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코인 재벌 101화
블루텍은 하루 만에 WHTS컴퍼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개발 중이던 배틀로얄 그라운드 제로와 관련 저작권은 WHTS컴퍼니의 소유가 됐으며, 개발자들 역시 WHTS컴퍼니로 소속을 옮기게 됐다.
오늘은 양사의 협의 발표가 나고, 첫 미팅이 있는 날이다.
한석호는 오랜만에 정장까지 차려입고서 WHTS컴퍼니 사옥이 있는 강남역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석호 형님,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저희가 따라가는 것이…….
통화 상대는 같이 회사를 옮기게 된 개발팀 동료였다.
한석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꺾으며 다른 한 손으론 휴대폰을 뺨에 바짝 붙인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하냐. 너희는 이번 기회에 며칠이라도 푹 쉬어. 휴가 가고 싶다고 노랠 불렀잖아?”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잖습니까.
“다르긴 뭐가 달라. 회사를 옮겨도 우리가 하는 일은 똑같다. 그러니 잡생각 말고 휴가나 잘 다녀와. 그럼 끊는다.”
-형님!
뚝.
통화가 끝남과 거의 동시에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아까와 번호가 다르다. 이번엔 엉겁결에 같이 회사를 옮기게 된 옆 부서 직원이었다.
한석호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리곤 조수석 쪽으로 던져 버렸다.
“휴…….”
한숨이 비집고 나온다. 직원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루아침에 회사를 옮기게 생겼으니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한석호는 빌딩 지하에 차를 세워두고 로비로 올라갔다.
로비 입구엔 까만 정장 차림의 보안 직원이 4명이나 서서 일일이 사원증 확인과 몸수색까지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미리 전달받은 출입증을 제시하자 직원 하나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준다.
‘보안 절차가 어지간한 공항 뺨치는 수준이구나. 가상화폐 회사라서 그런가?’
앞으로 이런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막막함이 먼저 밀려온다.
회사 분위기는 어떨지, 적응은 잘할 수 있을지,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어떻게 될지 등등.
그러다 문뜩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이소영 팀장.
그녀는 인형처럼 예쁘장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혹평을 쏟아냈었다.
평가 자체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돌려 말하는 것도 아니고, 직설적으로 다 퍼부어버리니 자신감이 바닥을 쳤다.
‘그녀가 직접 게임 개발에 관여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러겠어.’
잠시 후, 앞서 걷던 보안 직원이 커다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한석호는 엉거주춤 고갤 숙인 뒤,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는 안을 들여다본 순간, 너무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엔 무조건 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이 떡하니 앉아 있었으니까.
“반가워요. 한석호 팀장님이시죠?”
이소영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아, 예. 맞습니다.”
“앞으로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됐네요. 잘 부탁해요.”
저 매혹적인 외모와 미소를 보면 천사나 다름없었으나, 이미 지옥을 겪었던 한석호는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소영은 머뭇거리는 한석호를 보더니 대뜸 사과의 말을 꺼낸다.
“그땐 정말 죄송했어요.”
“예?”
“제가 너무 심하게 말했죠? 대표님이 솔직하게 말해야 도움이 된다고 하시길래…….”
한석호는 목구멍까지 ‘정말 심했다’라는 대답이 치솟았지만, 가까스로 고갤 내저었다.
“맞는 말인데 어쩌겠습니까.”
“아뇨. 제가 심했던 게 맞아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대표님이 일부러 혹평을 유도했더라고요.”
“유도하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실은…… 제가 태어나서 FPS 게임을 딱 한번 해봤거든요. 그것도 블루텍에 가기 직전에 해봐서 더 비교됐던 것 같아요.”
“그 게임 이름이 혹시……?”
“블리쟈드사의 오버위치예요.”
한석호는 너무 허탈해서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블리쟈드는 직원만 4,000명이 넘어가는 초거대 기업이다.
그런 거대 게임사에서 수년간 공들여 정식 출시한 게임과 30명 남짓한 개발진이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개발한 알파버전 게임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했으니 얼마나 차이가 심했겠는가.
“비교 상대가 블리쟈드사 게임이면 어쩔 수 없었겠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바로 그때였다. 사무실 입구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입구엔 WHTS컴퍼니의 대표 이사 신우혁이 서 있었다.
