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00화 (10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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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배틀로얄 개발팀의 리더인 한석호 팀장의 뒤를 따라다니며 개발실을 견학했다.

그는 개발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개발 에피소드나, 전체적인 진척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라이브 서비스를 앞두고 개발진을 추가로 충원했습니다. 서버 프로그래머 2명, 데이터 분석 담당 1명, UI/UX 디자이너 2명."

"그럼 총 몇 명입니까?"

"딱 30명입니다. 인력을 보충한 덕분에 이젠 개발 진척도가 8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앞으로 최적화와 버그 수정, 그리고 네트워크 세팅 정도만 끝나면…."

걸어가던 걸음이 저절로 멈춘다. 앞서 걷던 한석호 팀장이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본다.

"작년 말에 개발을 시작한 게임이 벌써 80%나 완성됐다고요?"

"저희 게임은 FPS(First-person shooter : 1인칭 슈팅 게임) 장르 게임인지라, 방대한 RPG 장르 게임보다는 개발 기간이 짧은 편입니다."

아무리 FPS 게임의 개발 기간이 짧다고 해도, 1년 만에 80%를 만들었다고?

더 황당한 사실은 이렇게 벼락치기로 만든 게임이 기네스북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로 성공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게 속도가 빠른 것 같습니다. 혹시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작업하시는지?"

"쉬는 날은 따로 없습니다. 매일 대략... 15시간은 작업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루에 15시간이면 일주일에 105시간, 한 달 내내 출근했다면 450시간이나 일한 셈이다.

"그런 스케줄이면 몸이 먼저 망가질 텐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 게임은 1년 안에 완성하기로 약속하고 시작한 프로젝트니까요."

"누가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한 겁니까?"

"그게... 저희 동료들끼리 정한 약속입니다."

"예?"

한석호는 머쓱한지 뺨을 긁적이며 말을 이어간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게임 업계를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해서 이 길이 아니구나 싶었죠."

"..."

"그래서 포기 직전이었는데... 동료들이 딱 한 번만 더해보자고 저를 설득하더군요. 그래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1년이란 개발 기간을 정해둔 겁니다."

10년간 실패만 겪었던 개발자가 마지막 1년을 불태워서 초대박을 터트린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게 픽션이 아니라 실화일 줄이야.

"이쪽입니다."

한석호는 우리를 개발실에서 가장 안쪽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무실 내부에는 8대의 컴퓨터가 2줄로, 총 16대가 줄줄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사내 테스트실로 쓰는 공간인 것 같다.

"여긴 분위기가 피시방이랑 비슷하네요."

내 옆자리에 앉은 이소영은 신기하다는 듯 내부를 둘러본다.

"일부러 비슷한 분위기를 내려고 이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한국은 피시방에서 얼마나 흥하냐에 따라 게임 성적이 갈리니까요."

"대표님은 여기서 개발한 게임이 피시방에서 성공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여길 찾아온 거겠죠?"

바로 그때, 테스트실 문을 열고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배틀로얄 개발팀 직원들이었다.

이소영은 아까보다 목소릴 한껏 낮춰서 속닥거린다.

"사람을 왜 이렇게 많이 데려왔대요?"

"배틀로얄은 FPS 생존 게임입니다. 다수가 한 지역에 떨어져서 최후의 1인을 뽑는 방식이죠. 그러니 제대로 플레이하려면 당연히 사람이 많아야겠죠?"

"시연이 목적이면 컴퓨터 플레이어를 넣으면 될 것 같은데..."

"제대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봅니다. 아니면 컴퓨터 플레이어 준비가 덜 됐거나요."

대화하는 동안 순식간에 16대의 자리가 꽉 찼다.

우리 쪽엔 팀장인 한석호가 붙어서 친절하게 게임 세팅을 가르쳐 준다.

"바탕화면에 보이는 총 모양 아이콘 클릭하시고요. 예, 그걸 누르고 닉네임 설정하신 다음에 대기방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게임에 접속하자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배경이 나를 맞이한다.

그 중심에 멀뚱히 서 있는 사내.

아무래도 이게 내가 조작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왜 이렇게 어설픈 것 같지. 아직 덜 만들어져서 그런가?'

