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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17화 (117/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17화

내가 베네수엘라에 도착한 지도 벌써 나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플랜트가 건설될 석유 매장지역과 광물 채굴장을 확인하는 등, 사업상의 이유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굳이 현장까지 직접 다녀올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그건 베네수엘라 상태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서류상으로는 6개의 유닛에서 일일 10만 톤의 에틸렌을 생산한다고 쓰여 있을지라도, 현장에 가보면 가동률은 절반이 채 안 됐고, 실제 생산량도 1만 톤에 불과했다.

이렇듯 서류 정보의 9할이 허위거나 과장이었으니,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설비의 절반도 가동을 못 하면서 서류상으론 100% 가동이라고 올리다뇨. 과장이 심해도 너무 심합니다.”

내가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있던 시몬이 말을 받아준다.

“그래도 설비를 절반이나 돌리고 있으니 양호한 편이네요.”

“절반이 양호한 거라고요?”

“베네수엘라 기준에선 그렇습니다. 서류마저도 엉망인 곳은 아예 가동이 멈췄다고 보시면 됩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관련 사업은 모두 국영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정권의 입맛대로 운영되는 국영기업은 사실상 독재자의 돈주머니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시설이 제대로 돌아갈 턱이 있나.

“마두로 정부가 석유 사업만 제대로 관리했어도 베네수엘라가 이 정도로 심각하게 망하진 않았을 겁니다.”

“로메로 씨, 그건 불가능한 가정입니다. 부패한 정부에 모인 관료들이 제대로 된 사람일 리 없잖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더 최악인 것은 정권이 바뀐 후에도 그 관료들을 계속 써야 한다는 거죠.”

시몬은 헛기침 소릴 내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고 하던 말을 이어간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관료들을 한 번에 쳐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못할 것도 없지요.”

“그랬다간 관련 업무가 마비되고 더 큰 혼란만 불러올 겁니다.”

정석적인 방법은 새로운 관료를 일부만 배치한 뒤, 서서히 기존 관료와 물갈이시키는 것.

하지만 경제적으로 아사 직전인 베네수엘라에 그럴 만한 여유는 없었다.

시몬도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답답하다는 듯 말을 내뱉는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복구가 시급한 석유 사업만 정부의 손에서 독립시키고, 나머지는 천천히 물갈이하시면 됩니다.”

“석유 사업을 담당하는 국영기업을 매각하라는 소린 아니시겠죠?”

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져 있었다. 석유 채굴은 베네수엘라에서 중요도가 높은 사업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일시적으로 사기업에 운영을 위탁하란 뜻이었습니다. 국영기업보다는 사기업이 운영을 잘하리란 것은 자명한 사실 아닙니까?”

“사기업은 수익을 과하게 챙겨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멀쩡한 설비를 절반도 못 돌리는 쪽보단 나을 것 같습니다만.”

“…….”

시몬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입을 꾹 닫아버렸다.

* * *

우리는 모든 일정을 끝내고 다시 로메로 저택으로 돌아왔다.

평소의 로메로 저택은 절간처럼 조용한 곳인데, 지금은 입구에서부터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제시! 크게 다쳤다며? 괜찮은 거야? 몸 상태는 어때?”

“어머머. 얘 얼굴 좀 봐! 너무 야위었네.”

“집에서 치료하면 해결되는 거야? 이러다 흉 지겠어.”

소란의 원인은 한국에서 온 제시의 대학 친구들이었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제시가 있는 별채에서부터 저택 입구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제 일행들이 한국에서 도착했나 봅니다.”

“일행이면 오성그룹에서 파견된 실무팀입니까?”

“아뇨. 제시의 친구들입니다.”

시몬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치안이 엉망인 베네수엘라까지 친구를 데려온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러시죠.”

내가 별채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녀들의 재잘거림은 멈추질 않는다.

“내가 그래서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했냐면…….”

“맞아. 맞아. 나도 그랬다니까.”

“깔깔깔깔.”

