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28화 (128/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28화

테일러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K스타코인 세미나장에 저절로 굴러들어온 복덩이들.

WHTS컴퍼니의 두 사람과 찍은 사진 덕분에 테일러의 이름값은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정보가 빨리 퍼지는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사진이 돌아다녔고, 오늘 아침부턴 포털 뉴스에도 관련 기사가 쫙 깔렸다.

그리고 지금, 테일러는 지상파 방송인 ‘성공한 리더’를 촬영하기 위해 방송국에 온 참이다.

“PD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테일러가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담당 PD가 버선발로 튀어나온다.

“아이고. 테일러 씨, 괜찮습니다. 그보다 저번에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었죠? 오늘은 녹화 끝나고 밥이라도 한 끼 하시죠.”

“제가 오늘은 스케줄이 있어서요.”

“아, 바쁘시구나. 아니면 다음 촬영 때는 어떻습니까?”

불과 저번 주만 해도 명함조차 받지 않고 뻣뻣하게 굴던 방송국 PD 놈이, 며칠 만에 그를 귀빈 모시듯이 대우해준다.

‘정말 웃기는군. 그동안 홍보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고작 사진` 한 방의 효과가 더 클 줄은…….’

그날 WHTS컴퍼니 측과 나눈 대화는 전혀 K스타코인에 도움 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든 신경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남는 건 사진뿐이지.’

잠시 후, 본격적인 녹화가 시작됐다.

프로그램은 성공한 리더에 걸맞은 게스트를 초청해서 MC와 담화를 나누는 식이었다.

“오늘은 최근 인터넷과 SNS에서 가장 핫한 게스트분을 모셨습니다. 바로 테일러 킴 씨입니다!”

“반갑습니다. 테일러 킴입니다.”

“테일러 씨 실물이 더 미남이십니다. 아, 성으로 불러드려야 하나요?”

“아닙니다. 그냥 테일러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기에, 테일러는 MC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테일러 씨가 계신 회사가 가상화폐 개발사였죠?”

“K스타코인을 개발하고 운영 중입니다.”

“그 가상화폐가 한국의 K팝을 활용하는 화폐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들어도 이해가 잘 안 되던데, 혹시 테일러 씨가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테일러는 수백 번도 넘게 반복했던 가상화폐 홍보 멘트를 읊었다.

“K스타코인은 1달러로 페깅된 가상화폐입니다. 여기에 KSC코인이라는 또 다른 가상화폐와 특별한 알고리즘으로 연동을…….”

일반인에게 생소한 단어와 난해한 개념이 뒤섞인 설명이 쏟아진다. MC도 이해를 못 했는지 고개만 몇 번 끄덕이다가 급하게 주제를 돌린다.

“멋진 설명 감사드립니다. 헌데, 한국에선 이미 가상화폐로 이름을 떨친 기업이 있잖습니까?”

“WHTS컴퍼니가 있죠.”

“예, 그 WHTS컴퍼니는 테슬라모터스 인수와 석유 시추 사업에도 투자해서 화제가 됐는데요. K스타가 WHTS컴퍼니와 흡사하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이에 테일러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테일러는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기에 능숙하게 맞받아친다.

“WHTS컴퍼니는 가상화폐 시가 총액 1위 업체입니다. 후발주자가 뒤쫓을 롤모델로 아주 이상적인 업체지요.”

“아하. 그러니까 흡사한 이유가 우연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저는 WHTS컴퍼니를 리스펙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 세미나에서 신우혁 대표님과 이소영 씨를 만났을 땐,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는 은근슬쩍 세미나에서 신우혁과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깜짝 놀랐다는 리액션까지 곁들여서.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습니다. 인터넷에선 테일러 씨와 WHTS컴퍼니 분들이 만나서 찍은 사진이 화제입니다.”

“저도 그 사진을 저장해 뒀습니다. 사진을 정말 잘 찍으셨더군요.”

“그 자리에서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셨다고 하던데, 무슨 이야길 하셨는지 살짝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헛소리나 다름없는 말을 들었으나 그걸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테일러는 미리 준비해온 말을 내놓는다.

“가상화폐의 미래를 논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신우혁 대표님이 K스타코인에 관심이 많으셨다는 것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그렇군요. 업계를 대표하는 분들이니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을 것 같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것 자체가 관심이 있다는 뜻이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번 녹화분이 방송을 타면 인터넷이 또 한 번 뒤집히겠군.’

이미 테일러는 머릿속에서 방송 당일의 기사 헤드라인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WHTS컴퍼니의 신우혁 대표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가상화폐는?]

[방송에서 공개된 비하인드 스토리. WHTS컴퍼니와 K스타코인의 협업 소문이 사실로?]

언론사에서 기사를 써주지 않으면 돈을 줘서라도 뽑아내면 그만이다.

일단 비슷한 기사가 인터넷에서 퍼지기만 하면 K스타코인 시세는 무서운 기세로 폭등할 테니.

그 흐름만 타면 시가 총액 10위 안에 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 *

K스타코인은 K팝 지원을 앞세워서 지상파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잦은 노출로 인지도가 올라가면 시세가 뛰는 것은 당연지사.

17위였던 시가 총액은 가파르게 올라서 10위에 들게 됐고, 하루 만에 두 단계를 더 올라 8위까지 오르게 됐다.

상장 3주 만에 시가 총액 8위 달성.

전무후무한 기록에 K스타코인 투자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인터넷에선 가상화폐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일반 유머 커뮤니티에서도 가즈아를 외치고 있었다.

-오늘도 떡상 가즈아!!

-아직도 K스타코인 안 탄 흑우 없제? 오늘이 최저점이니까 빨리 타는 게 이득임.

