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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54화 (154/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54화

북한 독재자가 탄 비행기가 드론에 의해 추락했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황당한 사고가 눈앞에서 벌어지자 사람이 멍해진다. 그만큼 이번 비행기 사고는 충격적이었다.

“빨리 물 가져와서 불부터 꺼주시오! 뭣들 하고 있소!”

사고 현장에선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구조에 나서고 있다.

발을 동동 굴렀다가, 악을 쓰고, 울부짖으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비행기에서 생존자가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나는 빠르게 패닉에서 벗어나, 그다음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죽으면 북한 정세는 어떻게 되는 거지? 따로 후계자가 있었나?’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김정은의 친동생인 김여주였다.

그녀는 비록 여성이지만 정식 백두혈통이라는 점에서 북한 내 서열 2위로 불리고 있었다.

‘만약 북한 지도자가 무난하게 김여주로 교체되면 좋겠지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특히 강경파인 군부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되기라도 하는 날엔…….’

딱 여기까지 이어지던 생각의 흐름이 멈췄다. 아니, 정확한 표현으론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불구덩이를 뛰어다니던 리권세가 다가오더니 대뜸 권총을 겨눴기 때문이다.

“이 간나 새끼. 네가 꾸민 짓이지? 내가 모를 것 같나?”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위원장 동지가 이 시간에, 여기 구석진 공항에 도착한다는 정보는 공화국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어! 그런데 이딴 일이 어케 벌어지갔어?”

권총을 움켜쥔 리권세의 뺨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까지 시뻘건 걸 보니 충격으로 반쯤 돌아버린 것 같다.

“말해보라우. 남조선에서 우리 공화국을 해하려고 꾸민 짓이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김정은을 죽여서 제가 어떤 이득을 얻는단 말입니까?”

“어디서 더러운 입에 위원장 동지 이름을 올리는 게야!”

양손으로 움켜쥔 권총의 총구가 내 머리 쪽을 겨눈다.

“날래 말하라우. 누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네가 안 했어도 흑막이 누군지는 알 것 아니네!”

“리권세 씨, 총을 내려놓으세요. 진짜 위험합니다.”

“개소리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 날래 말하지 않으면 진짜 머리통이 날아가는…….”

리권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둔탁한 총성이 들려온다.

타-앙!

권총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멀리서, 리권세의 권총을 노리고 쏜 저격총의 총성이었다.

“끄으으!”

한 박자 늦게 리권세가 비명이 삼킨다.

그는 손을 움켜쥐고 덜덜 떨어댔다. 들고 있던 권총이 박살 나면서 그 충격이 손으로 전달된 것 같다.

“제가 위험하다고 경고했잖습니까.”

“바, 방금 뭐였소……?”

“제 개인 경호팀입니다. 리권세 씨가 권총을 겨눴으니 그에 맞는 대응에 들어간 거죠.”

리권세는 고갤 돌려서 주변을 빠르게 둘러본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왔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깜깜한 새벽에 저격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경호팀 실력이 좋았기에 이 정도로 끝난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리권세의 손등이나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났을 거다.

“으으…… 썩어질 남조선 것들…….”

그때 불을 끄러 다니던 김설화가 나타나서 이쪽으로 달려온다. 리권세는 그녀를 보자마자 목에 핏대를 세웠다.

“서기실장 동지. 저 간나 새끼가 우릴 속인 거라요! 전부 짜고 이런 게 분명합네다!”

그녀는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입을 뗀다.

“우혁 동지는 이런 짓을 벌일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가 왜 없습네까? 남조선 정부와 손잡고 우리 공화국을 꿀떡 삼키려고 수작질을 부린 겁니다!”

“국장 동지, 본디 기업가란 족속은 자본주의를 숭상하는 냉혈한입니다. 최고 기업가인 그가 어쭙잖은 통일을 바라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공화국에 투자해서 돈이 나오길 바라겠습니까?”

“그건…….”

자본주의를 숭상하는 냉혈한이라…… 구구절절 맞는 말이긴 한데, 은근히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흠흠.”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며 일부러 헛기침 소리를 냈다.

긴장한 듯한 두 쌍의 눈동자가 빠르게 내 눈치를 살핀다.

