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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27화 (127/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27화

세상에 가상화폐가 등장한 이후부터 ICO(Initial Coin Offering : 가상화폐공개) 먹튀 사건은 항상 존재해왔다.

초기 투자금만 받고 잠적하거나, 상장 첫날에 전량 팔아치우고 튄다거나, 한술 더 떠서 다단계 사기와 연계하는 악질도 있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신규 가상화폐의 99%가 먹튀, 혹은 사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번에 등장한 K스타코인 역시 흔한 먹튀 가상화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존의 먹튀 가상화폐와 궤를 달리하는 점이 있었으니, 그건 메이저 증권사 다수가 K스타코인의 초기 투자자였다는 점이다.

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 방면에 빠삭한 전문가를 찾기로 했다.

과거에 비슷한 작업을 해왔기에 누구보다 이 바닥의 생리를 잘 아는 전문가.

나는 그를 경기도 안양의 교도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

“수감번호 1961번. 특별 면회실로.”

방 안으로 초췌한 인상의 사내가 비적비적 걸어 들어온다.

초창기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힛의 소유주이자, 최명자를 도와서 아리랑코인을 운영한 나민성이었다.

그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곧장 비꼼이 잔뜩 들어간 인사말을 늘어놓는다.

“이야. 대단하신 WHTS컴퍼니의 대표님께서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대?”

“주둥이 놀리는 꼴을 보니 살 만한가 보군. 뭐, 아직은 1년 차니까 똥오줌 못 가릴 때긴 하지.”

“이쪽 생활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빨까지 마.”

저 말을 듣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7년 차 대선배님에게 새파란 놈이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얼마나 우습겠는가.

나는 감방 선배로서 녀석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을 파고든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네 방을 좋은 곳으로 옮겨줄 수도 있어. 예를 들면 4동의 동쪽 끝방이나, 아니면 볕이 잘 드는 4동 2층도 괜찮겠네.”

내가 언급한 4동은 흉악범들이 수용된 구역이다. 그리고 4동의 2층은 특별 관리 대상, 예를 들면 사형수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죄수들이 갇힌 곳이었다.

나민성이 그걸 모를 리 없었으니, 대번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겁을 이만큼 줬으면 다음은 당근을 쥐여줘야겠지.’

나는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기 위해서 그에게 담배를 내민다.

“무슨…….”

“한 대 피워. 그 정도는 교도관님도 허락해 줄 거다.”

내 시선을 받은 교도관은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제야 나민성은 허겁지겁 담배를 받아서 불을 붙였다.

“흐……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담배냐.”

본래 면회장에서 면회인과 재소자는 접촉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교도소장의 허가로 쓸 수 있는 특별 면회실에선 가벼운 행위 정도는 눈감아주는 편이었다.

실제로 특별 면회실 책상엔 재떨이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나민성은 급하게 담배 한 대를 다 태운 것으로 모자랐는지, 허겁지겁 두 번째 담배를 꼬나물었다.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야? 최명자는 이미 끝장이라 그쪽 정보를 캐러 온 것도 아닐 텐데.”

“전문가의 코멘트가 필요해서 왔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할 건지, 말 건지부터 대답해. 네가 안 하면 다른 놈을 찾아갈 거니까.”

나민성은 반도 태우지 않은 장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나만큼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사람은 없을걸? 이래 봬도 정부 코인까지 운영했던 몸이야.”

“그래서 할 거냐?”

“그쪽 조건부터 들어보고.”

“빵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마. 가능하면 모범수로 만들어서 출소일을 당겨줄 수도 있어.”

나민성의 표정에서 실망감이 쏟아진다. 내가 꺼내주기라도 할 줄 알았던 걸까.

“만약, 거절하면?”

“내일부터 특별 관리 대상자들과 함께 4동 생활이 시작되는 거지.”

“…….”

그는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읽어봐.”

나는 준비해 온 서류 뭉치를 그에게 툭 던진다. 이번 K스타코인 사태를 요약한 서류였다.

“이거 100% 스캠이야.”

“나도 알아.”

“아는데 왜 가져 온 거야?”