-어제 28000원 전부 익절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31000원이네? 배 아파 죽겠다. 존버할걸.

└지금 34000원 넘었어.

└씁. 어제 다시 사둘 걸 그랬나. 손이 근질근질해서 미치겠어.

-맨날 코인 소리 지겹다. 코인충들은 딴 데 가서 놀면 안 됨?

└코인 못 산 패배자 어서 오고.

└지금 코인 안 사두면 도태되는 거임. 조금이라도 사두셈.

-다들 코인 이야기하니까 나도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빨리 사라. 지금이 들어갈 타이밍임.

└월급쟁이가 한두 푼 모은다고 아파트 살 수 있음? 절대 못 사지. 그러니 투자로 한 방 노리는 게 답이다.

인터넷에서 시작된 투자 분위기는 뉴스와 입소문을 타고,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이쯤 되자 가상화폐의 구조나 사용처 따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사두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이 판을 지배하고 있었다.

* * *

룩셈부르크의 Le Royal 호텔.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직행하는 승강기에 다가가자 새까만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내 앞을 막아선다.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초대장을 내밀었더니 군인처럼 절도 있는 동작으로 길을 터준다.

검문은 승강기에서 내린 뒤, 꼭대기 층에서 한 번 더 이뤄졌다. 이번 경호원은 초대장을 확인하고도 나를 승강기 앞에서 기다리게 했다.

다소 과할 정도의 경호였으나,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의 지위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일이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금테 안경을 쓴 직원이 나타났다.

“예약하신 손님 성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대니얼 신입니다.”

“확인됐습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직원을 따라 펜트하우스로 걸어 들어간다. 방 안에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은은한 시나몬 향이 풍겨온다.

똑똑.

직원의 노크가 있고 한참 뒤, 서재 안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넘어온다.

“들어오시오.”

직원은 문만 열어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나 혼자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드디어 그와 만나게 됐구나.’

긴장과 흥분이 묘하게 뒤섞인 채로 걸음을 옮긴다.

서재에는 쭈글쭈글한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다.

룩셈부르크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이었으나 그의 안광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나는 헛숨을 들이 삼켜야 했다.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이자, 살아있는 금융계의 전설.

존 소로스와의 첫 대면이었다.

“앉으시오.”

그는 여전히 강렬한 안광을 뿌리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먼저 내 소개를 꺼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WHTS컴퍼니의 대표 이사 대니얼 신입니다. 소로스 씨를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나 같은 늙은이를 만난 게 영광일 것까지야. 세상엔 당신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거요.”

“그럴 리가요.”

소로스는 다시금 나를 노려보듯이 응시한다.

“당신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기 전부터 후원한 몇 안 되는 사람이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오.”

“…….”

“그를 후원한 이유가 뭐요? 솔직하게 답해주시오.”

그저 쳐다만 보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압박감에 숨이 막혀온다.

나는 뒤로 숨긴 손에 힘을 꽉 주고서 입을 뗀다.

“시대가 그를 원했습니다.”

“두루뭉술한 말로 넘어갈 셈이오?”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입니다.”

그는 원하던 대답이 안 나온 탓인지 이맛살을 구긴다.

“그럼 이번은 제가 묻겠습니다. 소로스 씨는 힐러리가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합니까?”

“마음에 드는 후보는 아니었소.”

“그렇다면 어째서 힐러리를 후원하셨습니까?”

“그야 당연히…….”

소로스는 그제야 내 질문의 뜻을 이해했는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트럼프보다 힐러리를 떨어트리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는 소리구려.”

“정확히는 힐러리가 아니라 기성 정치인에 환멸을 느낀 사람이 많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걸 꿰뚫어 보고 트럼프에 베팅하다니, 당신 같은 강심장은 월가에서도 찾기 힘들 거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미국 선거 이야기를 시작으로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이후엔 가벼운 잡담이나 국제 정세와 경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가상화폐로 주제가 돌아온다.

“당신 회사가 개발한 가상화폐로 원유를 거래할 줄은 꿈에도 몰랐소. 혹시 트럼프를 지원한 것도 이런 이유였던 거요?”

“아니라곤 못 하겠습니다.”

“허허, 참…… 몇 수를 내다본 건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구려.”

나는 쥐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일부러 소리를 냈다.

“그보다 제가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차차. 아까부터 이 늙은이 혼자서 떠들고 있었구먼. 어디 말씀해 보시오.”

“소로스 씨는 과거에 공격적인 투자전략으로 성과를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파운드화 공매도 사건이었고요.”

파운드화 공매도 사건은 소로스의 헤지펀드가 영국 중앙은행을 공매도로 공격한 사건이다.

이때 소로스는 레버리지를 최대한 끌어올려서 100억 달러가 넘는 파운드화를 공매도했는데, 그게 완벽하게 성공해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게 된다.

“이미 10년도 넘게 지난 일이요.”

“투자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그 일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소. 실제로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라도 하는 건지 창밖을 그윽하게 응시한다.

“이제 펀드매니저 존 소로스는 없소이다. 은퇴한 늙은이만 남아 있을 뿐.”

“은퇴하신 분이 어째서 개인 재산을 투자하고 계신 겁니까?”

“늙은이의 소일거리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다. 그는 시장에 기회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복귀할 사람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소일거리를 의뢰해도 되겠습니까?”

“투자 의뢰는 받지 않소이다.”

“밥상이 다 차려진 30억 달러짜리 의뢰입니다. 소로스 씨가 입김만 살짝 불어주면 해결될, 아주 간단한 일이지요.”

“무슨 일이기에……?”

소로스는 30억 달러라는 액수에 관심을 보인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미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저를 대신해서 가상화폐를 공매도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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