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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107화 (107/174)

출소 후 코인 재벌 107화

시청자 숫자가 곧 수익인 인터넷 개인방송은 매번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주제를 방송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주제라도 매번 새롭고 자극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과장을 보태고, 허위를 섞다가, 종국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다.

나도 처음엔 이번 사태를 인터넷에서 흔히 벌어지는 그렇고 그런 일 중에 하나라고 여겼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벌을 주고 끝낼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개인 방송 100년 정지, 혹은 수익 불가 채널로 강제 전환 등.

그런데 이게 웬걸. 방송인들의 뒤를 조사하다 보니 이번 사태가 ‘흔히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뭐 하는 짓입니까? 다시 마이크 켜요!”

“이봐요, 장난치지 맙시다.”

“마이크 다시 켜세요! 토론이라면서 이러기가 어디 있어요?”

방송인들은 꺼진 마이크를 가리키며 소릴 질러댄다. 짖어대는 꼴을 보니 아직 자신들이 어떤 처지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하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토론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감추고 있는 더러운 진실을 폭로하러 나선 것이죠.”

내 입에서 재차 폭로라는 말이 나오자 항의하던 방송인들이 움찔거린다. 구린 구석이 잔뜩 있으니 반사적으로 저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소시오패스처럼 양심의 가책이 없는 인간도 있게 마련이다.

“폭로? 헛소리하지 마시죠. 쫄리니까 진흙탕으로 끌고 가겠다는 겁니까?”

무지개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사내가 앞으로 나선다.

그가 목소리를 내자 다른 방송인들도 다시 원래의 뻔뻔한 얼굴로 돌아왔다.

‘저 녀석이 리더로군.’

나는 상황실 쪽으로 무지개 머리의 마이크를 켜달라고 손짓하고는 이야길 시작한다.

“그쪽의 방송을 몇 번 봤습니다. 방송하는 내내 도토리코인을 팔아야 하는 이유를 떠들더군요.”

“왜요? 그래서 열받았으니까 이렇게 망신을 주겠다?”

“아뇨. 열받기보다는 너무 지겨웠습니다. 쉬지 않고 소릴 지르긴 하는데, 발음도 안 좋고, 내용도 빈약해서…… 그쪽의 방송이 다른 방송보다 시청자가 적은 이유가 있더군요.”

상대는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으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까진 어쩌지 못했다.

“인기가 많고 적고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죠. 진짜는 그다음이니까요.”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방송을 듣다 보니 반복적으로 나오는 멘트가 있었습니다. 도토리코인은 곧 망한다. 빨리 돈을 빼라. 그리고…….”

잠시 뜸을 들여서 시선을 모은 뒤에 또박또박 말을 내뱉는다.

“버기코인이 유망하니까 얼른 갈아타라.”

버기코인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지금껏 연기하던 그의 표정이 심하게 꿈틀거린다.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유망한 코인 추천은 방송에서 당연한 겁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이상하게도 여기 모인 다른 분들 방송에서도 똑같이 버기코인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억지 부리지 마세요!”

“흠. 다수의 방송인이 어느 시점부터 동시에 추천하는 가상화폐라니. 너무 수상해서 말이죠.”

“값이 오를 만한 코인이니까 모두가 추천하는 거지!”

“사실은 선행매수를 한 것 아닙니까?”

선행매수란 주식 종목의 이해관계를 숨긴 채 해당 종목을 추천 후, 되파는 행위를 뜻한다.

이번 경우는 미리 매수한 코인을 시청자들에게 추천해서 가격을 올린 뒤, 되팔아서 이득을 챙기는 식이었다.

“다 헛소립니다! 버기코인은 확실한 호재가 있으니까 추천한 거예요!”

“아, 호재? 그게 혹시 이겁니까?”

내가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뒤에 깔아둔 스크린에서 자료화면이 나온다.

며칠 전, 코인도령의 방송 영상이었다.

그는 술을 잔뜩 퍼마신 건지, 눈은 반쯤 풀려 있고 발음도 엉망이었다.

