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33화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인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새하얀 타일이 천장 전체를 뒤덮고 있다.
삑. 삑. 삑.
주기적인 기계음이 귓가에 들린다. 덕분에 고갤 돌리는 수고 없이도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병원이군. 내가 쓰러졌던 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토록 차분할 수 있는 이유는 그전부터 조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꿈을 꾸게 된 이후로 깊게 잠들 수 없었다.
매일 의자에 앉아서 선잠을 자거나, 아니면 영양제나 한약 따위로 피로를 쫓아냈다.
그런데 병원까지 실려 온 걸 보면 그 짓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왔나 보다.
“읏…….”
몸을 일으키려고 했더니 신음이 먼저 나온다. 그마저 목이 텁텁해서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지.’
휴대폰을 찾을 생각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우측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과 병원에서 쓰는 기계 장치들이 있었다.
이번엔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는 게 보인다.
“…….”
이소영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니까 마음이 놓인다.
휴대폰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대로 가만히 누워서 시간을 보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벅. 꾸벅.
고개가 작게 내려가다가 올라오고, 다시 내려갔다가 또다시 올라오고, 마치 파도가 출렁거리듯이 대여섯 번을 반복한다.
그러다 이번엔 고개가 크게 옆으로 기울어진다.
휘청.
머리와 함께 쓰러지려던 상체가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는다.
이게 뭐라고 보는 내가 더 긴장될 지경이다.
“으음…….”
손등으로 입 주변을 슥슥 문지른 그녀는 다시 고개를 꾸벅거린다.
아쉽다. 휴대폰이 있었으면 저 모습을 찍어뒀을 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다시 병상 주변을 살핀다. 목적은 달라졌지만 어쨌든 휴대폰이 필요했다.
탁자를 먼저 살피고, 다음으로 배게 옆을 확인하던 차에.
“어?”
꾸벅거리고 있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 잤어요?”
이소영은 나를 보고 아무 말도 없이 눈만 계속 깜빡거린다.
그러다 대뜸 울음을 터트렸다.
“잘 잤어요가 뭐예요. 지금 그런 걸 물어볼 때예요? 대표님이 잘못되기라도 했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피곤해서 잠시 잠든 것뿐입니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 싶은데…….”
“잠시가 아니니까 그러죠. 대표님은 쓰러지고 사흘 동안 못 깨어나셨어요.”
사흘이라고?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요즘 친구처럼 따라다니던 피로감이 싹 사라졌다. 수액을 맞으며 며칠을 잠만 잤으니 당연한 건가.
“사흘 동안 자서 그런지 몸 컨디션은 좋군요. 가끔은 이렇게 몰아서 자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내 나름대로 농담을 던져본 건데, 받는 쪽에서는 농담으로 여기지 못한 것 같다.
이소영은 눈이 벌겋게 된 채로 나를 노려본다.
“장난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진짜, 지난 사흘 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단 말이에요.”
“무슨 생각요?”
“대표님이 이대로 못 깨어나면 어쩌나 같은…….”
“제가 없어도 회사는 태식이가 잘 운영할 겁니다. 그리고 든든한 소영 씨와 다른 직원들도 있잖아요?”
이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이소영이 소릴 꽥 지른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계속 바보 같은 소리 할 거예요?”
“저는 안심하라는 뜻이었는데…….”
“누가 그런 소릴 듣고 안심해요. 진짜 대표님은 일 말고는 바보예요! 바보 일벌레!”
이소영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이번은 아까보다 더 울음의 강도가 세져서 아예 엉엉 소리까지 내며 대성통곡을 했다.
“…….”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를 몰라서 난처해하고 있는 동안, 병실 문을 열고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신우혁 환자분 깨어나셨어요?”
간호사를 시작으로 의사까지 줄줄이 병실로 들어온다.
그들 덕분에 눈물을 쏟던 이소영은 억지로 울음을 삭인다.
“환자분은 과로와 스트레스, 심각한 수면 부족으로 실신하셨습니다. 당분간은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스트레스도 안 받게 관리하셔야 하고요. 빈혈 증상도 있으니까 되도록 커피나 에너지 음료 같은 카페인은 피하십시오. 그리고 술은 절대 안 됩니다.”
