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48화
내가 원주공항 활주로에서 내렸을 땐, 이미 수십 명의 경호원이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다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멀뚱멀뚱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내리게 해놓고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그렇게 10분 정도를 기다리자 활주로 안으로 새까만 세단이 들어오는 게 보인다.
멈춰 선 세단에선 정장 차림의 중년인이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저희가 급하게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대통령실의 이원훈 비서실장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어지간한 기업 총수들도 그에겐 설설 기어야 했다.
나 역시 평소였다면 억지로 웃으며 그의 비위를 맞춰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비서실장님이 비행기를 세우라고 지시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솔직히 당황스럽습니다. 사람을 사전 조율도 없이 비행기에서 내리게 하면 스케줄이 꼬이잖습니까.”
“죄송합니다. 워낙 긴급한 사안인지라……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비서실장은 내게 90도로 고갤 숙인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사과의 표본이다.
상대가 이토록 저자세로 나올 때 더 몰아붙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짓을 내젓는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신우혁 대표님이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원훈 비서실장의 안색이 티 나게 밝아진다.
“대표님께서 정부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분초를 다툴 만큼 긴급한 사안입니다.”
“혹시 북한 때문에 그러십니까?”
“어, 어떻게 그걸……?”
“그 문제라면 연락하실 필요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께서 이번 일의 모든 권한을 제게 위임하셨으니까요.”
비서실장은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그로부터 약 이삼 분 정도가 지났을 때쯤, 아까 도착한 세단과 같은 차종의 차량이 활주로 안으로 들어온다.
이번은 경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차를 둘러싸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차 안에서 마저 이야기하시겠습니까?”
“그러죠.”
비서실장이 직접 차의 뒷문을 열어준다.
나는 차에 타려다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신우혁 대표님이시죠?”
차의 뒷좌석엔 안재홍 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사진이나 TV 화면으로 봤을 땐 옆집 할아버지처럼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는데, 실제로 마주해보니 날카로운 느낌이 강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허허. 제가 더 영광입니다.”
좁은 차 안에서 어색한 악수가 오간다.
정부에서 이토록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이유는 뻔했다.
대통령이 미국과 연락 문제로 기업인에게 부탁하러 오는 게 알려지면 여러모로 큰 논란이 될 테니까.
‘날아가는 비행기를 세울 정도면 정부에서도 이번 사태를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고 봐야겠지.’
고급 승용차의 부드러운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한다.
“비서실장에게 이야긴 들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께 이번 사태의 권한을 위임받으셨다고요?”
“그렇습니다.”
“그 권한의 범위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 줄 수 있겠습니까?”
“말 그대로 이번 일의 모든 것입니다. 북한과 교섭, 회유, 협박, 그리고 작전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도 있습니다.”
전부 헛소리다. 트럼프는 내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소릴 늘어놓는 이유는 내가 단순히 트럼프의 메신저가 아님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트럼프와 제대로 소통도 안 되는 상태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진위를 가릴 수 없을 테지.’
대통령은 내 말을 곱씹듯이, 한참이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목소릴 낸다.
“만약 작전이 실패하면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아십니까?”
“미군의 대대적인 선제타격이 시작될 겁니다. 총 5곳의 핵 연구소와 2곳의 저장소, 그리고 발사대 8곳을 동시에 타격한다고 하더군요.”
“핵 시설만 공격하면 나머지 군사시설은 어쩐단 말입니까?”
“저도 거기까진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북한의 핵 위협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의 지시 한 번으로 서울이 불바다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안재홍 대통령은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허……’ 하는 탄식을 내뱉는다.
“제게 이번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한 방안이 있습니다. 그러니 정부에서 최대한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협조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런데…… 그 평화적인 해결책이 뭔지 궁금하군요.”
“간단합니다. 우리가 북한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고, 그에 맞는 변화를 끌어내면 됩니다.”
안재홍 대통령은 내 대답을 듣고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미 역대 한국 정부가 북한에 돈이나 식량을 지원하며 달래다가 실패를 겪은 탓이겠지.
“불량배를 갱생시키려면 현찰을 쥐여줄 게 아니라, 번듯한 일자리를 먼저 알아봐 줘야 합니다.”
“그게 말처럼 쉽겠습니까?”
“쉽지 않아도 해야 할 상황입니다.”
대통령도 이 말에 동의하는지 무겁게 고갤 끄덕거린다.
“북한 측과 판문점 연락 채널이 복구됐다고 들었습니다.”
“그제 정상화됐고, 지금은 고위급 회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마침 잘 됐군요. 이틀 뒤, 판문점에서 회담을 진행해 주십시오. 제가 직접 북한 측과 협상해 보겠습니다.”
* * *
평화의집은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에 자리 잡은 3층 건물로, 한국전쟁의 정전 협상이 이뤄진 곳이기도 했다.
오늘 평화의집에선 남북 고위급 인사들의 회담이 예정돼 있다.
약속된 회담 시각은 오전 10시.
북한 대표단은 30분 일찍 와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남한 대표단은 아직 한 사람도 도착하지 않았다.
“회담 시간이 다 돼가는데, 남조선 것들은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게야?”
북한 대표단의 책임자인 리권세는 비어 있는 자리를 보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남조선 것들이 일부러 늦게 오는 게 분명합네다. 우리도 오늘은 이만 접고, 일정을 다시 잡는 게 어떻겠슴까?”
