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11화
디트로이트에 지어질 테슬러 공장은 단 하루 만에 승인이 떨어졌다.
이미 파산 상태인 디트로이트 측에선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미시간주의 주지사가 공화당 정치인이라는 것도 한몫을 거들었다.
남은 것은 공장 규모를 정하는 것뿐.
마음 같아서는 3,000에이커 이상의 초대형 공장을 짓고 싶었으나, 도심 지역에 그만한 부지가 없어서 규모를 축소해야 했다.
“아쉽네요. 주지사가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3,000에이커가 넘는 규모도 가능했을 텐데요.”
내가 주 정부에서 보내온 서류를 보며 중얼거리자, 같은 서류를 보고 있던 엘론이 놀라서 눈을 부릅뜬다.
“허허벌판인 텍사스 아니고, 디트로이트에 3,000에이커나 되는 공장을 짓겠다고요?”
“저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맙소사. 그건 미친 짓입니다! 그나마 주지사가 정상적인 사고를 해줘서 다행이군요.”
“원래 미친 짓을 벌이는 일부가 세상을 바꾸는 법입니다. 저나 트럼프,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이 여기에 속하죠.”
엘론은 한껏 미간을 찌푸린 채로, 손을 휘휘 내젓는다.
“제발 그 리스트에서 저는 빼주십시오. 비교 대상이 당신과 트럼프면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됩니다.”
“어째서죠?”
“진짜 몰라서 묻는 겁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엘론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목소릴 높였다.
“수십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를 동네 텃밭처럼 덜컥 계약한 것도 황당한데, 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고 절차를 싹 무시하고 하루 만에 건설 허가를 내줬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분초를 다투는 일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법이죠.”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당신들은…… 제가 40년간 쌓아온 상식을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엘론은 혼란스러운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말을 이어간다.
“자,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세우는 것은 확정 났으니, 이제 어떤 용도로 쓸지를 고민해 봐야겠군요.”
“기가 막히는군요. 일의 순서가 반대로 돼야 했습니다.”
“순서가 어떻든 간에 결과가 좋으면 된 거죠. 안 그렇습니까?”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 발표로 트럼프 지지율이 오르자, 테슬러 주가 역시 미친 듯이 치솟은 상태다.
그걸 알기에 엘론도 별다른 반문은 하지 못하고 얕은 한숨만 내쉬고 만다.
“텍사스 쪽은 픽업트럭과 SUV가 강세인 지역이니 신형 SUV 위주로 생산 라인을 깔 겁니다. 디트로이트는 나머지 수출 물량을 생산할 공장으로 쓸 거고요.”
“오호. 수출 물량 위주면 공장을 더 키워도 되겠군요?”
“하…… 대니얼, 왜 자꾸 공장을 키우려는 겁니까? 솔직히 지금 계획된 크기도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야, 앞으로 테슬러의 전기차가 얼마나 성공할지를 아니까 이러는 거지. 게다가 이번엔 트럼프가 지원까지 해줄 것 아닌가.
물론 그것 외에도 따로 진행하는 노림수가 있었다.
“우리 공장이 크면 클수록 도시는 더 발전합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이 디트로이트에 돌아올 것이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가능성도 커지는 거죠.”
“과거의 영광…….”
“디트로이트는 다시 위대해지는 미국의 시발점이 되는 겁니다.”
엘론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서 나를 쳐다본다.
“당신은 미국인도 아닌데 누구보다 미국을 위하고 있었군요.”
“한국은 미국의 지원으로 나라를 지켰고, 미국의 원조로 나라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러니 돕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디트로이트에 땅을 사둬서지만요.”
순간, 엘론의 표정이 감동에서 경악으로 바뀐다.
“땅이라뇨?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가 확보한 디트로이트 공장 부지 근처의 땅값은 1에이커당 2,000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구도심지 근처긴 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싼 가격이죠.”
그런 땅을 대량으로 확보해 뒀다가, 나중에 디트로이트가 발전한 뒤에 되팔면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이번 일을 진행했습니까?”
“겸사겸사입니다. 테슬러의 전기차 공장을 확보하고, 트럼프의 지지도 얻고, 투자 이익도 얻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나는 셈이죠.”
“아니, 디트로이트의 영광을 되찾게 해준다는 내용은요?”
다른 주제를 말하다 보니 깜빡했다.
나는 뻔뻔하게 내용을 덧붙인다.
“그럼 그것까지 더해서 일석사조라고 해둡시다.”
* * *
오후 늦은 시각.
나와 만나기 위해 디트로이트의 호텔까지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전용택 씨가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대표님과 통화가 안 돼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혹시, 전화번호를 바꾸셨습니까?”
“해외 출장 땐 다른 번호를 씁니다.”
“아, 그러셨군요.”
우리는 음료가 나올 때까지 가벼운 근황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양쪽 모두 사적인 대화는 나올 만한 게 거의 없었기에, 얼마지 않아 업무적인 대화로 넘어가게 됐다.
“테슬러가 전기차 공장을 대폭 증설한다는 소식이 들려서, 저희도 요즘 전장 부품 공장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천천히 준비하셔도 됩니다. 전기차 공장이 돌아가려면 내년 말은 돼야 할 테니까요.”
“그래도 미리 알아봐 두는 게 좋지요. 그래서 말인데…….”
전용택은 내 눈치를 한번 보고 말을 꺼낸다.
“이번에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에 저희 오성전자도 참여하면 어떻겠습니까?”
“한동안 연락이 없으시기에 제 제안을 거절하신 줄 알았는데요.”
“오해십니다. 저희가 조직이 크다 보니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지체돼서 그렇습니다.”