의사가 말하는 족족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무슨 말을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에 안 남는다.
그들이 떠나고 병실이 조용해졌다.
그제야 돌처럼 굳었던 머리가 다시 돌기 시작한다.
“소영 씨, 제가 어디서 어떻게 쓰러졌었죠?”
“회사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시다가 앞으로 픽 하고 쓰러지셨어요.”
“음…… 기억이 전혀 안 나는군요.”
“앞에 사람이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어요. 아무도 없었으면 바닥에 부딪혀서 머릴 다쳤을지도 몰라요.”
나도 다행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회사 로비는 전부 대리석 바닥인데, 거기에 넘어졌으면 이렇게 멀쩡히 깨어나지도 못했을 거다.
“제가 사흘간이나 누워 있었으면 일이 쌓 여있겠군요.”
“회사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업무 중에 제가 대신 처리할 수 있는 일은 해뒀어요.”
“역시 제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네요.”
이소영이 눈을 흘겼으나 나는 모른 척하고 주변을 뒤적거린다.
“뭐 찾으세요?”
“휴대폰 찾습니다. 재킷 안 주머니에 있었을 텐데, 못 보셨습니까?”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쉬세요. 의사가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그동안 어디서 연락이 왔는지는 확인해 봐야죠. 혹시 정부에서 연락 안 왔던가요?”
“그, 글쎄요.”
내가 일어나려 하자 이소영이 억지로 나를 말리고 나섰다.
“제가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일어나지 마세요.”
“얼른 주시죠.”
“충전이 안 돼서 꺼졌어요. 제가 나중에 충전시켜서 가져올 테니까, 지금은 그냥 누워 계시면 안 될까요?”
수상할 정도로 휴대폰을 안 주려는 느낌이다.
나는 다시 손을 내민다.
“제 휴대폰 안 줄 거면 소영 씨 휴대폰이라도 주세요.”
“그게…….”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소영은 주머니에서 내 휴대폰을 꺼낸다. 충전이 안 돼 있다고 하더니 배터리 잔량은 80%가 넘게 남아 있었다.
‘왜 휴대폰을 안 주려고 했을까?’
먼저 통화 목록부터 살펴봤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다. 문자도 마찬가지다.
대충 훑고 나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뉴스를 본 뒤에야 그녀가 왜 휴대폰을 안 주려고 했는지 알게 됐다.
[해외로 출국한 K스타코인의 대표 이사 테일러 킴, 오후 6시(현지 시각 5시)에 인터넷 방송으로 중대 발표 예고.]
[발표 내용엔 WHTS컴퍼니의 신우혁 대표와 관련된 폭로가 있을 것으로 추정.]
* * *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30분.
K스타코인에서 예고했던 방송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방송 채팅방 접속자는 가파르게 늘고 있었다.
-방송 언제 시작함? 5시 아님?
-한국 시간으로 6시.
-DAA코인 새로 나왔습니다. 지금 사면 무조건 떡상 확정. 추천인 입력하면 보너스 코인 2배 지급 이벤트 중.
-K스타코인 존버하고 있습니다. 다시 떡상 가즈아!
-떡상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테일러 사기꾼 새끼야. 내 돈 안 뱉으면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
시청자가 늘어날수록 방송을 준비한 테일러의 입꼬리는 귀와 가까워진다.
“후후후, 그래, 이 정도는 모여야지.”
코인 판에서 관심도는 곧 돈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다. 일단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기만 해도 성공이었다.
실실 웃는 테일러와 달리, 옆자리에 앉은 사내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합니까? 아는 기자를 불러서 인터뷰하면 그만인 것을.”
“노우. 그건 옛날 방식입니다. 요즘은 이쪽이 훨씬 반응이 좋지요. 한 번 보십시오.”
테일러는 노트북 화면 귀퉁이를 톡톡 두들긴다.
그곳엔 방송 시작을 기다리는 시청자 숫자가 찍혀 있었는데, 벌써 10만 명을 넘긴 상태였다.
“뭐, 많긴 합니다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인터넷 방송으론 지속적인 여론전이 가능하지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한 번에 쾅! 터트리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슈를 잘 게 쪼개서 계속 끌고 가는 거죠. 오늘 하나 터트리고, 며칠 뒤에 또 하나 터트리고.”
