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23화 (123/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23화

-아니, 사람만 다 모아놓고 부품이 없어서 장비를 못 돌린다는 게 말이나 돼? 부품이 비싼 거면 내가 이러지도 않지. 고작 40센트짜리 개스킷이 없어서 놀고 있었대! 옘병! 없으면 미리 말을 해야 구해다 줄 것 아냐.

“황당했겠다.”

-어디 황당만 했겠냐? 네가 그 꼴을 봤으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걸? 아오! 말하다 보니까 또 열받네!

“박태식. 진정해. 그 동네는 원래 그런 곳이야. 네가 적응을 해야 해.”

-40센트짜리 부품이 없어서 작업자 300명이 멀뚱히 기다리는 꼴에 적응하라고?

이후에도 휴대폰 너머로 박태식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진다.

이해한다. 나도 처음 베네수엘라에 갔을 때 똑같은 일들을 겪었으니까.

“아무튼, 베네수엘라 쪽은 네가 책임자니까 잘 조율해 봐라.”

-언제까지?

“글쎄. 플랜트랑 채광 사업 자리 잡힐 때까진 있어야지 않을까? 대략 2, 3년 정도면…….”

-나더러 이 동네에 3년이나 있으라고? 농담이지? 아니라고 해줘. 제발.

“태식아, 너 말곤 믿을 사람이 없다. 현지인들에게 맡겼다간 눈 뜨고 코 베일 게 뻔한데 어쩌겠냐.”

현지인이 아니라 다른 한국인을 저 자리에 앉혀 둬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베네수엘라는 부패와 비리가 온상인 곳이라, 대놓고 돈을 빼먹어도 잡아내기 불가능에 가까웠다.

-야! 3년은 절대 안 돼. 못 해도 올해까지 마무리 짓고 여기 뜰 거야.

“음…… 아니면 후임자 구할 때까지만 참아.”

-후임자 누구?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사실, 누굴 데려와도 박태식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때 도로변을 점거하고 소릴 지르는 이들이 나타났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화제를 돌린다.

“미안한데,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후임자 누구로 뽑을 거야? 내가 미리 연락해 볼게.

“그래, 끊는다.”

-야! 신우혁! 잠깐!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다시 박태식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나는 전화를 무음으로 바꿔 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광장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걷는 동안, 도로엔 두 파벌로 나뉜 인파의 물결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 중이다.

“미국은 미치광이를 대통령으로 세울 순 없습니다! 트럼프는 물러나라! 트럼프는 물러나라!”

“인종차별, 혐오주의자,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선거를 다시 치러라!”

“미국은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국가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어!”

한쪽은 여성과 유색인종이 주류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위대였다.

그리고 바로 반대쪽 도로에는 붉은 모자와 성조기 디자인의 옷을 입은 이들이 대치 중이다.

“고우! 트럼프! 고우! 트럼프! 오늘부터는 트럼프의 시대다!”

“멍청한 민주당 놈들, 너희가 소릴 빽빽 질러봤자 변하는 건 없어! 우리가 선거에서 이겼다고!”

“위선자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 것보단 트럼프가 100배 나은 선택이다.”

이들이 도로에서 이토록 날뛰는 이유는 오늘이 미국 제45대 대통령 취임식 날이라서 그렇다.

미국이 두 쪽으로 나뉘었다는 비유가 딱 와닿는 풍경이다.

양당 모두 필사적으로 선거에 임했으니 그만큼 후폭풍 역시 강하게 돌아오는 것이리라.

번잡한 도로를 뚫고 나와서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광장에 도착했다.

이미 광장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정치인, 기자, 시민들로 가득 차서 시장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번 취임식에 정식 초청장을 받고 왔기에, 지정된 좌석이 마련돼 있었다.

인파의 가장 앞 열. 대통령이 오를 단상 바로 앞쪽이 내 자리다.