그게 아니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니까 헐레벌떡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온 거겠지.
나는 입가에 떠오르는 비웃음을 숨긴 채 말을 꺼낸다.
“지금 들어오면 손해가 크실 텐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최근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짓겠다고 나선 업체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것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업체들이 대부분이죠.”
“아…….”
“지금 오성이 참여한다면 그 업체들 마지막에 이름이 올라갈 겁니다.”
전용택은 낭패한 표정을 짓는다. 한 번의 판단 미스로 미국 대통령이라는 꿀통을 걷어차 버렸으니, 속이 쓰리다 못해 뒤틀릴 지경일 거다.
“그래도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지으시겠습니까?”
“그건…….”
뒤늦게 말석이라도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아예 백지화할지를 놓고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니면 제가 살짝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말입니까?”
“오성에서 짓는 공장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장비 공장 아닙니까? 그러니 테슬러와 연계된 공장이라고 잘만 포장하면 오성도 같은 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겠지요.”
전용택은 이거다 싶었는지 냉큼 낚싯바늘을 문다.
“저,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 정도는 충분히 해드려야죠. 저희는 파트너잖습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이번 은혜는 앞으로도 쭉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고갤 숙이려는 그를 막아 세운 뒤, 최대한 선량한 인상을 지어 보였다.
“아 참. 그래도 한가지 지켜주셔야 할 점은 있습니다.”
“어떤……?”
“공장을 지으실 때, 테슬러 공장 옆에 지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이야길 할 때 명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아유, 그건 당연하죠. 동선 낭비가 없도록 아예 딱 붙여서 짓겠습니다.”
테슬러 공장 주변에 오성전자 부품 공장까지 들어서면, 아무리 슬럼화된 구도심이라도 땅값은 폭발적으로 뛰게 될 터.
나는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꾹꾹 눌러가며 그에게 손을 뻗는다.
“앞으로도 힘을 합쳐서 잘해봅시다, 부회장님.”
* * *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자,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이다. 하지만 미국인의 체감은 그렇지 못했다.
나날이 팍팍해지는 가계와 치솟는 물가, 높아지는 실업률.
트럼프는 영리하게 이 점을 불법 이민자와 해외에 공장을 짓는 기업에 돌리며 대중의 지지를 끌어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워서 불법 이민자를 막겠습니다! 중국 생산품에 징벌적인 관세를 부과해서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만들겠습니다!
정치인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트럼프의 공약을 자유 무역에 반하는 멍청한 짓이라고 평가했다.
언론도 연일 트럼프의 다소 과격하고, 현실성 없는 공략을 부정적으로 보도했으며, 이 작전은 성공을 거두나 싶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다음 카드로 여론은 단박에 뒤집히게 된다.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
세계적인 자동차 공업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를 재건하자는 흔한 공략이었으나, 타 공략과는 결정적인 차별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대형 제조사들이 이 문제를 공감하고 발 벗고 나섰다는 것.
테슬러의 과감한 투자를 시작으로, 포드, GM 같은 미국 기업과 도요다, 대현, 오성 같은 해외 기업도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 이후 트럼프의 지지율은 6% 가까이 상승했으며,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힐러리를 넘어서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힐러리 측에서는 토론회에 나와서 본격적인 반격을 퍼부었다.
-트럼프는 사기꾼입니다! 디트로이트 프로젝트는 급조한 공략을 내세워서 표를 받아보겠다는 수작질에 불과합니다.
-정말 시끄럽군요. 테슬러는 이미 디트로이트에 공장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저것도 거짓말입니다! 테슬러는 텍사스에 3,000에이커 규모의 공장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디트로이트에 추가로 1,800에이커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고요?
-둘 다 짓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했습니다. 아주 커다랗고 멋진 공장이 될 것입니다.
-작년에 겨우 전기차 5만 대를 팔았던 회사에 그만한 돈이 어디 있습니까?
-테슬러엔 얼마 전 최대 주주가 된 투자사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돈을 지원받기로 했습니다.
힐러리는 이 대답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말을 쏘아붙인다.
-WHTS컴퍼니라는 수상한 회사를 말하나 보군요.
-수상한 회사가 아니라 가상화폐라는 아주 유망한 기술을 가진 회사입니다. 이해합니다. 자기가 모르는 기술이면 전부 수상해 보이긴 하죠.
-당신은 그 회사가 어디에 있는 줄 압니까?
-한국에 있습니다.
-아닙니다.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습니다. 주소를 확인해 보니 페이퍼 컴퍼니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런 회사가 투자한다는 말만 믿고 디트로이트에 땅을 내줬단 말입니까?
토론회가 진행되는 내내 힐러리는 WHTS컴퍼니를 물어뜯어서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를 무너트리려 했다.
반대로 트럼프는 끝까지 자신의 치적이 될 프로젝트를 방어하려 했고.
이 때문에 토론회가 끝난 당일엔 WHTS컴퍼니 특집 기사가 신문 1면을 차지할 정도였다.
“휴, 이걸 어째야 하나. 난처하게 됐네.”
신문에 실린 우리 회사의 이름을 보자마자 한숨이 먼저 나왔다.
선거 과정에서 적당히 이득만 챙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WHTS컴퍼니가 미국 대선이란 폭풍 한가운데 서게 됐다.
‘여기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자칫 민주당 후보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후보자에게 줄을 대는 것과 상대 후보를 직접 공격하는 것은, 정치적 민감도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자니 WHTS컴퍼니는 각종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지지율 추이를 보면 트럼프가 당선될 것 같긴 한데…… 무시하고 대선이 끝나길 기다려? 아니면 시원하게 들이 받아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