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46화 (146/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46화

최근 들어서 업무량이 많아도 너무 많다.

애플카 협업 건을 마무리 짓고, 디트로이트와 텍사스 공장에 갔다가, 스케줄이 빌 때마다 투자자 모임도 참석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삐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새해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정말 숨 가쁘게 달려온 2017년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올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저를 믿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종무식이 열리는 대강당엔 2천 명에 달하는 WHTS컴퍼니 임직원들이 모였다.

다들 표정이 시큰둥하다. 연말을 앞두고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회사 종무식이 즐거우면 그게 이상한 거다.

-여기서 잠시, 기쁜 소식을 전달하겠습니다.

나는 앞서 준비한 형식적인 멘트를 전부 건너뛰고 꼭 필요한 하이라이트를 읽어나간다.

-2018년부터 도토리코인은 시카고상업거래소와 유럽선물거래소, 홍콩상품거래소에서 정식 상품으로 거래됩니다. 이것은 금융권이 가상화폐를 투자자산으로 인정했다는 뜻이며…….

가상화폐가 정식 파생상품에 편입됐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하지만 직원들에겐 크게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반응이 시원찮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은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눈빛이 똘망똘망해진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해의 성과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나는 탁자를 ‘쿵!’ 소리 나게 내리쳤다.

그러자 강당 전체에서 동시에 공명하듯이 진동이 발생했다.

“어라? 단체로…… 무슨 일이지?”

“재난 문자라도 왔어요?”

“헛! 빨리 문자 확인해 보세요! 대박이에요!”

직원들 휴대폰으로 도토리코인 200개가 지급됐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2,240만 원.

임직원이 2천 명에 달했기에 연말 보너스로 400억 원이 넘는 돈을 뿌린 것이다.

‘일반 기업이라면 부담스러운 액수겠지만 우린 코인을 새로 찍어내면 그만이거든.’

한국은행이 직원 보너스로 지폐를 찍어서 주면 이런 느낌일까?

어쨌든 백 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인 금융 격려가 이뤄진 덕분에, 방금까지 우중충했던 직원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것으로 2017년 종무식을 마칩니다.

직원들의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간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을 더 할애하고 싶었지만, 바로 다음 일정이 잡혀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대강당을 빠져나와서 곧장 차에 오른다. 목적지는 강당에서 30분 떨어진 호텔 연회장이다.

피로가 쌓여서 그런지 차 시트에 몸을 기대기가 무섭게 눈이 감긴다.

“대표님? 대표님!”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 이소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린다.

“으음…… 소영 씨, 언제 차에 타셨습니까?”

“제가 차에 타고 있던 게 아니라 대표님이 호텔에 도착하신 거예요. 얼른 정신 차리세요.”

그녀는 비몽사몽 헤매는 내 손에 아이스 커피를 쥐여준다.

나는 생수를 마시듯이 단숨에 잔을 비워냈다.

“후우. 좀 낫군요.”

“입국 당일에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으신 것 같아요. 대표님이 강철 로봇이라도 하루는 휴식이 필요하세요.”

“저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호텔 연회장에선 연말 파티 겸, 가상화폐 투자 설명회가 예정돼 있었다.

파티 참석자는 손정희 회장, 한국의 재벌가 그리고 중국과 홍콩의 투자기관장들이었는데, 그들은 한 달 전부터 내가 미국에서 귀국하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아니면 차에서 더 쉬세요. 투자자들에겐 차가 막혀서 조금 늦는다고 전해둘게요.”

“후딱 해치우고 쉬는 게 낫습니다.”

나는 두 뺨을 세차게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저도 오늘은 집에 들어가야 해서요.”

* * *

연간 업무 보고, 종무식, 아시아 투자자 설명회, 연말 파티, VIP 투자자 미팅.

모든 일정을 끝냈을 땐, 시곗바늘이 숫자 11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체력을 짜내서 연남동의 본가로 향한다.

