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29화
“나더러 가상화폐를 공매도해 달란 말이오?”
소로스는 괴었던 턱을 풀고 고갤 치켜든다.
그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져서 인간보다 맹금류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K스타코인이라는 가상화폐의 공매도를 요청합니다.”
“음…….”
“상장한 지 얼마 안 된 가상화폐지만 이미 시가 총액 3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먹어치울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는 입술을 몇 차례나 쓸어내리다가 입을 뗀다.
“공매도라면 굳이 내게 부탁하지 않아도, WHTS컴퍼니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 아니오?”
“그럴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이 방면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가능하면 이번 일을 직접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WHTS컴퍼니가 공매도로 경쟁사를 날려버렸다는 소문이 퍼져서 좋을 게 없었기에, 소로스라는 유명 인사에게 대리전을 부탁하러 온 참이다.
“가상화폐가 공매도로 고꾸라졌다는 소문이 퍼지면 가상화폐 판 전체가 휘청거릴 거요. 그렇게 되면 WHTS컴퍼니도 좋을 게 없을 텐데?”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K스타코인을 공격하는 이유가 뭐요? 이 늙은이는 이해할 수 없구려.”
이번 사태를 설명하려면 먼저 K스타코인의 구조를 짚고 넘어가야 했다.
“K스타코인은 막대한 보상을 내세워서 단기간에 성장한 가상화폐입니다. 그들의 방식이 성장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안정성은 확연히 떨어집니다.”
“무슨 보상을 약속했기에?”
“K스타코인에 투자하면 연간 23.9%의 보상을 지급한다고 하더군요.”
소로스의 입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쏟아진다.
“뭐? 23.9%?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정확히 들으셨습니다.”
“세상에 그런 이자율을 감당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은 없소. 그건 사기나 마찬가지요!”
“이미 비슷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딴 일에 전례 따위가 있을 리…… 어?”
K스타코인과 비슷한 전례.
바로 가상화폐 시가 총액 1위인 도토리코인이었다.
“도토리코인이 높은 이자를 지급할 수 있던 배경엔 SNS, 게임, 전기차 등의 사업 성공이 따라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K스타코인은 비현실적인 계획만 가득할 뿐, 실제 수익은 전무합니다.”
“유입되던 투자금이 끊기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구조겠구려.”
“정확히 보셨습니다. 사실상 디지털판 폰지사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소로스는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본다. 가상화폐 개발사 대표의 입에서 폰지사기라는 말이 나올 줄 몰랐나 보다.
“아시다시피 폰지사기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미리 싹을 잘라 버리겠다는 거요?”
“시장 충격의 최소화. 그게 제 목적입니다.”
소로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한참이나 턱을 슥슥 긁어댔다. 그러다 거의 1분 정도가 더 지나서야 입이 떨어진다.
“솔직히 당신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소.”
“어떤 부분이 믿기 힘드시던가요?”
“이번 공매도의 목적이 경쟁사 제거가 아니라 가상화폐 시장을 위해서라는 것부터……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제 의도가 뭐든 소로스 씨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중요한 건 K스타코인이라는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 밥상에 올라와 있다는 것뿐입니다.”
* * *
가상화폐 광풍은 인터넷 세상을 격랑 속으로 밀어 넣었다.
뉴스, SNS, 커뮤니티, 어디를 가더라도 가상화폐 주제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으며, 그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뭐? 코인만 사면 돈이 복사된다고? 그런데 그걸 모르고 아직 현금을 들고 있는 멍청이도 있다고?
└이미 대출 풀로 땡겨서 닷지코인 몰빵함.
└4대 보험 안 넣으니까 대출한도가 안 나와. 짜증. 귀찮아도 알바 하나 뛸까.
-이번에 신규 코인 2개 상장함. 무조건 떡상 확정이니까 빨리 넣으셈.
└내 친구 신규 코인 넣었다가 하루 만에 900% 먹고 회사 때려치웠더라. 개부럽.
└너도 할 수 있어. ㄱㄱ
-나는 무난하게 K스타 넣었다. 참고로 이번 중국 세미나에 A급 걸그룹 3팀이나 동행한다더라.
└호재인가요?
└화재 아니면 다 호재입니다.
└이 뉴스 보고 마통까지 뚫어서 풀매수했지. K스타 떡상 가즈아!!!
└이번에 4만까지 가즈아아아아아~~~
인터넷 분위기만 보면 가상화폐는 언제나 시세가 올라서 수익을 안겨줄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2차 코인 광풍이 불어닥친 이후엔 가상화폐 대다수가 오른 상태였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투자 상품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매번 오를 수만은 없는 법이다.
-K스타 시세만 왜 이럼? 이틀 연속으로 15%나 빠졌네.
└아 씨, 갈아탈걸. 괜히 K스타 사서는.
-악재라도 있나? 왜 혼자 안 올라?
└으휴, 코린이 냄새. 지금까지 너무 올라서 조정 들어간 거다. 존버 타면 오르니까 조바심 노노.
└조정 이후에 다시 떡상임. 그러니까 무조건 존버.
└존버가 답이다.
└믿습니다. 존버! 존버! 존버! 존버! 존버! 존버!
그러나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가 되는 날에도 K스타코인과 KSC코인 시세는 홀로 역주행을 이어갔다.
36,000원…… 30,600원…… 26,400원…… 22,400원.
이쯤 되자 존버를 외치던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K스타코인에 뭔 일이 터진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맴돌았다.
그러다 오후 늦은 시각, 우려하던 일이 뉴스를 타게 됐다.
