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08화
-이어서 국정 감사 소식입니다. 야당은 비선 실세 의혹이 있는 최명자 씨의 딸 특혜 입학 여부를 추궁하고 나섰습니다. 여야는 최명자 씨를 증인으로 채택할지를 두고 공방전을 이어갔으며…….
뉴스가 나오던 TV를 향해 유리 화병이 날아든다.
쨍그랑!
산산이 조각난 화병.
그러나 TV는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지기만 했을 뿐, 여전히 보도를 이어간다.
-다음 소식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코인게이트 사건이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인증한 아리랑코인의 실소유주가 이번 비선 실세 의혹이 있는 최명자 씨라는…….
이번은 유리 화병보다 더 커다란 화분이 통째로 날아든다.
콰득.
벽면에 걸린 TV 화면이 움푹 들어간다. 그러나 TV에선 여전히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앵커의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최, 최, 최명즈아아아…… 직접…… 으아아리랑코인을 사, 샀다는 제보그아아아…….
참다못한 최명자는 아예 골프채를 꺼내와서 TV를 후려친다.
“시끄러워! 제발 좀! 좀 닥치라고!”
최명자의 발악을 견디다 못한 TV가 완전히 박살 났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분을 주체 못 하고 애먼 거실을 깨부쉈다.
더는 골프채를 휘두를 체력이 없어진 뒤에야 그녀의 발작이 진정된다.
“저, 저 방송하는 기자 놈들부터 혀를 뽑아 버려야 해. 그래야 저딴 개소릴 못 하지.”
광인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도 이젠 익숙했다.
그녀는 핀치에 몰려 있었다.
국정 감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만 해도 끔찍한 일인데, 야당은 그녀를 직접 증인으로 세우길 원했다.
정부와 여당의 힘으로 국정 감사까지는 어찌 무산시키긴 했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코인게이트.
WHTS컴퍼니가 진행한 생방송 이후부터 뉴스에서 끊이질 않고 등장하는 사건이다.
생방송 시청자만 무려 700만 명.
그중 절반이 국내 시청자였을 만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탓에, 국민의 관심은 정부 인증 가상화폐였던 아리랑코인까지 옮겨붙게 됐다.
“이게 다 WHTS컴퍼니의 그놈 때문에 생긴 일이야. 빨리 그놈을 잡아서 처넣어야 해. 이왕 넣을 거면 죄까지 뒤집어씌우자. 그래, 그게 좋겠어. 후후후.”
그녀는 엉망이 된 거실을 돌아다니며 혼자 망상에 빠져서 화를 냈다가, 흐느꼈다가, 웃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10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 누군가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사모님, 큰일 났습니다!”
평소 최명자의 수발을 드는 수행비서였다.
“뭔 일이야?”
“검찰 쪽에서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당분간 해외로 나가 계심이…….”
“웃기시네! 나 최명자야. 검찰 나부랭이들이 나선다고 뭐라도 될 것 같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그녀는 실제로 정부와 여당, 그리고 검찰까지 손에 쥐고 흔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다려 봐. 내가 전화 한 통만 걸면 전부 해결되니까.”
최명자는 전쟁터 같은 거실 바닥에서 휴대폰을 찾아낸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데, 연결음만 계속 이어질 뿐, 좀처럼 통화 연결이 안 된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번호를 바꿔서 걸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제야 최명자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것들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더니 어찌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꾼단 말인가.
최명자는 이를 갈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칼을 내리치고 싶었으나 지금은 한 수 접을 때였다.
* * *
야심한 밤.
도심지 부촌에서도 단연 존재감을 뽐내는 저택의 문이 열린다.
그 안에서 나온 차량은 수억을 호가하는 고급 세단이었다.
부웅.
고급 세단이 먼저 출발하고, 약간의 텀을 두고 경차 한 대가 그 뒤를 따라나선다.
“야 이, 씨X. 우리는 개털 돼서 경차도 간신히 끌고 다니는데, 저년은 벤츠 타고 나가네?”
“방송 나가고 있습니다. 욕은 자제해주세요.”
“아니, 저걸 보고도 어떻게 욕을 안 합니까? 안 그렇습니까, 시청자 여러분?”
고급 세단의 뒤를 쫓는 이들은 가상화폐 사기 피해자 모임, 공정사회실천연대의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고급 세단을 뒤쫓는 동안 쉬지 않고 카메라를 향해 떠들어댄다.
“여러분, 저 앞에 보이는 벤츠에 최명자가 타고 있습니다. 이 밤에 어딜 가는 걸까요? 이대로 청와대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
“청와대 방향은 아닙니다.”
“아, 그럼 어디일까요? 검찰청에 가는 건 아닐 테고…… 설마 해외로 도주?”
“아직 출국금지 처분은 안 나왔으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런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체포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게 놔두다니, 대한민국의 정의가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참으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고급 세단은 서울에서 인천 방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빠져나간다.
“공항입니다! 공항! 여러분, 최명자가 진짜 해외로 튈 생각인가 봅니다. 빨리 신고해서 잡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영장이 나온 게 아니라서 신고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하. 해외로 튀는 걸 보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마이크를 든 진행자는 펄쩍펄쩍 날뛰며 소릴 지른다.
“여러분 이대로 최명자를 보냈다간 사태가 흐지부지 끝나 버립니다. 아리랑코인에 사기당한 돈도 돌려받지 못할 거고요. 막아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 서든 막읍시다!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을 보태주십시오!”
어느덧 고급 세단이 인천공항 출국장에 멈춰 섰고, 그 안에서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최명자가 내려선다.
그녀는 수행원 둘을 대동한 채 빠른 걸음으로 공항에 들어갔다.
