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19화
마두로는 괴한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과문을 읽었다.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사과문의 내용에 집착했는데, 단어는 물론이고 조사라도 하나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읽도록 강요했다.
덕분에 마두로는 누가 쓴 건지도 모를 멍청한 사과문-비싼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어서 죄송하며, SNS에 올린 사진을 책임을 지고 지우겠다는 내용-을 7번이나 읽어야 했다.
“이봐. 더는 못 읽겠어. 이젠 목이 쉬어서 말이 잘 안 나온다고.”
마두로가 애원하자 군인과 유령 가면은 저들끼리 모여서 속닥거리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들의 언어가 스페인어가 아님은 확실했다.
‘영어와 거의 흡사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보낸 게 미국이란 말인가.’
가능성은 충분했다. 마두로는 최근 트럼프에게 로비를 시도하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었으니까.
마두로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유령 가면에게 지시를 받은 군인이 다가온다.
“사과문은 정상적으로 녹화됐다. 이젠 쉬어도 좋다.”
“잠깐만. 사과문만 읽으면 풀어준다며?”
군인이 머뭇거리고 있자, 옆에 있던 유령 가면이 나선다.
그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로 말했다.
“사과문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과는 서너 시간이면 나올 테니 얌전히 기다리십시오.”
괴한들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놓여 있던 카메라를 전부 회수해서 방을 떠났다.
“젠장, 저것들은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거야?”
마두로는 다시 방을 탈출할 방법을 찾으려다가 포기했다.
괜히 총을 든 상대를 자극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과문을 카메라로 찍어서 간 걸 보면, 어디에 공개할 생각인 것 같긴 한데…….”
사과 영상이 공개된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엄청난 대사건도 아니고, 고작 SNS에 스테이크 사진 올린 것이 전부다.
이런 영상을 공개해 봤자 망신 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까의 유령 가면. 영어를 쓰는 걸 보면 베네수엘라 사람은 아니야.’
그의 머릿속에 여러 추측이 난무한다. 어떤 추측을 하더라도 마지막 결론은 복수로 모여들었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라. 꼭 잡아서 혀를 뽑아주마.’
* * *
로메로 저택의 별채에는 수십 대의 노트북과 전자기기, 그리고 전기선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다.
이곳은 전쟁터였다. 총알이나 포탄이 오가는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라, 데이터, 패킷, 메시지 해킹으로 싸우는 정보 전쟁이었다.
“우리의 SNS 봇 절반이 가동 정지 상태가 됐어. 인터넷 접속도 계속 차단당하고 있고.”
“봇을 더 풀어봐! 여기서 밀리면 뒤가 없어.”
제시와 친구들은 SNS에 정부 고발 기사를 퍼 올리고 있었다.
기사 내용은 마두로 정권이 다량의 금괴를 해외로 밀반출해서 비자금화했다는 것.
이번은 베네수엘라 은행의 직인이 찍힌 금괴 사진이 같이 올라갔기에 루머로 넘길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기사가 올라간 직후부터, 뉴스 사이트와 SNS 계정은 베네수엘라 정부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상대방도 봇을 써서 정부에 우호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어. 이대론 톱이슈를 저들이 먹게 될 거야.”
SNS에는 실시간 인기 랭킹을 보여주는 ‘톱이슈’ 섹션이있다.
여기에 올라간 글은 SNS 메인에 노출되는 만큼, 양측 모두 사활을 걸고 고지전을 펼치는 중이다.
“차단 상태의 봇 일부 복구했어. 바로 투입시킬게!”
“오케이. 이번에 화력 집중하자. 어떻게든 톱이슈에 올라간 기사만 지키면 돼!”
벌써 10시간 가까이 노트북 앞에 앉아서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슬슬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고 있었다.
특히 제시는 회복이 덜 된 채로 무리한 탓에,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제시야. 조금만 쉬다가 해. 너 이러다 진짜 큰일 날지도 몰라.”
