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50화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아래 존재감을 뽐내는 알록달록한 건물들.
널찍한 도로에는 낡은 자동차와 색바랜 전동 열차가 돌아다닌다.
거리엔 사람들이 분주하게 어딘가로 걷고 있다. 그들은 주로 무채색이나 황토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우중충한 도시 풍경과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북한의 수도 평양이다.
평양 시내를 둘러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80년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익숙한 풍경에서 다가오는 이질감이 과거로 시간을 돌린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과거로 가는 건 한 번이면 족해.”
혼자서 실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휴대폰을 꺼내 본다.
북한에 입국해서 받은 나름 최신형 단말기다. 그래 봤자 되는 거라곤 통화 기능이 전부지만.
뚜우…… 뚜우…… 뚜우…… 뚜우…….
혹시 싶어서 해외로 전화를 걸어본다. 받을 거란 기대는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한 방에 통화가 연결된다.
-헬로우?
어색한 발음의 영어가 들린다. 박태식의 목소리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전화기를 뺨에 가져다 댄다.
“태식아. 나다. 밥은 먹었냐.”
-어? 우혁이냐? 그런데 너, 어디야? 번호가 이상하게 뜨는데?
“놀라지 마라. 나, 북한에 와 있다.”
-네가 거길 어떻게 가냐? 철책 넘었다간 바로 총살인데. 아무튼,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니까.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진짜 북한이라니까 그러네. 특별 외교관 자격으로 들어온 거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차라리 엘론이랑 손잡고 화성 관광을 갔다고 하면 더 현실성 있겠다.
계속 안 믿어주니까 오기가 생긴다. 인증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휴대폰에 영상통화 버튼이 눈에 들어온다.
데이터 통신 신호는 2칸.
이쯤이면 아슬아슬하게 연결될 것 같다.
“딱 기다려. 바로 보여줄 테니까.”
영상통화를 신청하고 한참 뒤에 휴대폰이 버벅대다가 화면이 전환된다.
-갑자기 웬 영상통화? 화면이 너무 끊겨서 5초마다 한 번씩 보여. 진짜 화성에서 전화 건 거 아니지?
“잔말 말고 보기나 해. 내 뒤에 저 건물이 뭔지 알겠어?”
-무슨 건물? 저거…… 어? 어? 어? 저거?
내가 영상으로 찍은 건물은 101층짜리 류경 호텔이었다.
디자인이 워낙 특이한 데다가 1987년부터 짓던 건물이 아직도 완공을 못 했다는 점에서 유명한 건축물이었다.
-진짜 북한이었어? 거길 어떻게…… 아니, 왜 간 거야?
“왜 가긴. 비즈니스 하러 왔지. 영상에서 돈 냄새 안 나든?”
-베네수엘라 다음은 북한이라고?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로 미친놈이다. 진짜 독보적이야.
“원래 사람이 대성하려면 한 분야에 미쳐야 하는 법이지.”
박태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서 북한까지 가서 무슨 비즈니스를 하려고? 거긴 베네수엘라처럼 기름이 솟는 나라도 아니잖아.
“기름은 안 나지만 희귀광물은 꽤 많이 있더라.”
-설마, 북한에서 배터리 재료를 공수하게?
“광물만 파는 게 아니라, 각 잡고 공장까지 세워 볼 생각이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광물은 대표적으로 코발트와 리튬을 꼽을 수 있다.
두 광물은 한국에도 다량이 묻혀 있을 정도로 흔했지만, 채굴 과정에서 엄청난 공해가 발생하기에 국가적으로 채굴을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빈국인 북한에서 공해 따위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
협상만 잘 풀어가면 콩고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코발트, 리튬 생산지가 될 수 있었다.
-북한에 배터리 공장이라…… 어떻게 운영될지 상상이 안 되네. 뭐, 이번에도 네가 어련히 잘하겠지.
“태식아. 내가 아니라 네가 잘 해줘야 해.”
-갑자기 뭔 소리야?
“맨땅에 광산이랑 배터리 공장을 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무조건 경력직이 필요하거든.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회사에 그런 인재가 한 명 있네?”
박태식은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플랜트 사업과 함께 배터리 광산, 공장 사업을 도맡아서 진행해 왔다.
그러니 이번 북한 사업도 녀석만 한 적임자는 없을 것이다.