제시와 그녀의 친구들은 거의 반년 만에 만난 셈이니, 할 이야기가 잔뜩 쌓여 있었을 거다.

나는 그녀들끼리 떠들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려주기로 했다.

“이런.”

담뱃갑에 담배가 딱 한 개비 남았다. 새벽에 급히 베네수엘라로 넘어오느라 여유분도 없었다.

마지막 담배를 귀중품 다루듯 조심히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치익.

담배 특유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향을 음미해 가며 한 모금 빨아들이고 다시 내뱉으려던 도중,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하필이면 이럴 때 전화가 오냐.”

오만상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하마터면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릴 뻔했다.

[D. 트럼프]

쥐고 있던 담배를 살며시 바닥에 비벼끄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 대니얼. 나예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하핫핫. 그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은 언제 들어도 즐겁군요.

“앞으로 두 달만 지나면 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대통령님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겁니다.”

이후에도 짧은 사담이 이어진다. 트럼프는 주로 자신의 자랑을 늘어놨는데,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 주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보다 전에 말했던 부탁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베네수엘라 건은 순조롭습니다. 취임식 전에는 끝낼 수 있을 듯합니다.”

-음. 순조롭다라…… 하긴, 그러니까 그 독재자가 내게 접근했겠지요.

이런 타이밍에 나올 독재자라면 마두로밖에 없었다.

나는 모르는 척 질문을 던진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라는 작자의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의 제재를 해제해 주길 원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티 나지 않게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일단은 보류시켜 뒀습니다.

바로 거절했어야지. 보류라니?

나는 튀어나오려는 본심을 가까스로 밀어 넣으며 입을 뗀다.

“그의 제안을 받으실 생각입니까?”

-그럴 리가요. 나는 독재자를 증오합니다. 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암세포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이 베네수엘라 제재를 풀어 달라고 했던 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먼저 의견을 듣고 대응할 생각입니다.

그가 마두로의 제안을 바로 거절하지 않았던 이유가 나 때문이었을 줄이야.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대통령님 스타일로 밀어붙이십시오.”

-내 스타일이 어떤 스타일입니까?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소신대로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시죠. 한국에선 상남자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상남자?

나는 잠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다가, 떠오르는 대로 답해준다.

“남자 중의 남자. 한 마디로 리얼 가이를 뜻합니다.”

휴대폰 너머에서 트럼프의 껄껄거리는 웃음이 들려온다.

-상남자! 아주 마음에 들어요. 핫핫핫! 제가 이번 기회에 상남자가 뭔지 보여주겠습니다.

툭.

트럼프와 통화가 끝난 뒤.

나는 바닥에 고이 모셔뒀던 꽁초는 까맣게 잊은 채 별채로 뛰어 들어간다.

“다들, 통화 내용 듣고 있었지?”

나와 시선이 마주친 제시와 친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트럼프는 SNS로 이번 로비 건을 떠벌릴 거야. 그가 판을 벌이기 전에 우리도 준비를 마쳐야 해.”

제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친구들을 돌아본다.

“애들아, 부탁한 건 가져왔어?”

“물론이지. 네가 회사에서 쓰던 서버 데이터와 노트북, 그리고 우리 노트북도 잔뜩 가져왔어.”

“정말 고마워.”

“그런데 그 몸으로 일할 수 있겠어? 상처를 보면 쉬어야 할 것 같아.”

제시는 자신이 괜찮다는 걸 과시하듯이 몸을 일으킨다.

그녀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지만 이를 꽉 문 모습을 보면, 절대 괜찮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난 괜찮아. 그리고 너희도 날 도와줄 거잖아. 안 그래?”

제시의 친구들은 이미 그녀의 상태를 눈치챈 듯했다. 하지만 모르는 척 고갤 끄덕여 준다.

마지막으로 제시의 결의에 찬 시선이 내게로 돌아온다.

“마두로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주자.”

