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36화 (136/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36화

테슬러모터스의 실적발표에서 나온 돌발 발언은 주식 시장에 대혼돈을 몰고 왔다.

-테슬러모터스는 애플사에 정식으로 모든 기술적 제휴를 제안하겠습니다.

전기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 테슬러모터스.

스마트폰 시장에서 명품 지위를 굳힌 애플사.

워낙 팬덤이 많은 두 회사인지라 합작 제안 발표만 나왔음에도 뉴스에는 온통 관련 소식들이 도배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협업하기엔 그 전에 건너야 할 깊은 골이 있었다.

애플사의 테슬러모터스 인재 빼가기 사건.

전기차 개발이 지지부진하던 애플사는 업계 1위인 테슬러모터스 임직원을 스카우트해서 위기를 타파하려 했다.

당연히 테슬러모터스와는 그 어떤 협의도 없이 진행한 일이었기에, 엘론은 조롱성 SNS 메시지로 해당 사실을 폭로했다.

[우리 회사에서 엿같이 굴다가 짤린 인간들이 어디 갔나 했더니, 전부 애플사에서 주워 갔더라고.]

[헤이, 애플. 제대로 된 엔지니어가 필요하면 말을 해. 쓰레기장 뒤지지 말고.]

이직한 직원을 쓰레기로 비유한 엘론의 메시지는 큰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양측의 비난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종국엔 소송까지 번지게 된다.

“이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애플사와 협업이라뇨? 적어도 이런 말을 할 생각이었으면 내게 미리 이야기는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컨퍼런스 콜이 끝난 직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엘론이 경보 선수처럼 다가와서 말을 쏟아낸다.

화낼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격한 반응이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얼른 태블릿을 켜서 내밀었다.

“이걸로 뭘 하자는 겁니까?”

“확인부터 해보시죠.”

엘론은 여전히 인상을 풀지 않은 채로 태블릿을 받았다.

그리고 화면을 돌려보는 순간.

“으음…….”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은 맞는데, 좋은 일이 있어서 웃음이 나오는 복잡한 감정 기복을 겪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효과 하나는 확실하죠?”

“흠…… 뭐, 나쁘진 않군요.”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엘론은 표정 관리를 못 하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쩔 수 없었을 거다. 공매도 세력에 의해 반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던 테슬러모터스의 주가가 로켓처럼 솟아오르고 있었으니까.

“지금쯤이면 공매도 세력들은 뒤꽁무니에 불이 붙어서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바쁠 겁니다.”

“인정합니다. 이건…… 확실히 통쾌한 상황이군요. 하지만 아무런 언질도 없이 애플사와 협업 제안을 발표한 건 너무하셨습니다.”

“제가 미리 말했으면 협업을 허락하셨겠습니까?”

“그야…….”

내가 장담하는데 애플사의 ‘A’라는 알파벳만 꺼내도 엘론은 안 된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거다. 그만큼 양사의 관계는 험악한 상태였다.

“휴, 그래요.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고 칩시다. 그런데 애플사와 합의는 하고 발표한 겁니까?”

“지금부터 해봐야죠.”

엘론은 북극에서 코끼리를 발견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런 합의도 없이 협업 이야기를 꺼낸 거라고요? 하…… 대니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진짜 아닙니다. 애플사가 거절하면 우리만 웃음거리가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절을 못 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아니, 말이 쉽지. 망할 사과를 구워삶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다른 기업들이 진작에 써먹었겠죠.”

“그러게요. 이 쉬운 일을 왜 아무도 안 했을까요?”

내가 능청스럽게 받아넘기자 엘론은 제 목덜미를 붙잡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으면 쌍욕을 해줬을 텐데, 당신이 이러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엘론 씨에게 특별 취급을 받고 있었나 보군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전기차 계약금으로 수십억 달러를 척척 구해오질 않나, 대통령의 최측근이 돼서 이권을 다 빼먹는 것으로 모자라서, 쿠데타 정권을 몰아내고 배터리 광산까지 싹 쓸어버렸잖습니까.”