-나더러 북한에 가라는 소린 아니지? 농담이지? 그렇지?
“한 번만 더 수고하자.”
-야! 신우혁! 이 사기꾼 놈아! 네가 일이 년만 고생하면 교대해 준다며!
“여기서 서울까지 차로 3시간 거리야. 지방으로 출퇴근한다고 생각해.”
-3시간 거리면 뭐 하냐고. 국경을 못 넘는데! 난 절대 안 해. 아니, 못 해!
박태식은 쌓여있던 울분을 속사포처럼 터트린다.
내 욕부터 시작해서, 베네수엘라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귀국 후의 계획이 이러쿵저러쿵…….
나는 휴대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녀석의 하소연을 들어줬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가 앉은 벤치 쪽으로 한 무리의 군복 입은 사내들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태식아. 미안한데 끊어야겠다. 조금 이따 전화하자.”
-기다려 봐. 나 아직 시동도 안 걸었어.
“어, 그래. 알겠어. 끊을게.”
-신우혁! 야! 야!
급히 통화를 끝냈다. 그 모습 때문인지 군복 사내들은 더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어이, 거기. 어디서 온 사람이요? 중국? 홍콩?”
상대는 평양의 치안 경찰인 것 같다.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 같고, 그렇다고 중국인 행세를 하자니 나는 중국어를 하나도 못 한다.
“안 되겠소. 려행증을 제시해 주시라요.”
“저는 외교관 자격으로 북한에 입국했습니다.”
“외교관이면 려권을 보여주시오.”
할 수 없이 여권을 꺼내놓는다. 내 여권은 한국에서 발급받은 한국 여권이다.
그걸 본 상대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총을 꺼내 들었다.
“나, 남조선? 미제 괴뢰국 놈이 여길 어떻게 넘어온 기야?”
“그쪽 지도부와 같이 넘어왔습니다. 못 믿겠으면 연락해 보시죠.”
“웃기지 말라. 내 머리털 나고 평양에 남조선 간나새끼를 들였다는 소린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이디.”
다섯의 사내들이 나를 둥글 게 둘러싼다. 그중 셋은 총까지 겨누고 있다.
“뭣들하고 있네? 날래 보위부에 연락하라우!”
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진다. 이대로 어디 끌려가기라도 하면 이후 일정에 차질이 생길 터.
시간이라도 끌어 보려던 차에, 때마침 새까만 독일 자동차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인다.
끼익.
고급차의 뒷좌석 창문이 열린다. 차 안에는 나를 평양까지 안내한 김설화가 타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사내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며 소릴 지른다.
“서, 서기실장 동지!”
그녀는 군복 사내들을 투명 인간처럼 무시하고 내게 묻는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스럽습니까?”
“아, 별건 아니고. 이 사람들이 저를 잡아가려고 하더군요.”
김설화가 사내들 얼굴을 슥 쳐다본다. 그러자 그들은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수, 수, 수상한 거소자라고 판단해서 려행증을 확인하려고 했슴다. 서기실장 동지의 일행인 줄 알았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검다.”
“알았으니까 가보세요.”
“가, 감사합네다!”
허겁지겁 떠나는 군복 사내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자동차 빈 좌석에 올라탄다.
“바로 도와주러 온 걸 보니까,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었나 봅니다?”
“착각 마시라요. 일이 끝나고 온 거니까.”
“흐음…….”
그녀는 나를 한 번 흘겨보고는 앞자리를 툭툭 두드린다.
그것을 신호로 차가 다시 출발했다.
“이번엔 어디로 가나요? 평양 관광은 이쯤 했으면 됐지 싶은데요.”
“1호 청사로 갈 겁니다.”
내가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가 설명을 덧붙인다.
“거기서 위원장 동지가 기다리십니다.”
* * *
“후……. 지치네.”
옷도 벗지 않은 채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너무 지쳐서 이대로 잠들고 싶을 정도다.
오전엔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 회담에 참여하고, 오후엔 강제로 평양 관광을 다니다가, 저녁엔 주석궁 만찬에 초대돼서 4시간 가까이 떠들다가 이제야 호텔로 들어오는 길이다.
정말이지 파김치가 됐다는 표현이 딱 맞는 하루였다.
“그래도 성과는 얻었으니 다행인가.”
