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25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 그리고 가상화폐 시세 폭등.
해외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에서도 역사에 남을 만한 대사건이 터졌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선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표결이 이뤄졌다.
결과는 재석 299명 중 234명의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됐다.
헌정사상 최초로 인용된 대통령 탄핵.
공교롭게도 이날은 UN이 뇌물, 횡령, 사기 등의 부패 행위를 척결하기 위해 제정한 반부패의 날이었다.
그 이후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된 최명자를 시작으로, 관련인들이 줄줄이 재판대에 섰으며, 마지막으로 대통령까지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역사의 흐름은 그대로였으나, 변화가 아예 없진 않았다.
본디 이번 사태 때 구속됐어야 할 공범 중의 한 명.
오성그룹의 실질적인 오너라고 할 수 있는 전용택이 아직도 구속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오늘은 날도 선선하니 야외에서 밥 먹기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신 대표님?”
전용택은 점심시간이 다 됐을 무렵에 회사로 찾아와서, 끈질기게 밥 먹으러 가자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점심 선약이 있어서요.”
“아니면 오늘 퇴근하시고 같이 한잔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진짜 괜찮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이거 어쩌죠. 제가 요즘 한약을 먹어서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
이쯤 했으면 포기할 법도 한 데, 그는 끝까지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들러붙는다.
“아. 한약 드시는구나. 그럼 제가 잘 아는 사슴 농장은 어떻습니까? 녹용이 면역력에 그렇게 좋다는 말이…….”
“전용택 씨.”
나는 그의 말을 도중에 잘라먹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전용택 씨가 이렇게 회사로 찾아오는 것 자체가 부담입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신 대표님과 미팅이면 없는 시간이라도 낼 수 있습니다.”
“아니, 전용택 씨가 아니라 제가 안 괜찮단 뜻입니다.”
전용택은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전용택 씨는 최근에 검찰 조사를 3번이나 받은 것으로 모자라, 국민 여론도 최악입니다. 그런데 같이 다닌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일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잘 해결되고 있으니까요.”
내 기억에 의하면 전용택은 이번 탄핵 사태 때, 뇌물 혐의로 엮여서 1년 가까이 구속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당사자는 이렇게 태평하다니,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알아서 하겠지. 전용택이 구속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오성은 오너 한 명 구속된다고 휘청거릴 회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를 대신해서 전문 경영인들이 회사를 이끌어 갈 테니, 더 나은 성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여론 때문이라도 외부 활동은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여기서 그냥 해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실례를 무릅쓰고 여기서 이야길 드리겠습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저렇게까지 뜸을 들인 걸까.
나는 집중해서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저번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엘론 대표와 많은 이야길 나눴습니다. 그가 미래 산업을 바라보는 견식은 정말이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혹시 화성 여행이라도 가실 생각입니까?”
“아, 물론 그쪽 이야기도 좋았지만 저는 전기차 관련 대화가 더 흥미로웠습니다.”
전용택은 흥분했는지 목소리 톤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다.
“현존하는 전기차는 충전이 골칫거립니다. 그런데 엘론 대표는 그 충전 이슈를 자율 주행으로 메꾸겠다고 했습니다.”
“자동차가 자동으로 충전 스테이션까지 이동해서 충전하는 방식을 말했나 보군요.”
“오, 그겁니다. 그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전기차는 단숨에 내연 기관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게 됩니다.”
“음…….”
“그리고 충전을 마친 전기차는 혼자 도로에 나가서 손님을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호객 경쟁이 붙으면 고급 전기차 수요는 폭증하겠지요!”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기술적인 요소만 놓고 보면 전부 구현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문제는 기술적 요소가 아니라, 그 외의 부분이었다.
“자율 주행으로 충전과 영업이 가능해지려면 각종 규제는 물론이고, 법적인 근거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자잘한 장애물 회피는 저희가 전문 아니겠습니까.”
한국 재벌가라면 자사에 유리하도록 법을 바꾸는 데 도가 텄을 거다.
그런데 오성이 테슬러 전기차를 더 팔아보겠다고 그런 짓까지 할 이유가 있나? 혹시……?
“그와 대화하고 나서부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전기차 사업을 해보고픈 욕심이 들끓더군요.”
오성전자가 타 업체보다 전기차 사업 진출에 유리한 것은 맞다. 전자 장비,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의 핵심 사업은 이미 다 쥐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부품 업체가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나서면 완성차 업체에서 견제가 들어갈 텐데요. 당장 테슬러부터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신 대표님의 허락을 받고자 제가 찾아온 겁니다.”
“거기에 제 허락이 왜 필요한가요?”
“오성 단독이 아니라, 테슬러와 공동으로 전기차를 만들고 싶어섭니다. 전자제품의 ODM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듯합니다.”
OEM이 원청에서 설계도를 받아서 제작만 맡는 방식이라면, ODM은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하청 업체가 도맡아서 진행하고 원청의 상표만 부착하는 방식이다.
즉, 전용택은 테슬러 상표를 부착한 오성전자의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ODM이면 완성차를 만들면서 부품 납품처와 관계를 더 끈끈하게 유지할 수 있다.’
나름의 묘수라면 묘수였지만 천하의 오성이 하청을 자처하면서까지 이럴 필요가 있나?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 행보였다.
“엘론은 뭐라고 하던가요?”
