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47화
‘북한의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겠다고?’
트럼프의 말을 들은 직후부터 사람이 멍해진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서 과부하가 온 모양이다.
‘핵 시설만 정확히 타격하는 게 가능한 건가? 만약 놓친 핵미사일이 있다면? 그보다 북한을 공격하면 중국이 참전해서 한반도는 전쟁터가 될 텐데, 이러다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생각이 깊어질수록 내 뇌는 최악의 상황을 써내려간다.
더 소름 돋는 점은 이게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대니얼?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합니까?”
트럼프의 목소리가 패닉 직전까지 다다랐던 내 의식을 구조해 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표정 관리가 안 될뻔 했다.
“조금 당황스럽군요. 그…… 선제타격 계획을 한국 정부도 알고 있습니까?”
“아직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대니얼이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죠.”
과분할 정도의 특별 대우다. 너무 황송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쌍욕이 나올 뻔했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트럼프는 이후의 계획을 흡족한 듯 떠들어댄다.
“나는 북한이 가동 중인 핵 시설만 핀포인트로 날려 버릴 생각입니다. 총 5곳의 핵 연구소와 2곳의 저장소, 그리고 발사대 8곳을 동시에 타격하면, 북한의 남은 무력은 보잘것없는 고철 더미에 불과합니다.”
이론만 따지면 괜찮은 작전이다. 미국의 군사 기술이라면 북한의 핵 시설을 원격으로 파괴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테니까.
‘원래 역사대로라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일 따윈 없었을 텐데…… 이것도 내가 역사에 개입해서 그런 건가?’
이번 작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미래 정보가 아예 제로였기에 너무 불안했다.
만약 북한이 잠수함으로 미리 핵탄두를 빼돌려 두기라도 했다면, 도시 하나가 지도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흠.”
트럼프는 작전의 평가를 바라는 건지 헛기침으로 내게 눈치를 준다.
“괜찮은 작전 같습니다. 완벽하게 수행될 수만 있다면 말이죠.”
“이미 군에서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습니다. 상황이 잘 풀렸을 땐 작전 개시 3시간 만에 북한의 항복 선언이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안 풀렸을 때는요?”
트럼프는 다시 헛기침을 반복했다. 이번은 대답을 회피하기 위한 헛기침이었다.
“혹시 핵미사일을 하와이나 오키나와에 쏘기라도 했습니까?”
“북한의 핵미사일은 어떤 상황에도 완벽하게 제거됐습니다.”
“그럼 일반 미사일 포격이 있었나 보군요.”
대답이 늦는 걸 보니 정답을 고른 것 같다.
“대통령님, 한국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 근방에 미사일을 아무렇게나 쏴도 수십,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최악의 수가 나올 확률은 2%도 되지 않습니다.”
“확률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거죠.”
트럼프는 뭔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눈썹을 찌푸린다.
“수백만 명의 민간인이 죽을 수 있는 작전입니다. 그걸 알고도 지시한 게 알려지면 모든 비난이 대통령님께 쏟아질 것입니다.”
“비난이 두려워서 북한의 핵 위협을 그대로 두잔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왕이면 비난받는 게 아니라,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하는 게 낫잖습니까.”
찬사라는 단어에 관심이 동했는지 트럼프의 앉은 자세가 앞으로 쏠린다.
“옛 중국의 전략가인 손자는 군사를 거느리고 적국을 침공해서 승리하는 것은 차선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최선은 뭡니까?”
“군사를 동원하지 않고, 책략이나 외교를 통해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답답했는지 책상 팔걸이를 힘껏 내리친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그게 쉽지 않으니까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반대로 생각하십시오. 쉽지 않은 일이니까 성공했을 때 더 많은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으음…….”
“북한을 폭격하고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은 오바마나 부시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남북의 화해까지 끌어낼 수 있다면.”
나는 여기서 일부러 한참 뜸을 들였다가 핵심 카드를 오픈한다.
“대통령님의 평가는 단숨에 평화의 전도사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어쩌면 노벨평화상을 받을지도 모르겠군요.”
“오우, 노벨평화상이라니. 내가…… 자격이 될까요?”
“되고 말고요. 이번 일을 평화적으로 매듭지으면 자격은 충분합니다. 적어도 전임 대통령보다는 명분이 확실하지요.”
흥분을 감추지 못한 트럼프는 거친 콧김까지 뿜어댄다. 노벨평화상이라는 MSG 효과가 너무 강했나 보다.
“흠흠. 그래서 어떻게 할 셈입니까?”
“제가 직접 상대를 만나서 설득해보겠습니다.”
“북한을 가겠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트럼프는 피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은 이기는 게임에만 베팅한다고 했던가요.”
“기억하고 계셨군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홀린 덕분에 내가 대통령을 하고 있잖습니까.”
그는 음료 냉장고로 가서 콜라를 두 캔 꺼내온다.
“이번에도 이기는 게임 같습니까?”
“물론입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트럼프는 콜라를 따서 단박에 내용물을 비워냈다.
“좋습니다. 이번에도 당신에게 칩을 걸겠습니다.”