참고로 같은 라인엔 전임 대통령, 연방 하원의장, 대법원장, 국무부 장관 등의 의전 서열 최고위급 인사들이 함께였다.

물론 같은 라인에 정치인들만 앉아 있는 건 아니었다.

트럼프가 직접 취임식에 초청한 다른 기업인들도 몇몇 보인다.

그중 테슬라모터스 CEO인 엘론과 오성전자의 전용택은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입꼬리가 광대까지 치솟아 있었다.

“오, 대니얼, 오셨군요!”

“어서 오시죠. 신 대표님.”

두 사람은 나를 보더니 동시에 인사를 건넨다.

나는 먼저 엘론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엘론 씨. 이게 얼마 만에 뵙는 거죠?”

“석 달쯤 됐나? 그래도 통화는 자주 했잖습니까. 핫핫핫!”

엘론은 악수를 하는 동안에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좋다마다요. 자리 한번 보십쇼. 제일 앞줄 아닙니까? 이건 사실상 우릴 개국공신으로 취급해 준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 원인을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로 꼽았으니, 우리가 개국공신이 아니면 뭐겠는가.

“그리고 저기 뒤쪽을 한번 보시죠.”

엘론이 가리킨 곳엔 우리 말고 초청받은 완성차 CEO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자리는 우리보다 뒷줄에 뒷줄. 세 번째 줄로, 첫 줄에 앉은 우리와 대조되어 더 초라해 보였다.

“매번 우리 전기차를 그렇게 무시하던 놈들이 저기 뒤에 앉아 있는 꼴을 보니, 속이 뻥 뚫립니다. 크핫핫!”

그는 뒤에 앉은 완성차 CEO들이 들으라는 듯이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엘론 다음으로 전용택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도 엘론만큼은 아니지만,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제가 신 대표님을 만나고부터 복이 터졌습니다. 손대는 일마다 술술 풀려서,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것도 다 능력입니다. 이번 베네수엘라 건만 봐도, 다른 재벌가에선 전부 몸을 사렸잖습니까.”

“저는 신 대표님 능력을 아니까 냉큼 붙잡은 겁니다. 핫핫.”

전용택은 대화하는 동안에도 계속 좌측 구석을 의식했다. 그곳엔 한국 방송사에서 나온 취재진이 대거 몰려 있었다.

그들의 카메라가 전부 이쪽을 찍는 걸 보니, 내일 한국 신문엔 미국 대통령 취임보다 전용택 기사가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빰빰! 빰빰! 빰빠빠밤!

빠아아암! 빰! 빰!

잠시 후,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시작됐다.

연주 도중에 축포를 쏘는 등의 퍼포먼스가 있었고, 그것을 신호로 트럼프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나오자 광장에 모인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트럼프는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엄지를 치켜들어 주며 무대에 올랐다.

-오늘 이후로 미국은, 미국 제일의, 미국 우선의 국가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무역, 조세, 이민, 외교 정책은 미국의 근로자와 미국 가족들의 이익을 위해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껏 세계의 경찰, 중재자 역할을 하던 미국이 최초로 자국 우선주의를 노선을 천명한 날이었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광장엔 귀가 따가울 정도의 환호가 쏟아진다.

-미국을 우선한다고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선택하는 나라가 있다면 우린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발언을 할 때 트럼프의 시선이 잠시 나와 마주친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할 것입니다!

* * *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백악관의 대통령실로 향했다.

신분 확인과 몸수색 등의 보안 절차가 있었고, 이후엔 보안요원에게 주의사항까지 들은 뒤에야 백악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니얼!”

트럼프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취임식 연설은 잘 들었습니다. 정말 완벽한 연설이었습니다.”

“연설? 내가 무슨 말을 했던가요. 긴장해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군요.”

“전혀 긴장한 것 같지 않던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사흘 전부터 연습하느라, 여기 입술 부르튼 거 보이십니까?”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했음에도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권위적이지도 않고, 체면을 차리는 것도 아닌, 내가 알던 트럼프 그 자체였다.

