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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21화 (121/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21화

건물 잔해로 쌓은 바리케이드가 전차부대의 발을 묶는 동안, 어둠 속에서 시커먼 드론이 나타나 백린 연막탄을 퍼붓는다.

그리고 이어서 날아드는 대전차 병기 재블린 미사일.

쾅!

사방에서 솟구치는 화염과 언제 미사일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공포는 일반 병사들이 견딜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보병은 사방으로 흩어진 뒤였고, 뒤이어 전차병과 장교들도 탱크를 버리고 달아난다.

“…….”

시몬은 멀찍이 떨어진 상황실에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국회의사당으로 밀고 들어오는 군대를 물리쳤으니 안도감이 들어야 했다. 독재자를 지지한 군부의 패퇴를 기뻐해야 했다.

하지만 시몬은 그러지 못했다.

‘산토스가 끌고 나온 대대급 병력을 겨우 12명의 요원으로 와해시켰다.’

시몬은 이번 사태를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한 장본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드론 고도를 올려서 병사들이 도망가는 모습부터 찍어주십시오. 아주 좋습니다. 다음은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각도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드론이 보내주는 현장 영상을 직접 살펴가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걸까?’

그는 FBI의 정보로 마두로의 비자금을 찾아냈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두로를 극적인 연출로 제거했으며, 쿠데타를 예상하고 미리 미군의 병기를 베네수엘라로 밀반입해 뒀다.

‘일반인이 이 모든 일을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그가 미국의 필요로 파견됐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서 사태를 일으켰다면 모든 게 말이 된다.

일개 사업가의 힘으론 버거운 일이지만, 미국의 힘이라면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시몬은 그를 보고 있으면 두려움이 스멀스멀 일렁거렸다.

WHTS컴퍼니는 이미 베네수엘라 곳곳에 영향력을 펼쳐뒀다.

가상화폐와 SNS 같은 서비스 산업으로 시작해서 최근엔 원유 채굴, 희귀 자원, 그에 인접한 도로와 항만까지.

만약 그가 영향력을 나쁜 쪽으로 행사한다면, 베네수엘라는 또 다른 재앙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때, 시선을 느낀 대니얼이 이쪽을 돌아본다.

“로메로 씨?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계속 저를 쳐다보셨잖습니까.”

시몬은 너무 깊게 몰입한 자신을 질책하며 급히 화제를 돌린다.

“아, 무언가를 열심히 지시하시기에,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영상을 어디에 쓰시려는 것 같은데…… 실례가 아니면 용도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누군가에게 줄 선물입니다.”

“이런 일방적인 전투 영상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있고말고요. 저기 윗동네엔 이 영상을 보고 오르가슴을 느낄 사람이 한 트럭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도적으로 미군이 쓸 법한 무기들만 사용해서 전투를 요청했습니다.”

군사용 드론, 재블린 미사일.

특히 재블린 미사일은 ‘테러와의 전쟁’ 시기부터 미군이 주력으로 활용하면서, 미군의 대표적인 병기로 자리 잡았다.

“독재자의 잔당이 국회의사당을 점령하러 탱크를 몰고 오는 상황입니다. 우린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를 미군 병기의 활약으로 격퇴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했습니다.”

“…….”

“자,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어지간한 애국 영화보다 자극적인 영상이죠?”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 상황은 미국의 자유를 외치는 마초들에게 전쟁 포르노와 마찬가지였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좋아하겠군요.”

“도움을 받았으니 다시 돌려줄 의무도 있습니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일은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잠깐만요. 방금, 도움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는 고갤 끄덕이고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시몬을 쳐다본다.

“이번 일은 미국…… 그러니까 트럼프가 주도해서 진행한 작전인 줄 알았는데요.”

“아직 취임식도 치르지 않은 대통령에게 그럴 능력이 있을 리가요.”

“그렇다면 모두 대니얼 씨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일이란 말입니까?”

“음…… 해외로 나간 금괴의 정보는 FBI를 통해서 얻었습니다. 그러니 미국의 공로도 조금은 있겠군요.”

