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49화
남북고위급 회담이 시작된 지도 벌써 한 시간째.
그러나 양측 대표단은 침묵을 지키며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흠흠.”
분위기가 불편했는지 한국 대표단 측에서 헛기침 소릴 낸다. 뭐라도 대화를 해보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은 이번에도 노골적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참다못한 통일부 장관이 목소릴 낸다.
“참, 답답하십니다. 가벼운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꼭 이렇게 썰렁하게 만들어야겠습니까?”
평양에선 나를 만나기 위해 회담에 참여한 인사보다 더 높은 직급의 누군가가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 누군가가 도착하기 전엔 쭉 이런 상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협의가 쉬운 사안은 먼저 진행합시다. 예를 들면 금강산 관광이나…….”
여전히 북한 대표단은 묵묵부답이다.
장관은 혼자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게 눈빛으로 도움 요청을 보낸다.
“슬슬 그럴 시간이 됐군요.”
나는 손을 두 번 ‘짝짝’하고 마주쳐서 소리를 냈다. 그 신호와 동시에 회담장 문이 벌컥 열렸다.
끼이이익.
문 너머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커다란 자루와 수레를 줄줄이 끌고 들어온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수레에는 새하얀 면포에 덮인 무언가와 수십 개의 칼과 톱, 망치 등의 장비가 실려 있었다.
“경영자 동무, 이게 무슨 짓이요?”
놀란 북한 대표단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는 그들을 향해 진정하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늦게 출발한 손님이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데,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동안 식사라도 하면서 기다리시죠.”
내가 떠드는 동안 수레가 줄줄이 대열을 갖춘다.
나는 직접 수레 쪽으로 다가가서 면포를 치웠다. 그러자 수레에 실려 있던 커다란 생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뭔……?”
“참치입니다. 오늘 새벽까지 살아 있던 놈이죠. 명장님께서 즉석 해체하고 회를 떠주실 겁니다.”
수레를 끌고 온 장정들이 전부 달라붙어서 참치의 배를 가르고 뼈를 발라낸다.
물고기가 워낙 크다 보니 해체하는 데 쓰이는 장비도 일반 식칼이 아니라 톱과 초대형 식칼이다.
서걱서걱.
푹!
스스스슷…….
커다란 참치가 하나하나 분해되는 모습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북한 대표단은 물론이고 한국 대표단까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참치 해체 쇼를 구경하기 바쁘다.
툭.
참치 몸통에서 한 부위를 먼저 발라낸다. 고급 부위인 대뱃살이었다.
방금 손질된 대뱃살은 명장의 손에서 매끄럽게 횟감으로 재탄생됐고, 그대로 플레이팅 된 접시에 담겨 상에 올라온다.
“오오…….”
한국 대표단 사람들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진다.
신선한 참치의 육향과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는 미친 존재감을 드러냈다.
치이이이익.
칙! 칙!
이어서 토치로 참치의 껍질을 그을리는 냄새까지 더해지자, 반사적으로 입에 침이 고였다.
“…….”
북한 대표단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방금 해체한 참치가 코앞에 차려져 있는데 어떻게 마다하겠는가?
그들의 시선은 리권세에게 쏠렸다. 음식을 먹어도 되냐고 허락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리권세 역시 참치를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체면을 차리느라 억지로 외면하고 있었다.
“시장하실 텐데, 한 점 드시죠.”
“나는 일없소.”
“보셨다시피 방금 해체해서 회 뜬 참치입니다. 약 같은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뜻이 아니오.”
“아니라면 준비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드시죠. 계속 이런 분위기면 윗분이 오셔도 불편하게 여길 겁니다.”
리권세가 못 이긴 척 젓가락을 든다. 그러자 다른 북한 대표단 사람들도 눈치껏 식사를 시작했다.
“이게 어디서 잡힌 물고기요? 살이 탱탱한 것이 참 맛있소.”
