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97화 (9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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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전자의 노트7 전량 환불 조치는 예정된 결과였다.

국내에서만 불이 났으면 어떻게 수습했겠지만, 미국, 중국, 호주, 대만에서까지 연이은 파열음이 나고 있었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을 거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알던 것과 차이점이 생겼다.

"예전에도 전용택이 직접 기자회견을 했었던가?"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 봐도 그가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고갤 숙인 적은 없었다.

게다가 환불 시기도 미묘하게 다르다.

원래라면 오성은 화재 피해자와 한동안 진실 공방을 이어가다가, 이미지란 이미지는 다 깎아 먹고서 환불 공지를 냈었는데, 이번엔 그런 실랑이 없이 깔끔하게 환불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슨 이유로 역사가 바뀐 걸까? 혹시 내가 개입했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상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만큼, 우리도 그만큼 속도를 올릴 필요가 있었다.

"팀장급 전원 회의실로 올라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비서실에 연락을 넣고 외투를 챙겨 든다. 팀장들보다 먼저 회의실로 내려가 있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대표실을 나서려던 차에 방금 통화했던 비서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온다.

"대표님, 오성그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전용택 부회장님이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합니다. 어떡할까요?

"언제요?"

"지금 우리 회사 앞에 와 계신다고 합니다."

방금 기자회견을 했던 사람이 회사 앞까지 찾아왔을 줄이야.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상대의 조급함은 내게 기회였다. 급하면 급할수록 협상의 무게 추는 이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집어 들었던 외투를 다시 내려놓는다.

"대표실로 올라오라고 하세요."

* * *

전용택은 WHTS컴퍼니 측에서 마중 나온 비서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은 갖가지 걱정들이 증식해서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저번에 거절했다고 마음이 돌아선 건 아니겠지? 안 돼. 무조건 그를 설득해야 한다. 한 푼이라도 손실을 줄여야 해.'

그의 걱정이 걱정을 낳아서 머릿속이 꽉 찼을 때쯤,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비서가 앞장섰고, 그 뒤를 전용택이 따라나선다. 빌딩의 규모가 제법 컸기에 복도를 한참이나 걸어가야 했다.

"대표님, 전용택 부회장님이 오셨습니다."

대표실 문이 열렸다. 상대는 그 안에서 턱을 괸 채 앉아 있었다.

재력도, 나이도, 사회적 지위도, 모든 것에서 자신이 우위이건만, 풍겨오는 분위기는 이미 갑과 을이 명백하게 갈려 있었다.

"신 대표님,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만큼 급한 일이 있으셨겠죠."

상대는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전용택을 맞이했다.

"일단 앉으실까요?"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긴 했는데, 이다음이 문제였다.

전용택은 살면서 한 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릴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부탁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니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턱이 있나.

그때 다행스럽게도 상대가 먼저 운을 띄워준다.

"소식 들었습니다. 노트7의 전량 환불을 결정하셨더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혹시 이번 결정은 부회장님이 단독으로 밀어붙인 사안입니까?"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환불 발표가 나왔음에도 오성전자에선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더군요. 통신사 측도 부랴부랴 판매를 중지했고요."

전용택은 흠칫 놀라서 어깰 떨었다. 그런 단편적인 사안만으로 거기까지 추리해낼 줄이야.

'테슬라 때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보통이 아니야. 이러니 신생 회사를 단기간에 이만큼이나 키워냈겠지.'

다시금 후회가 쏟아진다. 그가 제안했던 조건을 받았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진 않았을 텐데.

그러나 그에겐 후회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상대가 바로 질문을 밀어붙인다.

"급하게 일을 진행하셨다면 굉장히 바쁘실 텐데,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을까요?"

"아,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제안을 주셨던 가상화폐와 포인트 연계 건을 다시 진행해볼까 합니다."

상대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다.

"전용택 씨."

호칭도 부회장에서 이름으로 바뀌었다. 쉽게 승낙할 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냉대받을 줄도 몰랐다.

"오성전자 때문에 저희가 굉장히 난처하게 됐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오성의 배터리에서 불이 났습니다. 그러니 부품 공급 계약을 맺은 테슬라의 전기차에도 그 영향이 간단 말입니다!"

