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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13화 (113/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13화

트럼프는 자신의 당선이 거의 확실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아서 멍해져 있던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승리 인터뷰가 아니라 시원한 콜라를 마시는 것이었다.

치익.

시원한 콜라의 톡 쏘는 청량감과 뒤이어 따라오는 달콤함의 조화.

한동안 트럼프는 익숙한 혀의 감각을 즐기다가 대뜸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당선 확실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이 맨 처음 떠올랐다.

자신을 대통령님이라고 불렀던 동양인.

그에게 대통령이라고 부른 이들은 수없이 많았으나 흔해 빠진 아부로 들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동양인만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

어찌나 확신에 차 있던지 듣고 있던 트럼프조차도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것에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대통령이 될 것임을 예상했던 걸까?'

트럼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가 자신을 찾아왔을 땐, 공화당의 후보가 되는 것조차 힘들던 시기였다.

한 자릿수 지지율의 후보가 대통령이라니 그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그가 홀로 생각에 잠긴 동안, 전화 너머에서 기다렸던 목소리가 넘어온다.

-당선을 축하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님.

저 목소리를 듣자마자 트럼프는 팔뚝의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목소리는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당선 전에도, 당선된 후에도.

그의 ‘대통령님’이라는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자신이 진정한 대통령감이었다는 자신감이 솟구친다.

“오, 대니얼. 이번 선거는 당신의 기발한 전략 덕분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전략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갔을 뿐입니다.

어쩜 이리도 마음에 드는 말만 골라서 할까.

트럼프는 기분이 좋아져서 한참이나 껄껄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좋군요. 너무 좋은 밤입니다. 나는 오늘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그러시면 오늘 밤을 기념하는 파티를 여는 게 어떻습니까?

“음…… 아이디어는 좋지만 나는 술을 먹지 않습니다.”

-이번 파티엔 술이 필요 없습니다.

트럼프가 의아해서 미간을 찌푸리는 동안 상대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파티 소식을 들으면 수많은 사람이 참석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 중엔 대통령님을 멸시했던 정치인과 기업가들도 포함돼 있겠지요.

“그들을 파티에 초대하란 말입니까?”

-초대하셔야죠. 그래야 뒤늦게라도 줄을 대려고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서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선거 내내 자신을 하찮게 취급했던 공화당 정치인들, 후원금 이야기만 꺼내도 자릴 피해버리던 월가와 기업의 CEO들.

그들이 비굴하게 숙이고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흐하하핫! 그거라면 술이 없어도 즐길 수 있겠군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정말 멋집니다!”

트럼프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어찌나 크게 웃었으면 들고 있던 콜라를 반쯤 쏟아버렸을 정도다.

“대니얼, 당신과 그 멋진 광경을 같이 보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 * *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 승리는 말 그대로 이변 중의 이변이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언론사, 기업인, 심지어 각국의 정상들까지 힐러리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힐러리 쪽에 줄을 댔다.

그러나 막상 개표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트럼프의 압승.

힐러리 쪽으로 줄을 댔던 이들에겐 말 그대로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치광이 트럼프가 대통령 트럼프로 돌아왔으니, 그의 임기 내내 보복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러던 차에 트럼프가 당선 축하 파티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번 행사는 늦게라도 트럼프의 눈에 들 절호의 찬스였기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빨리 오거라, 애나. 이러다가 파티가 끝나겠구나.”

트럼프의 당선 파티가 한창인 트럼프 타워 로비.

과할 정도의 화려한 정장으로 멋을 부린 중년인이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살구색 드레스 차림의 여인, 이소영이 인상을 확 구긴다.

“아빠, 드레스를 입고 빨리 걷는 게 쉬운 줄 아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초대를 거절할 걸 그랬네요.”

“큰일 날 소리! 살면서 이런 영광스러운 기회가 몇 번이나 올 줄 알고 그래?”

“파티 참석이 무슨 영광이에요.”

이소영의 투덜거림에도 중년인은 입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녀의 아버지인 스티븐은 지독한 공화당원이었다. 당연히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했었는데, 그런 그에게 트럼프 당선 파티 참석은 가문의 영광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닛. 저 사람은 영국의 핸슨 부총리? 맙소사. EU에서는 미셸 이장과 폰스틴 총재도 왔잖아. 저쪽 일본인은…… 외무성의 후지와라인가?”

단순한 파티라고 보기엔 참석자의 면면이 너무 화려했다. 스티븐은 그런 대단한 파티에 초대받았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동, 또 감동하기 바빴다.

“그런데 우릴 파티에 초대한 그…… 너희 대표란 사람은 어디 있어? 최소한 파티장 입구에서 기다리곤 있었어야지.”

“우리 대표님은 바쁘신 분이세요.”

“뭘 하기에 파티장에서도 바빠?”

“그건 저도 모르죠. 아마…… 트럼프랑 이야기라도 나누고 계시지 않을까요?”

파티장에 모인 유력인사들도 트럼프를 못 만나서 안달인데, 일개 기업 대표가 무슨 수로 트럼프와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스티븐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애나야. 너희 회사 대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건 불가능해. 지금 트럼프의 몸값이 얼마나 뛴 줄 알아? 각국의 정상들도 통화해 보겠다고 줄을 선 판국에…….”

“아, 저기 계시네요.”

