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31화
K스타코인의 반등으로 잠시 자취를 감췄던 가상화폐 이슈는 다시 인터넷을 뒤덮었다.
특히 오늘은 K스타코인의 초대형 세미나까지 예정된 날이라, SNS에는 관련 소식을 퍼 나르는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오늘 K스타 라인업 실화냐? 이름만 나열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전부 S급 아이돌로만 도배했더라.
└배우 라인업도 미쳤던데? 광고만 찍던 배우들이 행사장에 나온 거 보고 깜놀했음. 연말 시상식인 줄.
-행사 크게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그거 전부 코인충들 돈 태워서 메꾸는 거야.
└응~ 개소리. 홍보로 투자자가 늘어나면 오히려 이득이야.
-행사를 크게 해봤자 국내는 이미 포화상태잖아.
└해외에도 K팝 팬들이 꽤 많아. 은근히 빌보트 차트 상위권에도 올라가고 있고. 이런 추세면 곧 1위도 찍지 않을까?
└한국 아이돌로 빌보드 1위?
└ㅋㅋㅋㅋㅋㅋ
-오래간만에 빵 터졌네. 갱남스타일도 빌보드 1위를 못 찍었는데 고작 아이돌 노래가 어케 1위를 찍음?
└왜들 그리 부정적이야? 노래 잘 뽑히면 빌보드 1위 찍을 수도 있는 거지.
└핵전쟁으로 미국이 망한 뒤엔 가능할 듯.
이번 세미나에선 K스타코인의 특별 발표까지 예정돼 있었기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SNS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큰 화제가 된다.
[K스타코인 세미나에서 가상화폐의 두 거물이 만나다.]
영상에는 WHTS컴퍼니의 신우혁 대표와 K스타코인의 테일러 킴이 만나서 대화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호기심에 영상을 클릭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기 올라온 영상 본 사람? 신우혁이 K스타코인을 가루가 되도록 까는데?
-워. 테일러 면전에 대고 K스타코인이 망한다고 질러 버리네. 상남자다.
-경쟁사 견제 아님? 신우혁은 개발자 출신이 아니라서 가상화폐 구조를 잘 모를걸.
-뭔 소리야. 옆에 이소영도 같이 있잖아. 그리고 핵심은 대화 내용이 테일러가 말한 것과 전혀 다르다는 거야.
두 사람의 대화가 담긴 영상은 SNS를 시작으로, 커뮤니티, 가상화폐 토론방, 단체 톡방까지 퍼지면서, 영상 업로드 30분 만에 10만 건이 넘는 조회 수가 찍혔다.
뒤늦게 영상이 조작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으나, 그런 조작설은 누군가 커뮤니티에 올린 인증글로 무너지게 된다.
[양심 고백한다. K스타코인 세미나에서 신우혁 대표 발언 가까이서 들었음.]
익명 게시글은 바로 행사장에서 영상과 같은 대화를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더 빨리 공개했어야 했지만, 내가 말해봤자 아무도 안 믿었을 거 아냐? 테일러 사기꾼 같아서 나는 K스타랑 KSC 전부 털었었으니까 너희도 알아서 판단해라.]
단순히 글만 올라왔으면 신빙성을 의심받았을 거다.
하지만 익명글 게시자는 행사장 앞자리에 앉을 수 있는 VIP 초대장을 사진으로 인증까지 해버렸다.
덕분에 반신반의하던 여론은 순식간에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
* * *
WHTS컴퍼니 사옥 2층은 매일 아침이면 커피를 타서 출근하려는 직원들로 붐빈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은 모습이었으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의 대화 주제가 모두 같았다는 것이다.
“실장님, 아침 뉴스 보셨어요? K스타코인 거래 정지 먹었답니다.”
“나도 그 소식 듣고 깜짝 놀랐어.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회복했다고 뉴스를 내보내더니 하루를 못 버티고 박살 났더라.”
“세미나 행사도 크게 열었던데, 막판에 먹고 튀려고 그런 걸까요?”
“헤지펀드들이 단체로 공매도 때려서 그렇다잖아.”
