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26화 (126/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26화

K스타코인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한국 가요와 드라마, 영화 등의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연계된 가상화폐다.

유행에 편승해서 등장한 가상화폐가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K스타코인은 등장부터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더니, 열흘 만에 시가 총액 10위 권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음…….”

나는 이소영과 법무팀이 조사해 온 K스타코인 자료를 꼼꼼하게 훑어갔다.

몇 번을 다시 봐도 K스타코인에 특별한 점은 없었다. 굳이 꼽아보자면 초창기에 홍보비를 지나치게 퍼부었다는 것 정도일까.

“소영 씨, K스타코인이 행사비로 쓴 금액이 얼마라고 했죠?”

“행사 한 번에 섭외비만 10억이 넘게 들었을 거예요. 그런 규모의 행사를 벌써 3번 했으니까, 못해도 50억은 쓰지 않았을까요.”

“열흘 만에 50억 원이면 한탕 해 먹고 도망갈 생각으로 만든 건 아닌가 봅니다.”

“대형 기획사 서너 곳과 제휴 직전이라는 기사도 떴더라고요. 제가 봤을 때 사업할 생각은 있는 것 같아요.”

K스타코인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사용될 목적으로 출시됐다면 시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미 한국 아이돌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시기였고, 이후에는 드라마, 영화 게임 등의 문화 콘텐츠까지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게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만약, K스타코인이 먹튀를 가정하고 만든 스캠 가상화폐라면?’

한국 콘텐츠가 흥할수록 K스타코인에 몰린 돈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초대형 가상화폐가 사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종국엔 엄청난 피해자를 양산하게 될 거다.

미래에 초대형 코인 먹튀 사건으로 가상화폐 판 전체가 몰락하는 걸 봤던 나로선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K스타코인의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대표인 테일러 킴의 소속이나, 아니면 개발사 거처 같은 사소한 것도 좋습니다.”

“테일러 킴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출신이라는 것 외엔 정보가 없어요. K스타코인 개발사인 KSC는 본사가 아일랜드에 있고요.”

“아일랜드 본사부터 확인해봐야겠군요. 거길 파보면 그들을 후원하는 물주 정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때 법무팀 직원이 소심하게 손을 든다.

“그…… 정확한 물주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돈을 댄 업체의 목록은 이미 나왔습니다.”

“그게 어딥니까?”

그가 넘겨준 서류는 최근 가상화폐에 투자한 증권사 목록이었다.

베네수엘라 원유 거래에 가상화폐가 쓰인 이후부터, 증권사들은 앞다퉈서 가상화폐 투자 비율을 늘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서류를 훑어가던 도중, 형광색 마커로 칠해진 몇몇 증권사가 눈에 들어온다.

WP투자신탁, 대현증권, LK투자, SG자산운용, 에버금융투자.

이들은 이미 K스타코인을 매입했거나, 매입을 예고한 상태였다.

“비트코인 같은 메이저 가상화폐도 아니고, 출시 열흘째인 가상화폐를 증권사가 사 모았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냥 사 모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초창기 ICO(Initial Coin Offering : 암호화폐공개)에 참여한 증권사도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도 겁이 나서 투자를 꺼리는 ICO에 증권사가 돈을 넣다니,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군요.”

이소영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친다.

“저도 너무 이상하다 싶어서 뒤를 파본 거예요. 대체 이런 일을 누가 기획한 걸까요? 증권사?”

“일개 증권사 직원이 벌일 만한 스케일이 아닙니다.”

“그럼 지점장급이 모여서 작당이라도 한 걸까요?”

“저는 그보다 더 윗선의 지시라고 생각합니다.”

“지점장보다 더 윗선이라면…… 설마?”

이소영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나를 쳐다본다.

“아직 단정하긴 이릅니다. 당분간은 정보를 더 모으는 데 집중해 봅시다.”

* * *

“거, 비서관님,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십시다. 아무리 정권 초기라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진행해 버리는 게 어디 있습니까? 최소한 우리랑 상의는 하고 진행하셨어야죠. 예. 예예. 알겠습니다. 꼭 연락 주십쇼.”