-제가 버기코인을 왜 사라고 한 줄 알아요? 그거 다 여러분 잘되라고 그런 겁니다. 곧 대박 호재가 뜨거든요. 에이, 비밀이지 안 가르쳐 줘.

-알았어. 우리 VIP들에게만 살짝 말해줄게. 버기코인 개발자가 사우디 사람인데요. 곧 기름 거래에 쓴다고 발표 뜰 거예요.

-거짓말 아닙니다. 가상화폐로 기름 거래를 왜 하냐면, 미국이 제재해서 달러를 못 쓰는 나라들이 있어요. 그런 나라랑 몰래 거래하려고 가상화폐를 쓰는 거예요.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방송인들은 코인도령을 노려본다. 그는 변명이랍시고 떠듬떠듬 말을 내놓는다.

“미안한데…… 저 날은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그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 쪽으로 화제를 돌린다.

“어, 어쨌든. 대형 호재가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우리는 모두가 잘되라고 코인을 추천해 준 겁니다!”

코인은 철저한 제로섬 게임.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니 모두를 위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버기코인이 사우디 기름 거래에 쓰인다면 호재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면요?”

“증거 있습니까? 증거도 없으면서 떠들지 마시죠.”

“음? 제가 사우디 쪽에 물어봤더니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답이 왔습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물어봐?”

“어떻게 물어보다뇨? 도토리코인을 5억 달러나 매수한 소프트포우 펀드의 최대 투자자가 사우디 왕세자입니다.”

방송인들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저들끼리 모여서 뭐라 쑥덕거리기 시작한다. 아직도 이 사기극에 미련을 못 버렸나 보다.

나는 그런 방송인들의 개수작에 쐐기를 박아준다.

“혹시 잊으신 건 아니죠? 이거,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방금 제가 한 발언도 전부 방송됐을 거고요.”

순간, 그들의 표정이 싹 굳는다.

내 주장의 진실 여부가 어떻든 간에 버기코인의 신뢰는 이미 무너졌다. 그렇다면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파멸적인 폭락.

방송인들은 다급히 제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들로선 한시라도 빨리 쥐고 있던 버기코인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 수중에 휴대폰은 없었다.

생방송이 시작되기 전,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전부 수거해뒀기 때문이다.

“젠장! 내 휴대폰!”

나는 길길이 날뛰는 그들더러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오? 버기코인이 벌써 마이너스 70%를 찍었군요. 이게 생방송의 묘미인가요.”

방송인들은 급한 나머지 우르르 내게 몰려온다.

“내 폰 어디에다가 뒀어요? 급해요! 빨리 주세요! 빨리!”

“갑자기 휴대폰을 왜 찾으십니까? 혹시 버기코인을 미리 사두신 건 아니죠?”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내놔!”

나는 히쭉 웃으며 카메라 앞에 있는 탁자를 가리킨다.

“휴대폰이라면 저쪽 위에 쌓아둔 것 같던데요. 한번 가보시죠?”

방송인들은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우르르 휴대폰을 향해 달렸다.

마치, 도적 떼처럼 달려간 그들은 서로 먼저 휴대폰을 갖겠다고 밀치고, 몸싸움하다가 간신히 제 휴대폰을 집어 든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휴대폰 인터넷 접속이 안 돼요!”

“젠장! 세트장 신호가 약해서 그래.”

“신호 잡히는 곳 찾아봐요. 아니면 와이파이 비밀번호라도!”

방송인들이 먼저 코인을 팔겠다고 난리를 칠수록 버기코인의 시세는 더 급격하게 추락한다.

-70%였던 시세는 벌써 –90%까지 내려앉았다.

“나는 여길 나가야겠어! 출구가 어디야?”

“저쪽이에요! 빨리 나가요! 빨리!”

“젠장! 너, 두고 보자!”

방송인들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출구로 내달린다.

