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42화
애플사와 테슬러모터스의 협업 뉴스가 뜨고 약 2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월가와 런던 헤지펀드 쪽에서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애플사에서 테슬러모터스와 협업에 차질을 빚고 있음.
-애플사 고위 임원이 테슬러모터스가 아닌, 타 완성차 업체와 접촉한 정황 포착.
다른 기업이었다면 단순 루머로 넘어갔을 법한 소문이다.
그러나 이번 루머의 대상이 된 애플사와 테슬러모터스는 소송전까지 갔던 앙숙 사이.
양사의 불화설은 시간이 갈수록 살을 붙여가더니, 어느새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까지 주고 있었다.
“후우, 오늘도 브레이크 없이 내려가는군요.”
엘론은 아까부터 주가 차트를 쳐다볼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애플사가 새로운 완성차 업체와 협업한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부터, 테슬러모터스의 주가가 쭉쭉 내려갔기 때문이다.
“애플카 때문에 올랐던 주가였으니, 협업 무산 소식으로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겁니다.”
“저도 압니다. 아는데, 너무 억울해서 미치겠으니까 하는 말이죠. 대니얼, 당신은 화도 안 납니까?”
화가 안 나냐고?
원래라면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거다. 기껏 개시한 협업 건을 멋대로 뒤엎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애플사가 새로 구한 협업 대상이 ‘도요다’라는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는 화가 아니라 웃음이 먼저 나오더라.
“어쩌겠습니까.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겠다는데요.”
“된장? 그게 뭡니까?”
“카레와 비슷한 형태의 한국 소스입니다.”
엘론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찌푸려진다.
“그러니까 그…… 도요다가 카레 모양의 똥이란 말입니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도요다는 완성차 업체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기업이다.
자동차 판매량 1위, 매출액 1위, 심지어 소비자 신뢰도까지 밥 먹듯이 1위를 하는 업체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전기차 분야에서 도요다는 걸음마도 못 뗀 갓난아이나 마찬가집니다. 우린 그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합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완성차 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전기차까지 손쉽게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엔 대중의 인식뿐만 아니라, 전문가들까지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장악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그들의 인식이 틀렸다는 걸, 우리가 직접 보여주면 됩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도요다를 링 위에 세워야겠죠.”
나는 엘론의 집무실을 빠져나간 뒤, 테슬러모터스 사옥 1층으로 향했다.
건물 로비에는 이번 사태의 취재를 위해 대기 중인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어? 저 사람, WHTS컴퍼니의 대표 아냐?”
“맞습니다! 대니얼 신이에요!”
내 얼굴을 알아본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온다.
“애플카 협업이 좌초됐다는 루머가 돌던데 사실입니까?”
“쿡 대표에게 언질은 받으셨는지요!”
“대표님, 애플사와 테슬러모터스 대주주로서 한 말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먼저 달려든 기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들었다. 인터뷰할 테니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저는 애플사의 이번 행보를 보고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경영진이 어떤 생각으로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협의 정도는 미리 해야 했다고 봅니다.”
사실상 루머를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덕분에 사방에서 셔터음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쏟아진다.
“저는 애플카 협업을 진두지휘한 책임자로서 수습에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 노력의 첫 번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기자들을 쳐다본다. 이후의 발언이 중요하니 제대로 기사화해달라는 뜻이었다.
“애플사의 긴급주주총회를 소집하겠습니다.”
* * *
애플사의 긴급주주총회는 모든 언론사가 첫 꼭지에 다루는 중요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이번 긴급주주총회에서는 CEO인 쿡의 해임안이 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했기에, 주주총회가 열리는 쿠퍼티노 컨벤션 센터에는 수천 명의 주주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지금부터 애플사의 긴급주주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참석자 여러분은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렵사리 잡힌 주주총회는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단상 위의 경영진들은 서로 무언가를 쑥덕거리고 있었고, 주주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내 쪽을 흘깃거린다.
마치, 나 혼자 원정 경기장에서 싸우는 느낌이다.
‘완전히 악역 취급이네.’
그나마 대주주인 로워 회장과 버핏 회장이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내준다. 만약 그들까지 내게 적대적이었다면 긴급주주총회는 소집도 못 하고 끝났을 거다.
-긴급주주총회 소집의 1호 의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긴급주주총회인지라 실적 발표나 대표 이사 발언 같은 절차도 없었다.
바로 본 게임으로 넘어간다.
-대표 이사인 톰 쿡을 비롯한 경영진 처우에 관한 건. 의안을 발의하신 주주분은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천여 명의 시선이 쏟아진다.
“반갑습니다. 저는 WHTS컴퍼니의 대니얼 신입니다.”
사방에서 노려보는 시선들이 어찌나 따가운지 뺨에서 열기가 느껴진다.
참고로 쿡은 애플사 주주 95%의 동의를 얻어서 대표 이사에 연임됐다. 그러니 나 혼자서 그를 몰아붙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제로 단상에 앉아 있는 쿡의 표정에서도 초조함이나 긴장감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저는 경영진의 칭찬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고요했던 장내가 술렁인다. 해임안을 내놓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칭찬이라니 당황스러운 거겠지.