한석호는 얼른 일어나서 고갤 숙인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예, 반갑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는 짧은 인사만 나눈 뒤, 성큼성큼 걸어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우아하게 한쪽 다리를 꼰 뒤에 입을 열었다.
“방금 블리쟈드사 게임이 비교 대상이면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그랬습니다만…….”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그야 블리쟈드사면 스타나 디아, 와우 같은 내로라하는 게임을 만든 회사잖습니까. 규모나 기술력, 투자금 등, 모든 면에서 저희와는 상대가 안 됩니다.”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소영 씨, 제가 블루텍에 들르기 전에 블리쟈드를 어떻게 평가했었죠?”
“지는 해라고 하셨어요. 블루텍은 떠오르는 해라고 했고요.”
그의 시선이 다시 한석호에게 돌아온다.
“그 말 정정하겠습니다. 저는 블루텍이 아니라, 한석호 팀장의 배틀로얄 팀이 뜨는 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거금을 주고 빼 온 거고요.”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 정도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건 해봐야 아는 거죠.”
신우혁은 한 뼘이 넘어 보이는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이게…… 다 뭡니까?”
“이번에 들어온 이력서입니다. 전부 FPS 게임 개발 경력이 있는 사람만 추린 거니까 한번 확인해 보세요.”
한석호는 이력서 뭉치를 받아서 빠르게 숫자를 가늠해 본다. 두께로 짐작건대 적어도 100장은 넘을 듯했다.
“대표님, 이 중에 몇 명이나 뽑으면 될까요?”
그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한석호를 쳐다본다.
“몇 명을 뽑다뇨?”
“이 이력서에서 필요한 사람을 고르라는 뜻 아니었습니까?”
“이미 채용 절차는 끝내뒀습니다. 전원 월요일부터 출근해서 한석호 팀장과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100명에 달하는 직원을 몽땅 채용했다는 말에 한석호의 입이 떡 벌어진다.
“블리쟈드보다 더 확실하게 투자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세요.”
* * *
WHTS컴퍼니의 게임 경력자 구인 공고는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게임이라곤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회사가 100명에 달하는 경력직을 뽑았으니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업계 종사자들은 WHTS컴퍼니의 과한 행보에 의아함을 표했고, 네티즌들은 대박 게임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또 한 곳.
WHTS컴퍼니의 행보를 굉장히 관심 있게 지켜보는 업체가 있었으니.
바로 국내 1위 재벌가인 오성그룹이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WHTS컴퍼니는 블루텍에 소속된 개발팀을 인수했다고 합니다. 인수가는 약 120억 원으로, 업계에선 너무 과한 금액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부회장인 전용택은 상석에 앉아서 보고를 듣는 중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WHTS컴퍼니에 과할 정도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생기면 직접 보고를 받을 정도로 말이다.
“120억 원을 주고 개발팀을 인수한 것으로 모자라서, 직원도 100명을 추가로 뽑았다라…… 의도가 뭘까?”
“WHTS컴퍼니가 가상화폐를 게임에도 도입할 생각이란 소문이 있습니다.”
“가상화폐를 게임에?”
“그렇습니다. 기존에 도토리코인을 SNS 보상으로 주고 있는 만큼, 적용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용택은 이미 가상화폐의 위력을 경험한 바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WHTS컴퍼니의 행보도 엄청난 폭발력이 있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윤 비서, 우리도 이번 일에 한 다리 걸칠 방법이 없을까? 한땐 게임 유통도 하고 했었잖아.”
“그게 벌써 10년 전 일입니다.”
“아니면 다른 아이디어라도 짜내 봐. 개발을 돕는다거나, 아니면 인프라를 제공해도 되고.”
전용택은 어떻게 해서라도 WHTS컴퍼니의 일에 끼어들고 싶어 했다.
돈이나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 배터리 사건 때 진 빚을 털어내고 싶어서였다.
“도울 방법이 있긴 합니다.”
“뭐야? 얼른 말해봐.”
“게임에 가상화폐를 도입하려면 한국에선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게임심의위의 허가입니다.”
전용택은 인상을 찌푸린다.
“허가는 그냥 받으면 되는 거잖아?”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선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로 게임 머니 관련 허가가 굉장히 빡빡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바다이야기란 성인 오락실에서 쓰던 빠찡코 게임을 뜻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멀쩡한 게임까지 날벼락을 맞게 됐고, 이후부터 게임 업계에선 게임 머니를 화폐로 환전하는 것을 금기시할 정도였다.