게임이 전체적으로 허전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게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

왜냐고? 나는 배틀로얄 그라운드 제로를 단 한 번도 플레이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신문의 기사로 몇 번 접한 게 고작이다.

'이 게임이 어떻게 대박을 터트렸는지는 플레이해보면 알게 되겠지.'

* * *

FPS 게임의 플레이 방식은 굉장히 단순하다.

적을 발견하면, 마우스 커서를 겨눈 뒤, 클릭해서 총으로 쏴 죽이면 된다.

여기서 마우스의 정확도와 속도의 차이로 승패가 갈리며, 숙련자는 적의 머리를 조준해서 순식간에 죽여버리곤 했다.

배틀로얄 그라운드 제로는 여기에 RPG의 수집 요소를 추가했다.

맵 전체에 뿌려진 아이템을 습득해서 더 좋은 총과 방탄 장비를 확보하고, 차량에 탈 수도 있었다.

이렇듯 오직 총질 실력으로 승부가 나던 FPS 게임에 '운'이라는 요소가 추가되면서, 배틀로얄 장르는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플레이는 어떠셨습니까?"

게임 시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석호가 다가온다.

그는 물론이고 플레이를 도와주던 다른 직원들까지 곁눈질로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내 솔직한 평가는 '아쉽다'였다. 게임이 재미없어서 아쉽다는 게 아니다.

배틀로얄 그라운드 제로는 지금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는 게임이다. 그러나 내실이 부족해서 게임의 재미를 억누르고 있었다.

'너무 아쉬워. 제대로 지원만 해줄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욕심이 났다. 더 완벽한 게임으로 출시해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만들고픈 욕심.

하지만 지금 상태론 그게 쉽지 않았다. 이들을 마음껏 지원하려면 우선은 블루텍이 쥐고 있는 지분 관계부터 말끔히 해결돼야 했다.

'내년이면 게임이 완성되고 만다. 그러니 다소 거친 방법을 쓰더라도 올해 안에 결판을 지어야 해.'

나는 향후의 계획을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정리한 뒤, 그제야 천천히 입을 뗀다.

"게임 분야에서 문외한인 제가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군요. 그러니 이 방면의 전문가인 소영 씨가 코멘트 해주시죠."

갑자기 질문을 토스 받은 이소영이 손사래를 친다.

"전문가라뇨? 저는 게임에 대해서는 일반인보다 못해요."

"그래도 개발자로서 느낀 점은 있을 것 아닙니까. 부담 가지실 것 없습니다. 플레이하며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솔직하게..."

"예, 최대한 솔직하게. 그래야 개발 과정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평가받는 입장에서 '솔직하게'만큼 무서운 말이 있을까?

테스트실 내에 긴장감이 쫙 깔린다. 플레이를 돕던 개발자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고, 팀장인 한석호는 아예 마른침까지 꼴딱 삼킨다.

"음... 제가 보기엔..."

그녀에게 변화구 같은 기교는 없었다. 초구부터 시속 160km/h의 강속구가 쏘아진다.

"전체적으로 엉망진창 같았어요."

* * *

블루텍은 국내 최고의 온라인 게임 개발사로 유명한 NK소프트의 핵심 개발자들이 퇴사 후 설립한 회사다.

그 과정에서 NK소프트에 소송을 당하는 등의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출시한 MMORPG 게임이 흥행하면서 확고한 자릴 잡게 된다.

이후 블루텍은 중소규모 개발사를 흡수 합병하는 방식으로 사세를 불려갔는데, 이때 합류한 개발사 중 한 곳이 바로 '배틀로얄 : 그라운드 제로' 개발팀이었다.

한땐 배틀로얄 개발팀이 블루텍 내에서 애물단지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국내에서 비인기 장르인 FPS 게임을 개발하는 데다가, 그걸 온라인도 아니고 패키지로 팔겠다고 나섰으니 시선이 고울 리가 있나.

하지만 올해 초, WHTS컴퍼니에서 정식으로 투자 제의가 오면서 그들의 신분은 애물단지에서 복덩이로 승격됐다.

"그것들은 왜 쳐들어와서 헛소리를 찍찍 싸고 간 거야? 대체 뭐 때문에?"