고위급 회담이 열린 당일에 평양까지 넘어와서 김정은을 만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토록 급하게 나를 만났다는 것은 상대도 몸이 달아 있다는 뜻이겠지.
실제로 김정은은 북한에 코발트 광산을 개발하고 공장을 짓겠다는 내 제안을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기업과 외국인들이 북한에 들어옴으로써 갖게 되는 전쟁 억제력, 막대한 일자리 창출, 그리고 덩달아 들어오는 외화까지.
핀치에 몰린 북한으로선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한 제안이었으리라.
정확한 확답은 내일 있을 정식 미팅 때 주기로 했지만, 이만하면 9할은 넘어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북한 쪽은 얼추 해결됐으니, 이제 미국의 오케이만 받으면 되는 건가.’
한 몸처럼 메고 다니던 크로스백을 뒤집는다.
안에 있는 모든 내용물을 빼고, 가방 안쪽 봉제선의 살짝 벌어진 부분에 숨겨둔 휴대폰을 꺼냈다.
지잉.
미국에서 가져온 위성 전화다. 정보요원들이 해외에서 쓰는 장비인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챙겨왔다.
호텔 방 전체가 도청 중일 게 뻔했기에 전화가 아니라 메시지를 켠다.
S : 평양입니다. 연락 가능하신 시간대에 회신 바랍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5초도 안 돼서 바로 답장이 돌아온다.
D. TR : 말씀하셔도 됩니다.
답장을 보낸 사람은 트럼프다. 지독한 SNS 중독자라고 하더니 휴대폰을 쥐고 있었나 보다.
S : 북한 측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잘만 구슬리면 별다른 충돌 없이 핵을 포기시킬 수 있어 보입니다.
D. TR : 오우. 좋은 소식이군요. 그들이 핵만 포기하면 당신이 제안한 옵션들을 모두 제공하겠다고 하세요.
S : 한데…… 이야길 해보니 그 옵션 외에 추가로 옵션을 원하는 듯합니다.
D. TR : 추가 옵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만으로 만족 못 하겠다는 겁니까?
S : 그들은 배터리뿐만 아니라 테슬라모터스의 전기차 생산 공장이 지어지길 원합니다.
단순 배터리 공장과 완성차 공장은 규모와 인력의 수준, 투입되는 기술까지 급이 달랐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트럼프의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대화를 억지로라도 끌고 가기 위해 다시 메시지를 보낸다.
S : 그들은 한국 정부와 맺었던 계약과 같은 결말을 맞을까 봐 우려하고 있습니다.
D. TR : 개성공단을 말하나 보군요.
S : 정확하십니다.
북한은 개성공단으로 외화벌이뿐만 아니라 자국 기업의 발전을 꾀했었다. 하지만 공단에 들어온 기업은 대부분 섬유나 금속 가공 따위의 경공업인지라 산업 발전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북한처럼 불안정한 나라에 고부가가치 공장이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까.
D. TR : 그들이 전기차 공장을 바라는 이유는 알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입니다. 의회부터 반대하고 나설 거예요.
S :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D. TR : 말씀해 보시죠.
S : 중국 상하이에 지을 예정이던 테슬라 공장을 북한에 건설하겠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한창 중국과 패권을 다투며 관세로 줄다리기를 하는 시기였다.
이때 핵 포기를 대가로 중국에 들어갈 공장을 북한으로 이전시키면 의회에서도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D. TR : 놀라운 계획입니다. 아주 멋져요. 그런데 대니얼이 괜찮겠습니까? 이미 상하이 공장은 부지 선정까지 끝났다고 들었는데요.
S : 미국의 평화와 대통령님의 노벨평화상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손해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D. TR : 당신이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뭔가 원하는 게 있나 봅니다.
S : 하하……. 대단한 요청은 아닙니다.
D. TR : 그렇게 말하니 더 긴장되는군요. 말해보십시오.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새로운 메시지를 입력하는 손바닥에서 땀이 흥건하다.
이번 건을 위한 북한 진출이다. 무조건 트럼프의 오케이를 받아내야 했다.
S : 북한에 경제특구를 지정해서, 그곳 공장에서 생산하는 상품은 made in korea로 인정해 주십시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광범위한 국가에 FTA를 체결했다.
그런 made in korea의 세금 혜택은 누리면서 북한의 값싼 광물과 노동력으로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면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