“이번 사태로 여러분이 혼란스러운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지도층이면 이후의 대응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권세는 타오르고 있는 비행기 쪽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위원장님께서 돌아가신 마당에 우리더러 뭘 하란 말이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테러로 사람을 죽이진 않습니다. 필시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 일을 벌인 거겠지요.”

“이유라니?”

“예를 들면…… 쿠데타를 시도한다거나.”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서 동시에 휴대폰을 꺼내 든다. 본국에 전화해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이리라.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으련만.”

항상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더라.

* * *

북한 지도자가 머무는 평양 주석궁은 핵 공격에도 버틸 수 있도록, 지하 100m에 벙커까지 지어둔 완벽한 요새다.

그러나 아무리 견고한 요새라 할지라도 내부의 반란에는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숨은 놈들이 있는지 건물 전체를 샅샅이 뒤져보라우!”

주석궁은 이미 정찰총국의 군인들에게 점령당한 뒤였다.

본디 이렇게 쉽게 점령당할 곳이 아니었으나, 방어의 핵심인 평양방어사령부가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불과 2시간 만에 모든 방어시설이 무력화되고 말았다.

“하늘이 나, 림학봉을 돕는구만 기래.”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인 정찰총국 국장 림학봉은 끌끌거리는 웃음을 흘린다.

웃음을 참아보려 해도 참을 수 없었다. 그만큼 모든 상황이 그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김정은이 미국과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에 군부의 불만이 치솟았고, 중국도 북한 지도부의 행보에 반발하여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 김정은이 해외로 나가는 행운까지 겹쳤으니, 이것이 바로 천재일우의 기회 아니겠는가.

“흠…….”

림학봉은 주석궁의 중앙 홀을 산책하듯이 걸어 들어간다.

넓디넓은 홀의 바닥엔 값비싼 대리석과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벽면엔 미술품이 가득했으며, 중심부엔 김일성과 김정일의 실물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툭.

림학봉은 김일성 동상을 걷어차서 넘어트린다.

그는 쓰러진 동상 위에 걸터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수령 동지, 3대나 해 처먹으면 오래 해먹었지요. 이젠 비켜주시라요.”

그가 담배를 반쯤 태웠을 무렵, 한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중앙 홀에 들어온다.

정찰총국 부국장인 최룡수였다.

“김여주를 찾았습네다.”

“여기로 데려와.”

“그게…… 상태가 좀 안 좋습네다. 초기 포격 때 건물 잔해에 깔렸는지, 하반신이 엉망입네다.”

이번 쿠데타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려면 백두혈통의 공식적인 지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김여주를 사로잡아서 꼭두각시로 쓸 생각이었건만.

림학봉은 김일성 동상의 눈알에 담배를 비벼 끈다.

“살릴 수 있갔어?”

“피흘림이 심해서 급한 대로 피멎이약을 써두긴 했습니다만, 쉽지 않아 보입네다.”

“쯧쯧. 끝까지 도움이 안 되는 애미나이구만. 평양 시내에서 비슷하게 생긴 얼굴을 찾아보라우.”

“알겠습네다.”

뒤돌아서 나가려는 최룡수를 림학봉이 멈춰 세운다.

“잠깐, 남조선에서 올라왔다던 기업가들은 어찌 됐어?”

“싹 잡아서 수용소에 넣어뒀습네다.”

“고것들이 허튼 짓거리 못 하게 간수 잘하라우.”

“밥만 축내는 남조선 것들을 살려둘 필요가 있겠슴까? 지시만 내려주시면 제가 가서 싹 없애 버리겠습네다.”

군부는 남한 정부를 적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이번에 도착한 평화사절단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다.

만약 림학봉이 잡아두라고 명령해두지 않았으면 진즉 사살했을지도 모른다.

“전부 살려두라우.”

“국장 동지! 지금 같은 시기엔 공개처형으로 본보기를 보여주는 게 옳슴다.”

“내가 살려두라면 살려두는 거야. 알갔어?”

최룡수는 림학봉의 위협적인 눈빛을 보고는 조용히 고갤 숙인다.

“알겠습네다.”

“그럼 가보라우.”

최룡수가 홀을 떠난 뒤.

