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53화
그동안 역대 미국 정부는 북한과 핵 협상을 수차례 시도했었다.
지원책을 제시했다가 강경책으로 선회도 해보고, 경제 압박으로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 정부의 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 ICBM(Inter 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시험 발사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분석가들은 한반도에 전쟁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쟁 분위기는 북한의 특별사절단이 백악관에 방문하면서 180도 뒤집히게 된다.
[북한 특별사절단이 전달한 김정은의 친서. 트럼프 대통령 “북한 사절단이 가져온 김정은의 친서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
[트럼프 정부, 이전 정부들이 해내지 못했던 북한 비핵화 성공하나? 핵 협상까지 초읽기.]
[트럼프와 김정은의 물밑 협상을 끌어낸 것은 WHTS컴퍼니의 대표 대니얼 신. 얼마 전 직접 북한을 다녀오기도 해……]
[독재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돈이었다. 북한 내부 소식통 “대규모 투자 결정이 김정은의 심경 변화를 이끌었을 듯”]
전 세계가 이번 미국과 북한의 협상을 주시했다.
지금껏 양국이 이렇게까지 긴밀히 협력한 역사가 없었기에, 일각에선 당장 통일이 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급해진 것은 미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닌, 바로 한국 정부였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 쪽 상황이 심상치 않은 터라 급하게 자릴 마련했습니다.”
단상에 선 이원훈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원탁을 향해 재차 양해를 구한다.
그곳엔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 총수들이 전부 모여 앉아 있었다.
“이런 자리에 초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도 북한 쪽이 어찌 돌아가는 중인지 궁금하던 차였으니까요.”
SG그룹의 유성광 회장이 목소릴 낸다. 참고로 통신 분야인 SG그룹은 그 어떤 기업보다 북한 시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북한에 대규모 전기차 공장을 지어준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약간 날이 선 듯한 목소리.
대현그룹의 이태석 회장이었다.
자동차가 주력인 대현으로선 인건비가 저렴한 북한에 전기차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미국과 협의는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통일이나 정전이 성사되면 경기도, 강원도 일대의 군사 구역은 어떻게 처리할 예정입니까?”
“우리 측에서 북한의 땅을 미리 확보할 방법은 있습니까? 도로나 철도 운영은 계획은요?”
기업인들의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북한과 관계 개선이 얼마나 되냐에 따라 수조 원이 왔다 갔다 했기에, 그들로선 질문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원훈 비서실장은 질문에 답하지 않고, 준비된 서류를 기업인들에게 쭉 나눠준다.
“헛! 이것은……?”
서류 내용을 확인한 기업인들이 놀라서 헛숨을 들이 삼킨다.
이원훈은 어깰 으쓱거리며 말했다.
“정부가 북한 지도부와 협의한 끝에 평화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측도 은근히 기업의 투자를 바라는 눈치라서,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봤자 개성공단의 연장선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번 건은 사안의 급이 다릅니다. 기존엔 기껏해야 개성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다면, 이번 평화사절단은 평양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평양에 간다는 것은 북한 고위층과 접촉할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소극적이던 이들까지 눈을 빛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과 협의 중인 또 다른 사안이 있는데…… 이건 아직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서 참고만 하셔야 합니다.”
이원훈은 비밀 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목소리 톤을 낮춘다.
“미국 정부는 북한 특구에서 생산한 공산품을 한국 생산으로 인정해주고, 미국 내 관세 우대 혜택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생산품은 기존에도 made in Korea 표기를 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무려 미국의 공식 인정 아닌가.
게다가 미국 내 관세 우대까지 해준다고 하니 기업 총수들 눈이 돌아갈 수밖에.
“그래서 사절단은 언제 출발합니까? 규모는요?”
“대략적인 사업 개시일을 알려주십시오!”
“우리 정부에서는 어떤 지원책을 준비 중입니까? 치안 유지는 확실합니까?”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려면 길부터 뚫려야 합니다. 정부에서 책임지고 북한과 이어지는 도로와 항만부터 해결해주십시오.”
기업 총수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고 이원훈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실, 이번 건은 기업보다 정부에서 더 목을 맬 사안이었다.
이대로 트럼프와 김정은이 핵 협상을 끝내버리면 한국 정부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평화사절단으로 북한과 독자적인 교류가 이뤄지면 그땐 정부도 내세울 거리가 생기게 된다.
“평화사절단은 나흘 뒤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참여를 원하는 기업은 적어도 모레 정오까지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 *
베네수엘라 북동부에 있는 산토메 공항의 야경은 지독히도 어두웠다.
입국장 건물과 드문드문 보이는 관제탑의 조명만이 빛나고 있을 뿐, 그 외엔 자동차 헤드라이트조차 귀하게 느껴진다.
까만 하늘을 응시하며 담배를 태우던 내 옆으로 박태식이 다가온다.
“야, 담배 좀 끊어라. 그러다 폐 썩는다.”
“잔소리할 거면 너부터 먼저 끊던가.”
“난 일부러 안 끊는 거야. 담배 끊고 오래 사는 것보다 마음껏 피고 빨리 죽는 게 낫다는 주의거든.”
“꼭 그렇게 말하는 놈들이 건강에 좋다는 걸 입에 달고 살더라.”
박태식은 씩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문다.