이소영이 파티장의 안쪽, 귀빈실 입구를 가리킨다. 그곳엔 트럼프와 신우혁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진짜 트럼프와 같이 있던 거였어?”

스티븐은 너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지경이었다.

“제가 입이 아프도록 말했잖아요. 우리 대표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요.”

“이번 선거에 너희 회사가 도움을 줬다는 이야긴 들었다만…… 트럼프와 저 정도로 밀접한 관계일 줄은.”

깜짝 놀란 스티븐을 보고 이소영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이소영이 한국의 작은 회사에 입사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소영은 몇 번이고 설득에 나섰으나, 꽉 막힌 스티븐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들을 뿐이었다.

‘잘됐어. 앞으로는 회사에 다닌다고 잔소린 안 하시겠네.’

부녀가 속닥거리는 동안, 트럼프와 대화하고 있던 신우혁이 홀로 다가온다.

스티븐은 황급히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옷매무새까지 정리하며, 그를 맞이할 준비에 나섰다.

그는 이소영과 눈인사를 먼저 하고는 스티븐에게 인사를 건넨다.

“반갑습니다. WHTS컴퍼니의 대니얼 신입니다. 이소영 씨 아버지 맞으시죠?”

“마, 맞습니다.”

“소영 씨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기괴한 해저의 탐험가를 쓰신 소설가셨더군요.”

스티븐은 자신이 쓴 책의 이름이 나오자 표정이 싹 바뀐다.

“그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해저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를 잘 표현한 작품이더군요. 읽는 내내 감탄하며 봤습니다.”

“어흠. 해저 탐험가가 재미있었다면 후속작도 볼만할 겁니다.”

“그것도 이미 봤습니다. 심해보다 더 깊은 곳. 전작보다 더 다크한 느낌이라서 푹 빠져서 봤습니다.”

두 사람은 소설에 관한 시답잖은 이야기로 거의 5분을 넘게 떠들었다.

이소영은 따분해서 파티장의 디저트를 집어 먹고 있었는데, 때마침 대화의 주제가 소설에서 그녀 쪽으로 넘어간다.

“그나저나 대니얼 대표님께서는 저희 애나와 어떤 관계입니까?”

“어떤 관계라뇨?”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단순한 고용 관계면 이런 파티장에 초대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말이죠.”

이소영은 하마터면 씹고 있던 머랭을 뿜을 뻔했다.

그녀는 황급히 두 사람 사이에 파고들어서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저, 저기요. 여기까지 왔으면 이런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정치 이야길 하셔야죠. 앗! 저기 트럼프가 누굴 만나는데요. 영국 부총리 아녜요?”

그러나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우혁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온다.

“소영 씨는 제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순간, 이소영의 얼굴이 바닥에 깔린 벨벳처럼 붉어진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녀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은인 같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은인?”

“제가 소영 씨와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WHTS컴퍼니는 없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저 역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테지요.”

스티븐은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분위기라면 앞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회사 일로 왈가왈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소영이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내려놨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스티븐이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럼, 우리 딸을 이성으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 *

트럼프 당선 파티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

다른 이들은 파티장에서 트럼프와 어떻게 접촉할 지로 머릴 싸매고 있었지만, 나는 느긋하게 그가 머무는 호텔로 가서 독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대니얼, 그 소식 들었습니까? 힐러리를 그렇게 물고 빨아대던 영국과 일본 측에서도 파티에 참석한답니다. 염치라는 게 없는 것들이지요.”

트럼프는 교외로 놀러 나온 아이처럼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비방하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납작 엎드리게 됐으니, 나였어도 웃음을 참지 못했을 거다.

“공화당의 너구리 놈들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그렇게 후원금을 나눠달라고 했을 때 들은 척도 안 했으면서 쯧쯧…….”

“오늘 파티장에선 180도 달라진 모습이 될 겁니다.”

“그래 봤자 소용없습니다. 내가 당선될 바엔 힐러리가 당선되는 게 낫다고 떠들던 인간들을 어찌 믿겠습니까?”

나는 공감한다는 뜻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여준다.

“흠흠, 어쨌거나 이번 대선의 일등 공신은 디트로이트 공략을 밀어붙인 대니얼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제가 아니라도 판세는 우세했습니다.”

“어허. 또 이런다. 세상 모두가 인정한 사실입니다.”

그는 소파에서 거구의 상체를 일으켜, 몸을 앞으로 구부린다.

“나, 트럼프는 은혜를 확실히 은혜로 갚는 사람입니다. 어서 원하는 바가 있으면 말해보십시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난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입니다.”

트럼프의 커다란 두 눈엔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어떤 부탁을 해올지 기대하는 듯한 눈치다.

그렇다면 그 기대에 부응해서 최대한 세게 질러버릴 수밖에.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에 가했던 자산 동결과 원유 수출 금지, 해외 투자 제한을 풀어주십시오.”

트럼프는 방금까지만 해도 뭐든 들어줄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내 부탁을 듣고는 곧장 인상을 찌푸린다.

“베네수엘라엔 좌파 독재 정권이 들어서 있는데 제재를 풀어버리면…… 음…… 여러모로 곤란합니다.”

“정권을 바꾸면 어떻습니까?”

“그땐 문제 될 게 없지요. 즉각 해줄 수 있습니다.”

이 정도 대답이면 충분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속으로 꾹 밀어 넣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취임식 전까지 끝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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