“오호라. 그러니까 우리가 그 혈을 뚫어주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가상화폐는 정부 부처에서 밀어줬던 전례도 있으니, 장관급만 기름칠해도 일이 해결될 것입니다.”
WHTS컴퍼니가 현찰은 많아도 정치권과 커넥션은 부족할 터.
그러니 그 가려운 곳을 오성이 나서서 해결해준다면 그간에 진 빚을 한 방에 털어 낼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군. 그렇게 진행해 봐.”
* * *
WHTS컴퍼니가 흡수한 게임 개발인력이 자리를 잡아갈 때쯤, 국내의 한 대형 게임사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게 된다.
“넥스온에서 개발팀 단위의 이직 요청이 왔다고요?”
한석호는 내게서 소식을 듣고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넥스온은 국내에서 3N으로 불릴 정도의 대형 게임사였다. 그런 곳에서 팀 단위의 이직을 요청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번에 넥스온에서 신작 FPS 게임이 출시된 거 아십니까?”
“넥스온의 신작 FPS라면…… 저번 달에 출시된 서든필드2를 말씀하시는지.”
서든필드는 FPS 게임 중 피시방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게임이었다.
이번에 출시한 서든필드2는 그런 인기 게임의 정작 후속작이었기에 엄청난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 서든필드2 개발진을 통째로 넘겨준다고 하더군요.”
“서든필드2는 이제 막 출시한 게임인데 개발진을 어떻게 이직시킨단 말입니까?”
“올해 안에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합니다.”
한석호는 가만히 앉아서 눈을 깜빡거린다. 내 말을 못 들었거나, 아니면 못 믿어서 저러는 것이리라.
“이미 넥스온 쪽은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끝났고, 우리 결정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잠깐만요. 대표님. 서든필드2 개발진이면 못해도 50명은 넘을 텐데, 저희는 그 많은 인력을 받아서 쓸 곳이 없습니다.”
“개발자는 다다익선 아니었습니까?”
“그건 개발 초창기 때나 그렇고, 저희 배틀로얄은 이미 개발의 80%가 끝났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번에 받은 인력도 다 쓰기가 버거울 정돕니다.”
사람이 남아서 문제라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
“게임을 하나 더 만듭시다.”
“신작은 너무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아뇨. 신작이 아니라 똑같은 배틀로얄을 2개 만들자는 말이었습니다.”
한석호는 무슨 헛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개발 중인 배틀로얄은 이미 완성 직전이라면서요?”
“최적화 작업이 좀 남았습니다.”
“그러고 있을 시간에 싹 날려 버리고 바닥부터 새로 하나 더 만드세요. 지금 개발 중인 놈은 베타 버전으로 먼저 내놓고, 새로 깔끔하게 만든 놈을 정식 버전으로 내는 겁니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지만, 돈지랄이나 마찬가지라 절대 쓰지 않는 개발 방식이었다.
“그런 식이면 개발비가 중복으로 쓰여서 부담이 커질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서 더 나은 게임이 되면 저는 만족합니다.”
한석호는 감개무량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의 두 눈엔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대표님! 제가 꼭!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시키고 말겠습니다!”
* * *
한석호와 미팅이 끝난 뒤, 얼마지 않아 대표실 인터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박태식이었다.
나는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든다.
“어, 태식아. 무슨 일이야?”
-딴 게 아니고, 최근에 오성이랑 무슨 협업 같은 거 하나 해서.
“협업? 그런 거 없는데.”
-이상하네. 그냥 뜬 소문이었나?
나는 대충 어깨에 끼우고 있던 수화기를 똑바로 움켜쥔다.
“무슨 일인데 그래?”
-오성그룹이 게임 관련으로 로비를 하고 다닌다는 썰이 돌더라고. 게임에 가상화폐가 도입될 수 있도록 풀어주려고 한다던가? 그래서 정부 쪽을 쑤시고 다니나 봐.
정부와 로비라는 말을 듣자마자 인상이 확 찌푸려진다.
지금은 2016년, 탄핵의 불길이 피어나는 시기다. 이런 타이밍에 정부와 불법적인 건으로 엮였다간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몰랐다.
“그 건은 내가 알아볼 테니까, 누가 물어보면 절대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