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40화
얼마 전 무서운 기세로 투자자를 모았던 K스타코인이 공매도로 무너지면서, 투자업계에서는 가상화폐 가치가 허상이 아니냐는 논란이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K스타코인이 자랑했던 알고리즘은 공매도 공격에 속수무책이었고, 그들이 확보했다던 담보마저 허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 직후부터 가상화폐들은 폭락하기 시작했으며, 한 달 만에 전체 시가 총액의 63%, 약 9,000억 달러가 증발하게 된다.
이대로 가상화폐 판이 망하는 거 아니냐는 공포가 퍼질 만큼 최악의 상황.
이때 WHTS컴퍼니가 애플사 지분 19.5%를 확보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시장은 다시금 반전을 맞이했다.
[WHTS컴퍼니 애플사 지분 19.5% 확보! 도토리코인에 쏠렸던 담보 우려를 한 방에 불식시켜…….]
[가라앉던 가상화폐의 화려한 부활! 이틀 만에 시가 총액 32% 증가!]
[한국 기업이 애플사 최대 주주가 되다. 향후 애플폰의 한국 부품 채택에도 영향을 미칠까?]
[WHTS컴퍼니 신우혁 대표 한국 입국. 그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라.]
국내 언론사는 WHTS컴퍼니의 기사를 쏟아냈다.
한국에서 애플사에 부품을 공급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많았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기업 쪽에선 한 번만 만나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고, 대형 투자사, 기자, 심지어 정치인들까지 나를 만나고 싶어서 뻔질나게 회사를 드나들었다.
과열된 분위기는 회사에 호재였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릴수록 도토리코인엔 더 많은 투자자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어떤 이슈라도 시간이 흐르면 관심도가 떨어지는 법이다.
슬슬 신문 1면에서 WHTS컴퍼니의 이름이 밀려날 때쯤, 나는 인기 유투브 채널과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신우혁 대표님께서 저희 촬영에 응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강남역 인근의 한 개인 카페.
맞은편에 앉은 시커먼 사내가 연신 고개를 숙인다. 이번까지 더하면 감사 인사만 5번째다.
그의 방송명은 투신TV, 구독자 150만 명의 경제 유투브 채널이다.
“한국에서 가장 전문적인 투자 방송에 나올 수 있어서 제가 더 영광입니다.”
“에이, 아닙니다. 투자 방송이라뇨. 저희는 말만 투자지 실제론 예능입니다. 하핫, 어쨌든 우리 대표님께서 좋게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투신은 다시 한번 내게 고개를 숙이고는 옆자리로 시선을 옮긴다.
“이쪽에 미인분은 애플사에서 나오신 분이라고요? 성함이…… 안젤라 그레이스 씨?”
안젤라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두 손을 흔든다. 투신은 그녀의 외모에 홀렸는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제 뺨을 두드린다.
“아이고. 너무 아름다운 분이라서 제가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애플사 직위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녀가 영어로 답해주자 옆에 앉은 사내가 재빨리 통역해 준다.
“아하. 애플카 헤드 디자이너셨군요. 저…… 제가 무식해서 그런데 헤드 디자이너면 한국에선 뭐라고 부르죠?”
“디자인 총괄 책임자. 한국 기준으론 본부장급입니다.”
내 설명을 들은 투신이 입을 떡 벌린다. 그 정도로 거물이 찾아올 줄은 몰랐나 보다.
“아으, 떨리네요. 그럼 바쁘신 분들이니 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아, 참고로 아니다 싶은 장면은 편집해서 나갈 거니까 크게 부담가지지 마시고요.”
투신은 촬영팀과 부지런히 사인을 주고받다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두 분의 소개는 이쯤이면 된 것 같으니 질문부터 해보겠습니다. 조금 민감한 질문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먼저, 안젤라가 통역을 듣고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신우혁 대표님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WHTS컴퍼니가 애플사 지분 19.5%를 확보했다는 소식은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요. 이런 지분 인수를 언제부터 준비하셨습니까?”