[은퇴했던 존 소로스의 복귀전. 그의 펀드가 처음으로 노린 것은 가상화폐였다!]
[소로스 펀드 “K스타코인은 구조적인 결함이 존재해서 투자 상품으로 부적합. 곧 관련 보고서 낼 것.”]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금융계의 살아 있는 전설인 존 소로스의 선전포고였다.
그의 화려한 전적을 모르는 투자자는 드물었기에, 뉴스가 뜬 직후부터 K스타코인과 KSC코인 시세는 아래로 처박히게 된다.
* * *
소로스의 선전포고가 뉴스를 탄 이후.
1달러로 유지됐어야 할 K스타코인의 시세는 한때 0.8달러까지 내려가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놀란 투자자들은 K스타코인은 물론이고, K스타코인과 연계된 KSC코인까지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종류의 코인 물량이 쏟아지니 시세 하락 폭도 배가 됐다.
본디 37,000원이었던 KSC코인은 닷새 만에 14,400원이 됐다. 무려 60%가 넘는 폭락이었다.
이에 보다 못한 K스타코인 측은 대표인 테일러 킴이 직접 방송을 켜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나섰다.
-투자자 여러분. 최근 K스타코인은 특정 세력의 농간으로 시세가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이 모든 것은 공매도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 K스타코인은 특별 알고리즘으로 관리되고 있기에 100% 안전을 보장합니다.
방송에서 안전을 장담했으나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K스타코인의 처지는 풍전등화나 마찬가지였다.
“테일러 씨,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1달러를 유지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셨잖아요!”
적막한 회의실 안.
표독스러운 인상의 사내가 소릴 지르자 옆에 앉은 다른 사내들도 이에 질세라 목소릴 높였다.
“이젠 어떻게 되는 거죠? 우리가 투자했던 돈은요?”
“알고리즘인지 뭔지로 시세를 반등시킬 수 있는 거 맞습니까? 설마 이대로 폭락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건 아니겠죠?”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테일러 씨!”
흥분한 사내들은 K스타코인에 투자한 증권사 임원들이다.
테일러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자, 참다못한 임원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안 되겠습니다. 저희 대현은 손 털겠습니다.”
“대현이 빠지면 저희도 SG투자도 어쩔 수 없군요.”
그제야 테일러는 그들을 만류하고 나섰다.
“왜 이렇게들 급하십니까. 서두른다고 안 되는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일단 앉으시고 대화로 풀어봅시다.”
테일러가 고갤 굽실거리자 증권사 임원들은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는다.
사실, 그들도 말만 빠지겠다고 했지, 투자한 돈이 한두 푼이 아닌지라 쉽게 털고 나갈 수 없었다.
“아시다시피 이번 사태는 소로스 펀드의 공매도 공격이 원인입니다. 그러니 공매도 만기일인 16일까지만 버티면 깔끔하게 해결될 문제라는 거죠.”
임원들은 거의 동시에 휴대폰으로 날짜를 확인한다. 오늘이 5일이었으니, 16일까지는 무려 11일이나 버텨야 한다는 말이었다.
“앞으로 호재가 없으면 시세는 계속 빠지기만 할 텐데요. 16일까지 버틸 수 있겠습니까?”
“호재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요.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유의미한 반등이 따라와야 한다는 겁니다.”
“유의미한 반등이라면……?”
테일러가 슬그머니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보여준다.
“우리더러 투자를 더 하라는 뜻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자, 진정하시고. 제 말을 잠시만 들어주세요. 아주 잠시. 1분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도 못 해주시는 건 아니시죠?”
1분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무는 임원들.
테일러는 장내가 완전히 조용해진 뒤에야 운을 띄운다.
“말씀에 앞서, 여러분에게 K스타코인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시세 차익 먹으려고 들어온 거 아니시잖아요.”
대형 증권사에서 신생 가상화폐에 투자한 이유는 사전 발행 코인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상장 전에 발행된 코인은 존재 여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그런 유령 코인을 거래소에 내다 팔면 세상에 그 어떤 흔적조차 남지 않은 완벽한 비자금이 완성된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제가 쥐고 있던 KSC 사전 발행 코인을 천만 개씩 더 나눠드리겠습니다.”
임원들은 놀라서 헛숨을 들이 삼켰다.
KSC코인 천만 개면 시세가 폭락한 지금 기준으로도 1,500억 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딱 16일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그날 공매도 세력이 싹 뒈지면 우리 코인은 다시 떡상입니다. 당연히 여러분께 드린 사전 발행 코인도 몇 배나 가치가 뛸 겁니다.”
테일러는 임원들을 찬찬히 돌아가며 쳐다본다. 이미 그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때를 놓치지 않고 품에서 USB를 꺼내서, 1인당 3개씩 나눠준다.
“이, 이게 뭡니까?”
얼떨떨한 표정으로 USB를 받아든 임원에게 테일러가 가까이 다가가 속삭인다.
“USB 하나당 KSC코인 5만 개가 들어 있습니다. 제 성의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헛!”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거기 들어 있는 코인도 사전 발행된 물량인지라 절대 추적당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떡값으로 쓰십시오.”
떡값이라기엔 지나치게 큰돈이었다. 그들이 평생을 일해도 USB 안에 있는 돈 이상을 모을 순 없으리라.
임원들은 약삭빠른 증권사 출신답게 일말의 망설임 없이 USB를 챙겼다.
테일러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는 히쭉 웃으며 자릴 털고 일어난다.
“자,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천천히들 말씀 나누십시오.”
더는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앞으론 코인을 받아먹은 증권사 임원들이 알아서 K스타코인을 살리려고 발버둥질 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