“잠시만 있어보세요. 내가 좋은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작은 컨트롤박스를 꺼낸다.

전면에는 붉은색 버튼이 달려 있었는데, 크기가 커다란 것이 척 봐도 범상치 않은 모양새였다.

“그게 뭡니까?”

“미국 대통령에겐 비상시에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주어집니다. 그걸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야, 당연히…….”

그는 내가 막을 새도 없이 붉은 버튼을 누른다.

“무슨 짓입니까?”

“보다시피 버튼을 눌렀습니다.”

“아니, 그걸 누르면 어떻게 될 줄 알고!”

바로 그때였다. 대통령 집무실 문이 열리며 무표정한 사내가 들어온다.

그가 든 쟁반에는 새하얀 김이 올라오는 콜라가 놓여 있었다.

“이건 제가 콜라를 마시고 싶을 때 누르는 버튼입니다. 언제든 원터치로 시원한 콜라를 마실 수 있죠.”

“…….”

“대통령이 되면 꼭 이런 버튼을 만들어서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아, 참고로 대니얼에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너무 영광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트럼프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콜라를 따 마신다.

“내가 대니얼을 보자고 한 이유는 오늘 나갈 행정명령 건 때문입니다.”

“베네수엘라 제재 해제입니까?”

“제재 해제뿐만 아니라 인도적 지원도 있을 예정입니다. 그 영상의 호응이 아주 좋게 나왔거든요.”

‘그 영상’이란 베네수엘라 군부를 제압하는 전투 영상을 뜻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영상을 트럼프 SNS에 올린 이후, 그의 지지율이 공화당 내에서 8%나 상승했을 정도로 효과가 뛰어났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약속된 일인 만큼 빨리 처리한 것뿐입니다. 그보다 다른 일에서 잡음이 나오는 게 문제예요.”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지?”

“베네수엘라가 원유를 거래할 때, 달러가 아니라 다른 수단을 쓰겠다고 했더군요.”

언제부턴지 트럼프의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싹 사라져 있었다.

“연준에서 그것 때문에 난리를 피우고 갔습니다. 당장 막아야 한다는 의견은 디폴트고, 추가로 가상화폐 자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 있었습니다.”

“그건…….”

“이거, 대니얼 작품 맞지요?”

그는 내가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질문을 몰아친다.

“언제부터 설계한 일입니까? 베네수엘라에 투자했을 때부터? 아니면 내게 접근해서 가상화폐를 줬을 때부터였습니까?”

“가상화폐를 만들기 전부터 계획한 일입니다.”

“너무 무모한 계획입니다. 만약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당선되지 않았을 때의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대통령님의 당선을 확신하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트럼프는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이번만큼은 나도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맞섰다.

그러다 결국은 트럼프가 먼저 입을 뗀다.

“인정합니다. 당신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건 거짓이 아닙니다.”

“이번엔 대통령님이 저를 믿으실 차례입니다.”

“음…….”

트럼프는 빈 캔을 쥐락펴락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연준이 낸 의견을 정면으로 가로막아야 하니 대통령이라도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거의 5분이 넘도록 시간이 흐르고, 캔이 넝마가 된 이후가 돼서야 트럼프의 답이 나온다.

“좋습니다.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 * *

2017년 2월 12일.

베네수엘라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가상화폐로 원유 거래가 이뤄졌다.

원유 1,200만 배럴, 거래금액은 도토리코인 624만 개였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앞으로도 원유를 도토리코인으로 거래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에 미국은 아무런 코멘트를 내지 않았다.

더 낮은 수수료로, 특정 국가나 금융권의 간섭 없이 가능한 거래 수단.

전례가 없던 소식이었기에 가상화폐는 전 세계 금융권의 관심을 받게 됐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한동안 약세를 면치 못했던 가상화폐 전체에 대폭등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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