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51화
북한에 희귀광물 광산을 개발하고, 배터리 공장을 짓고, 더 나아가 초대형 전기차 공장을 세운다.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이루고자, 나는 직접 북한까지 올라가서 김정은을 만나는 초강수를 뒀다.
한국인이 경호원 하나 없이 북한에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미친 도박을 태연하게 실현했고, 그 결과 주석궁 만찬장에서 김정은에게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바로 다음 날 치러진 정식 미팅 때도 긍정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졌다.
김정은은 하루라도 빨리 계약을 맺고 싶어서 몸이 달아 있었다. 만약 계약서와 도장을 들이밀었다면 그 자리에서 계약이 성사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에 공장을 지으려면 먼저 미국의 허가가 필요했다.
-승객 여러분, 에어차이나 항공 탑승을 환영합니다. 우리 비행기는 나리타 공항에서 워싱턴 덜레스 공항까지 총 12시간을 비행할 예정입니다.
안내방송이 나오는 동안 입에서는 하품이 끊이질 않는다.
“하암…….”
평양 순안 공항에서 베이징 공항까지 3시간 반, 베이징 공항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다시 3시간 반, 여기에 환승 비행기를 4시간 더 기다린 뒤에야 워싱턴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장거리 비행은 정말 지긋지긋하다니까.’
나는 북한의 특별사절단과 함께 미국 워싱턴으로 가는 중이다.
최종 목적지는 당연히 백악관이다.
사전에 트럼프와 협의가 끝난 사안이라 해도, 북한 사절단이 백악관에 찾아가서 허락을 구하는 퍼포먼스는 꼭 필요했다.
‘내가 이 정도 해줬으면 나머지는 트럼프가 알아서 받아먹겠지.’
팔짱을 끼고서 억지로 눈을 감는다. 미리 수면제도 먹어뒀으니, 어떻게든 잠만 들 수 있으면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눈을 감고 있길 30분째.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이 자버린 것 같다.
수면제를 더 먹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하던 도중, 맞은편 자리에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넘어온다.
북한의 특별사절단인 리권세의 목소리였다.
“설화 동지, 고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네다. 어째서 우리 공화국이 미제 전동차 공장을 짓자고 이런 수고를 들여야 한단 말입네까? 미군의 공격 억제 용도라면 남조선 공단만 재개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함다.”
“그게 그냥 미제 공장이 아니니까 이러디 않겠슴까?”
그들 딴엔 조심한다고 목소릴 낮추고 있었으나 일등석이 워낙 조용해서 목소리가 명확하게 들린다.
“공격 억제도 중요하디만 공장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슴다. 혹시 국장 동지는 이번 공장의 규모가 얼만진 아십네까?”
“잘 모르겠슴다.”
“저 미제 전동차 회사가 상하이에 짓겠다고 마련한 터가 100만 평이 넘는다고 합네다.”
100만 평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리권세가 웃음을 터트렸다.
“예전 남조선에서 오성인지 뭔지 하는 공장주가 왔을 때도 100만 평의 기계단지를 짓겠다고 했습네다.”
“이번 건은 중국에 짓겠다던 공장을 그대로 우리 공화국에 짓는 겁네다.”
“썩어질 남조선 간나들 입만 열면 후라이까는 게 어디 한두 번임까? 고것들이 100만이 아니라 10만 평이라도 공장을 지으면 내가…….”
딱 여기서 대화가 끊어졌다.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말씀 계속하시죠.”
“어흠. 어흠. 일없습네다.”
리권세는 창 측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와 대화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설화 씨는 이번 사업 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인 생각을 듣고 싶은데요.”
“완전 헛대포는 아니라고 생각함다.”
“헛대포가 뭡니까?”
김설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영어로 다시 답했다.
“허풍이 아닌 것 같다는 뜻입니다.”
“아하. 이해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한국말을 쓰는데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더 편하다.
“그보다 의외군요. 처음엔 저를 못 믿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땐 당신이 접근한 진짜 목적을 몰랐으니까요.”
“지금은요?”
“미국 의회에서 가상화폐 금지 법안이 발의 직전이라는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그 법안이 당신 회사엔 큰 손해가 되겠더군요.”
손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달러 환전이 막혀도 환전할 방법은 있겠지만, 금융권에서 공식적인 루트로 들어오던 투자는 싹 날아간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실 그것보다는…… 나 때문에 역사가 바뀌어서 전쟁이 터질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이번 북한 건을 매듭지으면 전쟁과 규제 법안, 양쪽 모두가 해결되는 셈이니까.’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김설화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의아함과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이 내게 돌아온다.
“왜 그리 경계합니까? 서로 피아식별은 됐다면서요?”
“당신을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닙니다.”
“그거, 굉장히 위험한 발언인데요.”
“뭐가 위험하다는 거죠?”
“믿음이 없는 비즈니스는 작은 충격에도 깨지기 마련입니다. 이번 건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지요.”
그녀는 물론이고, 창밖을 내다보던 리권세까지 정색하고 이쪽을 쳐다본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어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의 부족한 신뢰는 채워드릴 수 있습니다.”
* * *
미국 정부는 북한의 특별사절단을 크게 환대했다.
마치 귀빈을 맞이하듯이, 대통령실 경호팀이 공항까지 마중 나와서 우리를 정중하게 에스코트해 왔다.
나와 북한의 사절단이 백악관에 도착했을 땐 완벽한 무대가 세팅돼 있었다.