미국이 직접 나섰다고 착각할 정도의 능력이 일개 개인의 손에서 이뤄졌을 줄이야.

진실을 알게 된 시몬은 더 큰 두려움에 직면했다.

‘이 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인간이 아니야.’

그런 위험분자를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는 낭패감이 들었으나, 다른 한편으론 그가 베네수엘라에 가져올 변화가 기대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로 인해 베네수엘라가 변화를 맞이하리란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그게 옳은 방향인지, 아니면 그른 방향인지를 알 수 없어서 두려울 뿐이다.

* * *

산토스 장군의 쿠데타가 무위로 돌아간 바로 다음 날 새벽.

카를로스 총리는 몰래 국외로 도피하려다 국경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법정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산토스의 집무실에서 발견된 녹취 파일이 증거로 공개되면서 사형이 선고됐다.

-장군님, 명분 따윈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국회를 장악하면 야당 놈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국회만 마비시킬 수 있으면 저는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남은 임기의 임시 대통령을 임명할 수 있습니다.

-마두로 정권의 뿌리는 군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산토스 장군님은 직을 이어받는 것뿐입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재판에서 공개된 녹취록은 베네수엘라를 뒤흔들기 충분했다.

거리에 군부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고, 병사들까지 마두로의 개노릇을 하던 장교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군대가 마비된 동안 베네수엘라 국회에선 재빨리 제61대 대통령 선거를 결의.

약 이틀간 진행된 대통령 선거는 득표율 73.6%로 야당의 대표였던 에드윈 로메로가 당선됐다.

* * *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온 당일 밤.

로메로 저택에서는 대통령 당선 축하 파티가 열렸다.

“대통령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대 최고 지지율로 당선됐다죠? 하하핫!”

오늘의 주인공인 에드윈 근처에는 인간의 벽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가까이 갈 엄두가 안 난다.

나는 굳이 저들 사이에 껴서 부대끼는 것보다,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을 차지하고서 맥주를 홀짝거렸다.

“파티는 어때? 재미있어?”

내가 앉은 테이블로 드레스 차림의 제시가 다가온다. 그녀의 화상 상처를 가리기 위한 맞춤형 드레스였다.

“지겨워서 사망 직전이야.”

“그럴 줄 알고 내가 왔지.”

그녀는 뒤로 숨기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보여준다. 그곳엔 샴페인 병이 들려 있었다.

“샴페인? 그걸 어디서 구했어?”

“파티에 마시려고 미리 숨겨뒀지롱.”

이번 당선 파티엔 모든 술이 맥주로 통일됐고, 음식도 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옥수수와 강낭콩 요리가 전부다.

마두로가 고급 와인과 스테이크로 논란을 겪은 반작용이었다.

“우리만 마시기 좀 그렇지 않나?”

“오늘 같은 축제 날에 샴페인을 누가 뭐라 하겠어?”

“음…….”

제시는 한 손으로 우아하게 샴페인 병의 캡을 제거한 뒤, 나이프를 이용해서 단숨에 마개를 날린다.

“네가 안 마실 거면 나 혼자 마실 거야.”

“알겠으니까 진정해.”

나는 맥주잔에 샴페인을 따라놓고 병은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는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나는 너랑 달리 외지인이야. 밉보여서 좋을 게 없어.”

“우혁은 그냥 외지인이 아니잖아.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을 누가 감히 터치하겠어?”

나는 제시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술잔을 들었다. 그녀는 잠시 입을 삐죽거리긴 했으나 이내 술잔을 부딪쳤다.

“베네수엘라와 우혁을 위하여 건배!”

“건배.”

제시는 단숨에 잔을 비워버리고는 다시 샴페인을 가득 채운다.

“자, 다시 건배.”

“회복도 덜 됐으면서 무리하지 마.”

“노우. 무리해야지. 오늘 같은 날은 먹고 죽어도 좋아. 히힛.”