이태석 회장은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참았던 욕을 쏟아낸다.

“이 똥걸레 새끼들은 정권만 잡으면 머리가 회까닥 하나? 뭣도 아닌 것들이, 콱 뒤통수를 까버릴까 보다.”

그가 욕을 내뱉는 동안, 회장실에 불려온 대현그룹의 임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기 바쁘다.

대현그룹 분위기가 이토록 살벌한 이유는 얼마 전, 오성그룹에서 전기차 사업 진출을 발표한 탓이다.

무려 20조 원의 투자금이 들어간 초대형 프로젝트다.

여기에 업계 1위인 테슬러와 손잡고 물량을 찍어내면 국내 전기차 시장은 물론이고, 내연기관차 시장도 위태롭게 된다.

“자네들, 언제까지 입 닫고 있을 거야? 빨리 머릴 맞대서 대책을 내야 할 것 아냐! 오성 고놈들이 전기차 못 만들게 할 방법이 없어?”

“이미 정부에서 발표가 났으면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누가 그딴 소리 하라고 했어? 대책을 내라고 했잖아! 대책을!”

대현자동차는 해외에도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팔고 있었지만, 영업이익의 절반은 내수 시장에서 나온다.

그런 내수 시장에 오성이라는 경쟁자가 생기면 영업이익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전용택…… 그 얼빠진 놈이 어떻게 구속을 피했나 했더니. 정부와 이딴 짓을 꾸미고 있었구나.”

이태석 회장의 입에서 나온 ‘빠드득’거리는 소리가 실내에 퍼진다.

임원들은 여전히 몸을 사리기 바쁠 때, 대현자동차의 이승훈 사장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회장님. 이미 떠난 차를 멈춰 세우려 들 게 아니라, 우리가 더 빨리 달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자는 게야?”

“이참에 우리도 전기차에 추가로 투자해서 실력으로 오성을 눌러 버리면 그만입니다. 이미 승리한 전례도 있지 않습니까.”

오성그룹은 전무홍 회장이 지휘할 당시에도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었다.

하지만 기존의 쟁쟁한 완성차 업체를 넘지 못했고, 지지부진하던 사업은 1997년 외환 위기와 함께 쓸려나가고 말았다.

“테슬러를 끼고 들어온다고 해도 완성차 제조 경험이 없는 오성은 우리 대현의 상대가 못 됩니다.”

이승훈 사장이 분위기를 띄우자 입 다물고 있던 임원들도 눈치껏 말을 보탠다.

“이승훈 사장의 말이 백번 옳습니다. 차를 만들어보지도 않은 햇병아리들이 어떻게 저희를 이기겠습니까?”

“테슬러가 직접 들어와도 별것 아닙니다. 우리가 전기차를 안 만들었던 이유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잖습니까.”

“이참에 전기차에 힘을 줘서 테슬러까지 눌러 버리면 꿩 먹고 알 먹고 입니다.”

임원들은 최대한 듣기 좋은 말을 쥐어 짜낸다.

이태석 회장은 그들의 행태를 보고는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내가 오성이 무서워서 그런 줄 알아? 그 썩을 놈의 자식 때문에 우리도 돈이 깨지게 생겼으니 열불이 나서 이러는 게야.”

대현그룹은 재작년에 본사 건물을 지을 용도로 서울 한복판의 노른자 땅을 매입했다.

이때 사용된 돈만 무려 10조 원.

그 이후부터 대현그룹은 현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기에, 다른 사업에 투자를 늘린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그런데 전용택이는 어디서 돈이 나길래 여기저기 일을 싸지르고 다녀? 허먼 인수, 디트로이트 공장, 베네수엘라 플랜트 사업, 이번엔 전기차까지 해?”

“그 돈이 전부 말씀드렸던 가상화폐에서 나온 돈입니다.”

“가상화폐면 도토린가 뭔가 하는 거?”

“그렇습니다.”

오성그룹은 계열사인 오성증권으로 도토리코인을 1억5천 개나 매입했다.

외부에는 포트폴리오 확대라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오성전자에 쓸 총알을 마련하는 용도였다.