“지중해에서 비행기를 타고 넘어온 놈입니다.”
“이 부위는 입에서 살살 녹는구만.”
식사가 시작된 이후엔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간다. 회담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신 대표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목석같던 북한 대표단을 이리 쉽게 풀어버리다니요.”
“대단할 게 뭐 있습니까. 같이 밥 먹으면서 친해지는 건 어느 나라든 공통인데요.”
내가 별것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더니 이번엔 다른 통일부 직원들까지 나서서 비행기를 태운다.
“세상에 누가 회담장에 참치를 가져와서 해체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일반 정식이나 도시락이었으면 절대 이런 그림이 안 나옵니다.”
“도시락 식사였으면 아직도 눈싸움만 하고 있었겠지요.”
“저기 보십시오. 북측 사람들, 참치 스테이크를 먹고 눈이 커졌잖습니까.”
한참이나 통일부 직원들의 듣기 좋은 소리가 이어지다가, 장관이 헛기침 소릴 내며 말을 꺼낸다.
“신 대표님, 아까는 무슨 배짱으로 나서셨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김정은을 언급해서 북한 대표단을 자극하셨잖습니까. 진짜 총격전이 벌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잘 풀렸잖습니까?”
“아무리 미군이 뒤를 봐준다 해도 상대는 북한입니다. 앞으로는 주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의를 부탁한다라…… 누가 누구더러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내가 강하게 들이댄 이유는 미군을 믿어서가 아니다.
남북관계의 역사적인 흐름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그것에 기반한 행동이었다.
‘북한은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핵 협상에 나설 거다. 그런데 북한 고위급 인사가 협상의 첫 단추부터 총격전을 벌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나는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 측과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둘 생각이다.
이번에 한 번만 물꼬를 터두면, 앞으로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제1차, 2차, 3차 남북정상 회담,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내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잘만 이용한다면, 북한에서 21세기 골드러시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 * *
참치 해체 쇼가 끝나고, 양측 대표단이 차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평양에서 출발했다던 고위급 인사가 도착했다.
“조선로동당의 서기실장인 김설화입네다.”
김설화는 김정은의 이복동생이다. 그녀는 대외적인 인지도는 낮지만, 김정은의 몇 안 되는 핏줄이라서 북한 내 서열은 꽤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번 회담에 급이 맞냐면 그건 또 아니다.
‘적어도 친동생인 김여주를 보낼 줄 알았는데 그보다 급이 더 떨어지는 김설화를 보내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지?’
내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김설화의 목소리가 재차 건너온다.
“실례합니다. 한국어는 못하십니까?”
영어로 질문이 날아온다. 해외 생활을 오래 했는지 발음이 제법 깔끔했다.
“아닙니다. 한국어로 하셔도 됩니다.”
“미국의 대리인 자격으로 오셨으니 영어로 대화하겠습니다.”
나는 마음대로 하라는 뜻으로 고갤 끄덕였다.
“신우혁 씨가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저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이번 고위급 회담의 전권 위임을 명받고 오는 길입니다.”
내가 트럼프의 대리인으로 왔으니, 북한도 대리인을 내세워서 자존심을 챙기겠다는 건가?
북한 수뇌부에서 이토록 어리석은 판단을 할 줄이야.
여기서 김설화와 떠들고 있어봤자 내 급만 낮아질 뿐이다. 나는 회담을 파투낼 생각으로 그녀를 도발했다.
“권한만 위임받았다고 협상 테이블에 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에 맞는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법이죠.”
“예의 없는 사람이군요.”
“예의는 북한 지도부가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만.”
나는 표정에서 언짢음을 대놓고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담을 제대로 하려거든 급이 맞는 분을 보내주십시오.”
김설화는 독이 바짝 오른 뱀처럼 나를 노려본다. 이어서 소리라도 지르나 싶었는데, 의외로 조곤조곤하게 말을 내뱉는다.