조앤의 걱정에도 제시는 이를 악물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지금은 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우리가 여론을 얼마나 휘저어주느냐에 따라, 이번 작전의 성공과 실패가 갈릴 거야.”
“그래도…….”
“나는 진짜 괜찮으니까 우리 마지막으로 힘내보자.”
그때, 묵묵하게 작업하던 로라가 질문을 던진다.
“제시,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이런 기사를 뿌리는 게 정말 효과가 있어? 아, 당연히 효과는 있겠지만 상대가 독재자라며.”
“네 말대로 평소라면 큰 효과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지금은 효과가 있다는 뜻?”
제시는 일부러 크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우리가 SNS에 뿌리는 기사는 불을 붙이기 위한 장작이야. 곧 떨어질 폭탄을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지.”
“폭탄?”
“우혁과 시몬이 준비하고 있어. 제대로 터지면 독재 정권을 한 방에 쓸어버릴 파괴력이 나올 거야.”
제시의 친구들은 여전히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독재자가 비리 사건으로 물러나는 일은 아무리 상상해도 떠올리기 힘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제시는 이번 작전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전날 밤부터 술 말곤 먹은 게 없었던 마두로는 지독한 허기와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두 시간 전부터 먹을 걸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는 인내심을 끌어올려서 참고, 또 참길 반복했다.
‘놈들은 총을 가지고 있다. 자극해서 좋을 게 없어.’
그의 인내심이 거의 고갈될 무렵, 드디어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린다.
끼익.
방 안으로 무장한 군인 두 명이 먼저 들어온다. 마두로는 그들을 보고 대뜸 불만을 터트렸다.
“사람을 독방에 가둬둘 거면 최소한 먹을 건 주면서 가둬둘 것이지…….”
그때 군인들을 따라서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 하나는 영어를 쓰던 유령 가면이고, 이번엔 염소 가면이 추가돼있다.
“여기가 뭔 무도회장도 아니고 자꾸 가면을 쓰고 들어온담.”
그 말을 들은 염소 가면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진다.
마두로는 염소 가면 속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헛! 너, 너는…… 에드윈의 동생?”
“날 기억해 주다니 영광이야.”
그는 뮤지컬에서나 등장하는 과장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인민당 놈들이 꾸민 짓이었구나! 내 지지율을 떨어트려서 어떻게 해볼 생각인 것 같은데, 전부 헛수고라는 걸 알아둬라.”
“노욕이 지나치군. 기회를 줬을 때 얌전히 내려왔으면 좋았을 것을.”
“뭐? 노욕? 이 어린놈 새끼가!”
고함 지르는 마두로 앞으로 시몬이 권총을 들이민다.
“총으로 날 협박할 생각인가 본데, 내가 겁먹을 것 같아? 너희는 날 못 죽여. 내가 죽으면…….”
철컥.
권총 장전하는 소리가 나자 마두로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죽으면 뭐? 계속 말해봐.”
“내, 내가 죽으면…… 자동으로 카를로스 총리가 대통령이 된다. 장담하는 데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더 끔찍해질 거다.”
“베네수엘라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구석이 있을까?”
“내겐 베네수엘라를 부흥할 계획이 있다. 이번에 OPEC에서 감산한다는 소식 들었지? 유가가 오르면 다 잘될 거야. 외화가 들어오면 물가가 잡히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일단 총부터 내려놓고…….”
그의 바람과 달리 권총의 총구가 더 가까워진다.
“천천히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뭘 하려는 거야?”
“질문은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지시하면 너는 따르면 돼.”
마두로는 관자놀이에서 느껴지는 권총의 차가운 감촉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말을 따라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권총의 방아쇠를 향해 있었다.
진짜 방아쇠를 당길 기미가 보이면 피할 생각으로, 그리고 여차하면 권총을 빼앗아서 탈출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동생, 진정 좀 해. 이런다고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카를로스가 대통령이 되면 죽 쒀서 개 주는 꼴밖에 더 돼?”