본가는 으리으리한 단독주택이다. 어머니는 아담한 집이 좋다고 하셨지만, 보안 때문이라도 큰 집을 택해야 했다.

끼익.

대문 앞에 도착하자 경호원들이 알아서 문을 열어준다.

“아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어머니, 김숙희 여사는 현관까지 나와서 나를 맞이 해주셨다.

서너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비치는 못난 아들놈이라, 미안한 마음에 선물부터 안겨 드린다.

“이게 뭐야? 핸드백?”

“미국에서 제일 큰 백화점에 들러서 사 온 거예요. 내년에 유행할 디자인이래요. 아니지, 이젠 올해겠네요.”

“안 사와도 되는 데 그랬니.”

어머니는 핸드백을 대충 훑어보고는 현관 구석에 내려놓는다. 선물보다 넉 달 만에 보는 아들 얼굴이 더 보고 싶으셨나 보다.

그때 내 뒤에서 불쑥 이소영이 고갤 내민다.

“어머니. 저도 왔어요.”

“우리 아가도 왔구나.”

“저도 선물 준비했어요.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이소영이 준비한 선물은 털이 북슬북슬한 코트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밀라노 패션쇼에 나왔던 신상품이에요. 한정판이라서 딱 3벌만 나온 옷인데, 제가 어머님 드리려고 챙겨 왔어요. 마음에 드세요?”

“당연히 마음에 들지. 역시 소영이는 옷 보는 눈이 있다니까.”

내가 가져온 핸드백은 옆으로 치워버렸던 사람이, 이소영이 가져온 코트는 받은 자리에서 입어본다.

“너무 잘 어울리신다. 모델 같으세요.”

“조금 작지 않니?”

“절대 안 작아요. 보세요. 여기 어깨선이 딱 맞게 떨어지잖아요.”

두 사람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으려니 일할 때보다 더 피곤한 느낌이다.

“저 먼저 들어가도 되죠?”

“어머. 내 정신 좀 봐. 얼른 들어와.”

대리석이 깔린 현관 복도를 지나서, 거실로 들어간다.

걷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패션이 이러니저러니 하며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어찌나 죽이 잘 맞았으면 아들인 내가 소외감을 느낄 정도다.

“아가, 뭐 좀 마실래?”

“음료는 제가 내올게요.”

“아니야. 앉아 있어. 일하다가 온 사람은 푹 쉬어야지.”

“진짜 괜찮아요. 어머님은 유자차 드시죠?”

이소영은 억지로 김숙희 여사를 앉혀놓고 자기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어머니가 내게 묻는다.

“아들,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깜빡이도 없이 들어오는 돌직구다. 나는 최대한 평온을 가장하며 답했다.

“아직 결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그러다 소영이가 안 기다려 주면 어쩌려고 여유야?”

“예? 무슨 소릴 하시는지…….”

“아들, 진짜 잘 생각해 봐야 해. 네가 어디 가서 저렇게 참한 애를 찾겠어?”

내가 묵비권을 행사하자 어머니는 더 강렬하게 드라이브를 건다.

“네가 잘 나서 여유 부리는 건 알겠어. 원래 남자들은 그런 성향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녜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엄마 눈에 딱 보이는데.”

“…….”

“물론 신중한 게 좋을 때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성공한 이후에 접근하는 여자들은 순수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어.”

저 말을 들으니 갑자기 안젤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성공을 원해서 내게 접근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으나, 이후엔 가면을 쓰고 접근하는 여자도 나타날 것이다.

그래 봤자 크게 의미는 없겠지만.

“주문하신 유자차 나왔습니다.”

때마침 이소영이 주방에서 나온다. 덕분에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전환됐다.

“밀라노 패션쇼에 참석했으면 새로운 디자인 패턴도 봤겠네?”

“봤어요. 어찌나 예쁘던지. 깜짝 놀랐다니까요.”