“당신이 우리의 지하자원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시치미 떼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의 자동차 회사가 대량의 니켈, 코발트, 아연이 필요하다는 것은 세상 모두가 아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형을 대리인으로 세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아까보다 진지한 태도로 대화에 임한다.
“꽤 훌륭한 추리였지만 오답입니다. 배터리 원재료가 급하다 해도, 수급이 언제 끊길지도 모르는 자원을 끌어 쓸 정도는 아니라서요.”
“우린 중국 광산이 제공하는 광물 시세의 30%에 거래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수출 제재가 이뤄지는 동안에는 광물값이 아무리 싸더라도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미국을 설득하면 되잖아요!”
저 말을 듣자마자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뭔가 착각하시나 본데, 저는 미국이 아니라 당신들을 설득하러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
“미국이 뭘 원하는지는 아십니까?”
“핵 개발 포기겠죠.”
“잘 아시네요. 핵만 포기하면 모든 갈등이 사라집니다. 광물도 즉시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거고요.”
이번은 김설화가 비웃음을 흘린다.
“그래서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핵을 포기했던 리비아가 어떤 꼴이 됐습니까?”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핵 개발을 먼저 포기하고, 보상을 나중에 받는 형태로 미국과 협상했다.
하지만 핵이라는 무력이 사라지자 돌아온 것은 철저한 무관심이었으니.
카다피는 다시 핵물질을 반입하며 미국과 협상을 시도하려 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고, 때마침 터진 자국의 혁명과 NATO의 공습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저는 리비아식 해결법을 요구하려는 게 아닙니다.”
“헛소리. 우리 공화국은 미국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순진하지 않습니다.”
“자꾸 미국을 언급하시는데 음……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미국을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닙니다. 세계 평화 같은 거창한 무언가는 더더욱 아니고요.”
“역시 자원을 노리고 왔군요.”
서로의 신뢰가 없으면 무슨 말을 해도 대화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뿐이다.
할 수 없이 내가 회담장에 나온 진짜 이유를 말해주기로 한다.
“WHTS컴퍼니가 어떤 회사인지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가상화폐를 개발하는 회사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상화폐를 미국 의회에서 제재하려고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북한과 연루됐다는 누명까지 씌워서 말이죠.”
김설화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목소릴 높인다.
“어째서죠? 미국 대통령은 당신 편이잖아요?”
“서구 사회는 독재 국가처럼 대통령이 절대 권한을 가진 곳이 아닙니다. 서로가 항상 견제하도록 구조가 짜여 있습니다.”
“그래도 대통령의 측근을 공격할 줄은…….”
완벽한 독재 체제인 북한에선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러니 김설화가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거겠지.
“어쨌든, 제가 원하는 바는 핵 협상의 진전입니다. 그래야 공화당에서 가상화폐 금지 법안에 반대표를 던져줄 수 있으니까요.”
“그럼 지하자원은요?”
“그쪽도 뭐 겸사겸사 알아는 보겠지만, 주목적은 그게 아니라는 거죠.”
드디어 그녀의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정말이지 오래도 걸렸다.
“자, 미국은 핵 포기를 원합니다. 북한은 체재 안전 보장과 제재 해제를 원하고요.”
“맞아요.”
“양쪽 모두 원하는 바는 명확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대론 진전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삼자인 제가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할까 합니다.”
김설화는 아주 단호하게, 딱 잘라서 말을 내뱉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리비아식 핵 협상은 절대 불가입니다.”
“저는 실패한 협상 방식을 다시 꺼낼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 어쩔 생각이죠? 리비아식이 아닌 다른 핵 협상 방식은 미국이 거부할 텐데요.”
북한이 핵을 고집하는 이유는 주변 국가를 인질로 삼아서 체재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그러니 핵 없이도 인질로 삼을 만한 무언가를 북한이 쥐고 있으면 충분히 핵 협상이 이뤄질 수 있었다.
“저는 리비아식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식 협상을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