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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16화 (116/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16화

베네수엘라에선 독재자 마두로 대통령을 끌어내릴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베네수엘라는 정상화되지 않는다.

미친 인플레이션과 외화 고갈, 그리고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막대한 투자금은 기본이고, 초대형 플랜트 건설 경험을 보유한 다수의 기업을 포섭해야 했다.

“석유 플랜트 건설, 정제, 운송, 기타 인프라 건설, 판매까지. 한국 재벌가는 이 모든 것을 처리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테이블의 비어 있는 자리를 둘러보다가 말을 잇는다.

“제 제안이 전용택 씨를 제외한 다른 분들에겐 그리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이미 대현그룹, GT그룹, SG그룹의 총수들은 자릴 뜬 지 오래다. 유일하게 남은 전용택만이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아무리 큰 수익을 약속한다 해도 베네수엘라에 투자하긴 리스크가 너무 크잖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군요. 기껏 전용택 씨가 좋은 자릴 마련해 주셨는데 말이죠.”

“저희 오성그룹만 참여해도 충분한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니 신 대표님은 마음 푹 놓으십시오.”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 최대한 많은 업체가 참여해 주길 원했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베네수엘라가 정상화될 테니까.

전용택은 이런 내 아쉬움을 알아챘는지 말을 덧붙인다.

“아니면 저희가 자체적으로 타 업체를 합류시켜 보겠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베네수엘라에 직접 들어오긴 꺼릴지 몰라도 오성이 원청으로 들어가서 리스크를 짊어져 준다면 다른 업체도 기꺼이 나설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성이 일감을 전부 받아서 하청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긴 한데, 그가 지나치게 나서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불안한 느낌이 든다.

“전용택 씨,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타 업체는 베네수엘라 상황이 안 좋은 걸 알기에 참여를 꺼렸습니다. 그런데 전용택 씨는 어째서 이리 적극적인 겁니까?”

“저는 성공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죠.”

그는 내가 이 질문을 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술술 쏟아낸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WHTS컴퍼니는 꽤 오랫동안 베네수엘라에 공을 들였습니다. 그 결과, 시민들이 WHTS컴퍼니의 SNS를 쓰고, 가상화폐도 적극적으로 사용할 정도가 됐더군요.”

“그게 이번 일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관계가 있지요. 신 대표님이 그토록 베네수엘라에 공을 들였다면 어떤 가능성을 봤다는 뜻입니다.”

겨우 그런 추상적인 이유로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덥썩 물었다고?

내가 황당해하는 동안 그는 영화 속 삼류 탐정처럼 쇼를 계속 이어간다.

“제가 감히 추리해 보자면 신 대표님은 유가 정보를 바탕으로 이번 일을 계획하셨을 듯합니다.”

“유가 정보?”

“현재 두바이유 시세는 꽤 오랫동안 배럴당 4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건 산유국으로선 수지타산이 안 맞을 정도로 낮은 가격입니다.”

나는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그에게 고갤 끄덕여 준다.

“다음 달 초 OPEC 회의에서 감산 발표라도 나오게 되면 유가는 일제히 상승할 테니, 베네수엘라처럼 석유 의존도가 큰 나라는 경제가 부활할지도 모릅니다.”

“음…….”

“그렇게 되면 해외 기업 중 유일하게 베네수엘라의 석유채굴사업우선권을 보유한 WHTS컴퍼니도 덩달아 이득을 보게 됩니다.”

추리 자체는 그럴싸했지만 전제 자체가 틀려먹었다.

먼저, 나는 이번 OPEC 회의 결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그리고 유가가 오르면 베네수엘라가 부활할 거라고?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역사에서 베네수엘라는 유가가 얼마든 간에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했다.

짝. 짝. 짝.

코웃음이 나올 추리 쇼였으나 나는 손뼉까지 쳐가며 그를 추켜세워 준다.

이유가 뭐든 간에 오성그룹이 발 벗고 나서준다면 내겐 호재 아닌가.

“역시 전용택 씨는 예리하십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러십니까. 이쯤은 경영자로서 기본 소양입니다.”

전용택은 내뱉는 말과는 달리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이미 그의 광대뼈는 천장까지 승천해 있었다.

“그럼, 이번 일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 대표님. 그건 제가 해야 할 말입니다. 하하하핫!”

* * *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 15시간, 인천 공항에서 다시 볼리바르 공항으로 18시간.

사흘간 도합 33시간이나 비행기를 탔더니 몸 컨디션이 최악이다.

마음 같아선 호텔에 처박혀서 하루 정도는 쉬고 싶었으나, 내겐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2주 뒤, 마두로가 OPEC 회의에 참석하러 오스트리아 빈으로 출국합니다. 저희는 그때를 디데이로 잡았습니다.

이런 전화를 받았는데 어떻게 호텔에서 쉬고 있겠는가.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다시 베네수엘라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오셨군요.”

이번에도 공항엔 시몬이 마중 나왔다.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숙소로 안내해드릴까요?”

“아닙니다. 먼저…… 조용한 곳에서 이야길 하고 싶은데요.”

“그럼 제 차에서 하시면 됩니다.”

시몬의 차에는 소총으로 무장한 운전사가 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들어도 되냐는 뜻으로 눈짓을 보낸다.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음. 알겠습니다. 먼저…… 방법에 대해서 듣고 싶군요. 해외 출국 때를 노린다고 했으니 쿠데타가 아니라 암살입니까?”

“둘 다입니다. 그래야 한쪽이 실패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까요.”

“그렇군요.”

암살에 실패하더라도 쿠데타가 성공하면 마두로의 입국을 막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라도 유리한 상황임은 마찬가지다.