블루텍의 정태진 대표는 대낮부터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그가 이렇게 격양된 이유는 며칠 전, 회사로 찾아온 WHTS컴퍼니 대표가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지금의 배틀로얄은 제 기대에 못 미치는 게임입니다. 이대로 블루텍에서 계속 개발을 고집하신다면 저희는 손을 떼겠습니다.

사실상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블루텍은 발칵 뒤집혔고, 배틀로얄 개발 총괄인 한석호는 매일 대표실로 불려와서 잔소릴 들어야 했다.

"아니, 석호야. 대체 게임이 어땠길래 신우혁이가 와서 그 난리를 친 거야? 전엔 마음에 든다며?"

"이번엔 사람을 하나 데리고 왔습니다. 그가 혹평을 하는 바람에..."

"그게 누군데?"

"도토리코인을 개발한 이소영입니다."

이소영은 가상화폐 개발, 운영 능력을 인정받아서 이미 IT 업계에선 유명 인사였다.

정태진 역시 그녀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기에 대뜸 한숨을 내쉰다.

"뭐라고 혹평을 하디?"

"게임 프레임이 떨어져서 화면을 전환할 때마다 뚝뚝 끊긴답니다. 그리고 캐릭터 움직임이나 총기 피드백, 배경 깨짐 문제, 지형 사이에 오브젝트가 끼는 점도 지적했고요."

"아니, 남이 개발해놓은 게임에 뭐 그리 지적질을 해대? 그럴 거면 지들이 직접 만들던가."

"이미 그런 움직임이 있습니다."

정태진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진짜 직접 만든다고? 어떻게? WHTS컴퍼니는 게임 개발 경험이 없잖아?"

"구직 사이트에 개발자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우대 사항으로는 과거에 FPS 게임을 개발한 경험이 있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놈들 웃기네. 사람만 뽑으면 게임이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아."

"그래서 프로젝트팀 단위의 채용도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최대 200명까지 뽑는다고 합니다."

"뭐 200명? 하... 진짜 미치겠네."

정태진은 WHTS컴퍼니가 게임 업계에 들어오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가상화폐와 게임의 결합.

이미 도토리코인은 SNS와 연동돼서 운영되고 있었기에, 그 영향력을 게임까지 넓히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임에 가상화폐가 도입되면 그 게임을 개발한 게임사의 가치도 덩달아 폭등할 터.

정태진은 그 광명의 날만 기다리며 끝까지 지분을 쥐고 버텼다.

하지만 이대로 WHTS컴퍼니가 손을 털어버리면 블루텍의 앞길은 광명이 아니라 새카만 암흑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WHTS컴퍼니가 투자를 철회했단 소문이 나면 게임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겁니다."

"씁, 나도 알아. 아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거 아냐."

"방안이 없으시면 차라리 배틀로얄 프로젝트팀만 따로 떼서 매각하는 건 어떻습니까?"

자신이 속한 팀을 타사에 팔아달라고 한다? 눈치가 백 단인 정태진은 바로 의도를 알아챘다.

"야, 한석호. 너 WHTS컴퍼니에서 돈 받아먹었냐?"

"무슨 소릴 그렇게 하십니까."

"돈 받아먹었잖아! 아니면 네 입에서 개발팀을 팔자는 이야기가 왜 나와?"

한석호는 떠듬떠듬 WHTS컴퍼니 측에서 전달받은 말을 내놓는다.

"그... 제안을 받은 건 맞습니다. 프로젝트팀을 새로 꾸릴 테니 거기에 합류해달라고 하더군요."

"내 그럴 줄 알았다. 절대 안 팔 거니까 그 소린 앞으로 꺼내지도 마라. 알겠냐?"

"후회하실 텐데요."

"내가 후회를 왜 해?"

정태진은 큰소리를 떵떵 친다. 그러나 그의 태도가 바뀌는 데는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제안 금액이 120억입니다."

고작 30명 규모의 프로젝트팀이 1년간 만든 게임을 120억 원에 산다고 하면 사기부터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제안을 내건 곳이 국내에서 현찰이 가장 많다고 소문난 WHTS컴퍼니였으니.

"진짜 거절하실 겁니까?"

"어흠, 누가 거절한대? 고민을 좀 해보겠다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으나 사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12억 원도 아니고 무려 120억 원이다. 이런 거금을 거절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미 정태진의 머릿속은 120억을 펑펑 써재끼는 행복한 상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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