* * *
북한의 도발이 격화됨에 따라, 미국 역시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먼저 북한을 주시하는 정찰 위성을 추가로 배치했으며, 각종 레이더와 탐지 장비의 가동률도 평시의 배 이상 늘어났다.
여기까지만 보면 북한의 도발을 대비하는 사전 정보 수집이라고 볼 수 있지만, 최근 미군의 행보는 한발 더 나아가 선을 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한창인 청와대 상황실.
회의 참석자들의 표정엔 하나같이 심각한 우려가 깃들어 있었다.
“미군의 항모 2척이 경로를 수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예상 이동 지점은 동북아시아 해역입니다. 항모 중에는 작년에 취역한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도 포함돼 있습니다.”
“얼마 전, 미 사령부가 보안을 AA등급까지 격상한 것도 꺼림칙합니다.”
“미 해군의 주력 잠수함을 주시해야 합니다. 잠수함까지 움직였다면 그땐 정말 큰 일입니다.”
그러다 참모 중 한 사람이 상식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너무 넘겨짚은 것 아닙니까? 아무리 미국이라도 우리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북한을 공격하진 않을 텐데요.”
그러나 상식은 누군가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간단히 부정당한다.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트럼프입니다. 그에게 우리가 알던 상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이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이미 트럼프는 기존 미국 정치인들이 세운 모든 상식을 파괴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사태의 심각성이 상황실 공기를 다시 얼어붙게 했다.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자 서열이 밀리는 차관급 참모가 말을 꺼낸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북한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남북이 화해하려는 시그널을 보여주면 미국도 쉽사리 공격하진 못할 겁니다.”
“이번에 북한 측에서 먼저 정상급 회담을 요청한 것이 미군의 움직임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정보력이라면 미군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했을 테니까요.”
보고가 이어질수록 대통령을 비롯한 참모들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모든 정황이 미군의 선제공격을 가리키고 있었다.
“후우…….”
회의를 시작하고 줄곧 듣기만 하던 안재홍 대통령이 처음으로 입을 뗀다. 한숨 소리였지만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몰린다.
“만약에 미군이 북한을 공격하면, 그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질문의 답은 국방부 장관의 입에서 나왔다.
“미군이 노리는 곳은 북한의 핵 격납고와 군사시설입니다. 모든 포인트를 정확하게 폭격해서 완벽한 무력화가 가능하다면 북한의 항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완벽한 무력화에 실패한다면요?”
“그땐 북한의 보복성 공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저희가 예상하기론 장사정포 포격이 될 듯한데…….”
“포격이면 예전 연평도 사태 때와 흡사한 공격입니까?”
“규모 면에서 급이 다릅니다. 북한이 국경에 배치한 장사정포는 약 1,000대로, 분당 3,000발의 포탄을 수도권에 퍼부을 수 있습니다.”
보고를 들을수록 안재홍 대통령은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사실상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이건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태를 막는 것이 아니라 수습책을 준비하는 게 고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연결은 아직입니까?”
“저희 측에서 쓸 수 있는 외교 라인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만, 미국 국무부 측에서 답이 오지 않아서…….”
“지금은 국가비상사태입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할 방법을 찾으십시오.”
그때 통일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운을 띄운다.
“대통령님. 공식적인 외교 라인으로 통화가 어려우시면 다른 루트를 뚫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 * *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평소에는 14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을 보내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수면제의 힘으로 잠을 청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 비행에선 그러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트럼프의 선제타격 작전은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협상에 실패하는 순간 진짜 전쟁이 터지는 건가?’
내게 전쟁이란 뉴스에서 가끔 보도해주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내 선택으로 진짜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더니, 부담감이 미친 듯이 커진다.
‘어쩌면 원래 역사에서도 미국은 북한 공격을 준비했을지도 몰라. 일반 대중들만 몰랐을 뿐.’
가정에 가정을 하고, 거기에 또다시 가정을 더 했더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처럼 잠이나 잘 걸 그랬다.
창밖을 내다보니 지긋지긋한 바다가 아니라 육지가 보인다. 드디어 태평양을 다 건너왔나 보다.
때마침 기내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원주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비행 스케줄의 변동은 없으니 안전띠를 매고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천공항으로 가야 할 비행기가 뜬금없이 원주공항에 들르겠단다.
당황한 승객들의 동요하는 목소리로 기내가 시끌시끌해진다. 나 역시 이유를 묻고 싶었기에 승무원을 호출했다.
“신우혁 손님 맞으십니까?”
일반 승무원이 올 줄 알았는데 기장이 나를 찾아왔다.
“예, 제가 신우혁입니다.”
“손님은 원주공항에서 내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리다뇨? 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도 자세한 사항은 전달받은 게 없습니다. 그저 원주공항에 신우혁 손님을 내려달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누가 그런 지시를 했습니까?”
기장은 답하기 곤란한 질문인지 입을 벙긋거리며 대답을 피한다.
대답하지 않아도 누군지 짐작은 간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도중에 착륙시킬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까.
기장을 보내고 다시 창밖을 내다본다.
어느새 원주공항의 전경이 보인다.
공항 활주로 위에는 까만 정장을 입을 사람 수십 명이 도열해서 내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시작부터 장난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