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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20화 (120/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20화

OPEC 회의의 감산 발표로 국제 원유 시세는 폭등을 거듭했다.

산유국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수년간 바닥을 치던 원유 시세가 드디어 반등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는 분위기가 초상집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마두로 정부의 초대형 비자금 사태와 SNS에 올라온 대통령직 사임 영상.

여기까지만 해도 충격적인 사태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임 영상이 공개되고 하루 뒤, 마두로는 이비사의 별장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누군가가 꾸민 계략이 분명하다!”

이번 사태로 가장 곤경에 처한 사람은 마두로의 오른팔인 카를로스 총리였다.

그는 마두로의 사임 영상이 공개됐을 때부터 이번 사태가 철저히 조작되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OPEC의 감산 발표로 돈이 쭉쭉 들어올 일만 남았는데, 고작 비자금 건으로 자살한다고? 농담으로도 못 써먹을 개소리군.”

그가 아는 마두로는 절대 자신의 비리를 사과하거나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다.

‘마두로의 자살은 위장 자살일 가능성이 크다.’

마두로를 제거한 자들이라면 측근인 카를로스 역시 가만두지 않을 터.

혼자서 전전긍긍하던 카를로스는 그날 밤, 은밀히 군부의 실세라 불리는 산토스 장군을 찾아간다.

“산토스 장군님, 저 카를로스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집무실 안은 조용했다. 그가 부재중인가 싶어서 휴대폰을 꺼내려던 차에, 살그머니 문이 열린다.

“총리님이 어쩐 일이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산토스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 뒤에야 그를 안으로 들인다. 그리고 문을 닫고 걸어 잠그기가 무섭게 카를로스를 몰아붙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부터 말씀해보시오. 진짜 그 영상…… 마두로 대통령이 죽은 게 확실합니까?”

“그는 죽은 게 맞지만, 영상은 조작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란 뜻이군요.”

“확실합니다. 거의 90%…… 아니, 99% 정도는 그렇다고 봅니다.”

산토스는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조작의 증거를 못 찾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전문 단체에 의뢰했으니 조작 증거는 곧 나올 것입니다.”

“뒤늦게 증거가 나오면 뭐가 달라지오? 이미 마두로가 죽어버렸는데!”

베네수엘라는 대통령이 죽으면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해서 국가를 통치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 대행은 어디까지나 대행일 뿐.

“국회에서 권한 대행 중지와 함께 대통령 선거를 요청할 것이오. 이번 비리 사태로 여론이 저쪽으로 넘어간 만큼 어찌 손을 쓸 방도가 없소이다.”

“그러니까 제가 산토스 장군님을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산토스는 이 말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군을 움직이기엔 여론은 물론이고 명분도 없소이다.”

“명분이야 만들면 그만입니다. 예를 들면 이번 사태가 국가 전복 세력의 조작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증거가 없잖소! 증거가!”

카를로스는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이대로 정권이 바뀌면 마두로가 벌였던 비리들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거기에 카를로스가 깊숙이 개입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때가 되면 카를로스는 평생 감옥에서 썩는 것은 확정이고, 최악의 경우 교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장군님, 명분 따윈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국회를 장악하면 야당 놈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나더러 쿠데타를 하라는 거요?”

“쿠데타가 아니라 국회의 정상화입니다.”

“나는 여론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소이다.”

산토스가 다시 튕겼으나 카를로스는 뱀처럼 그에게 접근해서 유혹의 말을 흩뿌린다.

“산토스 장군님도 20년 넘게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셨으니, 이참에 대통령 한번 해보셔야죠.”

“내가 대통령을?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마두로 정권의 뿌리는 군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산토스 장군님은 직을 이어받는 것뿐입니다.”

산토스는 마두로가 대통령 자릴 꿰차고 떵떵거렸던 모습을 생생히 봐왔던 인물이다. 그런데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니 귀가 솔깃할 수밖에.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요?”

“군을 끌고 가서 국회만 장악해 주시면 됩니다.”

“그다음은?”

“그게 끝입니다. 국회만 마비시킬 수 있으면 저는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남은 임기의 임시 대통령을 임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마두로가 독재를 위해 베네수엘라 법을 여러 차례 수정해 둔 상태였다.

그러니 임시 대통령이라 해도 한 번 대통령이 되면, 사실상 종신 대통령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떻습니까, 장군님?”

“크흠……”

“딱 하루만 큰일을 해주시면 남은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산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욕망으로 일렁이는 눈빛을 보면 답은 이미 나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 * *

달빛도 숨어버린 야심한 밤.

베네수엘라의 중앙 사령부에서는 보병을 실은 40여 대의 트럭과 12대의 탱크가 부대를 이탈했다.

-귀관은 작전지역을 벗어났다. 조속히 부대로 복귀 바란다. 다시 한번 알린다. 귀관은 작전지역을 벗어났다. 조속히 부대로 복귀…….

뒤늦게 사령부에서 이들의 이탈을 감지하고 무전을 보냈으나, 이미 군 병력은 수도인 카라카스에 접어든 뒤였다.

철컥.

부대의 지휘관인 산토스는 직접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나는 수도 보안사령관 후안 산토스다. 이탈 병력은 내 명령으로 카라카스 방어에 투입되는 중이다.”

-방어…… 정말 방어가 맞습니까?

