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09화 (109/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09화

아침을 여는 오전 회의 시간.

여느 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와서,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들의 인사는 돌아왔으나 분위가 이상하다.

모두의 경직된 표정부터, 회의실에 내려앉은 무거운 기류까지, 좋은 아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 그게…….”

팀원들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옆에서 이소영이 목소릴 낸다.

“아침에 초대형 사건이 터졌잖아요. 최명자 구속. 설마, 뉴스 못 보셨어요?”

최명자 구속은 대형 사건이 맞다. 하지만 사건의 결말을 아는 나로선 뉴스가 계속 나와도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못 봤을 리가요. 포털 1면부터 싹 도배를 해뒀던데요.”

“그런데도 대표님은 굉장히 평온하시네요.”

“그야, 국가 차원에선 큰일이 맞지만, 우리 회사와는 관련 없는 사건 아닙니까.”

“관련이 왜 없어요.”

이소영은 얼른 내 옆으로 다가와서 휴대폰 화면의 뉴스를 보여준다.

[가상화폐 폭로 생방송이 불러온 나비효과. 들끓은 여론이 최명자 구속에 일등 공신이 되다.]

포털 기사에는 최근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타임라인으로 표시해 두고 있었다.

대부분 최명자의 각종 비리 의혹이 차지하고 있었으나, 핵심 사건으로 지목된 것은 가상화폐 폭로 생방송이었다.

“이거, 제가 폭로 방송을 해서 최명자가 구속됐다는 뜻입니까?”

“맞아요.”

“비약이 너무 심하군요.”

“이 기사에서만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에요. 여기 보세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잖아요.”

최명자 구속은 내가 가상화폐 생방송을 하지 않았더라도 발생할 일이었다. 곧 비선 개입과 비리의 증거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서 올라올 테니까.

그런데 어쩌다 보니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기도 전에 최명자가 잡혀 버렸다.

범죄 증거가 없다.

만약 이대로 최명자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 버리면, 그 불똥이 우리 쪽으로 튈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최근 정부 지지율은 어때요?”

“얼마 전에 24%에서 21%까지 빠졌고, 이번에 최명자 구속 이슈까지 포함되면 더 빠지지 않을까요?”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내게 호재였다. 그럴수록 그들이 숨기고 있던 지저분한 진실이 더 빠르게 드러날 테니까.

그 길의 끝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탄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앞날을 까맣게 모르는 이소영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정부에서 보복이 들어오면 어쩌죠? 당장은 그럴 여력이 없더라도, 나중에 여론이 잠잠해지면, 그땐…… 이번 정부 임기가 아직 2년이나 남았잖아요.”

“그렇게까지 길진 않을 겁니다.”

“길지 않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소영이 예리하게 치고 들어온다. 나는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냥 혼잣말입니다. 그쪽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회의나 시작합시다. 오늘 주제가 뭐였죠?”

* * *

“휴우…….”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한숨이 몰아서 나온다. 회의하는 내내 최명자 건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서 집중을 못 했다.

‘나 때문에 역사가 바뀌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구속 시기가 조금 빨라졌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벌써 대표실 코앞까지 다다랐다.

대표실 앞엔 비서가 서 있었다.

“대표님, 손님이 와 계십니다.”

“누구죠?”

“오성전자의 전용택 부회장님입니다. 우선은 응접실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전용택은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 중 하나다.

최명자에게 수백억 원의 뇌물을 주고, 자신의 불법 경영 승계를 청탁한, 사실상 정경 유착의 표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런 타이밍에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뭘까? 위기를 감지했나? 아니면 그냥 제 발이 저려서?’

어쨌거나 연락도 없이 찾아올 정도라면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대표실로 모셔올까요?”

“아닙니다. 제가 응접실로 내려가죠.”

“알겠습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가 기다리고 있을 응접실로 향했다.

전용택은 내가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내게 고갤 숙인다.

“신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예. 그런데 오랜만이라기엔 두 달 전에 호텔에서 뵀던 것 같은데요.”

“하하. 두 달이면 오래된 거죠.”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음료가 나올 때까지 짧은 안부 인사를 나눴다. 그러다 전용택 쪽에서 먼저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낸다.

“얼마 전에 대표님께서 직접 생방송에 출현하셨더군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방송을 보셨습니까?”

“당연히 봤지요. 그것도 생방송으로요.”

전용택은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눈을 내게 맞춘다.

“가상화폐로 사기 치는 방송인들을 철저히 응징하시는 모습. 보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었습니다.”

“아뇨.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 한 번의 방송으로 최명자까지 끌어내리시다니, 저 같은 범인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회의실에서 이소영에게 들었던 소리를 전용택에게 또 듣게 될 줄이야.

나는 즉각 손을 내젓는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저는 가상화폐 사기를 근절하고 싶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부정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다 알고 왔으니까요.”

“예?”

전용택은 한껏 목소리에 힘을 주고서 말을 계속했다.

“최명자는 이번 사태만 진정되면 가상화폐에 막대한 세금을 물려서 WHTS컴퍼니의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딱, 대표님의 생방송이 화제가 되면서 여론이 진정되긴커녕 더 끓어올라 버렸습니다.”

“…….”

“정확한 타깃 지정과 시기적절한 타이밍. 이래도 모두 다 우연이라고 발뺌하실 겁니까?”

이미 그의 눈빛과 목소리, 모든 면에서 확신에 차 있었다.

상대가 저렇게까지 나를 고평가해주는데, 내가 굳이 나서서 오해라고 떠벌릴 필요가 있을까?

나는 한껏 어깨를 치켜들며 저절로 움직이는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그래서요? 그게 어떻단 말입니까.”

그는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아낸 사람처럼 히쭉 웃으며 말을 잇는다.