“우린 정식으로 선거를 치러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을 거다.”
“안일한 소리 그만해. 카를로스가 군을 움직일 텐데, 도중에 사람이 몇이나 죽을 것 같아? 수천, 수만 명이 죽을 거라고!”
“그 점은 걱정하지 마라. 우리 조력자분께서 말끔히 해결해 주셨으니까.”
조력자라는 말이 나오자 유령 가면이 앞으로 나선다.
그는 이번에도 영어로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싶으십니까?”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자 유령 가면이 휴대폰을 꺼내준다. 그건 마두로의 휴대폰이었다.
“당신의 SNS 계정에 접속해서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내 SNS 계정?”
“예, 접속하면 바로 알게 될 겁니다.”
마두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머리에 권총이 겨누어진 상태라서 여지가 없었다.
그는 유령 가면이 시키는 대로 SNS 앱을 켜서 상태를 확인한다.
“이건……?”
마두로의 SNS 계정에는 아까 찍은 사과문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확인해 보시죠. 어서요.”
재생 버튼을 누른다. 몇 시간 전에 읽었던 사과 영상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이게 어쨌단 거야? 스테이크 사진 올린 걸 사과한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 어? 잠깐만? 뭔 소리야?”
영상은 그가 사과문을 읽은 모습을 녹화한 게 맞지만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친애하는 베네수엘라 국민 여러분. 저는 얼마 전 해외로 금괴를 밀반출한 사태를 사과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분명히 자신은 사과문에 적힌 대로 스테이크 사진을 올린 사과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영상 속의 자신은 스테이크 사진이 아니라 금괴를 빼돌린 것을 사과하고 있었다.
“뭐야? 난 금괴의 금 자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어!”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지는 영상은 더 기가 막혔다.
-이번 사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두가 대통령인 제가 저지른 잘못입니다. 그러니 저, 맥 마두로는 무한한 책임을 통감하는바 대통령직을 내려놓겠습니다.
영상에서 마지막 멘트가 나오자 마두로는 소리를 빽 지른다.
“개소리! 누구 마음대로 대통령직을 내려놔? 이 영상은 조작됐어!”
“정답입니다. 당신의 음성을 조작해서 가짜 영상을 만들었죠.”
마두로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몇 시간 만에 이런 조작 영상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조작 영상은 음성뿐만 아니라 입 모양도 얼추 맞고 있었다.
“영상이 꽤 잘 나왔죠? 몇 번이나 다시 녹화한 수고를 들인 보람이 있군요.”
이들이 사과문 쪽지에 적힌 단어와 조사에 왜 그리 민감하게 굴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전부 미리 만들어둔 음성에 맞는 입 모양을 찍기 위한 수작이었다.
“초대형 비리 사건에 연루된 대통령이 해외 휴양지에서 초췌한 몰골로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자, 여기서 돌발퀴즈. 이제 대통령은 다음으로 어떤 행동을 할까요?”
“무, 무슨…….”
“보기 드리겠습니다. 1번 자살. 2번 자살. 3번도 자살.”
마두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그는 겁에 질린 나머지 도망갈 생각도 못 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어댄다.
“사, 살려줘. 제발! 제발 부탁이야.”
옆에서 권총을 겨누고 있던 시몬이 두 손으로 손잡이를 움켜쥔다.
“베네수엘라 사람들도 네게 똑같은 말을 했었다. 하지만 넌 들은 체도 하지 않았지.”
“잠깐! 이런 조작 영상은 금방 들키고 말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나랑 거래하자. 난 많은 걸 줄 수 있어!”
“들켜도 상관없어. 그때가 되면 이미 상황은 끝난 뒤일 테니까.”
“제발 기회를 줘! 나는! 나는! 읍! 읍!”
마두로의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시몬이 그의 아가리에 총구를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역겹군.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