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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44화 (144/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44화

샌프란시스코 외곽으로 빠져나오면 한적한 4차선 도로가 계속되는 구간이 나온다.

매번 자동차로 미어터지는 시가지의 풍경만 보다가, 쭉 뻗은 도로를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가속페달 위에 둔 발에 힘이 들어간다.

지이이이이이이잉-!

전기차 특유의 모터 소음과 함께 차가 앞으로 치고 나간다. 내연기관 차량으론 느낄 수 없는 전기차만의 가속감이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과 창문을 때리는 바람 소리를 음악 삼아, 더 깊게 페달을 밟았다.

“이번 개량형 모델은 컴포트한 세팅에 중점을 뒀습니다. 그래서 고속 주행에선 상대적으로 약점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운전하는 동안 조수석에서 엘론의 조잘거림이 끊이질 않는다.

차량 제원에 관한 것부터 시작해서, 어디에, 어떤 부품이 들어갔으며, 어떤 공정으로 찍어냈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늘어놓는다.

“속도를 줄이세요. 지금처럼 노면이 살짝 젖었을 땐 주의하셔야 합니다.”

“미끄러짐을 보조해 주는 기능은 없습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진보한 전자장비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장치로 봐야 합니다.”

전방엔 완만하게 굽은 코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론은 아까보다 훨씬 높아진 목소리로 소리친다.

“속도가 너무 빨라요! 코너 진입 전에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나는 청개구리처럼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은 채 코너에 진입했다.

끼기기기기긱.

타이어가 내지르는 비명을 시작으로 차체가 부르르 떨어댄다.

그래도 아슬아슬 코너를 빠져나가는 걸 보면 전자장비라는 놈이 제대로 작동 중인 듯하다.

“무슨 짓입니까? 까딱 잘못했으면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갈 뻔했잖습니까!”

“주행을 보조해 주는 전자장비가 어느 정도인지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체험이 목적이었으면 사내 서킷에서 하세요. 전기차는 토크가 강해서 막 다루면 위험합니다.”

나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흘리고 재차 가속에 들어갔다.

지이이이이이이잉-!

계기판에 찍힌 속도가 120㎞/h까지 치솟았다.

순식간에 130㎞/h을 넘어 140㎞/h, 150㎞/h까지. 모터의 힘이 좋아서 그런지 속도가 정말 빠르게 올라간다.

덜컥. 덜컥. 덜컥. 덜컥.

간헐적이던 차의 떨림이 심해졌다. 위협적으로 들리던 풍절음도 더 사납게 우릴 휩쓸고 지나간다.

“대니얼! 브레이크! 브레이크! 귀먹었어요? 브레이크 밟으라고요!”

옆에서 엘론이 기겁해서 소릴 지른다.

나도 속도를 더 낼 생각은 없었다. 이미 원하는 데이터는 충분히 얻었으니까.

끼익.

도로변에 차를 완전히 정차했다. 옆에서 숨을 헐떡거리던 엘론이 버럭 소릴 지른다.

“미쳤습니까? 젠장! 죽고 싶으면 혼자 죽든가!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진정하세요. 간단한 테스트를 해본 것뿐입니다.”

“공도에서 150을 밟는 게 간단한 테스트라고요? 뭐, 간단하긴 하군요. 가속페달을 밟았다가 떼기만 하면 되니까요.”

나는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그러나 엘론은 여전히 정색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하…… 좋아요. 백번 천번 양보해서 테스트 주행을 했다고 칩시다. 그걸로 어떤 도움이 됐습니까?”

“서류만으로는 알 수 없는 아주 유익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고, 정확한 설명을 해주시죠.”

“우선 테슬러의 전기차 완성도가 제 예상을 상회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특히 고속 주행에서 모터와 전자제어장치의 연계는 수준급이더군요.”

엘론은 무표정하게 고갤 끄덕거렸으나 자세히 보면 입꼬리가 조금씩 실룩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랄까요?”

“대체 어떤 부분이요?”

“차체 바닥의 충격 흡수가 미흡한 점이나, 창문에서 들리는 풍절음, 그리고 쏠림도 심해서 주행이 안락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 브레이크 반응도 좋은 평가는 못 드리겠습니다. 또 뭐가 있었냐면…….”

얼굴이 시뻘게진 엘론이 내 말을 막아 세웠다.