방송에서 자극적인 이슈 폭탄을 터트리면 다음 방송에는 입소문으로 더 많은 시청자가 몰려든다.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신우혁을 천하의 악당으로 낙인찍는 것이 테일러의 목표였다.
이번 사태를 신우혁 짓으로 몰고 가면 K스타코인은 자연스럽게 억울한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있게 된다.
‘후훗. 계획대로만 되면 K스타코인 시즌2를 발행해서 다시 크게 한탕 해 먹는 거야.’
* * *
테일러 킴이 예고한 중대 발표는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방송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K스타코인 공매도 배후엔 WHTS컴퍼니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증거로 내가 룩셈부르크 공항에서 나오는 사진과 여러 가지 정황 증거들을 공개했다.
“휴…….”
옆에서 한숨 소리가 쏟아진다. 같이 방송을 모니터링하던 이소영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녀는 아까부터 걸려 오는 전화를 확인했다가, 끊고 한숨 쉬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가 한 방 크게 먹었네요.”
“대응은 되겠습니까?”
“모르겠어요. 이미 언론사에서 속보 띄우고 난리라서요. 아, 그렇다고 댓글 확인은 하지 마세요. 안 보시는 게 나을 거예요.”
“어쩌겠습니까. 욕먹을 짓을 했으니 욕먹는 건 감수해야겠죠.”
이 말이 나오자마자 이소영이 발끈해서 목소릴 높였다.
“뭐가 욕먹을 짓이에요? K스타코인은 처음부터 투자금을 먹고 튈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아니었으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겼을 거라고요!”
“그건 우리 생각입니다. 이번에 피해를 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뭐, 그거야 맞지만…… 그래도 너무 억울하잖아요!”
이소영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나는 씩씩대는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이번엔 효과가 있는지 숨소리가 조용해진다.
“저, 그런데 방송에서 같이 나온 사람은 누구예요? 대표님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던데요.”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입니다. 백승태라고 제 직속 상사였죠.”
“직속 상사라면 그…… 회삿돈 횡령하고 누명 씌우려던 사람요?”
내가 살짝 끄덕거리자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진다.
“그런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폭로를 한다는 거예요? 진짜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는 거지.”
“이번 사태와 회사 횡령 건을 묶어서 제 이미지를 깎으려는 거겠죠.”
“안 되겠어요. 우리도 맞폭로로 가요.”
“잃을 게 없는 상대와 진흙탕 싸움으로 가면 우리만 손햅니다. 차라리 무시하는 전략이…….”
지잉- 지잉- 지잉-
때마침 들려온 휴대폰의 진동 소리가 우리의 대화를 끊었다.
발신자는 존 소로스.
화면에 찍힌 이름을 보고 이소영은 발을 동동 구른다.
“대표님, 어떡해요. 소로스도 방송을 봤나 봐요.”
나는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전화를 받았다.
-방금 뉴스 봤소. 일이 터졌더구려.
“저는 신경 안 씁니다만, 소로스 씨가 불편하시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나는 괜찮은데 내 주변에서 낌새가 보여서 말이오. 미리 경고라도 해줄 겸 전화한 거요.
“낌새라뇨?”
-이번에 K스타코인을 무너트리는데 다른 헤지펀드들이 참여한 건 알고 있을 거요.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K스타코인은 소로스 펀드의 단독 공매도 공격을 버텨냈다.
그러나 소로스가 K스타코인의 실태를 폭로하는 공매도 리포트를 내자, 그때부터 다른 헤지펀드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이 이번엔 도토리코인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있소.
“또 공매도입니까?”
-이번에도 비슷할 거요. 일 년 치 수익을 하루 만에 올렸으니, 그 맛을 못 잊고 또 달려드는 게지.
지금처럼 악재가 터졌을 때 두들기는 것이 정석이긴 하다만, 도토리코인과 K스타코인은 하늘과 땅만큼의 체급 차이가 있을 텐데?
‘얕보인 건가.’
사방에서 나를 죽이겠다고 악재를 쏟아내고 있음에도, 어째선지 걱정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망한 사기꾼들의 발악과 겁 없는 헤지펀드의 공매도.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가상화폐 시가 총액 1위의 체급이 어느 정도인지 똑똑히 보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