“후…… 그런데 김정은이 여기로 오는 건 확실한 거야?”
“그제 북한에서 출발했다더라. 지금쯤이면 거의 다 왔을걸.”
“거참, 이해가 안 되네. 이런 촌 동네까지 찾아와서 뭘 하려는 건지.”
나 역시 김정은이 직접 베네수엘라에 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땐, 질 나쁜 농담인 줄 알았다.
“독재자가 나라를 비우면서까지 베네수엘라에 오는 이유가 뭘까?”
“이번 사업이 북한에 중요하니까 직접 챙기려는 거겠지. 아니면 그냥 의심이 많은 성격일 수도 있고.”
“겨우 그딴 이유로 생고생을 해가며 베네수엘라까지 날아온다고?”
박태식이 괜히 저런 말을 꺼내는 게 아니다.
김정은은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신의주까지 이동한 뒤, 차를 3번이나 갈아타고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
그 후엔 전세기를 빌려서 제네바 국제공항을 경유하고 베네수엘라로 날아오고 있었다.
“올 거면 낮에 올 것이지. 뭐 하러 이 새벽에 사람도 없는 공항을 콕 집어서 들어오겠다고 지랄이냔 말이다.”
“비밀 방문이래잖냐.”
“비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무슨 첩보영화라도 찍어?”
박태식은 김정은의 베네수엘라 방문이 마음에 안 드는지 그 후에도 한참이나 투덜거림을 이어간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보다 북한에 가는 건 생각해 봤어?”
박태식은 땅을 꺼트릴 기세로 한숨을 내뱉는다.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내가 무슨 힘이 있냐.”
“진짜 못 가겠으면 말해. 다른 사람 알아볼 테니까.”
“요놈 봐라.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나 말고 북한에 보낼 사람도 없잖아.”
박태식은 지금껏 베네수엘라에 머물면서 신규 광산 개발, 배터리 공장 건설, 물류 운송까지 도맡아서 관리해왔다.
그러니 이번 북한 개발 사업에도 그가 최고의 적임자인 셈이다.
“태식아. 한 번만 더 고생하자.”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나중에 딴소리만 해봐. 다 던지고 도망갈 거다.”
“그땐 딴소리하고 싶어도 못 할걸.”
나는 속에 품고 있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다.
“나, 이번 북한 개발 건 끝나면 은퇴하려고.”
박태식은 당황했는지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릴 뻔했다.
“뭔 소리야? 은퇴라니?”
“회사 경영에서 손 떼고 소일거리나 하면서 살 생각이야. 너무 전력으로 달려와서 그런지 좀 지치네.”
“아니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나는 녀석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장난스럽게 토닥거린다.
“박태식 대표님, 앞으로 회사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 내, 내가 어떻게 대표를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왜 말이 안 돼? 우리 회사 이름 앞글자 WH는 우혁이고, 뒷글자는 TS는 태식이잖아. 그러니 네가 후임 대표가 되는 건 당연한 거야.”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너를 대신해서 대표가 될 정도로……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투자금 30억짜리 벤처기업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대표 이사의 후임자.
부담이 안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하리라.
“걱정하지 마. 필요하면 가끔 조언 정도는 해줄 테니까. 그게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아니, 그래도…….”
박태식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담배만 뻑뻑 피워댄다. 중요한 이야기를 너무 갑작스럽게 꺼냈나 보다.
나는 녀석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밤하늘을 뚫고 다가오는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온다.
“저기 봐. 김정은이 도착했나 본데.”
공항 활주로에는 북한 사절단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북한 스타일의 꽃다발과 화환, 그리고 이 새벽에 사람을 어디서 구했는지 환영 인파도 제법 모여있었다.
휘이이이이잉-.
활주로가 가까워지자 비행기의 고도가 서서히 낮아진다. 이젠 육안으로도 비행기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끼긱. 끽. 끽.
비행기 쪽으로 까만 점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게 보인다.
우리는 물론이고 활주로에서 기다리던 북한 측 사람들도 이상을 느끼고 웅성대기 시작한다.
“저, 저, 저거 드론입니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비행기의 날개 쪽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난다.
펑!
비행기의 몸체가 크게 기우뚱한다. 다행히 비행기는 여전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또 누군가는 드론 조종사를 찾으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그때 아까와 흡사한 폭음이 또 들려왔다.
펑! 펑! 펑!
이번은 세 번 연속이다. 날개 쪽에서부터 불길이 치솟는다.
균형을 잃은 비행기는 빠르게 지상과 가까워졌다.
나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지켜봤으나 아까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콰앙-!
비행기가 머리부터 활주로에 처박혔다. 끔찍한 파열음에 이어 패닉에 가까운 비명이 공항에 울려 퍼진다.
“아, 안 돼! 위원장 동지!”
“뭐 하고 있네! 날래 불부터 끄라우!”
희망이 없어 보였다. 이미 비행기 몸체는 5등분으로 산산이 조각나 있었고 그마저 불길에 뒤덮여서 엉망이었다.
뒤늦게 쫓아온 박태식이 숨을 헐떡거리며 소리친다.
“우혁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도 모르겠다. 망연자실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고 북한 지도자를 살살 꾀어서, 이젠 도장 찍을 일만 남겨두고 있었는데,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