“어쨌든 대표가 새벽에 싱가포르로 도망갔으면 먹고 튄 거나 마찬가지죠.”
K스타코인 이야기가 계속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신입 직원들도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든다.
“저기…… 거래 정지면 K스타코인 못 쓰는 건가요?”
“왜? 진솔 씨도 K스타 샀어?”
“많이 산 건 아니고. 친구 추천으로 조금 사뒀어요. 10만 원쯤…….”
“그 정도면 액땜했다고 생각해. 내 친구 중엔 전세금까지 꼬라박은 놈도 있는데 단톡방에서 죽는다고 난리를 치더라고.”
옆에서 실장이 헛기침으로 눈치를 준다. 듣고 있던 신입 직원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는 10만 원쯤 투자했다고 했지만, 실제론 그보다 더 많이 투자한 듯했다.
“그…… 아직 잘 찾아보면 거래되는 거래소도 있을걸? 중소규모 거래소를 잘 찾아보면…….”
“…….”
“앗! 찾았다!”
“진짜요?”
“여기가 홍콩에서 운영 중인 거래소거든. 아직 K스타 거래를 안 막았네. 현 시각 기준으로 시세가 얼마냐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물론이고, 옆 테이블, 옆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까지 이들의 대화에 집중한다.
“어, 음…….”
“지금 얼마예요? 바로 팔 수 있나요?”
“팔 수는 있는데 시세가 너무 많이 떨어졌다.”
신입 직원은 휴대폰에 뜬 K스타코인 시세를 보고는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이거 진짜 맞아요? 아니죠?”
1개에 0.000000999967달러.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휘어잡고, 할리우드까지 집어삼키겠다던 가상화폐의 비참한 말로였다.
직원들은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
시세를 물었던 직원이 유령 같은 표정으로 먼저 자릴 뜨자, 그제야 사람들은 다시 입을 연다.
“얼마를 샀길래 저러는 거야? 젊은 친구가 겁도 없지. 쯧쯧.”
“참 안 됐네요.”
“너무 쉽게 가려니까 저런 일이 생기는 거야. 남들은 바보라서 힘들게 돈 버는 줄 알아?”
이후에 대화가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제 인터넷에 뜬 영상 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넷 영상 보니까 저희 대표님은 K스타코인이 이렇게 될 줄 예상하신 것 같더라고요.”
“당연히 예상하셨겠지. 가상화폐 업계에서 대표님보다 안목이 뛰어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미리 경고라도 해주셨으면…… 피해자가 줄지 않았을까요?”
“어허! 큰일 날 소리!”
실장의 목소리가 컸던 탓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흘깃흘깃 이쪽을 쳐다본다.
“대표님이 경고한 뒤에 K스타코인이 정지 먹었으면, 투자자들이 고마워했을 것 같아? 천만의 말씀이지. 오히려 경고해서 코인이 망했다고 저주를 퍼부었을걸?”
“에이, 설마요.”
“진짜라니까 그러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면 봇짐 내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줄 알아?”
모두가 실장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졌어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얼마 뒤, 그가 말한 것보다 더한 사건이 터지게 된다.
* * *
신우혁과 테일러 킴의 영상이 SNS를 뒤덮은 뒤에도 K스타코인은 한동안 시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때 물량을 매도한 개인 투자자는 10%도 안 되는 극히 일부였다.
나머지 90%의 개인은 세미나에서 뜰 호재를 기다리며 코인을 끝까지 쥐고 있다가 사달이 나버렸다.
알려진 K스타코인 투자 피해자만 약 70만 명.
여기서 90%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통계가 나오자, 정부에서도 피해자 구제책을 고심하게 된다.
“안녕하십니까, 신우혁 대표님.”
정부의 가상화폐 피해자 대책 회의가 열리는 회의장.
내가 회의장 입구에 도착하자 단정한 수트 차림의 중년인이 다가온다.
대통령비서실의 왕정현 실장이다. 그와는 저번 대통령 취임식 때 만났던 터라 안면이 있었다.
