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18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 OPEC 회의에서 15년 만에 원유생산 감축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이번 합의는 OPEC 회원국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비롯한 비회원국까지 공동으로 이뤄졌으며,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을 79만8,000배럴 줄이기로 합의했습니다.
-이에 미국 서부텍사스원유 선물은 전날보다 9.3% 뛴 배럴당 49.57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번 합의는 OPEC 비회원국도 감산에 참여했다는데 큰 의미가…….
TV 뉴스에선 OPEC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끼리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이 자료화면으로 나온다.
대표들 사이엔 베네수엘라 대표로 참석한 맥 마두로 대통령도 포함돼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OPEC의 초창기 회원국인지라 마두로의 회의 참석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TV를 지켜보는 두 사내는 마두로의 얼굴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앓는 소릴 해대더니 결국은 감산 합의가 이뤄졌군요.”
우락부락한 덩치의 사내, 루모 로메로는 상석에 앉은 에드윈 로메로를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형님, 이대로 원유 시세가 폭등하면 마두로의 지지율이 회복될 겁니다.”
“그렇겠지.”
“마두로가 해외로 나갔을 때, 지금이 정권을 바꿀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에드윈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TV를 응시한다.
“저희 부대원들과 가문의 용병들은 만반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 정도 병력이 밀고 들어가면 대통령궁 점거쯤은 일도 아닙니다.”
“…….”
“형님? 듣고 계신 겁니까? 뭐라고 말 좀 해보십시오. 답답해서 미치겠습니다.”
침묵하던 에드윈의 입이 얕은 한숨과 함께 열린다.
“답답한 건 너다. 대통령궁을 점령하면? 그다음은 어쩔 생각이지?”
“마두로 정권을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워야지요.”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을 타 국가들이 인정해줄 것 같으냐? 보나 마나 정상적으로 선거를 치르라고 할 게 뻔하다.”
선거 관리위와 대법원, 관료들까지, 모두가 마두로의 부역자들이다. 그들이 현직에 있는 이상 정상적인 선거가 치러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마두로의 부역자를 색출하고 선거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외부의 지원 없이 국정을 운영할 수밖에 없어.”
“이미 몇 년이나 버텼는데 조금을 더 못 버티겠습니까.”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정권이 바뀌고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민심은 순식간에 돌아설 거다.”
만약 선거에서 패하면 쿠데타를 일으킨 로메로 가문은 선거를 불복하고 군사독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너는 마두로를 끌어내리고 제2의 마두로가 되고 싶은 게냐?”
“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시몬이 계획을 변경하자고 하더구나.”
본래는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를 실행함과 동시에, 시몬 로메로가 해외에서 마두로를 사살하는 작전이었다.
“설마, 마두로와 협상이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필요하다면 그래야지.”
“안 됩니다, 형님! 그 너구리 같은 놈은 믿을 수 없습니다.”
에드윈은 날뛰려는 루모를 손짓으로 제지한다.
“마두로를 믿지 말고 시몬을 믿어라.”
“만약 협상이 결렬되면요? 그땐 타이밍이 늦어서 군을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걱정할 것 없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마두로는 베네수엘라 땅을 밟지 못할 테니까.”
* * *
OPEC 회의를 마친 마두로는 오스트리아 빈을 떠나, 스페인 이비사로 이동했다.
이비사섬에는 마두로의 개인 별장이 있었는데, 그는 이번처럼 유럽에 들를 일이 있으면 꼭 별장에서 일주일 정도 휴가를 즐기고 귀국하곤 했다.
-별장 테라스에서 타깃의 모습 확인. 그의 곁엔 호스티스로 보이는 여자 4명도 함께 있다.
우리는 마두로의 별장에서 2㎞ 정도 떨어진 해변도로에 차를 대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인원은 총 24명.
베네수엘라에서 넘어온 특수부대원 출신이 5명, 나머지는 PMC에서 돈을 주고 구해온 용병들이다.
“경호원 숫자는?”