“역시 제 예상이 맞았군요. 신 대표님이 그간에 있었던 테슬러 건과 휴대폰 발화 건을 처리하시는 것을 보고, 이번 건도 그러리라 생각했습니다.”

“정부에 보고라도 할 셈입니까?”

“그럴 리가요. 저는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파트너 아닙니까.”

누구 마음대로 파트너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거려준다.

“그저 신 대표님의 결정 중에 의아한 점이 하나 있어서, 그걸 여쭈어보고자 찾아온 겁니다.”

“뭐가 의아하단 말입니까?”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쪽을 지지하셨더군요.”

반사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전용택은 분위기를 살피다가 즉각 변명을 덧붙인다.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희도 후원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기사를 보고 알게 됐습니다.”

“무슨 기사요?”

“테슬러 신축 공장을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에 짓는다는 기사입니다. 그건 사실상 트럼프를 밀어준다는 뜻인데…… 아시다시피 최근 그쪽 분위기가 안 좋잖습니까.”

여론조사와 인터넷 여론, 언론사 당선 예상까지, 모든 지표는 힐러리의 당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 역시 이때까지만 해도 힐러리가 당선될 줄 알았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지만.’

이런 고급 정보를 그에게 알려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기에, 모르는 척 말을 돌린다.

“그렇다면 전용택 씨는 힐러리에 후원금을 넣으면 되겠군요. 그럼 된 것 아닙니까?”

“이미 어느 정도는 민주당 쪽에 후원금을 넣어뒀습니다만, 신 대표님의 행보를 보고 나니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시면 안 됩니다.”

“국내에서 전문가라고 떠드는 것들보단 백배 천배 낫다고 봅니다.”

나는 끈덕지게 따라붙는 전용택을 빤히 쳐다본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렬한 눈빛을 보내서 내 속내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귀찮은 게 들러붙어 버렸어.’

* * *

미국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공화당 후보인 도날드 트럼프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공개 연설과 TV 토론회, 각종 강연 일정만으로도 지치는데, 후원금 조달을 위해서 비공개 후원 행사까지 참석해야 했다.

대선을 고작 한 달 앞둔 후보가 후원 행사에 다니는 게 말이 되나 싶겠지만, 트럼프로선 어쩔 수 없는 행보였다.

공화당은 아예 지원을 끊어버렸고, 외부 후원은 소액만 들어올 뿐.

미국의 100대 기업 CEO 중에 트럼프를 후원하는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치익-.

벌컥. 벌컥. 벌컥.

“크으!”

지친 그를 달래주는 것은 차에서 마시는 시원한 콜라가 전부였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그는 진즉에 선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후보자님.”

콜라의 달콤 쌉싸름한 뒷맛을 다 느끼기도 전에 비서가 서류철을 들고 등장한다.

트럼프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정기 지지율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번 조사 대비 무려 0.9%나 상승했습니다.”

트럼프는 비서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서류철을 빼앗아 온다.

비서의 말처럼 0.9%가 상승한 것은 맞았다. 여전히 힐러리와는 격차가 11%나 나서 문제였지만.

“내가 망할 언론사 놈들의 조사를 믿을 것 같아?”

트럼프는 분을 토해내며 서류를 구겨서 바닥에 내팽개친다.

최근 언론의 행태를 보면 구역질이 치밀었다.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는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내보냈고, 유리한 보도는 단신 처리하거나 아예 무시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최근엔 더러운 공작까지 더해지고 있었었다.

13세 성폭행 스캔들.

트럼프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부자인 그가 뭐 하러 성폭행 따위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기억도 흐릿한 1994년도에 발생한 일을 2016년에 와서 꺼내는 것은 누가 봐도 정치공작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연일 이에 관한 보도를 내보내서, 트럼프를 강간범으로 몰아갔다.

‘어떻게든 이번 선거에서 이겨야 해. 아니면 내가 지금껏 쌓아온 명예는…….’

고뇌에 빠진 트럼프의 콜라가 바닥을 드러냈을 무렵, 비서가 다시금 말을 붙인다.

“후보자님.”

“그만해. 지금은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그게 아니라…….”

비서는 트럼프의 눈치를 살피며 휴대폰을 앞으로 내민다.

업무용으로 쓰는 휴대폰이었다.

그는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대통령님, 그간에 무탈하셨습니까.

저 대통령님이라는 호칭.

트럼프는 듣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오! 대니얼. 오랜만입니다. 왜 이리 연락이 뜸했습니까.”

-바쁘실까 봐 연락을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대니얼의 전화라면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핫핫핫.”

이후에도 두 사람은 한참이나 웃으며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다 상대 쪽에서 먼저 화제를 돌린다.

-그보다, 들리는 말로는 선거 전황이 썩 좋지 못하신 것 같더군요.

“언론을 믿지 마십시오. 그들은 전부 사기꾼입니다.”

-당연히 곧이곧대로 믿진 않습니다. 하지만 추세가 불안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통화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트럼프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상대도 그걸 아는지 잽싸게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님을 도울 카드를 준비했습니다.

“카드?”

-예, 불리한 전세를 한 방으로 뒤집을 수 있는 핵폭탄급 카드지요.

삐딱하게 앉아있던 트럼프는 휴대폰을 고쳐잡고서 상체를 일으킨다.

“그 카드가 뭐요? 말해보시죠.”

-미국을 더 위대하게. 이 슬로건에 가장 걸맞은 도시를 부활시킨다고 발표하십시오. 그거라면 전세를 역전할 수 있습니다.

“그곳이…… 어딥니까?”

트럼프는 캔에 남은 콜라 몇 방울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래야 할 만큼 그의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비참하게 몰락한 도시, 디트로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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