“바쁘실 텐데 데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업계와 관련된 일인데 당연히 참석해야죠.”
“그러고 보니 이번 일로 WHTS컴퍼니도 피해가 크시겠습니다. 워낙 사고가 크게 터지다 보니…….”
“저희는 시세가 오르내리는 가상화폐가 아니라서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도토리코인 시가 총액이 줄어드는 정도겠지. 그보다 정부에서 엄한 가상화폐 규제책을 낼까 봐 그게 더 우려스럽다.
그런 내 속내를 읽은 건지 왕 실장은 슬쩍 말을 덧붙인다.
“이번 대책 마련에 도움을 주시면 저희가 물심양면으로 WHTS컴퍼니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왕 실장님만 믿겠습니다.”
이미 회의장에는 정부 부처 관료들이 자릴 잡고 있었다.
회의장 뒤편으론 기자들과 카메라가 빼곡하다. 이번 사태의 국민적인 관심도가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었다.
“지금부터 가상화폐 투자 피해 대책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책 회의가 시작된다.
먼저 이번 사태의 핵심 부처인 법무부 쪽에서 발언에 나섰다.
“이번 가상화폐 투자 피해자가 70만 명입니다. 에…… 대부분 피해자가 젊은 층으로, 구제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큰 후유증을 겪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빚을 탕감해 주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당연히 빚 탕감은 안 됩니다. 채무 이자와 기일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며…….”
회의 내용이 실시간으로 송출 중인 게 부담스러운지,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이 조심스럽다.
느릿느릿한 목소리에, 낮은 톤, 어조까지 단조로우니 자장가가 따로 없다.
“…….”
알맹이도 없는 대책 회의가 얼마나 계속됐을까?
카메라 쪽에 서 있던 사내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진다.
“장관님! 이번 사태의 범인부터 잡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벌써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돌던데 잡을 계획은 있으십니까?”
목걸이 출입증에 소속과 이름이 없다. 소규모 신문사 기자라서 그런가? 아니면 인터넷 방송 기자일지도 모르겠다.
기자의 질문을 받는 회의가 아니었으나, 카메라가 찍고 있어서 그런지 법무부 장관이 떠듬떠듬 답을 해준다.
“에…… 그게 말이죠. 가상화폐는 아직 금융상품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어흠, 수사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선은 법리적인 해석을 먼저 진행하고, 그리고 또…….”
질문자뿐만 아니라 옆에서 듣는 사람까지 울화통이 터지는 답변이었다.
왕정현 실장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급하게 마이크를 켜서 수습에 나선다.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입니다. 관련 주제를 먼저 논의하고, 그 외의 주제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마이크를 끄고서 내게 눈빛으로 SOS 신호를 보낸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화제를 돌려달라는 뜻이었다.
‘나중에 규제니, 뭐니, 딴소리만 해봐라.’
마이크 버튼을 건드리자 ‘지직-’거리는 소리가 난다.
작은 소리였음에도 회의장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뒤편 카메라도 전부 내 쪽으로 방향이 돌아가 있다.
“이번 사태는 투자자뿐만 아니라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가상화폐를 받고 제휴를 맺거나, 행사를 진행하거나, 일부 업체는 가상화폐와 지분을 교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 발언을 기점으로 흐리멍덩하게 앉아 있던 기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급하게 전화를 걸며 나가는 사람도 있다.
다소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발언이 이어진다.
“저희 WHTS컴퍼니는 이번 사태를 일으킨 업체를 대신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지원할 예정이며…….”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더러운 위선자! 개소리 집어치워!”
아까 법무부 장관에게 질문했던 더벅머리 기자였다. 그의 손에는 신문지로 감싼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죽어!”
신문지의 끝이 정확하게 내 가슴팍을 향해서 밀고 들어온다.
나는 본능적으로 저 물건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달려드는 녀석을 피하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이런 썩을…….’
서늘한 쇠붙이의 감촉이 앞서고, 뒤따라서 북을 찢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친다.
푸욱-.
형언할 수 없는 고통.
타는 듯한 작열감.
그것을 마지막으로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