“그렇다. 그러니 부대 복귀는 모든 사태가 종료된 이후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통신 장교는 어떤 상황인지 대강 눈치를 챈 듯했지만 빠르게 수긍하고 통신을 마무리 지었다.

산토스는 내부 회선으로 무전을 돌린 뒤 말했다.

“목표지점까지 남은 거리는?”

-치직. 약 12㎞. 예상 도착 시간까지 약 10분 남았습니다.

“속도를 더 올려! 반란 분자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국회의사당에 도착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앞 열에 선 탱크의 움직임이 빨라지자 산토스가 탄 트럭도 속도가 붙는다.

산토스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 밤만 지나면 나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된다.’

어느덧 시가지 중앙에 환하게 불이 켜진 국회의사당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쯤이면 국회에서도 군부대가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았겠지만, 대대급 기갑부대를 상대로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긴급 정지! 긴급 정지!

끼이이이익…….

앞서 달리던 탱크들이 멈춰 서는 바람에 트럭도 줄줄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무슨 일인데 긴급 정지야?”

-전방에 탱크 진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산토스는 쌍안경을 들고 전방을 살핀다. 장애물의 정체는 폐기물을 어설프게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였다.

국회에서 시간을 끌려고 쌓아둔 듯했다.

“꾸물거릴 시간 없다. 바리케이드가 없는 쪽으로 우회할 길을 찾아라.”

-다른 쪽 길도 바리케이드가 쌓여 있답니다.

“그럼 보병들 투입해서 치우라고 해.”

-알겠습니다.

트럭에서 내린 보병들이 바리케이드에 달라붙는다.

바리케이드는 근처 건물을 무너트려서 만든 폐건물 잔해였기에 인력만으로 치우긴 쉽지 않았다.

‘이 정도 바리케이드를 미리 준비해뒀다면 우리가 올 걸 예상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산토스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탱크 12대와 보병 800명을 막을 만한 병력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10분가량 흘렀을 무렵, 귓가에 벌에서 들리는 ‘위이이잉-‘거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무슨 소리지?”

산토스뿐만 아니라 부대원 전체가 소리가 들린 쪽을 올려다본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새카만 무언가.

“드, 드론입니다! 드론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수십 대의 드론이 날아와서 깡통을 떨어트린다.

쉬이이이이…….

그 깡통에서 새어 나온 새하얀 연기.

“콜록! 콜록! 콜록! 으헉!”

“누, 눈이 따가워! 앞이 안 보입니다!”

이럴 땐 방독면을 쓰면 해결될 문제였으나,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베네수엘라군에 방독면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드론이 날아온 위치를 파악해라! 어서!”

“주변 건물이 너무 많아서 파악할 방법이 없습니다. 장군님, 일단 후퇴하시죠.”

“헛소리 마라!”

이대로 부대에 복귀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몰랐다.

그러니 산토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을 뚫고 국회의사당에 도착해야 했다.

“뭣들 하고 있나! 빨리 바리케이드를 철거해!”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2차로 드론의 공습이 시작됐다.

“이런 씨X! 드론이 오기 전에 쏴서 떨어트려!”

산토스의 지시가 떨어지자 보병들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진다.

투다다다다다!

눈먼 총알이라도 수백 명이 동시에 쏴 재끼니 효과는 확실했다.

드론들이 하나둘 추락하자 기세가 오른 보병들은 더 가열차게 총을 발포했다.

“그렇지! 다 없애 버려!”

바로 그때였다. 전방에서 장교 하나가 이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온다.

“장군님! 사격하면 안 됩니다! 사격 중지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드론들이 싣고 온 연막탄은 백린탄입니다!”

백린은 강한 연기를 내뿜어서 연막탄으로 쓰이지만, 더불어 발화가 잘 되고 독성이 있어서 살상용으로도 쓰이는 무기였다.

그런 백린탄을 실은 드론을 총으로 쐈다간 근방이 불바다가 될지도 몰랐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다행히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사격이 중지됐다. 그러나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곧이어 엄청난 폭발음이 전방의 탱크 쪽에서 들려온다.

삐이이이이-

콰아아아아아아앙!

후방에 있던 산토스는 방금의 폭발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똑똑히 봤다.

고층 건물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하늘로 치솟았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정확히 탱크에 명중했다.

“저, 저건 재블린 미사일? 저게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재블린 미사일은 미군의 무기다. 그걸 제재가 한창인 베네수엘라에 들여와서 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삐이이이이-

콰아아아아아아앙!

잠시 머뭇거린 사이에 재블린 미사일 2방이 더 날아왔다.

이번은 백린탄이 깔린 쪽에 떨어졌는지 주변 반경 5미터가 시뻘건 불길로 휩싸인다.

“으, 으아아악!”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워라!”

“미사일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싸웁니까?”

병사들이 개미 새끼처럼 흩어지자 장교들도 슬금슬금 발을 뺀다.

그러는 동안에도 산토스는 홀로 자리를 지켰다.

‘군용 드론에 이어 미사일 한 방에 10만 달러가 넘는 재블린이 3번 연속으로 발사됐다.’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 베네수엘라에서 그 정도 군용장비를 보유한 무력 단체는 없었다.

삐이이이이-

다시 재블린 미사일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은 소리가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산토스는 피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광인처럼 웃음을 터트린다.

“미군이었구나. 미군이었어. 어쩐지. 하하……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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