미행하던 방송인들도 차를 세우고 그녀의 뒤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으니.
“너희들은 뭐야?”
아까 먼저 들어간 줄 알았던 수행원들이었다.
“막지 마라! 비켜!”
방송인들은 억지로 수행원을 뚫고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전문 경호원들.
방송인들은 달려드는 기세만 좋았을 뿐,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 해보고 제압당했다.
“끅…… 이러는 거 언론 탄압이야!”
“뭐야? 기자였어?”
“그래, 우리는 시민 기자다!”
경호원들은 그들의 행색과 카메라를 빠르게 훑더니 콧방귀를 뀐다.
“시민 기자 같은 소리 하네. 방구석 백수 새끼들이.”
이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최명자는 이미 공항 안쪽까지 도착해 있었다. 이대로 출국장까지 들어가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방송인은 마지막 발악으로 소릴 질렀다.
“최명자가 해외로 도망갑니다! 여러분, 막아야 합니다! 범죄자가 도망가게 둬선 안 됩니다! 도와주십시오!”
수행원도, 최명자도, 심지어 소릴 지른 방송인조차도 공허한 외침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소리와 동시에 출국장 쪽으로 한 무리의 인파가 우르르 뛰어나온다.
“저 사람이 최명자다! 출국장으로 못 가게 막읍시다!”
“내 투자금 돌려줘!”
“방송 보고 나왔어요! 공사연 힘내세요!”
등장한 인파는 이들을 도우러 나온 시청자들이었다.
최명자가 그들을 뿌리치고 도망가려 하자 이번엔 주변 행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여러분 범죄자 최명자가 해외로 도망가려 합니다! 도와주세요!”
“시민 여러분! 최명자를 막아야 합니다!”
이번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최명자 주변에 몰려든다.
그들은 최명자를 둥글게 포위하듯이 가로막았다.
“너희들 누구야? 안 비켜?”
최명자가 소릴 질러도 물러서는 시민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소란 때문에 사람이 더 몰려들 뿐이었다.
“이 더러운 것들!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희들 얼굴 다 기억했어! 전부 빵에 처넣을 줄 알아!”
* * *
-국정농단 의혹으로 검찰에 조사받던 최명자 씨가 긴급체포 됐습니다. 이날 검찰은 “국외 도피를 시도했으며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라며 최 씨의 체포 사유를 밝혔습니다. 검찰은 곧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며…….
TV를 지켜보던 전용택은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넋이 나가 있었다.
그건 같이 앉아 있던 오성그룹의 전략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의 실세이자 나라를 쥐고 흔들던 최명자가 구속될 줄이야.
이 소식은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최명자가 구속될 일은 없다면서?”
“그것이…….”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기에, 전략팀 직원들은 고갤 숙인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일이 해결돼? 지금껏 벌여둔 일, 그리고 뒷수습을 어찌할지를 빨리 제시해 보라고!”
전용택이 다그쳐도 전략팀 직원 중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모두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하…….”
가상화폐 사기 폭로 생방송이 아리랑코인으로 옮겨가고, 그에 불안을 느낀 최명자가 해외로 도피하던 도중 시민들에게 붙잡혔다.
그 와중에 그녀가 내뱉은 말이 방송을 타면서 사태는 임계점을 넘게 된다.
-이 더러운 것들!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너희들 얼굴 다 기억했어! 전부 빵에 처넣을 줄 알아!
검찰이 봐주고 싶다고 해서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까지 검찰이 수사를 뭉갰다면 아마 폭동이 일어났으리라.
‘이 모든 일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그게 아니라 그가 전부 계획한 일이라면?’
최명자는 국정 감사 기간이 끝나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신우혁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전용택은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신우혁이 위기에 빠지면 그때 백기사가 되어 그를 돕고, 그에 상응하는 이득을 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최명자가 먼저 몰락해버렸다.
‘신우혁은 이것까지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건의 시발점부터 막간까지의 모든 요인이 그를 가리켰다.
결과적으로 신우혁은 제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여론만으로 최명자를 끌어내린 셈이다.
‘무리한 생방송 폭로가 이걸 노린 포석이었다면…… 그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전용택은 내심 신우혁을 경계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의 경계심은 점차 두려움으로 변했고, 지금은 그 단계까지 넘어 경외감마저 들고 있었다.
“신우혁…… 그는 뭘 하고 있지?”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매일 숙소와 사옥만 오가며 통상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 사태가 그의 계략이라면 이후의 수 역시 계획해 뒀을 터.
전용택은 필사적으로 그의 수를 읽어보려고 머릴 쥐어짠다.
“야당이나 다른 정치인, 아니면 유력 인사에게 줄을 대진 않았고?”
“정치권과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릴 두고 있습니다. 그나마 연결 고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 미국의 트럼프에게 후원금을 댔다고 합니다.”
“공화당의 도날드 트럼프?”
“그렇습니다.”
미국은 11월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간의 토론회가 한창이었다.
여론 조사가 나올 때마다 결과는 항상 민주당 힐러리의 압승.
그런데 신우혁은 승산이 없는 트럼프에 베팅했을 줄이야.
“이유가 뭐지?”
“…….”
“왜 아무도 대답이 없어? 뭐라도 의견을 내봐! 그래야 대책을 세울 것 아냐!”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를 모아둔 오성의 전략팀이건만, 신우혁의 계획을 예측하긴커녕 그의 의도를 분석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줄이야.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했던 오성의 앞날에 불확실성이라는 안개가 찾아왔다.
이대론 눈을 감고 운전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더는 알량한 자존심 따위를 지키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를 직접 만나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