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04화
“이게 뭔…….”
배틀로얄 개발 팀장인 한석호는 보고서를 받아 보고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5,000명 수준이었던 임시 서버 접속자가 불과 이틀 만에 3만 명에 도달해 있었다.
“홍보도 안 했는데 접속자가 어디서 계속 들어오는 겁니까?”
보고서를 가져온 운영팀 직원은 떠듬떠듬 설명을 내놓는다.
“처음엔 스트리머의 대회 연습을 도와주기 위해서 접속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입소문을 타면서…….”
“스트리머? 누굴 말하는 거죠?”
“빅토르, 닌자 뎁, 컴온지지, 마틴 퍽, 루키 타일러, 그 외에도 20명에 달하는 스트리머가 접속한 상탭니다.”
다른 아이디는 몰라도 ‘빅토르’와 ‘닌자 뎁’은 들어본 적 있었다.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거물 스트리머.
그런 이들이 배틀로얄을 플레이하고 있으니 임시 서버에 사람이 몰려서 미어터질 수밖에.
‘이들이 전부 유료 구매를 해준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무료 때만 즐기다가 전부 빠져나가면 어쩌지?’
이미 서버 유지비로 억이 넘게 나갔다. 게임의 정식 출시까지는 적어도 반년을 더 기다려야 할 텐데, 그때까지 돈이 얼마나 들지 감도 안 잡힌다.
신우혁 대표는 서버를 그대로 열어두라 했지만, 손해가 억 단위를 넘어, 수십억이 된 이후에도 그렇게 생각할까?
한석호는 불안감에 입이 바싹 말라왔다.
이대로 서버를 유지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외부인을 막아야 하는지.
혼자서 끙끙거리고 있어 봤자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보고서를 움켜쥔 채,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잠시 이야기 좀 가능하실까요?”
한석호가 찾아간 사람은 가상화폐 개발팀의 이소영이었다.
대표를 직접 찾아갈 순 없으니, 그나마 회사에서 안면이 있고, 입지가 높은 사람을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커다란 눈을 두어 번 정도 깜빡거리다가 고갤 끄덕인다.
“말씀하세요.”
“아, 예.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이번에 대회 서버 열어둔 거 아시죠?”
한석호는 최대한 상세하게 지금까지의 일을 이소영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듣는 동안, 꾸준히 고갤 끄덕거리며 이야기를 경청해준다.
“개발 중인 게임의 인기가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버그를 찾기도 쉬워질 텐데요.”
“그건 맞습니다만, 문제는 비용입니다. 이미 서버 유지비만 억 단위로 나간 터라, 앞으로 사람이 더 늘어나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습니다.”
“혹시 대표님은 별말씀 안 하셨나요?”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여기까지 들은 이소영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답을 내놓는다.
“대표님이 내버려 두라고 했으면 그렇게 하세요.”
“저도 몇천 명 수준이면 그랬을 텐데, 이미 접속자가 3만 명을 넘었습니다.”
“접속자가 3만 명이든, 30만 명이든 무슨 상관이죠? 혹시 나중에 한 팀장님에게 책임을 물을까 봐 그러시는 거예요?”
한석호는 살짝 눈치를 보다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거린다.
“솔직히 그런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에이, 저희 대표님은 실패했다고 책임을 묻거나 하실 분 아니세요. 그리고 이번 건은 대표님이 직접 지시한 일이라면서요?”
아무리 오너의 지시가 있었다고 해도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팀장급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기반이 약한 게임 개발팀이라면 팀 전체가 날아가도 이상치 않았다.
“한 팀장님이 오신 지 얼마 안 돼서 모르시나 본데요, 우리 회사엔 불문율이 하나 있어요.”
“어떤 불문율입니까?”
“대표님 지시는 묻고 따지지도 말고 따를 것.”