* * *

마두로는 얼마 전,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잠들어 있던 금괴 4톤을 우간다의 금 정제소로 이동시켰다.

금괴를 세탁해서 일부는 로비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비자금으로 숨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금이 해외로 옮겨지기가 무섭게 SNS에서 소문이 퍼져버렸다.

[마두로가 베네수엘라 국고인 금괴 80톤을 해외로 빼돌렸다. 현재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텅 비어 있다.]

단순한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비어 있는 은행 내부 사진까지 뿌려지고 있었다.

이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강력히 반발했으며 관련 SNS를 공유만 하더라도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나 싶을 때쯤, 미국에서 후속타가 들어오게 된다.

“트럼프가 폭로를 해?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의 SNS 계정에 대통령님과 통화한 음성 파일이 올라왔습니다.”

마두로는 얼른 휴대폰을 조작해서 트럼프의 SNS에 접속했다.

그가 방금 올린 SNS에는 음성 파일과 함께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독재자가 더러운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는 위대한 미국의 명예를 더럽히려 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태입니다.]

[나, 미합중국 45대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는 이번 일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취임하는 즉시 베네수엘라의 입국 금지와 더불어 가능한 최대의 경제 제재를 가할 것입니다.]

앞에 늘어놓은 헛소리는 무시하더라도 마지막 메시지의 워딩이 너무 강했다.

입국 금지와 가능한 최대의 경제 제재.

지금의 경제 제재만으로도 나라가 휘청거리건만, 여기서 더 강하게 제재가 들어오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이 늙은 광대 놈! 앞에선 해줄 것처럼 굴다가 뒤통수를 쳐?”

분노에 찬 마두로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전화기, 화병, 유리잔 등. 손에 잡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진다.

“너, 트럼프 이 개새끼가! 네가 대통령을 몇 년이나 해 먹을 것 같아? 죽여 버릴 거야. 다음에 만나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마두로는 체력이 다 떨어져서 숨을 헐떡거릴 때가 돼서야 발악을 멈췄다.

“헉…… 헉…… 빨리 물 가지고 와.”

“네?”

“물 가지고 오라고!”

직원이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가자, 아까부터 입구에서 눈치를 살피던 재무장관이 슬그머니 들어온다.

“대통령님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또 뭐야?”

“카라카스 중심부에서 대통령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마두로는 코웃음을 치며 담배를 입에 문다.

“호들갑 떨지 마. 시위가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니고.”

재무장관은 잽싸게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이번 시위는 규모가 커서 경찰만으론 감당이 안 된다고 합니다.”

“씁, 시위하는 이유가 뭔데 그래?”

“가상화폐 인출 시스템이 먹통이 돼서 그렇답니다.”

마두로는 미간을 꾸깃꾸깃하게 구긴 채로 고갤 기울인다.

“뭐? 가상화폐 출금이 안 되면 업체에 가서 따질 것이지. 왜 우리 쪽에 와서 난리를 쳐?”

“저번 주부터 정부에서 가상화폐를 전면 금지하고 회수까지 한다는 소문이 SNS에서 돌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먹통이 돼버리니…….”

“우리가 막은 줄 알고 저랬다고?”

“그렇습니다.”

마두로는 괜히 엎어져 있는 의자를 다시 걷어찬다.

“고작 SNS 글만 믿고 시위를 해? 그러니까 저것들을 돼지라고 하는 거다.”

“SNS 선동의 영향도 있지만, 최근 연이어 터진 악재들로 민심이 흉흉한 것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민심이라면 걱정하지 마라. 곧 뒤집힐 거니까.”

내일 밤 오스트리아 빈에서 OPEC 회의가 열린다.

이미 OPEC 회원국과 11개의 비회원국은 감산으로 가닥을 잡았기에, 회의 결과가 나오는 즉시 유가는 폭등할 것이다.

'유가가 오르면 경제가 살아나는 건 시간문제다. 그때 사료를 뿌려주면 짖어대던 돼지들도 잠잠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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