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10화
“제안에 만족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준비는 저희 측에서 해두겠습니다. 일정이 조율되면 연락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트럼프와 통화를 마치고 옆을 돌아본다. 그곳엔 얼빠진 표정의 전용택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히쭉 웃어주며 말했다.
“통역이 필요하십니까?”
“어…… 예?”
“통화 내용 말입니다. 못 알아들으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전용택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도리질 친다.
“내용은 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 도중에…… 도시를 부활시킨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예, 저는 디트로이트를 다시 예전의 공업도시로 되살릴 생각입니다.”
그는 황당하다는 수준을 넘어, 아연실색에 가까운 표정으로 되묻는다.
“디트로이트는 절대 투자할 만한 도시가 아닙니다. 그곳은…….”
“저도 압니다. 미국 최악의 도시죠. 재작년엔 파산을 선언해서 도심 대부분이 슬럼화가 됐고요.”
“다 알면서 트럼프에게 이야길 꺼낸 이유가 뭡니까? 이건 미친 짓입니다!”
이대로 선거가 무난하게 흘러가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미합중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트럼프에 줄을 댄 나로선 좋은 일이지만 이것만으론 흔한 후원자A가 될 뿐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물론이고, 모든 미국인에게 확실한 임팩트를 심어 줄 수 있는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몰락한 도시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
앞서 전용택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디트로이트의 현 상태는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었다.
도시를 떠받들던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면서 중산층이 대거 빠져나갔고, 빈곤층만 남겨진 도시는 빠르게 슬럼화됐다.
이미 치안은 무너진 지 오래다.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혔으며, 경찰들도 근무를 피할 정도였다.
이런 막장 도시에 돈을 싸 들고 가서 투자하겠다고 나서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들, 나를 미친놈 취급하겠지.’
실제로 미친 계획이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는 효과적인 프로파간다로 평가될 것이고, 내 평가는 단숨에 후원자A에서 트럼프 당선의 주역으로 치솟게 된다.
“전용택 씨는 제 계획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봅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계획이잖습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되면 누구나 시도했을 테지요. 그렇게 되면 그에 따른 리턴도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일부러 선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를 쳐다본다.
“아직도 제 행보를 보고 마음이 흔들립니까?”
“그건…….”
“만약 그렇다면 파트너로서 같이 움직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오성그룹이 투자해 주면 디트로이트 재건에 큰 도움이 되겠군요.”
방금까지 열심히 움직이던 전용택의 입이 다물어진다.
애초에 이번 디트로이트 투자는 트럼프가 당선될 미래를 모른다면 절대 수긍할 수 없는 계획이다.
‘여길 참가하면 그게 진짜 미친놈이지.’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남긴다.
“전용택 씨,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시면 연락해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인천공항에서 13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끝에, 디트로이트 웨인 카운티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 입국장에는 먼저 디트로이트에 도착한 엘론이 경호원과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대니얼, 미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그는 반가움과 걱정이 반반쯤 섞인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요즘 테슬러는 좀 어때요?”
“아주 평온했습니다. 대니얼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하…….”
엘론은 악수한 손에 힘을 주며 나를 잡아당긴다. 그러고는 이를 꽉 물고서 말했다.
“갑자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디트로이트에 전기차 공장을 짓는다니요?”
“그렇게 됐습니다.”
“여기에 전기차 공장을 지으면 텍사스 공장은요? 이미 그쪽 주지사와 부지 선정에 세금 합의까지 다 해뒀단 말입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부터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나는 엘론이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목을 한 바퀴 돌려서 그의 손을 털어냈다.
“텍사스 공장은 계획대로 진행합니다.”
“설마 신축 공장을 두 곳 동시에 짓자는 말은 아니겠죠?”
“그 설마가 맞습니다.”
“아니, 왜 그리 무모한 짓을 벌이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씩 차근차근해도 되잖습니까?”
엘론은 두 손바닥을 번쩍 치켜들면서 특유의 황당하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천재일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년에 한 번 만나는 기회란 뜻이죠.”
“지금이 그 천 년 중 한 번이라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확실한 푸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오겠는가.
그러나 엘론은 나처럼 확신이 없었기에 여전히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트럼프가 당선되고 우릴 밀어준다고 칩시다. 공장을 지을 돈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돈은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테슬러가 신축 공장 두 곳을 동시에 돌릴 만한 역량이 있느냐지요.”
“기존 공장을 돌리며 쌓은 노하우가 있기에 신축 공장이 몇 개가 지어지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됐군요. 저는 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엘론은 공장 가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 셈이죠.”
“아니, 그게…… 아으.”
내가 공항 출구 쪽으로 걸어나가자 엘론도 마지 못해 내 뒤를 따라온다.
공항을 나서고 처음 맞이하는 디트로이트의 풍경은 평이했다.
귀가 따갑도록 최악의 도시라는 말만 들어서 그런지, 멀쩡한 모습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긴 도심지 외곽이라 나름 괜찮은 편입니다. 구도심으로 들어가면 범죄 영화에서나 보던 슬럼가가 나옵니다.”
그는 주차해 둔 차로 다가가서 주먹으로 유리를 두드린다.
