면 달러로 1,000만 달러 가치였다.
북한에서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정도의 거액이 찍히자 김성해의 입이 떡 벌어진다.
“아. 실수했다. 0 하나를 더 써버렸네.”
옆에서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이소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여우와 흡사한 미소를 흘린다. 저건 절대 실수한 사람이 지을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저를 도와주시면 그 돈 전부 가져가시는 거예요. 어떻게 하실래요?”
김성해는 따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답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 * *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호텔 프라이빗 룸.
방 안에선 북한 사절단으로 동행했던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 결과는 어찌 됐소?”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리권세의 질문이 날아든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쉰 뒤 입을 뗀다.
“한국 정부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 내 그럴 줄 알았소. 저 썩어질 남조선 정부에는 한평생 도움이 안 되는 족속들이오.”
리권세가 한국 정부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는 동안, 김설화가 바톤터치 하듯이 물어온다.
“그래서 우혁 동지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평양에 아는 동무들이 갇혀 있다면서요?”
“고용한 용병을 북한에 올려보낼 생각입니다.”
“용병? 우리 공화국 군대를 너무 만만히 보는 거 아닙니까?”
리권세도 끼어들어서 한마디 거든다.
“서기실장 동지 말이 맞소. 용병부대로는 평양에 들어가기도 전에 전멸할 거요.”
이번 작전 책임자인 로어 팀장 역시 비슷한 말을 했었다.
상대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북한의 수도를 지키는 정예군이라, 어설픈 규모의 용병으로는 승산이 없을 거라고.
“이미 PMC에서 실전 경험이 있는 엘리트 등급 전투원을 700명 확보했습니다. 여기엔 미군이 보내준 특수부대 소속 전투원 200명도 포함입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생각보다 인원이 적어서 그런 것이리라.
“그리고 베네수엘라 정부에서도 지원이 있을 예정입니다. 대략 정예대원 2,000명 정도가 온다고 하더군요.”
드디어 두 사람의 얼굴색이 살짝 펴졌다. 그러나 말 그대로 살짝이었을 뿐이다. 여전히 수도인 평양에 진입하기엔 모자란 숫자였다.
“나머지 인원은 현지에서 조달할 생각입니다.”
“남조선에서 몰래 사람을 보내주기라도 하겠답니까?”
“아뇨. 아까도 말했지만 한국 정부의 지원은 없습니다.”
“그럼……?”
“우리 쪽엔 설화 씨가 있잖습니까.”
김설화는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죽었고, 김여주 국무위원은 행방불명입니다. 이런 시국에 명분은 김정은 위원장과 혈연관계인 설화 씨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김설화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공화국 군인들은 자본주의 진영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런데 제가 남조선이나 미국과 손잡았다는 이야기가 돌면 그들이 협력하겠습니까?”
북한 현지 부대를 포섭하지 못하면 전투는 둘째치더라도, 보급에 큰 난항을 겪게 된다.
우리가 난처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머릴 굴리는 동안, 리권세가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든다.
“거, 남조선과 미국만 아니면 되는 것 아니오?”
* * *
새벽이 코앞으로 다가온 야심한 밤.
원산항에 배치된 3군 소속 병사들은 하품을 쩍쩍 내뱉으며 바다를 응시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매일 초소에 올라서 하루에 8시간씩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어? 저게 뭐이네?”
병사 한 명이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켰으나 다른 병사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헛소리 말고 잠이나 자라우.”
“지금 잘 때가 아니야. 저쪽을 한번 보라우.”
병사는 뿌연 경계용 쌍안경을 닦고 다시 바다를 살핀다.
“저, 저거!”
바다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림자는 거대한 함선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가까이 접근한 함선은 처음이었기에 병사는 급히 무전을 보낸다.
“소좌 동지! 전방 1,700m 지점에 미인식 물체 발견! 이쪽으로 오는 중입네다!”
-미인식 물체? 똑똑히 확인해 보라우.
“갑판에 포가 달린 것을 보니 함선 같습네다!”
원산항에 전체에 비상경보가 울린다.
애애애애앵- 애애애애애앵-
숙소에서 총을 꼬나쥔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고, 뒤이어 장교들도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다.
“각자 자리로 이동하라!”
“포대 확인! 언제든 발포할 수 있게 하라우!”
동해상에 가끔 어선이 떠내려온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함선이 다가온 적은 처음이었다.
“어디서 보낸 배야? 남조선? 미국? 아니면 일본?”
“너무 어두워서 자세히는…….”
병사는 다시 쌍안경을 닦아낸다. 이번은 침까지 발라가며 공을 들였다.
“앗! 이젠 잘 보임다!”
“어디 소속이야?”
“저거이…… 로씨야 군함입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