전부 내가 한 일이 맞긴 하다만, 계획하고 진행한 일은 아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원자재 광산은 부가적으로 얻은 보너스 전리품에 가까웠다.

그러나 엘론의 눈엔 모든 게 철저히 계산된 작전으로 보였는지, 경외에 찬 두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저랑 같은 종의 인간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돕니다.”

“사실 제 진짜 정체는 미래에서 온 유령입니다.”

“와우. 놀라운 사실이군요. 서프라이즈.”

전혀 놀랍지 않은 표정으로 그는 어깰 으쓱거렸다.

“미스터 고스트, 딱 하나만 물어볼 테니까 솔직하게 답해주십시오.”

“말씀해보시죠.”

“이번 애플사와 협업, 진지하게 성공하리라 생각하고 저지른 일이 맞습니까? 아니면 단순히 공매도 세력을 물 먹으려고 벌인 작전입니까?”

사안이 사안인지라 나도 100% 된다는 확신으로 진행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저렇게 눈을 빛내고 있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말하겠는가.

나는 고민 끝에 가장 적당한 대답을 내놓는다.

“일단은 둘 다라고 해두겠습니다.”

* * *

주당 288달러였던 테슬러모터스의 주가는 컨퍼런스 콜이 끝난 직후부터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기존에 뚫지 못했던 300달러 선이 뚫리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이후 10분 간격으로 5달러씩 시세가 오르다가 단번에 340달러 선까지 치솟게 된다.

겨우 주가 50달러 오른 일로 웬 호들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테슬러모터스는 이미 GM사의 시가 총액을 추월할 정도로 덩치가 큰 종목이다.

그런 대형주가 1시간 만에 20% 가까이 오르는 현상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테슬러모터스엔 공매도 물량이 6,000만 주나 쌓여 있지 않던가.

“테슬러모터스 343달러! 345달러! 347달러 넘었습니다! 지금 추세면 350달러도 금방입니다!”

“저희가 틀어막아도 역부족입니다. 개인 쪽 매수자가 너무 많습니다!”

“더는 버틸 여력이 없습니다. 포지션 청산을 생각해 보심이…….”

공매도 세력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월가는 현실에 펼쳐진 불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지금껏 테슬러모터스 공매도로 개인 투자자의 돈을 잘 긁어먹었다면, 이번엔 반대로 먹은 곱절을 토해낼 위기였다.

“이게, 뭔…….”

케이브 자산운용의 부사장인 레이먼드는 아까부터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가 테슬러모터스에 쏟아부은 공매도 물량은 무려 120만 주, 물량이 많은 만큼 이번 한 방의 피해액은 최소치가 수십억 달러였다.

“지금은 얼마지?”

“345달러에서 멈췄습니다. 아닛, 다시 오릅니다! 350달러!”

떨림은 손에서 팔뚝으로, 다시 어깨에서 턱까지 타고 올라간다. 이젠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기적적인 하락이 오길 기도하는 수밖에.

그런 그의 간절한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기라도 한 걸까?

“앗!”

350달러 선을 살짝 터치한 차트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350달러에서 한 방에 330달러까지.

이 정도 하락은 그냥 올 수 없었다. 필시 어떤 계기가 있을 터.

레이먼드는 차트가 아니라 옆 모니터의 실시간 뉴스 쪽을 살핀다.

[애플사의 CEO 톰 쿡. 이례적인 SNS 답변. “애플사는 테슬러모터스와 협업을 계획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컨퍼런스 콜에서 나온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메시지였다.

“325달러! 322달러! 빠지는 속도가 가파릅니다!”

“부사장님, 이젠 살았습니다!”

“좋았어!”

레이먼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쳐올리며 소릴 질렀다. 만약 책상이 조금만 낮았다면 올라가서 춤을 췄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애플사의 속보가 보도되고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기다렸다는 듯 후속 기사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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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러모터스의 이유 있는 자신감.