그때 뒤에서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파티에 참석하더라도 술은 마시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어느새 우리 테이블로 에드윈이 다가와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니얼 씨. 하나뿐인 여동생이라고 이뻐만 해줬더니 철이 없습니다.”

“저는 그 점이 제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들은 제시는 에드윈을 향해 어린아이처럼 혀를 쏙 내민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정식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에드윈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갑자기 고개를 90도로 숙인다.

“베네수엘라를 대표해서 저 로메로 에드윈이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아니, 여기서 이러시면…….”

“한국에선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할 때 이렇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내가 중요한 인물이라고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에드윈이 인사하고 간 이후부터, 부쩍 우리 테이블로 와서 찝쩍거리는 놈들이 늘어났다.

“재미없어. 나는 들어갈래.”

불청객의 연이은 방문으로 제시가 먼저 자릴 털고 일어난다.

“먼저 가. 나는 기다릴 사람이 있어서 좀 더 있을 테니까.”

“누구?”

“저기 왔네. 저놈도 양반은 못 되겠다.”

희멀건 사내가 저택 입구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야! 신우혁!”

오전에 베네수엘라로 넘어오기로 했던 박태식이었다.

제시가 먼저 다가가서 그를 맞이한다.

“오랜만이야! 태식!”

“그래, 진짜 오랜만이네. 몸은 좀 어때? 크게 다쳤다며?”

“별거 아냐. 이젠 끄떡없어.”

녀석은 한참이나 제시의 안부를 물은 뒤에야 내게 다가온다.

“오전에 온다던 놈이 왜 이제 왔어?”

“말도 마라. 비행기가 안 떠서 이것도 간신히 온 거야.”

박태식은 샴페인을 잔에 따라주기가 무섭게 비워 버렸다.

“후…… 목에 알콜이 넘어가니까 좀 살 것 같네. 이 동네는 너무 더워.”

“빨리 적응하는 게 좋아. 당분간은 여기 있어야 할 테니까.”

“왜? 여기서 할 일이 남았어?”

“아직 제대로 된 사업은 시작도 안 했어.”

박태식은 제시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중얼거린다.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최근 여론이 좋지 않아.”

“무슨 여론?”

“도토리코인 투자자 여론. 베네수엘라에 너무 과 투자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어.”

“그런 헛소리는 무시해.”

내가 샴페인 병을 집으려 하자, 제시가 얼른 병을 낚아채서 잔을 채워준다.

“일반 투자자들이 그랬으면 나도 이런 말을 안 꺼냈지.”

“그럼?”

“기관 쪽에서 더 난리야. 너도 알다시피 베네수엘라가 투자하긴 리스크가 큰 동네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딱 한 달만 지나면 전부 조용해질걸.”

박태식은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수군거린다.

“기름 파서 메꾸려고?”

“그건 상수로 깔고 들어가는 거고, 진짜 노리는 건 따로 있지.”

“그게 뭐야?”

“채광 산업. 특히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재료인 니켈과 코발트가 잔뜩 묻혀 있어.”

박태식은 ‘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애매하게 옆으로 기울인다.

“코발트는 차라리 콩고 같은 곳이 낫지 않아? 매장량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쪽은 이미 중국 정부가 선점해둬서 들어갈 자리가 없어. 그리고 환경오염 문제로 채굴 허가도 안 내주는 편이고.”

“아, 맞아. 그래서 국내 코발트 광산도 채굴을 안 한다고 하더라.”

어떤 방식을 쓰든 간에, 채굴은 환경오염을 동반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환경적인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땅 뒤집어엎는 게 대수겠는가.

“흠흠. 흠.”

옆에서 듣고 있던 제시가 헛기침으로 불편함을 내비친다.

“걱정하지 마.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단순 채굴만 할 생각은 없어.”

“그럼?”

“초대형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지을 거야.”

풍부한 광물 매장량, 느슨한 환경규제, 값싼 노동력, 그리고 미국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까지.

베네수엘라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 기지로 최적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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