그는 잠시 투덜거리다가 다시 서류에 코를 박는다.

“음? 신규 코인이 시가 총액 10위권이면 제법 키웠네. 뒤에서 밀어주는 세력이 힘 좀 썼나 보지?”

“그 코인 출시된 지 오늘로 열흘째다.”

세 번째 담배를 꺼내 들던 나민성은 캑캑거리며 연기를 토해낸다.

“출시 열흘째 만에 10위권이라고? 이놈들 초기에 돈을 얼마나 퍼부은 거야?”

“수십억짜리 행사만 서너 번쯤? 그리고 신문 광고랑 TV에도 얼굴도장 찍고 있더라.”

“물주를 제대로 물었나 본데.”

“놀랍게도 그 물주가 증권사야. WP투자신탁, 대현증권, LK투자, SG자산운용, 에버금융투자…….”

나민성은 업체들 이름을 듣고는 혀를 내두른다.

“라인업이 화려하네. 돈 먹고 돈 먹기인 야바위 판에 카지노 업체가 들어온 격이잖아.”

“그러니까 의심스럽다는 거다. 가상화폐 판에서도 리스크가 최상인 ICO에 증권사가 기웃거릴 이유가 없단 말이지.”

“증권사는 그럴 이유가 없지만, 그보다 윗선은 가상화폐가 필요했을 거다. 재벌가 회장님들 비자금 용도로 이보다 좋은 게 없거든. 익명이라 보안성 철저하지, 해외로 빼내기 쉽지, 그리고 거래소가 있어서 세탁도 뚝딱이잖아.”

확실히 현직에 있던 놈이라 대번에 핵심을 짚어낸다. 하지만 여기엔 결정적인 구멍이 존재했다.

“비자금 용도로 쓸 생각이면 기존의 도토리나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쓰는 쪽이 안정성에서 나을 텐데.”

“그건 하수나 그러는 거고. 이번 건을 기획한 놈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

“무슨 큰 그림?”

“상장 전, 사전에 발행해둔 물량. 그것만 잘 숨겼다가 나중에 꺼내면 조 단위의 비자금이 꽁으로 생기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게다가 자금 흐름도 파악이 안 될 테니 순도 100% 출처 불명의 돈이 탄생하는 거지.”

상장된 가상화폐는 발행된 모든 코인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메이저 가상화폐일 때 이야기였고, 이름도 모를 잡코인은 탐색 자체를 어렵게 꼬아 놓거나, 버그를 심어서 일부 거래 내역을 숨길 수도 있었다.

“만약 K스타코인이 사전 발행 물량으로 비자금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홍보와 추가 투자로 최대한 덩치를 키우려 들겠지. 시가 총액이 클수록 숨겨둔 코인의 가치가 커질 테니까.”

메이저 증권사들이 작정하면 가상화폐 하나 띄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시가 총액이 탄탄한 도토리, 비트코인, 이더리움까지는 못 넘더라도, 바로 다음인 시가 총액 4위까지는 노려볼 수 있었다.

‘만약 시가 총액 4위 가상화폐의 태생이 비자금 은폐 용도라는 게 밝혀지기라도 하는 날엔 골치 아파진다.’

가상화폐에 부정적인 여론은 시세 폭락을 불러올 것이고, 수백만 명의 피해자가 양산될 거다.

이후엔 투자 위축과 각종 규제가 걸리면서 업계 전체에 암흑기가 도래하겠지.

그쯤 되면 전체 파이가 줄어들 테니 안정성을 추구하던 도토리코인도 타격은 불가피했다.

“막을 방법은?”

“없어. 비자금 목적이라는 증거가 없잖아.”

“…….”

“쓸데없이 힘 뺄 시간에 코인이나 미리 사둬라. 그놈들이 계속 펌프질하면 시세 떡상할 테니까.”

여기서 시세차익을 보겠다고 K스타코인을 매수하면, 코인 시세가 올라서 놈들을 도와주는 꼴밖에 안 된다.

놈들의 계획을 막을 수 없다면 거품을 쌓기 전에 부숴 버리는 수밖에.