내가 알던 유리의 소리가 아니라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곳까지 들어가려면 무조건 방탄 처리된 차를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런 동네에 공장을 짓고 싶습니까?”
“땅값은 싸겠군요.”
엘론은 고갤 절레절레 흔들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는 안전을 생각해서 도심지 외곽만 둘러보자고 했지만, 나는 이왕 왔으면 8마일 도로 정도는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8마일 도로를 아는 이유는 에미넴 주연의 영화 덕분이었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실제 디트로이트의 8마일 도로는 영화보다 더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유명한 곳임에도 주변은 굉장히 삭막하군요.”
“저 아래 쪽, 디트로이트 시내로 내려가면 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극빈층 흑인들이 사는 곳이죠.”
“반대쪽은요?”
“거긴 백인들이 사는 곳이라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꼭 공장을 지어야겠다면 저쪽을 알아봐야 할 겁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본심을 중얼거린다.
“공장 부지는 8마일 도로 인근으로 알아봅시다.”
잘 달리던 자동차가 ‘끽!’ 하는 소리와 함께 급정거한다.
“대니얼! 내가 방금까지 했던 말을 못 들었습니까? 여긴 치안이 엉망입니다. 밤만 되면 총성이 들리고 매일 아침엔 시체 치우는 차가 오는 곳이란 말입니다.”
“주지사와 상의해서 근처에 경찰서를 여러 개 지어 달라고 하면 될 일이죠.”
“그럴 바엔 텍사스 공장을 더 크게 짓는 게 낫습니다.”
“텍사스에서 아무리 후한 조건을 내걸어도 디트로이트만 할까요. 여기에 공장을 짓는다고 하면 세금 면제는 기본이고, 막대한 투자 지원금, 그리고 부지도 공짜로 퍼줄 테죠.”
내가 고집을 꺾지 않자 엘론이 한발 물러선다.
“후…… 알겠습니다. 그럼 딱 하나만 묻죠. 많고 많은 땅 중에 왜 하필 디트로이트입니까?”
“디트로이트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원래 자동차 공업단지로 유명한 곳이니 상징성은 있겠지만,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우리가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세우면 20년 만에 완성차 공장이 들어서는 거라고 합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디트로이트가 부활한다면 테슬러는 미국의 차세대 국민차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엘론은 내 계획을 이해한 듯했으나, 표정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효과가 있을지를 의심하는 것이리라.
사실, 내가 떠벌린 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무리하게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짓냐고?
디트로이트는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서서히 부활할 거다. 이미 외곽의 신도심 쪽은 브랜드 매장과 카페, 각종 상업 시설이 돌아오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타이밍에 테슬러 공장이 들어서고, 디트로이트가 부활하면 그 공은 전부 트럼프와 테슬러의 몫이 된다.’
트럼프가 자신의 업적이나 마찬가지인 테슬러의 전기차를 팍팍 밀어주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안 그래도 유망한 전기차 산업이 트럼프의 전폭적인 지원사격까지 받는다면?
그땐 모두의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테슬러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 * *
-최근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폭발적입니다. 한때 12%의 격차를 보였던 양 후보의 지지율은 3%까지 좁혀졌으며,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역전 발표까지 나왔습니다.
-상승세의 원인이 뭘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한 방은 디트로이트 부활 프로젝트 선언입니다.
-디트로이트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트럼프 후보는 디트로이트에 2,000에이커 규모의 전기차 제조 공장을 지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불황으로 쇠락한 디트로이트에 다시 자동차 공장을 짓는다. 아이디어만 들으면 좋은 것 같습니다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이야깁니까? 규모가 너무 큰 것 같은데요.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트럼프 후보의 유세 현장에 테슬러 CEO가 등장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이 폭등한 시점도……
TV에서 뉴스가 나오는 동안, 모여 앉아 있는 이들은 숨소리까지 죽인 채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모두가 눈치를 보게 만든 장본인, 전용택은 탁자를 부숴 버릴 기세로 내리친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저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응? 누가 말 좀 해봐!”
전용택은 디트로이트 프로젝트 참여 제의를 받은 뒤, 수없이 많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고 다녔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같았다.
프로젝트에 절대 참여하지 말 것.
그래서 전용택 역시 프로젝트 불참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따로 연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프로젝트의 뚜껑을 열어보니 트럼프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힐러리 쪽은 연이은 악재가 펑펑 터졌다.
‘이대로 트럼프가 당선되고 디트로이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나는…… 나는…….’
애초에 모르고 있었으면 아쉽지라도 않지, 코앞까지 굴러 들어온 복덩이를 걷어찼다고 생각하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비서실장이 조심히 의견을 낸다.
“부회장님, 지금이라도 디트로이트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발표까지 끝났는데 무슨 수로?”
“저희는 아직 거절 의사를 보낸 게 아니잖습니까. 그러니 결정에 시간이 걸렸다고 둘러대고 슬쩍 합류하는 겁니다.”
너무 속 보이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룹의 실리를 생각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프로젝트에 끼는 것이 옳았다.
‘망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한다고 할걸.’
후회는 언제나 늦었을 때 찾아오는 법이다.
전용택은 주저함이 더 커지기 전에 그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