-육안으로 파악된 것만 6명. 경호 대형으로 추측건대 10명 안팎으로 보인다.
“알겠다. 계속 주시하도록.”
옆에서 주기적으로 무전이 오간다.
훈련이나 모의 전투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내 손에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권총이 들려져 있었다.
내가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지 무전을 치던 시몬이 물어온다.
“부담스러우시면 지금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십시오. 작전이 시작되면 지켜드리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낸 작전이니 직접 지켜봐야죠.”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내 손에 들린 권총을 쳐다본다.
“총은 다룰 줄 아십니까?”
“소총은 군대에서 몇 번 쏴봤습니다. 권총은 이번이 처음이고요.”
“음? 군인 출신이셨던가요.”
“한국은 징병제 국가입니다. 한국 국적의 남성이라면 의무적으로 2년간 군에서 복무해야 하죠.”
군대 이야기가 나오자 시몬의 태도가 한순간에 바뀐다.
“저보다 경험이 많으셨군요.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이런 일로 사과하실 것까지야…… 그보다 작전 시작은 언제입니까?”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곯아떨어졌을 때 진입할 예정입니다.”
별장 파티가 끝나려면 최소한 자정은 넘겨야 할 터.
대략 새벽 2시에 상황이 정리된다고 가정하면 베네수엘라 시각으론 아침 8시쯤이 된다.
‘시간은 딱 적당하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별장 파티는 새벽 4시를 넘겨, 새벽 5시가 다 된 시각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1시간 후엔 해가 뜬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시몬이 칼을 빼 들었다.
“정찰팀, 최종 보고 바란다.”
-건물 입구에 경호원 둘, 안쪽에 셋, 거실에 움직이는 인영 다수 확인됨. 타깃일 가능성 높음.
“알겠다. 현 시간부로 진입 허가한다.”
-확인.
영화에서나 보던 총격전이 벌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제대로 총 한번 쏴보지도 못하고 입구 쪽 경호원들이 제압됐고, 건물 안에 있던 경호원들도 곧장 항복해 버렸다.
-상황 종료.
안전이 확보된 뒤에야 나는 시몬을 따라서 마두로의 별장으로 향했다.
별장이 가까워지자 요란한 클럽 음악이 들려온다. 이 정도 소음이면 밖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알지 못했으리라.
끼익.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군인이 우릴 안내한다.
쿵. 쿵. 쿵. 쿵. 쿵.
삐리리리릭. 삐삐. 빠빠밤! 빰! 빰!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실에는 전라의 여인들이 모여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바닥엔 빈 술병과 함께 하얀 가루로 범벅이 된 지폐도 몇 장 굴러다닌다.
“타깃은 어디 있습니까?”
군인은 거실의 화장실을 가리켰다.
그곳엔 마두로가 화장실 변기를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마두로…….”
시몬은 다짜고짜 권총을 꺼내서 마두로의 이마를 겨눈다.
“로메로 씨?”
“계획을 변경하죠. 이런 쓰레기는 여기서 죽는 게 낫습니다.”
“그를 여기서 죽이면 당신의 속은 후련하겠지만, 그 대가로 수만 명의 베네수엘라인이 죽을 겁니다.”
권총을 회수한 시몬의 입에서 빠드득하고 이빨 가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 *
마두로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물부터 찾는다.
“목이 마르구나. 누가 물을 가져와. 어서.”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그는 뒤늦게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치켜떴다.
“뭐지?”
눈을 뜬 곳이 별장이 아니라 호텔 객실과 흡사한 곳이었다.
“여긴 어디지? 내가 호텔에 왔던가?”
마두로는 머릴 부여잡고서 기억을 되짚어 본다.
술과 여자에 취해서 정신없이 허릴 흔들었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 떠오르는 게 없다.
할 수 없이 방을 나서려고 문을 여는데.
철컥.
문이 잠긴 걸 확인하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호원! 경호원! 아무도 없어? 젠장, 누구라도 좋으니까 대답해!”