* * *

나는 이소영과 함께 K스타코인 세미나가 열리는 예술의전당에 도착했다.

이미 행사장은 만석이었다. 우리는 복도까지 차지한 인파를 뚫고 들어가서 지정석인 무대 바로 앞 테이블에 착석했다.

“저기 좀 봐요. 저 사람, WHTS컴퍼니의 신우혁 대표 아니에요?”

“대박! 옆에 도토리코인 개발자 이소영 씨도 있어요.”

“K스타코인이 WHTS컴퍼니와 협업한다던 썰이 있던데 진짜였나 보네요. 소문 퍼지기 전에 코인 더 매수해야겠어요.”

“저도 풀매수 갑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주변에서 우릴 곁눈질하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동물원에 온 기분이에요.”

이소영은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누가 동물이고, 누가 손님입니까?”

“당연히 우리가 동물이죠.”

“그럼 우리가 주인공이겠군요. 이 자릴 찾아준 손님분들에게 간간이 리액션이라도 해주세요.”

내가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자 이소영이 한숨을 내쉰다.

“농담하실 때가 아니에요. 우리가 홍보 세미나에 참석한 것만으로 뉴스거리가 될 거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거고요.”

“엥? 테일러 킴 대표를 만나려고 온 게 아니었어요?”

때마침 행사장이 어두워진다. 나는 무대부터 보자는 뜻으로 전방을 가리킨다.

두두두두두두.

긴장감을 조성하는 효과음과 함께 단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깔렸고, 그 자리에 멀쑥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등장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K스타코인의 대표 테일러 킴입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방식과 인사말이 굉장히 익숙하다. 그나마 복장은 보라색 카디건과 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나왔다.

옆에서 이소영이 작게 속삭인다.

“대표님이 와서 급하게 옷을 바꿔입고 나왔나 봐요. 상의는 달라도 머리 스타일이랑 바지는 똑같잖아요.”

우리가 속닥거리는 동안 테일러 킴의 K스타코인의 홍보 연설이 시작됐다.

-K스타코인은 다른 투자형 가상화폐와 개념을 달리합니다. K스타코인 1개는 1달러로 가치가 고정돼 있으며, 여기에 연동되는 KSC 코인 시세와 알고리즘에 의해…….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내용인지라 하품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옆에 앉은 다른 투자자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그의 연설을 듣더니, 끝나자마자 열정적으로 박수를 친다.

그걸 본 이소영이 낮게 중얼거린다.

“여기서 방금 언급된 K스타코인의 구조를 이해하고 박수 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구조 따윈 처음부터 중요치 않습니다. 이번 행사가 K스타코인의 시세를 올려주면 그만인 거죠. 보세요. 벌써 30% 가까이 올랐잖습니까.”

이소영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 휴대폰을 가져간다.

“이해가 안 돼요. 방금 연설엔 새로운 내용이 없었었잖아요.”

“연설이 아니라 우리가 행사에 참석했다는 소식이 퍼져서 시세가 뛰었습니다. 여기 보시면 20분 전을 기점으로 시세가 쭉 올라갔죠?”

“어라? 진짜네요.”

WHTS컴퍼니는 가상화폐 업계에서 독보적인 업체다. 10위권 가상화폐 대표로선 같이 이름이 언급된다는 것 자체가 이득이었다.

“제가 테일러 킴이라면 이번 이슈를 최대한 크게 부풀리려 들 겁니다.”

“어떻게요?”

“먼저 우리와 같이 서서 대화하는 사진이 찍히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 의미심장한 SNS를 올리면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지는 거죠.”

“결국, 우리는 코인 홍보에 이용당하는 셈이네요. 이래서 안 오고 싶었던 건데…….”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뉴스거리가 돼줄 생각으로 행사에 참석한 겁니다.”

어느새 연설을 마친 테일러 킴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게 보인다. 걸어오는 방향은 정확히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 쪽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실룩이는 모습을 보니 우리와 사진 찍을 생각에 들뜬 것 같다.

‘지금 실컷 즐겨둬라. 얼마지 않아 우리와 사진 찍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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