또 패션 이야기다. 나는 전혀 관심 없는 주제였기에, 턱을 괸 채 TV로 시선을 돌린다.

채널을 몇 번 돌리다 보니 우연히 트럼프 대통령 소식이 나온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SNS로 또다시 설전을 벌였습니다.

-설마 핵미사일 버튼이 주제인가요?

-그렇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먼저 ‘내 책상에 핵 단추가 있다’고 위협하는 발언을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도 있다. 내 것이 더 크다’고 응수했습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저렴한 멘트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지, 패션 이야기를 하던 어머니와 이소영도 TV를 보고 한 마디씩 내놓는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왜 저런대.”

“그러게요. 애들이 말싸움하는 것처럼 유치하네요.”

“저 사람들이 진짜 핵 버튼을 가지고 있다는 게 너무 불안해. 저러다가 콱 쏴버리기라도 하면…….”

그러다 갑자기 질문이 내 쪽으로 넘어온다.

“아들이 미국 대통령이랑 친하다며? 혹시 들은 이야기 없어?”

“걱정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럼 다행이네.”

트럼프와 김정은이 지금은 원수처럼 으르렁거리지만, 곧 개최될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누그러질 거다.

그러고 보니 올해 중순쯤엔 정상회담까지 진행되면서 금방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깔리기도 했었지. 아마.

‘내가 미국 정치에 개입해서 미래가 바뀌는 건 아니겠지? 예를 들면…… 갑자기 남북이 통일된다거나’

설마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

다음에 트럼프를 만날 일이 있으면 슬그머니 물어봐야겠다.

* * *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되자 트럼프는 나날이 발언 수위를 높였다.

이에 북한도 더 강한 도발 카드로 맞대응하면서 세계는 전쟁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정작 남북 관계는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판문점 직통전화 재개, 고위급회담 수락 등으로 오랜만에 훈풍이 불고 있었다.

“대니얼. 어서 오십시오.”

트럼프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한다. 그는 백악관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나를 불러냈다.

“대통령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에 별일 없으셨습니까?”

“덕분에 아직은 별일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무슨 일이 생길 거란 말씀이시군요.”

트럼프는 일단 앉으라는 뜻으로 소파를 툭툭 건드린다.

“내가 대니얼을 보자고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 의회에 퍼진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섭니다.”

“어떤 소문을 말씀하시는지.”

“으음. 여러 가지가 있긴 한데, 하나만 꼽아보자면 WHTS컴퍼니가 북한을 지원한다는 소문입니다.”

너무 기가 막힌 개소린지라, 한 박자 늦게 목소리가 나온다.

“말도 안 됩니다. 제가 북한을 지원해서 얻을 이득이 없잖습니까!”

“나도 그 소문을 믿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런 소문이 돈다고 알려주고 싶었던 거죠.”

“누가 그런 소릴 하던가요?”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정부가 북한과 사이가 좋아진 이유도 가상화폐를 통한 우회적인 지원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머리가 지끈거린다. 대체 누가 저딴 창의적인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녔을까.

“그래서 의회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가상화폐의 달러 환전을 금지하는 제재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억지 논리입니다. 만약 금괴로 북한을 지원했으면 금을 못 쓰게 제재할 겁니까? 그건 아니잖습니까.”

“당신이 억울함을 어필해도 의회는 제재를 밀어붙일 겁니다. 그쪽이 표를 얻기 더 유리한 결정이니까요.”

만약 가상화폐의 달러 환전이 막힌다면 지금껏 가상화폐가 쌓아 올린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빠드득하고 이빨 가는 소리가 났다.

“의회 법안을 무력화할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이번 법안이 나오게 된 이유는 북한의 핵 도발 때문입니다. 그러니 원인만 제거하면 깔끔하게 해결될 문제라는 거죠.”

“핵을 어떻게 제거하겠다는 겁니까?”

트럼프는 대단한 대책이라도 내놓을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간단합니다. 우리가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타격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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