마두로는 바깥을 확인하려고 창문을 열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창문 전체가 철판으로 막혀 있었다. 작정하고 자신을 가두겠다는 뜻이었다.
“누구야? 내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빨리 나와!”
이 말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잠겨 있던 문이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 3명이 먼저 안으로 들어오고, 이어서 유령 가면을 쓴 사내가 들어온다.
“너희들은 누구냐? 나를 왜 이런 곳에 가둔 거야?”
군인 중 장교복을 입은 사내가 책을 읽는 듯한 어투로 말한다.
“우리는 베네수엘라 시민 결사대다. 마두로 너의 악행을 벌하기 위해 이곳으로 데려왔다.”
“시민 결사대? 웃기지 마. 고작 일반 시민들이 이런 일을 꾸밀 리 없다. 보나 마나 인민당 놈들의 짓거리겠지!”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는 것 같군.”
군인 장교가 턱짓을 하자 나머지 군인들이 마두로의 양팔을 붙잡고 억지로 무릎을 꿇린다.
“지시에 따라라.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사살하겠다.”
“큭…… 너희들, 이런 짓을 해봤자 전부 헛고생이야. 내가 죽으면 자동으로 카를로스 총리가 대통령 대행으로 올라가게 돼 있어.”
그때 마두로 코앞으로 소총의 총구가 겨눠진다.
“미친!”
그가 놀랄 시간도 주지 않고 군인 장교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은 꿇어 않은 마두로의 가랑이 사이를 아슬아슬 스쳐서 땅에 박혔다.
조금만 조준이 빗나갔어도 허벅지나 급소가 꿰뚫렸을 거다.
‘이 새끼들, 내가 맞아도 상관없다는 건가?’
망나니처럼 날뛰던 마두로는 총알 한 방에 순한 양이 됐다.
“잠깐만. 너희들 원하는 게 뭐야? 돈이 필요해? 아니면……. 아, 그래. 금괴 이야길 듣고 왔구나? 그렇지? 금괴는 이미 해외로 보내서 없어. 나중에 보내줄 테니까…….”
“그딴 건 필요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너의 사과다.”
일국의 대통령을 납치해서 고작 한다는 짓이 사과라니.
마두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과만으로 살아나갈 수 있다면 백 번, 천 번도 할 수 있었다.
“아, 알겠어. 사과할게. 그런데 뭘 사과하면 될까? 경제가 어려워진 거? 솔직히 그건 내 탓이 아니라 유가가 폭락해서 그렇잖아. 이제 유가가 오르면 다시 예전처럼 좋은 시절이…….”
철컥.
소총의 장전 소리가 마두로의 입을 봉한다.
“사과는 책상에 앉아서 저기 보이는 카메라에 대고 하면 된다.”
“무슨…….”
“옷 먼저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라.”
마두로는 꺼림칙했지만, 상대가 총구를 들이밀어서 어쩔 수 없이 옷을 갈아입고 테이블에 앉는다.
“거기 있는 쪽지를 그대로 읽으면 된다.”
“이게 뭔데 그래?”
“우리가 원하는 사과문이다. 단어 하나라도 빼먹지 말고 정확하게 읽어라.”
아무리 다급해도 뭔지도 모르는 사과문을 읽을 순 없었다.
그는 눈치껏 쪽지를 먼저 읽어본다.
쪽지의 내용은 얼마 전, 고급 와인과 스테이크 사진을 SNS에 올렸던 일을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겨우 이게 다야?’
고작 SNS에 올린 사진 한 장 때문에 대통령을 납치하고 가뒀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준비는 끝났나?”
“자, 잠깐만. 아직이야.”
“딱 30초의 시간을 더 주겠다. 그 이상은 안 돼.”
마두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소총 앞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보며 담담하게 쪽지를 읽어간다.
-친애하는 베네수엘라 국민 여러분. 저는 얼마 전 SNS에 불온한 사진을 게시한 것을 사과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