“가상화폐 사업 초창기부터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하신 일이었군요. 혹시 이유도 알 수 있을까요?”
“투자자들의 돈을 안정적으로 쌓아둘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차후 시너지까지 고려했고요.”
시너지라는 말이 나오자 상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예를 들어 애플사의 앱스토어에서 가상화폐 결제를 지원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거 완전 대박인데요?”
“그뿐만 아닙니다. 간편 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에 탑재된다면 오프라인에서도 가상화폐 결제가 가능해집니다.”
“앗! 그러고 보니 작년엔 오성전자 주식도 대량 매입했다고 들으셨는데, 그게 혹시……?”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거려줬다. 그러자 투신은 카메라 앞까지 뛰어가서 호들갑을 떨어댄다.
“와! 미쳤다. 여러분 빨리 가상화폐 사두세요. 이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떡상입니다. 그냥 떡상도 아니고 개 떡상요!”
옆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안젤라였다. 소란스러운 방송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후에도 10분 넘게 도토리코인과 애플사 주식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이번에는 애플카 질문을 드릴게요. 며칠 전 애플사와 테슬러모터스가 협업한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우혁 대표님의 개입이 있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제가 다리를 이어준 건 맞습니다.”
“두 업체는 업계에서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데, 어떻게 협의를 보셨대요?”
“비지니스는 감정보다 실리가 먼저입니다. 그 점을 잘 이해시켰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투신은 또 대박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협의가 이뤄졌으면 앞으로 애플카는 테슬러모터스가 제작하겠네요? 그럼 애플사는 자체 전기차 사업을 아예 접는 건가요?”
“그건 외부인인 제가 말씀드릴 사안이 아닌 것 같군요.”
나는 슬쩍 옆자리를 쳐다본다. 안젤라는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와서 기쁜지, 싱긋 웃으며 입을 연다.
“이번 협업은 애플카에만 국한된 게 아니에요. 두 회사가 모든 분야에서 협업하는 거죠. 테슬러 전기차에 애플사의 전자장비가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요.”
뒤늦게 통역을 들은 투신은 벌떡 일어나서 주머니를 뒤진다. 그가 꺼낸 것은 신형 애플폰과 테슬러 차 열쇠였다.
“한 마디로 전화기로 시동도 걸고, 연락처, 세팅 동기화, 막 그런 게 가능해진다는 거네요?”
“지금도 간단한 명령은 가능해요. 우린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어떤 게 가능할까요? 저는 상상력이 빈곤해서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가볍게는 워치와 연동해서 졸음 알림을 주거나 사고 접수 서비스가 가능하겠네요. 그리고 자율주행 도중엔 이런 것도 가능해져요”
타이밍 맞게 뒤에 세워뒀던 모니터에서 관련 홍보 영상이 나온다.
영상 속 운전자는 핸들에서 손을 놓고 시트에 몸을 뉘었다.
그렇게 편히 휴식을 취했다가, 회사 업무를 보고, 게임을 즐긴 뒤, 마지막엔 시트에 누워서 가벼운 피트니스 수업까지 듣는다.
“와! 진짜 대박! 이쪽도 장난 아니네. 이게 진짜 미래지!”
투신은 호들갑 떠는 것만으론 모자랐는지 아예 기립박수까지 치기 시작한다.
그걸 본 안젤라가 조용히 내게 물어왔다.
“여긴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요?”
“음…… 아마도요? 혹시 불편하십니까?”
“그럴 리가요. 너무 재미있어서 물어본 거예요.”
이후에도 인터뷰는 투신의 농담과 헛소리, 그리고 과한 리액션이 어우러지면서 인터넷 방송 특유의 텐션을 유지했다.
“다음 질문은 다시 신우혁 대표님께 하겠습니다. 그…….”
질문 도중, 갑자기 카페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진다.
카페를 통째로 빌려서 촬영하는 거라서 손님은 없을 텐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크, 큰일 났습니다.”