상명하복이 철저한 한국의 기업문화에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WHTS컴퍼니에서는 ‘묻고 따지지 말라’는 말이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대표님이 직접 진두지휘한 프로젝트 중에 성공한 프로젝트가 몇이나 될 거 같으세요?”
“글쎄요. 사업으로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 칠 할이나 팔 할 정도 성공하셨으려나요?”
“칠팔 할이 아니라 백발백중이에요.”
한석호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그러자 다시금 같은 말이 나온다.
“직접 손대신 건은 모두 다 성공하셨어요.”
“그게 가능할 리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린 그걸 직접 보고 겪었어요. 그러니 묻고 따지지 말라는 불문율이 생긴 거고요.”
이소영은 한 치의 의심도 깃들지 않은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성당의 수녀님도 저런 표정을 짓긴 쉽지 않으리라.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도 분명히 잘될 거예요.”
“아, 예…….”
한석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머릿속은 더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그녀가 해준 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본디 사내 이벤트로 치러질 예정이던 배틀로얄 대회는 유명 스트리머들의 참전으로 큰 이슈가 돼 있었다.
초창기엔 그저 호기심과 상금을 노리고 몇몇 스트리머가 참여했다면, 이젠 스트리머끼리 자존심을 걸고 맞붙는 대회로 여겨졌다.
그러나 태생이 사내 대회였던 만큼, 많은 사람의 참여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임시 서버 접속에 필요한 초청장은 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서, 접속자의 99%가 불법적인 경로로 접속하고 있었다.
-어제 닌자 뎁 플레이 본 사람?
배틀로얄 게임 로비에서 누군가 떡밥을 던지자 애청자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나 봤어! 진짜 환상적이었지!
-닌자 뎁보다 빅토르가 더 잘했어. 마지막엔 자리 운이 안 좋아서 먼저 죽어버렸지만.
-그것도 실력이야. 닌자 뎁은 최후까지 생각해서 미리 좋은 자리를 선점한 거라고.
이후에도 스트리머 팬끼리 누가 더 잘하냐를 놓고 한참이나 논쟁이 이어진다.
그러다 누군가 다른 주제를 가져오는데.
-요즘 좀 불안하다. 접속자 너무 많은 거 아니냐?
-많긴 하지. 정식 출시도 안 한 게임의 동시 접속자가 5만 명이라니! 완전 대박이잖아.
-좋아할 게 아니야. 무료 게임에 5만 명은 대박이 아니라 재앙이지. 서버 유지비용을 생각하라고.
-우리가 게임을 테스트해 주는 거야.
-5만 명이나 되는 테스터를 쓰는 회사는 없어.
-게임사에서 막을 생각이 있었으면 진작에 막았겠지.
-곧 대회가 있어서 놔두는 게 아닐까? 대회만 끝나면 바로 막아버릴걸.
이 채팅을 마지막으로 모든 채팅이 멎었다. 아예 메시지 입력이 안 되는 먹통 상태가 된 것이다.
바로 그때, 로비에 초록색 메시지가 올라온다.
[배틀로얄을 사랑해 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배틀로얄의 총괄팀장인 한석호라고 합니다.]
[곧 배틀로얄의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운영진의 메시지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채팅 금지가 풀렸다.
당연히 로비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방금 진짜 운영자야? 나 초록색 메시지는 처음 봤어.
-중대 발표가 뭘까? 대회 공지인가?
-뭐긴 뭐야. 서버 종료 공지지. 걔들이 자선사업가도 아닌 데 서버를 계속 열어둘 리가 있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친구들, 지금까지 즐거웠어.
-일단은 어떤 발표인지 보고 나서 떠들어도 늦지 않아. 좋은 소식일 수도 있잖아.
그러다 1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다시 초록색 메시지가 등장한다.
[첫 번째로 공지할 사항은 사내 대회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의 사내 대회는 사내 대회라는 취지에 맞지 않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개발진은 사내 대회를 WHTS컴퍼니 임직원들만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을 수정할 방침입니다.]