“잠깐! 대체 어떤 차와 비교하길래 평가가 그렇게 나옵니까? 혹시 평소에 타고 다니던 롤스로이스와 비교한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저는 우리의 경쟁 차량인 히카리와 비교하는 중입니다.”

히카리라는 단어가 나오자 엘론은 카 시트에서 상체를 벌떡 세운다.

“도요다의 수소차 히카리?”

“제가 타본 건 이번에 전기차로 개조된 모델입니다.”

“그걸 진짜 타봤다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엘론은 발사 직전의 로켓처럼 질문을 쏟아낸다.

“언제, 어떻게 타본 겁니까? 그게 벌써 완성됐던가요? 주행감은 어땠습니까? 승차감은요?”

“진정 좀 하시고, 하나씩만 질문하세요.”

“그럼…… 그…….”

엘론은 머리에 과부하라도 온 건지, 한참 버벅거리다가 입을 뗀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이 진짜입니까? 차 내부 디자인을 애플카처럼 흉내 내뒀던데요.”

“흉내가 아니라 진짜 애플카에 들어갈 부품을 넣어뒀더군요. 디자인, 카플레이 소프트웨어, 칩셋까지 몽땅 말이죠.”

“빌어먹을. 잘도 비겁한 짓을…… 그래서 둘 다 타보니까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길 것 같습니까?”

내가 답을 고르는 듯한 낌새가 있자, 엘론이 냉큼 말을 덧붙인다.

“괜찮으니까 대니얼이 최대한 냉정하게 평가해 주세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다시 확인해 봐도 차량 퍼포먼스는 테슬러가 우위다.

하지만 생산 노하우에서 나오는 완성도와 디테일, 그리고 내부 디자인은 도요다를 따라갈 수 없었다.

구매자들이 어떤 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냐를 생각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백 번 붙으면 백 번 모두 도요다가 이길 겁니다.”

* * *

도요다의 미국 지사장인 마츠모토는 출근하면 공장에 먼저 들르는 게 습관이 됐다.

이번 애플카 공개 검증의 주인공인 히카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어디 보자. 좋군. 좋아. 언제봐도 멋진 디자인이야.”

애플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탄생한 전기차 히카리는 누가 보더라도 애플카를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유출된 히카리의 디자인은 인터넷에서도 호평 일색이었으며, 덕분에 여론은 검증이 시작되기도 전에 도요다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마츠모토 역시 히카리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후후. 이번 일이 잘 풀리면 미국 지사장에서 단번에 본사 부사장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어.”

애플카 검증 행사는 본디 도요다와 테슬러모터스의 승부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GM사와 중국 전기차 업체 3곳이 추가로 참여하면서 판이 커졌고, 지금은 최고의 전기차를 뽑는 대회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나오셨습니까, 지사장님.”

히카리를 전담으로 관리하는 엔지니어가 나와서 고갤 푹 숙인다.

“오, 야마다 왔는가. 별일 없지?”

한껏 격양된 마츠모토와 달리 엔지니어의 안색은 전체적으로 그늘져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공개 검증 장소가 바뀐다는 소문이 돌던데요.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알다마다. 참여 업체가 많아지면서 장소를 디트로이트로 바꾸기로 했어. 행사 규모를 더 크게 열려고 그런다더군.”

행사 규모 확대는 도요다에 호재였다. 그만큼 전기차 홍보 효과도 커진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나 엔지니어의 안색은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다.

“저…… 지사장님, 시승 장소가 디트로이트로 바뀌면 차량 세팅을 수정해야 합니다.”

“뭔 소리야? 장소를 바꾸는데 차를 왜 건드려?”

“기존 행사 지역인 샌프란시스코는 겨울에도 히터가 필요 없는 따뜻한 기후입니다. 하지만 변경된 장소인 디트로이트는 겨울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터라…….”

전기차는 엔진이 아니라 모터로 구동되기에 열 발생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여름이라면 이게 장점이 되겠지만 겨울엔 별도의 히터 작동이 필요해서 배터리가 추가로 소모된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주행거리는 얼마나 줄어들지?”

“시뮬레이션 결과, 배터리가 약 40% 빠르게 소모됐습니다.”

“고작 난방 하나 때문에 40%나 차이가 난다고?”

“저온에서 전기차 배터리는 효율 자체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별도의 히트펌프 가동까지 고려했을 때 나온 수치입니다.”

공개 검증은 차 한 대당 1시간씩, 총 4회 연속으로 이뤄지는 형식이었다.

그동안 예상 운행 거리는 약 200마일.