“쿡 대표가 애플사의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부터 애플사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011년 대비 매출은 2배 넘게 올랐으며, 영업 이익은 3.7배, 주가도 334%라는 이례적인 성과를 기록 중입니다.”
쿡의 눈빛이 흔들린다. 무슨 꿍꿍이냐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웃음으로 화답한 뒤 말을 잇는다.
“그럼에도 경영진에게 돌아가는 보수는 극히 적은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쿡 대표와 경영진에게 스톡옵션 총 100만 주를 지급하는 안건을 제안합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해임하겠다고 날을 세웠던 사람이 스톡옵션을 주겠다고 한 것도 놀라운데, 수량이 무려 100만 주라니.
‘애초에 쿡을 해임할 이유가 없지. 그는 대주주에게 최고의 대표 이사니까.’
잡스가 있던 시절의 애플사는 주주에게 인색한 기업이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주주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라고 발언할 정도였으니 더 말이 필요할까.
그러나 쿡이 대표로 취임한 이후, 애플사는 파격적인 배당과 과감한 자사주 매입으로 친주주 노선을 타며, 주주들에게 배당만 922%를 안겨주게 된다.
“뭐 하십니까. 표결하셔야죠.”
의장인 쿡은 내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럼 긴급주주총회 1호 의안인 경영진 처우에 관한 건. 표결에 들어가겠습니다. 주주분들께선 전자 표결을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표결이 이뤄진다.
방식은 미리 전달받은 단말기의 Yes/No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됐다.
[전자 표결을 마쳤습니다.]
[표결 결과, 찬성률 72.15%로 긴급주주총회 1호 의안은 통과되었음을 알립니다.]
쿡은 예상외의 전개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론 엄청난 스톡옵션을 받게 돼서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단상으로 올라가서 그에게 손을 뻗었다.
“축하드립니다. 쿡 대표님.”
“아, 예…….”
어정쩡하게 악수를 받은 쿡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제게 호의를 베푸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뤄낸 성과에 맞는 합당한 보상을 드리는 것뿐입니다.”
“저는 서 대표님의 계획, 그…… 애플카 협업을 무산시켰는데요.”
나는 미리 연습했던 대로 히쭉 웃으며 그에게 다가선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애플사에 더 이득이라고 판단하셨겠죠. 안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도요다는 완성차 업체 중에서도 독보적인 기업이니까요. 필시 전기차에서도 뛰어난 결과물을 낼 것입니다.”
“저도 대부분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조금 걱정되는 부분도 있더군요.”
나는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했다.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는 단상 주변의 주주들에게 잘 들으라는 뜻이었다.
“도요다는 아직 전기차를 한 대도 출시하지 않았습니다. 애플카를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출시할 게 아니라면 미리 검증 정도는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어떤 검증을 말씀하시는지?”
“시중에 나온 고성능 전기차와 비교해서 동급의 퍼포먼스 정도는 나와 줘야겠지요.”
시중에 나온 고성능 전기차라면 테슬러밖에 없었다. 즉, 도요다 전기차와 테슬러 전기차를 비교해보자는 뜻이었다.
만약 어제 이런 제안을 했다면 그는 콧방귀부터 뀌었을 거다.
하지만 방금 스톡옵션 100만 주를 받은 사람이 어찌 단칼에 거절할 수 있겠는가.
“저도 검증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잘됐군요. 그럼 언제 검증해 볼까요?”
“그, 글쎄요. 도요다 측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나는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각도로 손가락 3개를 펴서 보여준다.
“3년? 아니, 3개월……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오!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하하핫…….”
너무 어색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연기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엿듣고 있던 사람들이 정보를 퍼 날라주기만 하면 성공이었으니까.
* * *
긴급주주총회가 끝난 뒤.
차를 몰고 행사장을 나가는 동안, 안주머니에서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휴대폰이 떨어댄다.
스윽.
휴대폰엔 엘론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부재중 통화만 벌써 4개째다. 주주총회 결과가 어지간히 궁금했나 보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번호를 확인하는 동안 또 전화가 울린다. 더 애를 태울까 고민하다가 통화 버튼을 누른다.
-대니얼! 어떻게 됐습니까?
“무사히 끝났습니다. 속보 안 뜨던가요?”
-속보가 뜨고 있긴 한데 언론사마다 내용이 제각각입니다.
“3개월 뒤에 도요다와 한판 붙기로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혼자서 통화하는 게 아니라 테슬러모터스 경영진과 함께 있나 보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대로 애플카 협업이 무산됐으면 우린 또 공매도 세력의 밥이 됐을 겁니다.
“공매도가 아무리 설쳐대도 오를 회사는 오르게 돼 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하는 말입니다.
공매도 세력은 단순히 주가만 박살 내는 게 아니다.
매도 리포트를 시작으로, 언론사와 함께 악질 기사를 쏟아내서 회사 이미지까지 망쳐 버린다.
-그래도 조금 아쉽습니다. 이참에 도요다를 완전히 밀어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저는 일부러 검증을 밀어붙인 겁니다.”
-어째서죠?
“우리가 완성차 업체보다 낫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요.”
이번 긴급주주총회로 전 세계가 전기차 검증을 주목하게 됐다.
이때 테슬러가 도요다를 이겨 버리면,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도 잘 만들 거라는 헛소리는 싹 사라지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