“신 대표님만 허락하신다면 바로 진행하자고 했습니다.”
생산량이 달려서 구매 대기자가 줄을 서 있는 테슬러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두 분께서 미리 상의하신 건을 제가 막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그럼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잘 진행해 보세요.”
“대표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용택은 내 손을 붙잡고서 지나칠 정도로 감사를 표한다.
이러니까 더 의심스러워진다. 그가 이렇게까지 전기차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이 의문의 해답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 드러나게 된다.
* * *
2017년 5월 9일.
탄핵으로 인해 조기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의 안재홍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대통령 자리가 공석이었기에 안재홍 당선인의 취임식은 당선 바로 다음 날에 치러졌다.
새 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일자리 문제가 꼽혔는데,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정책을 발표하고 바로 다음 날부터 특정 뉴스가 도배되기 시작한다.
[안재홍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에 화답한 오성그룹. 전용택 부회장 “전기차 사업 진출로 국내에 일자리 8만 개 만들겠다.”]
[20조 원이 투자될 오성전자 전기차 공장 부지는 어디에? 지자체들의 러브콜 쇄도.]
[전기차 사업 진출은 오성전자와 정부의 합작품. 본격적인 전기차 양산에 들어가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15만 개를 넘길 것으로 보여.]
뉴스의 내용과 쏟아지는 시기를 보면 정부와 오성그룹 간에 거래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정부와 딜을 걸어서 구속을 면한 건가.”
이번 건은 기존 재벌 총수들의 두루뭉술한 일자리 창출 계획이 아니라, 공장 규모까지 확정된 신사업 프로젝트였다.
일자리 8만 개면 어지간한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규모다.
부풀려진 면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정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툭.
나는 포털에 올라온 뉴스를 살피다가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후…….”
마음이 심란했다. 이번 건은 전적으로 내가 일으킨 날갯짓이 만들어낸 폭풍이었다.
오성전자를 테슬러 부품사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베네수엘라에 끌어들였으며, 이젠 전기차 시장까지 진출하려 한다.
‘나도 오성의 덕을 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의존해선 곤란해.’
지금은 내가 우위인 공생관계라서 그가 몸을 낮추고 있지만, 상황이 역전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미리 목줄을 채워둘 필요가 있었다.
‘아예 반항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목을 조일 수 있는 목줄이라면…….’
바로 그때, 상념을 깨우는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똑.
“예, 들어오세요.”
이소영을 시작으로 법무팀 직원 2명이 대표실로 들어온다.
그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갤 숙였다.
“소영 씨, 무슨 일인데 그리 무게를 잡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그들은 양손 가득 들고 온 서류철과 사진, 그리고 태블릿을 탁자 위에 쌓아 올린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최근 가상화폐에 돈이 몰리면서 신규 가상화폐 출시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이번 신규 가상화폐 중에 저희를 대놓고 모방한 가상화폐가 나왔어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상화폐 판에서 그 정도야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 반응이 시큰둥해서 그런지 이소영은 즉각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여준다.
-K스타코인은 다른 투자형 가상화폐와 개념을 달리합니다. K스타코인 1개는 1달러로 가치가 고정돼 있으며, 여기에 연동되는 KSC 코인 시세와 알고리즘에 의해 가치가 조정됩니다. 이런 구조는 도토리코인과 비트코인의 장점을 융합한 형태로……
영상의 K스타코인은 요즘 유행하는 알고리즘 형식의 가상화폐였다.
돈의 흐름을 복잡하게 비틀어서 알아보기 힘들게 만든 뒤, 감언이설로 투자자를 모으는 수법이었다.
“저희랑 비슷한 점이 많긴 해도, 완전히 베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가상화폐가 아니라 연설하는 사람이 입은 옷을 보세요.”
그제야 그녀가 무엇을 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영상 속의 사내는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은 물론이고, 연설할 때 쓰는 말투까지 나를 따라 하고 있었다.
“이거, 기분이 묘합니다. 제가 스티븐 잡스도 아닌데 흉내 내는 사람이 생겼네요.”
“가볍게 생각하실 일이 아니에요. 이걸 한번 보시면…….”
그녀는 영상을 앞으로 돌려서 식전 행사를 보여준다.
행사 무대에는 유명한 걸그룹과 A급 영화배우, 강사, 대학교수, 전직 장관까지 참석해 있었다.
“짝퉁치곤 섭외 스케일이 크군요.”
“벌써 시가 총액 10위권을 찍어서, 생태계 파괴자라는 별명까지 붙었어요.”
시가 총액 10위권이면 단순히 짝퉁으로 치부하긴 체급이 너무 컸다.
“이 정도로 규모의 가상화폐라면 제가 몰랐을 리가 없는데요.”
“K스타코인은 상장된 지 이제 열흘밖에 안 된 신생 코인이에요. 그러니 대표님이 모르는 게 당연해요.”
“열흘요? 그런 신생 코인이 어떻게 시가 총액 10위권을 찍을 수 있습니까?”
“저도 그게 이상해서 수소문해봤는데요. 아무래도 K스타코인 뒷배에 대형 물주가 있는 것 같아요.”
가상화폐 시가 총액 10위권이면 못 해도 조 단위가 넘어간다.
겨우 짝퉁 코인 하나 띄워보려고 이만한 돈을 투자하진 않았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