“맞슴다. 이러다간 남조선 놈들에게 얕보일 거라요.”
“부국장 동지 말이 옳습네다. 초장에 기를 꺾어놔야 됨다.”
북한 대표단에선 오늘 일정을 파투내자는 의견이 쏟아진다.
그때. 리권세가 옆자리에 앉은 부국장의 정강이뼈를 걷어찬다.
“악!”
걷어차인 부국장은 비명을 지르며 펄쩍거렸다.
“너, 미쳤어? 천지 분간을 못 해?”
“무슨 말씀이신지…….”
“미군 놈들이 군함을 끌고 오고 있다잖아! 군함을!”
“미제 승냥이들이 몰려와도 우리 인민이 혁명적으로 대처하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습네다.”
부국장은 리권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는 걸 보고 즉각 머리를 책상에 처박았다.
“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갓어?”
“시, 실언을 했습네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놈이 부국장이랍시고 앉아 있으니. 쯧쯧.”
평소의 북한이었다면 미군이 움직이든 말든 강경 대응으로 맞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대통령은 미치광이로 평가받는 트럼프.
강하게 나갔다가 진짜 폭격을 때릴 수도 있었기에, 북한에서도 최대한 몸을 사려야 했다.
회담 시간을 5분 앞두고.
그제야 한국 대표단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낸다.
선두엔 통일부 장관이, 그 뒤로 차관급 인사가 들어와서 착석한다.
“…….”
양측은 서로 눈을 마주쳐도 인사는 오가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까딱 잘못했다가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러다 가장 마지막에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들어왔는데.
“반갑습니다, 여러분.”
사내는 홀로 북한 대표단이 있는 곳까지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북한 대표단은 물론이고 남한 대표단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그러다 책임자인 리권세가 먼저 그의 악수를 받는다.
“통일선전부장이자 정치국장인 리권세요.”
“WHTS컴퍼니의 대표 이사 신우혁이라고 합니다.”
“대표 이사? 관료가 아니라?”
리권세가 설명을 요청하는 표정으로 남한 대표단 책임자를 쳐다본다. 답은 남한 대표단이 아니라 젊은 사내의 입에서 나왔다.
“저는 이 자리에 한국 대표단이 아니라 백악관의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백악관? 그럼 트럼프가 보냈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트럼프라는 이름이 나오자 북측 대표단은 알레르기 반응을 하듯 입에 거품을 물었다.
“뭐라? 트럼프?”
“미제 앞잡이 새끼가 제 발로 찾아왔구만 기래!”
그러나 리권세가 고갤 돌려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소란이 사라졌다.
“그래, 신우혁 대표. 트럼프가 뭐하러 당신을 보냈소? 선전포고라도 할 셈이요?”
“저는 협상을 하러 왔습니다.”
“요즘은 전함을 먼저 보내고 협상을 하나 보오.”
“원래 협상은 유리한 판을 깔아두고 하는 것이 정석 아니겠습니까?”
리권세는 사내의 거침 없는 말재간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무슨 협상을 하겠다는 거요? 헛소리면 회담은 이것으로 끝이요.”
“죄송하지만 그쪽 분에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뭐라?”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이야기해야 급이 맞겠지요.”
북한 대표단이 우르르 일어난다. 이번은 단순한 윽박이 아니라, 품에서 권총까지 꺼내 들었다.
“간이 배때지를 뚫고 나왔구만. 진짜 죽고 싶어?”
뒤늦게 남한 대표단도 권총을 꺼내 들고 대치에 들어간다.
그러나 사내는 총이 겨눠진 상태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계속한다.
“저를 죽이면 미군의 폭격이 시작될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새끼가…….”
“괜히 힘 빼지 말고 상부에 보고를 올리십시오. WHTS컴퍼니의 신우혁이 직접 북한 측과 협상하러 왔다고요. 그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깔끔하게 물러나겠습니다.”
북한 대표단의 반응은 콧방귀를 뀌며 권총을 겨누는 것이었다.
“네깟 게 뭐라고 보고를 올리네 마네 하는 기야?”
“저거 웃긴 놈이구만 기래.”
“정치국장 동지, 저 미제 앞잡이 놈 말은 들을 필요 없습네다.”
평소의 리권세였다면 한참 전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을 거다.
하지만 사내의 저 당당한 모습 때문일까? 리권세는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권세는 홀로 회담장 밖으로 나가서 중앙 본부에 통신을 걸었다.
“나, 통일선전부장 리권세요. 다른 게 아니라 북남 회담장에 미국의 대리인이라는 사내가 나왔소. WHTS컴퍼니의 신우혁이라는 사람이오.”
-신원만 확인해 드리면 되겠습네까?
“가능한 모든 것을 알아보시오. 그가 우리와 협상할 만한 급이 되는지 알고 싶어서 그러니까.”
-급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허, 헙! 정치국장 동지!
다급한 목소리가 넘어오자 리권세도 수화기를 고쳐 잡는다.
“무슨 일이오?”
-그, 그, 그 사람, 어디 못 가게 꼭 붙들어 매시라요. 제가 위원장 동지께 보고 올리고 오겠습네다.
“일없소. 내 선에서 해결할 테니까 정보만 알려주시오.”
-아닙네다. 꼭 보고를 올려야 할 것 같슴다.
“그자가 누구길래 그러는 거요?”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전 세계 현금 부자 순위 1위가 그 신우혁이라는 사람입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