홀로 남은 림학봉은 자신이 깔고 앉았던 김일성 동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수령 동지가 력사를 새로 쓰기 전에 물갈이를 한 이유가 있구만요.”

* * *

김정은이 비행기 테러로 죽은 그 시각.

북한 현지에선 정찰총국과 평양방어사령부 출신 군인들의 평양 공습이 시작됐다.

북한 군부의 대표적인 두 단체가 동시 공격에 들어가자 평양 주석궁은 순식간에 점령됐고.

뒤늦게 국경에 있던 군대가 평양을 수복하러 움직였으나, 지휘 체계 혼선으로 제대로 된 전투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뜬금없이 중국 외교부의 공식 발표가 나온다.

-이번 북한 사태는 자국민끼리의 내전으로 중국은 참전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타국이 내전에 개입할 경우, 우리도 혈맹의 존속을 위해 조처에 들어갈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북한 사태에 개입하지 말라는 엄포였다.

이에 미국이 먼저 이번 사태에 유감을 표명했으며, 한국 정부는 현 사태를 전시 상황으로 상정하고 전 병력을 국경으로 집결시켰다.

“이후에 어떻게 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납득하고 기다리든, 아니면 독자적으로 움직이든 할 것 아닙니까!”

화상 통화가 한창인 임시 회의실에선 아까부터 고성이 오간다.

통화 상대는 한국의 대통령실로, 그들과는 북한 사태의 개입 방향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었다.

-신 대표님, 저희도 당연히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현지 정보가 부족한 걸 어쩌겠습니까?

“정부에서 답을 못 주시면 제 방식대로 북한에 개입하겠습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저희를 믿고 기다려 주시면…….

아까부터 하는 소리라곤 안 된다, 믿고 기다려 달라, 진정해라 밖에 없다. 덕분에 입안에서 빠드득하고 이빨 갈리는 소리가 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 올라간 저희 직원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정부가 그들을 평화사절단으로 보냈으면 책임지고 구조에 나서야 할 것 아닙니까.”

-저희도 여러 루트를 써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허가가 없으면 군을 움직이지도 못하잖습니까. 설마 쿠데타가 끝나고 협상이 진행될 때까지 손 놓고 있겠다는 건 아니겠죠?”

-저…… 그게…….

대책 없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 뚜껑이 열릴 것 같다.

“실장님, 정부가 평화사절단 참가를 종용하지만 않았어도…… 제가 이렇게까지 원망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죄송하다면 답니까? 우리 회사는 북한과 협상이 끝나서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상징성이니 뭐니 들먹이는 바람에…….”

정부가 요청한 평화사절단 명단엔 이소영이 포함돼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타 기업에서 부사장급이 가기로 했으니까 WHTS컴퍼니도 급을 맞춰달라는 것.

‘그녀가 끝까지 못 가게 막았어야 했는데. 젠장.’

역사대로라면 북한에선 전쟁이나 쿠데타가 없었으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기업 총수들도 방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정부에서 군을 올려보낼 생각이 없으면 제가 독자적으로 움직이겠습니다.”

-신 대표님! 잠깐…….

정부와 회의는 시간 낭비였다. 나는 강제로 화상 통화 연결을 끊어 버렸다.

“로어 팀장.”

진한 회색 정장의 사내가 앞으로 나선다. 작년에 영입한 경호팀 팀장인 마크 로어였다.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소속 불문, 24시간 이내에 모을 수 있는 전투 인원이 얼마나 됩니까.”

“기한이 일주일이면 모르겠지만 24시간이면 모을 수 있는 인원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제 예상으론 500명 전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PMC(Private Military Company : 민간군사기업) 소속으로 팀을 이끌었었다. 그러니 단순 예측치라 해도 신뢰도는 높았다.

“무기는 제가 미국 쪽에 지원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로어 팀장은 최대한 사람을 모아보세요.”

“이번 작전에 인원이 몇 명이나 필요한지 알고 싶습니다.”

“최대한 많이 모아주시면 됩니다.”

내 말이 애매모호했는지 로어는 입술을 달싹거린다.

나는 그가 의도를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인다.

“말 그대로 최대한입니다. 돈이라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기존 몸값의 3배, 필요하다면 10배를 써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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