임직원만 참석이면 지금껏 연습했던 스트리머들의 노력은 헛것이 되고 만다.
당연히 이 소식을 들은 스트리머의 팬들은 난리를 쳐댄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그럼 닌자 뎁은? 대회 참가를 못 한다는 건가?
-어이가 없네. 대회를 고작 1주일 남기고 규정을 바꾸면 어쩌라는 거야! 장난쳐?
-철회하세요! 철회!
순간적으로 수백 개의 채팅이 물밀 듯이 쏟아진다. 이에 채팅이 다시 먹통이 되면서 초록색 메시지가 나온다.
[여러분의 열정은 개발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내 대회가 아닌, 독자적인 배틀로얄 대회를 열고자 합니다.]
[이름하여 배틀로얄 베타 최강자전! 참가 자격은 누구나 OK. 상금은 기존보다 4배 늘어난 도토리코인 2만 개입니다!]
채팅을 못 치게 해뒀더니 채팅창엔 이모티콘이 쏟아진다.
대부분 따봉이나 하트 같은 긍정적인 이모티콘이었다.
[정식 베타 서버는 약 1주일 뒤에 열릴 예정이며, 참여 신청은 공식 SNS 계정에서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배틀로얄 임시 서버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키보드에서 손을 뗀 한석호는 과호흡이 오는지 몇 차례나 심호흡을 반복했다.
두 팔은 달달 떨리고 있었고, 동공 역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사방으로 뛰어다니길 반복한다.
“한 팀장, 괜찮겠습니까?”
내가 묻자, 그는 한참이나 눈을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괘,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응급차 불러줘요?”
“아, 아닙니다. 반응이 안 좋을까 봐 긴장했나 봅니다.”
“지금까지 호의로 열어둔 서버입니다. 개발진이 마음대로 닫아도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그게…… 예전 생각이 나서요.”
한석호는 크게 숨을 한 번 더 들이쉰 뒤에야 간신히 말을 잇는다.
“배틀로얄은 제가 3번째로 개발한 게임입니다. 기존에 개발했던 게임들은 인기가 없어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부 서비스를 종료해야 했습니다.”
그는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그때부터 게임 서버를 닫는다는 행위가 제겐 너무 힘들더군요.”
“임시 서버인데도 그렇습니까?”
“어떤 서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서버를 닫으면 게임 속 세상도 끝장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한석호의 게임 개발 경력이 11년이라고 했으니, 게임 하나당 5년이 넘는 세월을 쏟아부은 셈이다.
그렇게 공들인 게임을 연이어 실패하는 동안,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다.
‘자신이 만든 게임에 자신감이 없어 보이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개발자의 심리 상태는 개발물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가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길 바라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톡. 톡. 토독.
짧은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서너 줄 정도 되는 메시지였지만 효과는 그 어떤 연설문보다 강력했다.
“한 팀장님!”
얼마지 않아 개발실 직원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는 내가 앉아 있는 걸 뒤늦게 봤는지 화들짝 놀라며 고갤 숙인다.
“무슨 일입니까?”
“공지 15분 만에 베타 서버 참가 신청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한석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쳐다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제 SNS에서 작은 이벤트를 공지했습니다. 그게 효과가 있나 보군요.”
그는 허겁지겁 휴대폰을 켜서 SNS를 확인한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직원과 함께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릴 지른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대회가 아니라 일반 게임에서도 1등을 하면 가상화폐를 준다니요?”
“보상이 확실할수록 게임에 더 몰입하게 될 테니까요. 아, 참고로 앞으로도 쭉 이런 운영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대표님, 이런 식으로 가상화폐를 뿌리면 엄청난 예산이…….”
나는 그가 말을 하는 도중에 자르고 들어간다.
“예산같이 머리 아픈 것들은 제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그러니 한 팀장은 개발에만 집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