WHTS컴퍼니는 KAH 자산운용과 롱라이프 펀드가 보유한 애플사 지분을 전량 인수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WHTS컴퍼니는 애플사 지분율 13.5%로 최대 주주가 됐으며 ……(중략)…… WHTS컴퍼니는 테슬러모터스의 최대 주주이기도 한 만큼, 양사의 협업이 어디까지 이뤄질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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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업체와 협업을 위한 지분 취득은 지극히 정석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지분의 1, 2%만 취득하는 것도 아니고 무려 13.5%로 최대 주주가 됐다는 뉴스가 떴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애플사 주식을 13.5%나 사들일 생각을 했겠냐고.’

이쯤이면 양사의 협업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이먼드는 급히 테슬러모터스 차트 쪽을 살핀다.

다시 350달러.

눈을 한 번 깜빡거릴 때마다 2달러씩 시세가 올라간다.

레이먼드는 강렬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쉬고 싶다는 생각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런 머리의 의지를 읽은 몸뚱이가 저절로 움직인다.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외투만 걸친 채, 터벅터벅 사무실 출구로 걸어간다.

“부사장님? 어디 가십니까?”

뒤에서 직원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한다.

이젠 뭘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부사장도 뭣도 아니게 될 테니까.

* * *

애플사의 CEO인 톰 쿡은 최근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신형 스마트폰 ‘애플폰X’가 공개 직후부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악평을 받은 데다가, 주가도 영향을 받아서 연일 하락을 거듭 중이었다.

중국에선 자국 제조사가 단체로 로비를 넣어서 애플사 제품을 퇴출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톰 쿡은 이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최근엔 어이없는 논란까지 더해져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테슬러모터스가 애플사와 같이 전기차를 만든다.

처음엔 단순한 루머로 치부하고 무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문을 낸 당사자가 애플사의 최대 주주가 돼서 나타났으니, 이젠 무시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게 됐다.

“쯧. 정말 짜증 나게 하는군.”

톰 쿡의 짜증 섞인 중얼거림을 동행 중인 여인이 받는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이번만 잘 대응하면 상대도 포기하고 물러나지 않겠어요?”

“나를 불러냈다는 것 자체가 짜증 나는 거야. 최대 주주? 에라이, 겨우 13%로 뭘 하겠다고.”

“그래도 13%면 800억 달러가 넘어요. 그 정도 투자했으면 얼굴 한 번은 봐주는 게 예의죠.”

그가 홱 노려보자 여인이 배시시 웃는다. 세상 모든 남자를 홀릴 것 같은 미소였다.

쿡은 고갤 반대로 돌려버린다.

“나도 알아. 아니까 수고스럽더라도 만나러 가는 거잖아.”

“상대가 전기차 협업 이야길 꺼낼 것 같은데 거절하실 건가요?”

“당연하지.”

“우리 회사의 전기차 개발 속도를 고려하면 협력도 괜찮은 방안이라 생각해요. 테슬러는 최근 공장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잖아요.”

여인은 은근히 협업을 바라는 눈치였으나 쿡은 손부터 휘휘 내젓는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그래?”

“엘론 때문인가요?”

“맞아. 그 양아치 놈과 협력은 속이 젖은 장화를 신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야.”

“그래도…….”

“안젤라, 나를 설득하려 들지 마. 상대가 어떤 조건을 걸더라도 거절할 생각이니까.”

두 사람은 어느새 목적지인 호텔 프라이빗 룸 앞에 도착했다.

쿡은 객실의 문고리를 잡기 전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짜증이 가득했던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비즈니스 마스크로 바뀌어 있었다.

끼익.

쿡은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미 객실 내부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슬러모터스의 엘론, 이번에 최대 주주가 된 WHTS컴퍼니의 대표. 그리고…….

안을 살피던 쿡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엔 예상치 못한 손님이 두 사람이나 추가로 앉아 있었다.

애플사의 최대 주주였던 램가드 그룹의 데니스 로워 회장. 그리고 애플사 지분 순위 2위였던 버크셔 펀드의 워런 버핏.

이 자리에 애플사 지분 1위, 2위, 3위가 나란히 모인 셈이 됐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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