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37화
타닥거리는 벽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가 유독 크게 귓가를 때린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흥미롭거나, 혹은 불편하거나, 아니면 적의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세차게 뛴다. 가슴팍뿐만 아니라 귓가에도 심장이 달린 것처럼 맥동이 느껴진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하나가 세계적인 부호, 세계적인 투자자, 세계적인 기업의 CEO들.
이런 거물들이 내 말을 들으러 모였다고 생각하니, 흥분감이 치솟아 뒷덜미에서 오싹오싹한 신경 반응까지 온다.
“반갑습니다. 저는 WHTS컴퍼니의 신우혁입니다. 초대에 응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들은 내가 오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모를 거다.
수십 번의 예행연습과 수백 번의 대본 리딩, 마네킹을 세워두고 시선 처리와 표정까지 관리했다.
덕분에 걱정이나 긴장 따윈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연습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WHTS컴퍼니가 애플사의 최대 주주가 됐다는 소식은 모두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헌데, 소식 중에 언론사에서 놓친 부분이 있어서 미리 정정을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약속 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램가드 그룹의 데니스 로워 회장이 입을 연다.
“언론사에서 놓친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이 자리에서 말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입니까?”
“중요하고 말고요. 언론사에서 공표한 WHTS컴퍼니의 애플사 지분은 13.5%라고 했지만 실제론 제가 개인적으로 보유한 지분이 더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됩니까?”
“6% 정도입니다. 작년 이맘때쯤부터 잘게 쪼개서 모은 물량이죠.”
추가 보유분 6%면 거의 20%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예상보다 큰 숫자가 나오자 로워 회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흠칫 놀라서 내 얼굴을 쳐다본다.
“저는 앞으로도 애플사 지분을 꾸준히 늘려나갈 예정입니다. 이것으로 제가 애플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놀랐다는 정도의 반응에서 그쳤지만, 여기서 딱 한 사람, 애플사의 CEO인 쿡은 표정이 나무껍질처럼 굳어 있었다.
“제가 애플사 지분을 모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애플사의 제품이 현시점에서 최고라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변수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주주인 로워 회장과 버핏 회장은 동의한다는 뜻으로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이런 애플사도 최고가 될 수 없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전기차입니다.”
쿡은 ‘전기차’라는 단어가 나오자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말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쿡 대표님, 할 말이 많으신 건 알겠지만 제가 먼저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쿡은 썩은 밤을 씹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애플사는 재작년부터 전기차 분야에 2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투자했습니다. 그렇게 진행한 사업이 3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연습했던 대로 쿡이 앉아 있는 자리를 슬쩍 쳐다본다.
“애플카는 출시 예정일도 내놓지 못한 애물단지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재차 쿡이 발언을 요청한다. 이번은 말해보라는 뜻으로 고갤 끄덕여 줬다.
“한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일이 년을 투자했다가 성과가 없다고 사업을 접으면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1년 추가해서 3년이면 되겠습니까?”
“무슨 소릴…….”
“아니면 4년? 길게 잡아서 5년은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면 성과를 낼 수 있겠습니까?”
쿡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쳐다본다. 무슨 의도로 이걸 묻냐는 뜻이었다.
“쿡 대표님이 대답하기 곤란하신가 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전기차엔 전문가가 아니시니까요. 그래서 제가 이 방면의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나는 내 옆자리에 앉은 엘론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는 기지개를 쭉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장난기 가득한 악동의 미소를 머금은 채 쿡을 쳐다본다.
“전기차를 일반 IT 기기처럼 생각하는 단순한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업계 진입의 허들이 높다는 뜻인가요?”
“당연한 말씀. 스마트폰은 어설픈 중국 업체를 이기면 되는 싸움이지만, 전기차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완성차 업체와 겨뤄야 합니다.”
“만약, 애플카가 그 정도 품질을 만족하고 차량을 출고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전기차 전문가의 시각으로 평가해주시죠.”
엘론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장고에 들어간다.
“음…… 우리가 테슬러S 모델을 공개한 게 2009년. 그리고 출시가 2012년이었죠. 그러니 애플카가 나오려면 콘셉카가 개발되고 적어도 3년은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꽤 오래 걸리는군요.”
“차는 사람이 타고 다니는 제품입니다. 실수는 인명사고로 이어지기에, 적당히 출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전문가의 의견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나는 대화를 마치고 시선을 다시 쿡이 앉은 쪽으로 돌린다.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쿡 대표님, 전문가가 말하길 전기차 출시는 컨셉카 개발 후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
“이번은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컨셉카 개발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2년쯤…… 아니, 3년이면 결과가 나올 듯합니다.”
“이미 3년을 썼고, 컨셉카까지 3년, 출시에 추가로 3년. 도합 9년. 이러다 개발 10년 차에 길에서 애플카를 볼 수 있겠군요? 아니지, 그때 출시 되는 것도 확실한 건 아니죠?”
쿡은 이번에도 대답을 회피한다. 애초에 대답할 수 없는 사안이었으니 당연했다.
“저는 애플사의 대주주로서 애플카라는 헛된 제품에 수십, 수백억의 투자금을 낭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낭비가 아니라 미래를 대비한 투자입니다.”
“자그마치 개발 기간이 10년입니다. 무려 10년요. 전기차가 유망한 분야인 건 맞지만,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할 정도로 대체 불가능한 사업이 아니잖습니까.”
“대체 불가능은 아니지만 유망한 사업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는 누가 봐도 흥분한 모습이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숨긴 채 말을 잇는다.