“무력으로 그를 끌어내린다면 후폭풍이 만만찮을 텐데요.”

“후폭풍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의 지지율은 40%가 넘으니까요.”

“40%요? 경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 대통령 지지율이 그렇게 높단 말입니까?”

내 놀란 목소릴 들은 시몬은 깊게 한숨을 토해낸다.

“예전부터 베네수엘라는 실업률이 높아지면 공무원을 많이 뽑아서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런 기조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공무원들이 마두로를 지지하나 보군요.”

“그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권이 바뀌면 임금이 줄어들까 봐 마두로를 지지하게 됐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라고 해봐야 극빈층보다 살짝 높은 수준일 터.

그런 임금을 지키기 위해 경제를 파탄 낸 독재자를 계속 지지한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마두로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 때마다 일부러 공무원만 임금을 대폭 올려주는 식으로요.”

“일반 노동자와 공무원이 서로 증오하게 판을 깔았군요.”

“정확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기 직전임에도 마두로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마두로를 무력으로 끌어내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쿠데타 이후는 계획해 두셨습니까?”

“빠르게 대통령궁만 확보하고 군부를 장악하면 추가적인 소요는 없을 듯합니다.”

“선거를 새로 치러서 명분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서방에서도 우호적으로 나올 테고요.”

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베네수엘라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새 정부는 그런 명분보다 경제를 얼마나 빠르게 복구하냐가 중요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체면 차릴 때가 아닌 건 맞다.

문제는 쿠데타와 암살로 집권한 정권을 미국 정부가 인정해 주냐였다.

만약 제재가 끝까지 안 풀리면 미국과 베네수엘라 사이에서 나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와 친밀도를 왕창 쌓아뒀으니 어떻게 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왕이면 뒤탈이 없도록 유도하는 게 낫겠지.’

* * *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온 뒤, 저택이 아니라 카라카스 북부에 있는 시장 쪽으로 향했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시장에 나와서 여론을 보듯이, 나도 직접 베네수엘라 여론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여기가 북부 시장입니다. 이 근방에서는 가장 활성화된 시장이죠.”

“반년 전에 제시와 와봤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시장은 반년 만에 심각할 정도로 규모가 줄어 있었다.

제대로 된 상점은 몇 없었고, 대부분 노점이거나 아니면 집에서 쓰던 물건을 내다 파는 수준이었다.

“정부에서 물품을 배급해 주는 상점은 어디로 가야 있습니까? 거기가 그나마 물건이 많던데요.”

“배급이 끊겨서 문을 닫은 지 오래입니다.”

“그럼 물건을 어디서 구하나요? 여긴 생필품을 파는 상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요.”

“시장 뒤쪽으로 가면 암시장이 있습니다. 쓸만한 물건을 대부분 거기서 거래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가 말한 암시장 방향으로 들어가려던 차에,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한곳으로 뛰어가는 게 보인다.

그냥 뛰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이를 악물고서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 뭡니까?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오늘이 급여 날인가 봅니다.”

“급여를 받았는데 왜……?”

시몬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달리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베네수엘라에선 돈을 받는 즉시 다 쓰는 것이 상식입니다. 주로 음식이나 생필품을 왕창 사놓는 식이죠.”

“인플레이션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특히 급여일이 몰린 월말엔 시세가 더 널뛰기합니다. 반나절 만에 쌀이나 빵값이 2배 오르는 일은 놀랍지도 않습니다.”

물건값이 2배로 오르면 급여가 반 토막 난 것과 마찬가지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이곳에선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살인이 나도 이상치 않은 인플레이션이란 뜻이었다.

“그나마 요즘은 나아진 편입니다. 볼리바르를 가상화폐로 바꿔두면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가상화폐를 금지했다고 들었는데요.”

“금지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그럴 때마다 은행을 불태우는 등의 반발이 너무 심해서 정부도 가상화폐를 묵인해주고 있습니다.”

“네? 은행에 불을 질렀다고요?”

“베네수엘라에서 그 정도면 시위치곤 평범한 편입니다.”

은행을 불태우는 시위가 평범하면 격렬한 시위는 어떤 모습이란 말인가.

그 후에도 베네수엘라 시장을 돌아보는 내내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계속된다.

애초에 연간 인플레이션이 수천%인 나라에서 상식이 통하겠냐마는, 그래도 직접 마주한 현실은 그 어떤 글로 표현된 것보다 잔혹했다.

‘이 나라는 이대로 답이 없어. 대통령부터 그 아래까지 싹 갈아엎어야 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중요한 전화를 받으러 간다던 시몬이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로메로 씨, 표정이 안 좋군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그게…… 최근 마두로가 대량의 금괴를 모으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서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비자금입니까?”

“저희도 처음엔 비자금으로 쓸 줄 알았는데, 더 조사해 보니 로비용으로 준비한 금괴였습니다.”

“대통령인 그가 로비라니, 대체 로비 대상이 누구죠?”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주변을 한 번 살핀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와 연락이 닿았다고 합니다.”

트럼프?

그 말이 나온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왜 웃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상황이 너무 웃겨서 참질 못했네요.”

“웃을 상황이 아닙니다. 트럼프가 그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해주면 쿠데타에 성공해도 집권이 어려워집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독재 정권의 뇌물을 받아먹고 제재를 풀어준다고?

대통령이 누구든 간에 그런 사실이 알려지는 즉시 탄핵감이었다.

‘트럼프는 멍청이가 아니야. 절대 돈을 받을 리 없어.’

내가 아는 트럼프라면 오히려 이번 건을 언론에 뿌려서 자신의 인기몰이에 이용하려 들 것이다.

여기에 추가 제재 가능성까지 떠들어대면 마두로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칠 터.

‘이번 사태가 베네수엘라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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