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34화
병원에서 깨어난 뒤,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 침상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갖는 휴식은 지독하게 달콤했다. 옆에서 간호해 주는 사람까지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주일 정도만 푹 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하지만 이대로 계속 쉬기엔 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 저기 나온다!”
“신우혁 대표님, 방송에서 폭로된 내용이 사실입니까? 정말 WHTS컴퍼니가 K스타코인 공매도를 사주하셨습니까?”
“대표님, 방송은 보셨습니까? 한 말씀만 해주시죠!”
병원 로비로 내려가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온다.
어제 있었던 테일러 킴의 폭로 방송이 화제였기에, 내게서 뭔가 특종을 잡아내려고 달려드는 것이다.
“거기, 밀고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환자입니다! 물러서세요!”
로비에 배치된 경호원들이 기자들을 뒤로 밀어낸다.
그러나 기자들도 그냥 물러설 생각은 없는지 계속 밀어붙여서 양측은 몸싸움까지 벌였다.
혼란한 상황이었으나 나는 당황하지 않고 손뼉을 두 번 ‘짝짝’하고 마주쳤다.
“여러분께 전해드릴 말이 있습니다. 주변 정리가 되면 그때 시작하겠습니다.”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던 기자들이 일순간 순한 양처럼 변한다.
그들은 서로 손짓을 해가며 동그랗게 인터뷰 장소를 마련한 뒤, 마이크를 한데 모아서 내 앞으로 가져온다.
준비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병원 로비가 고요해진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구경하던 일반 환자들도 숨을 죽인 채, 내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서 준비한 멘트를 시작했다.
“제가 과로로 입원해 있던 동안, K스타코인 관계자들이 인터넷 방송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굉장한 불쾌함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일부러 카메라가 있는 쪽을 똑바로 노려본다.
“상대는 30조 원이 넘는 투자 사기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주한 범죄자입니다. 그런 사기꾼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기사화해서 멀쩡한 업체에 피해를 주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자들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였으나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원래 뻔뻔한 인간이 기자가 되는 걸까, 아니면 반대로 기자가 되고 나서 뻔뻔해지는 걸까.
“저와 WHTS컴퍼니는 앞으로 범죄자들의 언행에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따라서 이번이 관련 사안의 마지막 입장 발표가 될 것입니다.”
내가 마이크 앞에서 물러서려는 낌새를 보이자, 기자 한 명이 득달같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진다.
“KBC의 손태일 기자입니다. 테일러 킴은 대표님이 찍힌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그에 대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무슨 증거를 제시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사태는 가상화폐 업계 전체에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업계 1위인 WHTS컴퍼니에도 좋을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K스타코인 측이 WHTS컴퍼니를 콕 집어서 공격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사기 행각을 면피하기 위한 핑계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러니 가장 큰 업체를 지목한 것이겠죠.”
내가 기자의 질문에 답해주자 다른 기자들도 이때다 싶어서 줄줄이 질문을 던진다.
“대표님! 그렇다면 사진이 조작된 것이란 말씀입니까?”
“존 소로스 씨를 만난 적은 없으신지요?”
“가상화폐 공매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마디 해주십시오!”
나는 일일이 대답하지 않고 그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거의 1분을 보낸 뒤에야 질문 공세가 잦아들고, 다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이 조용해졌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오랫동안 서 있는 게 불편하군요. 그러니 추가 질의는 사흘 뒤에 진행할 기자회견장에서 받겠습니다.”
사흘 뒤.
그 말을 듣고 기자들은 놀라움이 실린 감탄사나, 헛숨을 들이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사흘 뒤엔 K스타코인 측에서 추가 폭로 생방송을 예고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벌어지는 기자회견과 폭로 방송.
내가 공식적으로는 무대응을 발표했으나, 내용만 놓고 보면 사실상 정면 대결을 선포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 * *
WHTS컴퍼니 측의 기자회견과 동시에 추가 폭로 방송이 예고된 날이 찾아왔다.
언론사에선 3일 전부터 호들갑을 떨어댔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이날 있을 맞대결에 관심이 쏠린 상태였다.
어느 쪽의 발표가 더 강력할 것이냐.
발언 내용에 따라 가상화폐 시장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는 빅 이벤트다.
기자회견 방송엔 이미 전 세계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몰려들어서, 디도스 공격에 준하는 트래픽을 뿜어내고 있었다.
“씁. 이 새끼들은 언제 시작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기자회견을 기다리는 이들 중엔, 오늘 폭로 방송을 하기로 했던 백승태도 포함돼 있었다.
본래 그의 폭로 방송은 오후 3시에 예정돼 있었으나, 테일러가 일정을 2시간이나 뒤로 미뤄 버렸다.
“이럴 시간에 우리가 먼저 방송했으면 됐겠구만. 괜히 시간을 미뤄서는. 쯧.”
백승태는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으나 이번은 테일러가 그의 말을 받아준다.
“그들과 같은 시간에 방송하면 우리 쪽 이슈가 묻힌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요.”
“묻히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폭로만 제대로 들어가면 그만인 것을.”
“어지간한 폭로로는 안 될 상황이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첫 폭로 방송이 나간 직후에는 신우혁과 WHTS컴퍼니를 성토하는 여론이 강했다.
하지만 그가 퇴원하면서 했던 인터뷰 때문에 여론 ‘일단은 지켜보자’ 쪽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상대는 우리가 해외 도피 중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서 폭로의 진위를 의심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내가 확보한 증거에 조작은 없습니다. 못 믿겠으면 언론사에 사진 원본을 넘겨서 확인해 달라고 하십쇼.”
“그러는 동안 열흘 가까이 시간을 허비할 텐데, 그동안 상대가 뭘 할 줄 알고요?”