아직 가상화폐는 회계상으로 이렇다 할 법이 없고, 보유 상황을 공시할 의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오성그룹에선 오성증권의 가상화폐를 마음대로 빼서 썼다가, 나중에 다시 채워 넣으면 그만인 것이다.

“세상 말세다. 참 말세야. 어찌 실체도 없는 돈으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꼬. 쯧쯧쯧.”

이승훈은 혀를 차는 이태석 회장에게 조심스레 운을 띄운다.

“저, 회장님. 그래서 말인데…… 저희도 대현증권이 있으니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상화폐는 운용 방식에 따라 돈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어서 비자금 용도로도 최적입니다.”

비자금 이야기가 나오자 지금껏 시큰둥했던 이태석의 반응이 달라진다.

“그게 정말이냐?”

“이미 LK그룹과 SG그룹, 진안그룹이 가상화폐 투자에 착수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비자금 관리는 재벌가가 평생 안고 가야 할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돈의 흐름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수단이 있고 하니,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다.

“LK그룹과 SG그룹…… 또 어디라고 했지?”

“진안그룹입니다.”

닳고 닳은 재벌가 늙은이들이 먼저 나서서 움직인 걸 보면, 필시 가상화폐가 쓸 만하다는 뜻이었다.

“오랜만에 늙은이들을 만나 봐야겠군.”

* * *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는 2,500개의 좌석이 꽉꽉 들어찬 것으로 모자라, 복도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들은 K스타코인의 행사를 보러온 투자자들이다.

언제나 그렇듯 K스타코인의 행사는 인기 걸그룹의 무대로 시작된다.

-숨겨왔던 내 마음을 너에게 줄게. ♬

-OH MY BABY. ♬

-언제까지 너만을 위한. ♬

오늘은 최정상급 아이돌로 평가받는 스테이미가 초대됐다.

콘서트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그룹의 라이브 무대다. 객석의 반응은 어지간한 음악방송 뺨치는 수준이었다.

K스타코인의 대표인 테일러는 무대의 반응을 보는 내내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 마음껏 소리 지르고 좋아해라. 그게 다 너희들 돈으로 부른 애들이니까.”

이번에 초대한 걸그룹은 1회 행사비가 3억이 넘는 비싼 몸이지만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미 행사비의 수백 배, 수천 배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으니까.

인기 걸그룹, A급 배우, 유명 강사, 저명한 교수, 전직 장관.

전부 돈으로 섭외해서 무대에 세우기만 하면, 그게 곧 믿음이 되고, 투자금으로 돌아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란 말인가.”

테일러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켜서 확인했다.

이미 코인 시세는 행사 시작과 동시에 10% 넘게 올라 있었다. 비싼 걸그룹을 무대에 세운 효과가 나온 모양이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면 이달 안에 시가 총액 탑10에 들 수 있겠어.’

가상화폐 시가 총액 탑10부터는 거래소 메인에서 실시간 시세를 보여준다.

그렇게 되면 가상화폐의 인지도 상승은 물론이고 거래량도 배 이상 뛰게 된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돈벌이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테일러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울을 확인한다.

먼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이어서 눈화장을 하던 도중, 누군가 대기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테일러 씨!”

행사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인마! 들어올 때 노크 안 해?”

“죄송합니다. 급하게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이길래 난리야?”

“행사장에 이소영 씨가 찾아왔습니다.”

거울을 보던 테일러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혹시나 해서 초대해두긴 했지만 진짜로 찾아올 줄이야.

“호박이 저절로 굴러 들어왔군. 제일 잘 보이는 자리로 안내해 드려.”

“이번엔 일행이 있습니다.”

“누군데?”

“테일러 씨가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테일러는 화장품을 내려놓고 무대가 보이는 쪽으로 향했다.

무대 바로 앞쪽엔 이소영이 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옆에 선글라스 낀 사내가 함께였다.

그는 테일러와 같은 머리 스타일에 같은 재킷, 같은 청바지, 같은 로퍼, 같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

“저, 저거 신우혁 아냐? 저놈이 여기에 왜 왔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