나가봤자 소용없을 거다. 여기 있던 방송인들 말고는 이미 버기코인을 다 팔아치웠을 테니까.

* * *

WHTS컴퍼니의 구내식당은 아침 8시부터 문을 연다.

이때의 구내식당은 호텔의 조식 코너와 흡사한 형태로 운영된다.

준비된 샌드위치나 샐러드, 시리얼, 김밥을 식당에서 먹어도 되고, 아니면 음식만 들고 사무실로 올라갈 수도 있다.

운영 초기엔 직원들이 낯설어했지만, 이젠 늦게 오면 음식이 없어서 못 가져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번에 내놓은 포인트 전환 혜택의 사용자가 늘고 있습니다. 노년층을 노리고 신문 광고를 낸 것이 주효한 것 같습니다.”

“와츠 페이의 PPO 둔화로 인해 투자사들의 컨센서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페이 개발팀은…….”

오늘 역시 구내식당은 아침부터 직원들로 북적거린다.

아예 몇몇 테이블엔 팀 단위로 모여 앉아서 아침 식사와 동시에 오전 회의를 처리하기도 한다.

그러던 도중, 저 혼자서 외로이 떠들어대던 TV의 뉴스가 모두의 시선을 잡아끈다.

-다음 소식입니다. 생방송으로 논란이 된 코인게이트 사태를 경찰에서 직접 수사에 나섰습니다.

코인게이트는 서우진 대표가 직접 나서서 처리한 사건이었다.

직원들도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기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어지는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유명 인터넷 방송인들은 자신들이 미리 매집한 코인을 추천하고 되파는 ‘선행매수’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이들은 약 20억 원에 달하는 버기코인을 미리 매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이들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며…….

-그러나 생방송으로 허위 정보가 알려지면서 버기코인의 시세가 99.8% 하락했기에 실질적인 이득을 취하진 못했습니다.

뉴스가 끝나자 잠시 조용해졌던 식당이 다시금 북적거린다.

원래는 오전 업무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면, 이젠 방금 뉴스에서 언급한 코인게이트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번 사태로 경찰이 움직였네요. 가상화폐 건으로 경찰이 직접 나선 일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요?”

“우리 대표님이 직접 나섰잖아. 그러니까 경찰도 움직이는 척이라도 할 수밖에 없던 거지.”

“코인게이트 건으로 가상화폐 업계에서 사기가 조금은 줄어들려나요? 지금까진 사실상 무법지대였잖아요.”

“그놈들이 단속한다고 사기 안 치겠어? 그보다는 국민들이 코인 사기에 잘 안 넘어가는 효과는 있을 거야. 이번 생방송 시청자만 수백만 명이라잖아. 언론에서도 다뤄주고 있고.”

수백만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드러난 사기꾼들의 민낯.

이번 방송은 가상화폐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가상화폐 사기의 경각심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부장님, 그런데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이 되긴 할까요? 가상화폐는 아직 관련법이 없다고 아는데요.”

“처벌? 어림도 없지. 법원은 절대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 못 해.”

“어째서요?”

어느새 옆 테이블과 옆 옆 테이블에서도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부에서 얼마 전에 아리랑 코인이라고 밀어줬었잖아. 도토리코인 따라잡는다고 설치다가 그거 어떻게 됐어?”

“폭삭 망했죠. 겉만 번지르르한 스캠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자산으로 인정을 안 해주는 거야. 까딱 잘못하면 정부에서 다 물어줘야 할 판인데 해주겠어?”

“아하. 듣고 보니 그렇네요.”

“게다가 그 아리랑 코인과 관련해서 업계에 도는 썰이 하나 있는데…….”

때마침 TV에서는 코인게이트 뉴스가 끝나고 정치권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2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부정적 평가 요인 가운데는 처음으로 최명자 씨의 딸 특혜 입학 논란 의혹이 포함됐습니다. 아직은 의혹에 불과하지만 이에 따른 파장은…….

한참이나 뉴스를 지켜보던 부장은 아까보다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건이 제대로 터지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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