히카리엔 딱 그만큼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만 탑재해 둔 상태였다.

“배터리가 40% 빨리 닳는다면 40%의 배터리를 더 실어야 한다는 뜻이군.”

“맞습니다.”

“그럴 여유는 있고?”

“이미 차량 하부에는 배터리를 실을 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빨리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만약 주행거리 부족으로 차가 멈추기라도 하는 날엔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거다.

“지사장님, 트렁크가 비어 있긴 합니다.”

“오호. 좋은 아이디어야. 검증 주행에서 트렁크는 안 쓸 테니 배터리 팩을 깔고, 위에 덮개를 씌우면 되겠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설계를 바꾸면 차체 밸런스가…….”

“나도 알아. 그런데 시간이 없잖아.”

검증 행사까지 남은 시간은 약 3주.

엔지니어는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자, 결정 났으면 빨리 배터리부터 실어봐. 밸런스는 테스트 주행 돌려가면서 수정하면 되는 거니까.”

* * *

애플사의 전기차 공개 검증은 시승차 예약 첫날부터 120만 명의 지원자가 몰리며, 역대급 흥행을 예고했다.

사람이 이토록 몰린 이유는 단연 도요다의 히카리를 타기 위해서였다.

히카리는 내부 디자인이 애플카 그 자체였기에, 자동차에 관심 없던 인파까지 예약이 몰리고 있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화제의 그 차량! 도요다 히카리입니다. 내부 디자인은 유출된 그대로고요. 안에 스크린을 보시면…….”

히카리 예약에 성공한 유투버는 한껏 흥분한 목소리로 영상을 찍었다.

그에 반해 주변에 다른 차량, 특히 중국 전기차 시승에 당첨된 유투버들은 썩은 표정이 돼 있었다.

“아오. 더럽게 운 좋은 놈이네. 어떻게 딱 히카리에 당첨됐지? 경쟁률이 30만 분의 1이라고 하던데.”

“시승 양도받았겠죠. 지금 프리미엄으로 2만 달러에 거래된대요.”

“허? 2만 달러?”

“2만 달러면 나쁘지 않네요. 애플카 탔다고 영상 올리면 조회수가 못 해도 천만은 찍을 텐데요.”

유투버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동안, 행사 직원이 와서 그들에게 간략한 주의사항을 말해준다.

“시승자 여러분. 운전 중 촬영은 절대 금지입니다. 규정 속도에 맞게 안전 운전해주시기 바라며…….”

영상을 찍지 말란다고 안 찍으면 그건 유투버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히카리만 따라가서 영상을 찍자.

워낙 화제가 된 차량이다 보니, 외관만 찍어도 엄청난 조회수가 나올 것이다.

“자,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승자들이 각자 배정된 차에 올라탄다.

전기차가 처음인 시승자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먼저 치고 나가는 차가 있었다.

지이이이잉-.

도요다의 히카리였다.

뒤이어 다른 전기차들이 경쟁하듯이 뒤꽁무니에 따라붙는다.

쌔앵-!

히카리도 따라 잡힐 생각은 없는지 더 속도를 낸다.

도망치려는 차와 따라잡으려는 차.

여기에 전기차 특유의 엄청난 제로백 성능이 맞물리면서 시작부터 맹렬한 추격전이 펼쳐졌다.

끼이이이익!

코너가 나와도 속도를 줄이는 사람은 없다. 위험천만한 주행이었으나 조회수에 미친 유투버들에겐 이것마저도 컨텐츠였다.

“여러분 앞에 보이는 하얀색 차가 히카리입니다. 제가 재끼기 직전입니다! 생각보다 운동 성능은 떨어지는 것 같네요. 아니다. 제가 운전을 잘해서 그런 걸까요?”

추격전은 점점 격해져서, 이젠 히카리를 추월하고 앞을 가로막는 차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자 히카리를 몰던 유투버도 약이 올랐는지, 좌우로 핸들을 흔들다가 순식간에 급가속으로 치고 달아난다.

그러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사로에 진입했을 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좌우로 움직이던 히카리의 차체가 크게 휘청거리나 싶더니, 우측 뒷바퀴가 쑥 빠져 버린 것이다.

콰과과과곽!

미끄러지는 히카리 바로 뒤에는 다른 유투버의 차들이 바짝 따라붙어 있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히카리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속수무책이었다.

바퀴 빠진 히카리는 그대로 뒤따라오던 차량 3대를 덮쳤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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