촬영 스탭 한 명이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들어 온다.
“지금 이쪽으로 그, 그, 그…….”
“천천히 이야기해. 뭐 북한에서 미사일이라도 쐈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오성의 전용택 부회장님이 오신답니다.”
투신도 놀라서 입을 떡 벌린다. 이번은 방송용 리액션이 아니라 진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저, 신우혁 대표님. 혹시 미리 이야기된 일이십니까?”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어, 그럼…… 이걸 어쩌면 좋을까요.”
한국에서 오성그룹 오너의 사회적 지위는 대통령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런 사람을 일개 방송인이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리라.
‘내가 애플사와 가깝게 지내니까 불안했나 보군.’
지금까진 이상한 기사가 나갈까 봐 전용택과 만남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찾아오겠다는 사람을 굳이 피할 생각은 없었다.
“잘됐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세 업체 특집으로 영상 뽑아보시죠.”
* * *
애플사 지분 인수 뉴스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을 때.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본부에서도 심각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WHTS컴퍼니가 매집한 애플사 주식이 무려 19.5%에 달합니다. 일개 가상화폐 기업이 소유하기엔 너무 많은 양입니다.”
“시장에서 주식을 쓸어 담던 프레데터의 정체가 그들이라면서요?”
“그게 사실이면 애플사 주식 외에 다른 주식이 더 있겠군요.”
“허허……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러는지.”
걱정스러운 말을 쏟아내는 이들은 연방준비제도의 주요 주주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우려만 표하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WHTS컴퍼니에 적대감을 드러낸다.
“WHTS컴퍼니가 계속 주식 판에서 날뛰게 둬선 안 됩니다! 정부 차원에서 확실히 대응해야 할 때입니다!”
“맞습니다. 가상화폐라고 그럴싸한 이름만 붙였을 뿐이지 실상은 근본도 없는 데이터 쪼가리 아닙니까?”
“정부에서 빨리 쳐내지 않으면 시장은 더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조속히 대응에 나서주십시오.”
연방준비제도의 대표 주주는 JP모간, 씨티뱅크, 월스파고 등의 금융사였다.
그들은 이번에 공매도로 막대한 손실을 봤기에 입을 모아서 WHTS컴퍼니의 제재를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인 숀 버커는 애매한 답변으로 그들의 요청을 회피하기 바쁘다.
“여러분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행동은 제재할 만한 요소가 없습니다.”
이사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졌음에도 숀 버커는 능구렁이처럼 답변을 회피했다.
어렵게 잡은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나자 회의장을 나서는 이사들 입에선 실망의 한숨이 쏟아진다.
“백날 말해봤자 먹히질 않는군요.”
“휴…… 그러게요.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는 게 낫겠습니다.”
사실, 그들도 이런 결과를 예상 못 했던 건 아니다.
숀 버커는 올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의장이다.
그로선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라 불리는 대니얼 신의 회사를 공격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계속 연준을 붙잡고 있을 게 아니라 다른 쪽을 공략하는 건 어떻습니까?”
“어디를 말입니까?”
“민주당의 상원 의원들을 설득해봅시다. 그쪽은 저번 대선 때 후원금을 왕창 먹여뒀으니 쉽게 거절하진 못할 겁니다.”
의견을 들은 이사들은 즉각 의문을 표했다.
“상원 의원들을 설득한다 해도,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아까 버커 의장이 말했듯이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했잖습니까.”
“문제가 없으면 문제가 있게 만들면 그만입니다.”
“어떻게요?”
“그들이 가상화폐로 북한과 거래했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국가 안보 위배를 걸고넘어지는 거죠.”
최근 북한은 핵미사일과 ICBM 개발을 연달아 터트리면서 미국과 최악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북한이 엮인 문제라면 의회가 움직일 명분도 충분했다.
“민주당도 이번 일을 반길 겁니다. 잘만 작업하면 트럼프를 공격할 구실까지 챙기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