입구부터 깔린 레드카펫, 화려한 무대 장식과 중앙 단상에 교차로 놓인 성조기와 인공기, 그리고 양쪽에 늘어선 취재진까지.
이 모든 것이 트럼프 쇼를 위한 것이었다.
북한의 특별사절단도 그가 바라는 쇼에 장단을 맞추어, 취재진이 가장 잘 보이는 각도에서 김정은의 친서를 공개했다.
친서가 담긴 봉투는 거인이 쓰던 것처럼 거대했다.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으나 트럼프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거대 봉투를 든 자기 모습을 SNS에 업로드까지 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북한 사절단의 공식 일정이 끝난 뒤.
트럼프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나를 만나러 왔다. 그의 양손에는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콜라가 들려 있었다.
“대니얼, 무슨 마술을 부렸습니까? 골칫거리인 북한을 착한 아이로 만들었더군요.”
“마술은 원리를 알려주지 않는 법이지요.”
“흐핫핫! 아무렴 어떻습니까. 오늘 행사로 전 세계가 나 트럼프를 평화의 수호자로 평가할 것입니다.”
트럼프는 콜라로 건배하고 단번에 캔을 비워 버린다.
“대통령님, 아직 부족합니다. 남북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북한 영토로 넘어갔을 때가 비로소 절정의 퍼포먼스가 될 것입니다.”
“북한 영토는 위험할 텐데요.”
“위험하니까 더 주목받을 수 있는 겁니다.”
“흐음…….”
“잘 생각해 보십시오. 미국의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의 환대를 받으며 북한 땅으로 넘어가는 모습을요.”
트럼프는 그 광경을 그대로 머릿속에 떠올렸는지 뺨이 실룩거렸다.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오겠군요.”
“어디 괜찮기만 하겠습니까? 역사적인 사진으로 대대손손 남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사진이 아직도 유명한 것처럼요.”
“오오!”
“그 사진을 배경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으면 금상첨화겠지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내 생애 최고의 쇼가 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트럼프의 양 뺨에 홍조가 떠오른다. 콧구멍도 벌렁거리는 것이, 노벨상 뽕이 치사량까지 차오른 것 같다.
“언제쯤이면 북한에서 쇼를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빨리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너무 급하게 움직일 필욘 없습니다. 멋진 쇼가 되려면 적당한 완급 조절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 * *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서로 핵 단추가 있다며 으르렁거리던 미국과 북한이었으나, 이번 친서 전달 퍼포먼스로 인해 다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전쟁 직전까지 다다랐던 두 국가의 기적적인 화해.
그러나 모두가 이번 친서 퍼포먼스를 달갑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경애하는 최고 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셨습니다. 조선 로동당의 위원장이시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국무 위원회 위원장이신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는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번 미국과의 협상을 혁명적으로 이뤄내 우리 인민의 오랜 염원을 이루게 됐으며…….
오래된 브라운관 TV에서는 분홍색 한복을 입은 아나운서가 열변을 토해낸다.
그 방송을 한참이나 보고 있던 중년인의 입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비집고 나온다.
“인민의 오랜 염원이 언제부터 미제와 손잡는 것이 됐어? 미친 개나발 같은 소리 집어치우라우.”
그가 내뱉은 발언은 민족반역죄로 몰려서 숙청당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위험했다.
그러나 함께 앉은 사내들은 오히려 그를 두둔하고 나선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슴다. 어떻게 간악한 미제와 손을 잡는단 말임까?”
“미제와 손잡는 것은 인민의 염원이 아니라 인민의 수치입니다.”
“맞슴다. 이대로 뒀다간 미제의 자본주의가 공화국 곳곳을 침탈할 게 분명함다. 위원장 동지가 속고 있는 겁네다.”
불만을 터트린 이들은 북한의 정찰총국 간부들이었다.
이들은 미군과 철천지원수 사이로 지냈었기에 이번 김정은의 결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정찰총국장 동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네까?”
모두의 시선이 북한 내 서열 5위이자 정찰총국의 대장인 림학봉에게 향한다.
그는 혀를 한 번 차고는 입을 연다.
“어떻게 하기는.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지 않갓어?”
“위원장 동지는 이번 조미 협력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슴다. 그러니 우리가 간언해도 결정을 번복하진 않을 겁네다.”
“번복하지 않으면 강제로 교정시킬 시킬 수밖에 없지.”
“가, 강제 교정 말입네까?”
부국장뿐만 아니라 다른 간부들까지 화들짝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림학봉이 말한 강제 교정은 쿠데타라는 뜻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우리 공화국이 미제 손에 떨어지게 놔둘 참이네?”
“고건 아닙네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터라…….”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면 먼저 보위부와 보위국, 그리고 사회안전성의 감시를 따돌려야 했다.
여기까지 성공했다면 다음은 무력으로 평양의 방어선을 뚫어야 했는데, 평양엔 평양방어사령부와 함께 김정은의 정예부대인 호위총국이 주둔하고 있었다.
정찰총국의 규모가 크다곤 하나 이들을 모두 상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중국 정치공작부의 왕원펑에게 연락하면 우릴 지원해 줄 게야.”
“중국이 쉽게 움직여 주겠습네까?”
“그건 걱정 말라우. 중국은 우리가 먼저 나서주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한창인 시기에, 북한이 미국과 가까워지면 중국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이때 쿠데타로 친중 정권을 세우겠다고 하면 중국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터.
‘후후후…… 이게 바로 하늘이 준 기회지. 그렇고말고.’
림학봉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눈앞엔 위원장 자리에 앉은 자신의 모습이 일렁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