“그럼 김 선생은 따로 생각해 둔 게 있습니까?”
“방송을 보고 대응하면 됩니다. 가위바위보도 그렇듯, 나중에 움직이는 사람이 유리한 카드를 낼 수 있으니까요.”
백승태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머리를 벅벅 긁어댄다.
“젠장. 뭐가 됐든 좋으니까, 신우혁만 확실히만 처리해 주십시오.”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그들이 떠드는 동안, 모니터에는 기자회견장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었다.
이미 회견장에는 기자들이 가득 차 있었고, 이젠 주인공만 단상에 등장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신우혁, 네가 뭘 준비해 와도 소용없을 거다. 이쪽엔 대응할 수 있는 폭로 카드가 수십 가지나 있으니까.’
긴장된 분위기 속에 신우혁이 단상으로 올라선다.
화면을 지켜보는 두 사람은 마른침을 꼴깍 삼켜가며 그의 첫마디를 기다린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WHTS컴퍼니의 신우혁입니다.
회견은 평범한 인사말로 시작되나 싶었지만 바로 대형폭탄이 날아온다.
-제가 기자회견을 요청한 이유는 여러분께 꼭 알려야 할 사안이 있어서입니다. 그 사안이란 바로…… 공매도입니다.
공매도라는 말이 나오자 테일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K스타코인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철저히 빗나가게 된다.
-얼마 전 논란이 됐던 헤지펀드의 공매도가 이번엔 도토리코인을 노리고 있습니다.
테일러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백승태까지 놀라서 소릴 지른다.
“김 선생, 저거 뭔 소립니까? 도토리를 공매도하다뇨? 저게 진짭니까?”
“나도 모릅니다.”
테일러의 입에서 빠드득하고 이빨 가는 소리가 난다.
“만약, 저게 사실이면…… 우리가 폭로했던 WHTS컴퍼니 공매도 배후설은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짜 핵폭탄은 그 뒤에 이어지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응하고자 WHTS컴퍼니는 도토리코인의 연간 보상률을 현행 10.9%에서 7.2%로 낮추고자 합니다.
* * *
공매도 공격이 들어오면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이다.
그러나 WHTS컴퍼니는 오히려 반대되는 대책을 내놓았다.
-도토리코인의 연간 보상률을 현행 10.9%에서 7.2%로 낮추고자 합니다.
이 황당한 사건은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인 미국의 월가에서도 큰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보상률을 올려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낮춘다고?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백발의 노인은 보고서를 보며 벌써 다섯 차례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세기의 투자가로 불리고 있는 소로스조차도 이번 WHTS컴퍼니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는 건가? 그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을 이유도 없이 하진 않았을 텐데…….”
WHTS컴퍼니가 연간 보상률을 내리면서 한 가지 조건을 붙이긴 했다.
이달 말까지 도토리코인을 보유한 투자자에겐 향후 3년간 보상률을 10.9%로 동결해 준다는 제안이었다.
기존 투자자에겐 좋은 소식이었으나, 그건 아무런 이슈가 없는 평시에나 먹힐 말이었다.
‘공매도 공격으로 가상화폐 가치가 언제 폭락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오만한 제안을 내걸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소로스는 그 이후에도 보고서를 몇 번이나 다시 훑어봤지만 ‘자신감’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오랜만에 내 머릴 아프게 만드는 놈이 나타났군.”
소로스에게 가상화폐란 위험천만한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가 도토리코인을 분석하는 이유는 테슬러모터스가 엮여있어서였다.
WHTS컴퍼니가 보유한 테슬러모터스 지분은 무려 24%에 달한다.
도토리코인이 공매도로 흔들린다면 WHTS컴퍼니는 자금 확보를 위해 보유한 테슬러모터스 주식을 매각해야 할 터.
그 많은 물량이 일순간 시장에 쏟아지면 테슬러모터스 주가는 끝장이었다.
“이참에 테슬러모터스 공매도 물량을 늘려 보는 것도 괜찮겠군.”
소로스는 차트를 열어서 최근 테슬러모터스 공매도 현황을 살폈다.
이미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투자자가 많았는지, 테슬러모터스는 공매도 물량이 3,000만 주나 쌓여 있었다.
“으음…… 좀 이상한데?”
소로스는 차트와 공매도 현황을 번갈아서 살핀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인터폰을 들었다.
“찰리, 테슬러모터스 차트를 보다가 이상한 점이 있어서 연락했네.”
-어떤 부분을 말씀하십니까?
“공매도 물량이 어제만 해도 200만 주나 늘었단 말일세. 그런데 도통 테슬러모터스 차트엔 그 영향이 안 보인단 말이지.”
-테슬러모터스는 과거에도 차트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아마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아서 그럴 겁니다.
소로스는 마우스를 휙휙 움직여서 차트를 확대한 뒤에 중얼거렸다.
“이건 개인 투자자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누군가 아래에서 물량을 쓸어 담는 듯한데…….”
-혹시 프레데터의 짓 아닐까요?
“프레데터? 그게 뭔가?”
-얼마 전부터 주식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는 세력의 별칭입니다. 주로 애플사, 알파벳, MS소프트 같은 대형 IT 기업 주식을 매집하고 있습니다.
특정 세력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매수하는 시기가 상당히 미묘했다.
테슬러는 공매도 물량이 너무 많이 쌓여서 누가 보더라도 반등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까딱 잘못하면 폭락할지도 모르는데 굳이 이런 시점에 대량 매수를 하는 이유가 뭘까?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이런 투자 방법은 들어본 적도 없다. 아무리 눈에 뵈는 게 없는 불나방이라도 이딴 짓은 하지 않으리라.
“혼란하다. 혼란해. 아까의 WHTS컴퍼니 건도 그렇고, 요즘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