“이거 참.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눈앞에 있는데 자꾸 돌아가려고 하니까 이러는 것 아닙니까.”
“테슬러와 협업이라면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 엘론 대표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그러시는지?”
“그, 그건 아닙니다.”
쿡은 바로 부정했지만 여기서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언제 출시할 수 있을지, 출시하면 성공은 할지, 기약도 없는 전기차에 투자금을 부어가며 시간을 낭비하게 둘 순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테이블 좌측으로 돌린다. 그곳엔 로워 회장과 버핏 회장이 앉아 있었다.
“애플사가 전기차 사업을 테슬러와 협업해서 진행하는 것에, 두 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미 두 사람은 의견을 교환했는지, 동시에 대답을 내놓는다.
“나는 동의합니다.”
“마찬가지요.”
다시 쿡이 앉은 쪽을 쳐다본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쿡 대표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자체 개발이 낫다고 보시는지요?”
겨우 세 사람의 목소리지만 애플사 전체 지분의 40%에 달하는 의견이었다.
대표이사직을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 * *
가상화폐 공매도로 시작된 스노우볼은 테슬러모터스 공매도를 거쳐서, 애플사 인수로 갔다가, 종국엔 애플사-테슬러모터스 전기차 연합이라는 결과로 맺어졌다.
사건 하나만으로도 신문 1면을 너끈히 장식할 만한 큰 사건이, 서너 개 연달아서 터져 버렸다.
대중의 모든 관심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
이렇다 보니 자연히 도태되는 쪽도 생기게 된다.
“잠깐만. 이거, 왜 이래? 시청자 숫자가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겁니까?”
“지금 방송 중입니다. 끝나고 이야기합시다.”
“너무 이상하니까 하는 말 아닙니까. 인터넷 오류면 통신사에 빨리 연락해봐야죠.”
테일러의 폭로 방송은 한때 2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몰려들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오류를 의심해야 할 정도로 숫자가 줄어 있었다.
게다가 한 줌 남은 시청자조차도 정상적인 시청자는 아니었다.
-테일러 이 개새끼야. 어디냐? 내가 찾아간다고 했지? IP 추적 중이니까 딱 기다려라.
-대표님 제발 제 돈 돌려주세요. 일부라도 좋아요. 엄마 병원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 받고 있어요.
-저 새끼가 돈 돌려줄 거면 해외로 튀었겠음? 그냥 포기하셈.
-K스타코인으로 전 재산 날렸습니다. 오늘 잘 곳이 없어서 너무 막막합니다. 제발 천 원이라도 기부 부탁드립니다. XX은행 110-236-1143...
테일러는 방송 카메라가 켜져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서 태우기 시작한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였지?’
테일러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썼다. 폭로는 물론이고, 사생활이나 가십거리 부풀리기, 심지어 시청자에게 코인을 뿌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늘긴커녕 더 빠르게 줄어들었을 뿐이다.
‘사람이 더 빠지기 전에 K스타코인 시즌2로 설거지라도 하는 게 나으려나? 아니면 바지사장을 세워두고 다른 코인 작업을…….’
그때 옆에서 ‘툭’하고 버튼 소리가 들린다.
옆에 앉아 있던 백승태가 컴퓨터 전원을 내린 소리였다.
“대표 양반. 인터넷 방송 계속할 겁니까? 내가 보기엔 답이 없어 보이는데.”
“…….”
“지금이라도 언론사 제보 쪽으로 방향을 틀어봅시다. 내가 아는 기자도 몇 있으니, 잘만 말하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테일러는 신우혁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번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신우혁은 일반인인 자신보다 몇 단계나 위에 있는 인간이었다.
“저는 손 털겠습니다.”
“뭐?”
“저는 이쯤에서 빠지겠다고요.”
백승태의 얼굴이 도깨비처럼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테일러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솔직히 우리가 싸워봤자 이길 것 같지도 않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승태의 손아귀가 테일러의 멱살을 잡아챘다.
“지금 빠지면 신우혁이 널 살려둘 것 같아?”
“캐나다 같은 곳으로 넘어가서 조용히 살면 그만입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이미 빠질 수 있는 단계는 지났어. 이젠 신우혁이 죽든, 아니면 우리가 죽든, 둘 중 하나가 돼야 끝나는 거라고.”
테일러는 배에 닿는 금속의 딱딱함이 느껴졌다.
총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저, 저기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 좀 하세요.”
“뭘 알겠다는 거지?”
“전부 다요. 다 알겠으니까, 일단 총부터 내려놓고 이야기를…….”
바로 그때 문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넘어온다.
띵동. 띵동.
백승태는 테일러를 한 번 노려보고는 거실로 걸어나간다.
거실에는 집 주변에 설치해 둔 CCTV 영상을 볼 수 있었다.
“누구지?”
상자를 든 사내가 계속 초인종을 누르는 중이다.
옆으로 다가온 테일러가 말했다.
“택배 같습니다.”
“나는 시킨 게 없는데…….”
“제가 저번 주에 컴퓨터 부품을 몇 개 시켰습니다. 제가 받을까요?”
백승태는 테일러 바로 뒤에 붙어서 현관으로 나간다.
한 손에는 여전히 총을 든 채다.
테일러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체인을 걸고 문을 열어준다.
철컥.
문이 열린 순간.
택배 기사가 벌어진 현관문 틈으로 뭔가를 집어 던진다.
슈우우우욱……
실내에 차오르는 하얀 연기.
두 사람은 동시에 욕지기를 내뱉으며 거실의 창문으로 달려간다.
“이런 씨X.”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그들의 아지트 주변은 무장한 사내들로 포위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