상대는 부품 계약서 사본을 앞에 내민다. 그리고는 계약서의 특정 지점을 또박또박 짚어가며 말했다.

"부품 공급 계약 제3조 11항에 의하면, 협력사의 과실로 인해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이 우려되는 경우, 테슬라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수 있습니다."

"계, 계약 파기라니요. 휴대폰에 들어가는 배터리와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아예 다른 종류입니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전기차 예비 구매자들에겐 이미 폭발하는 오성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 이미지가 씌워졌는데요."

"그럴 리가..."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보시죠."

이번은 태블릿을 꺼내 놓는다. 태블릿 화면에는 테슬라 한국 출시와 관련된 뉴스가 떠 있었는데, 댓글엔 전부 배터리 폭발 이야기밖에 없었다.

"배터리 사태 때문에 여론이 이 모양 이 꼴이 됐습니다. 그런데 거절당한 제안을 다시 해달라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

전용택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번 사태는 자동차 사고로 치면 100대0, 사실상 과실의 100%가 오성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후..."

불편했다. 저 한숨 소리가, 지금의 분위기가, 마치, 전무홍 회장과 같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한시라도 빨리 이 답답한 자릴 뜨고 싶었다.

하지만 노트7 배터리 사태로 이미 난리가 났는데 여기에 테슬라와 계약까지 파기된다면?

그땐 정말 끔찍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체면 따위를 차릴 때가 아니었다. 전용택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신 대표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상대도 얼른 다가와서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전용택 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환불 비용 지원은 없던 일이 돼도 좋습니다. 하지만 부품 계약 파기만은 부디..."

"알겠으니까 일단 앉아보세요."

상대는 억지로 전용택을 다시 자리에 앉힌 뒤, 얕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전용택 씨가 저를 바로 찾아오신 것을 보면, 그만큼 저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상대는 전용택을 빤히 쳐다본다. 강렬한 눈빛이 계속되자 전용택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제게 이번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있습니다."

"묘안요?"

"예, 말 그대로 묘안이죠. 대신에 양측의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그는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다시 묻겠습니다. 전용택 씨는 저를 신뢰하십니까?"

* * *

노트7을 전량 환불해준다는 공식 발표가 있고 바로 다음 날.

오성전자 매장과 서비스 센터 앞엔 아침부터 환불을 원하는 고객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그 혼잡한 광경을 비추며 오전 뉴스가 시작된다.

-뉴스데일리. 오늘은 오성전자의 노트7 환불과 교환 소식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현장을 연결해보겠습니다. 박세정 기자.

-예, 이곳은 오성전자 공식 매장입니다.

-현장 상황은 어떤가요?

-아침부터 매장 앞엔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대기 줄이 너무 길어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이 더 몰리겠군요?

-그렇습니다.

-오성전자 공식 매장이 아니라 이동통신 3사의 대리점에서도 노트7의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공식 매장에 사람이 몰린 걸까요?

-이유는 공식 매장에서만 진행되는 특별 프로모션 때문입니다.

카메라가 오성전자 매장 입구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비춘다. 그 앞엔 직원이 두 명이나 붙어서 손님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리포터는 직원을 붙잡고 인터뷰를 시작한다.

-이 기기의 용도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것은 이번에 도입된 가상화폐 결제 기기입니다. 간단한 터치 몇 번이면 가상화폐로 오성전자 제품을 살 수 있습니다.

-오성전자 제품이면 스마트폰도 구매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가상화폐로 결제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현재 노트7 환불 고객에겐 20%의 추가 포인트를 지급 중입니다. 여기에 도토리코인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7% 할인을 받으면 총 27%의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화면이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온다.

-오성전자에서 회수율 확대와 더불어, 기존 고객 달래기에 나서며 다양한 혜택을 준비한 듯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회수를 거부하는 고객이 있어서 당분간은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TV의 뉴스 주제가 전환된다. 그러자 휴게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목소릴 낸다.

"와. 노골적으로 제휴 혜택 설명이 나오네요. 이 정도면 뉴스가 아니라 오성전자 광고 방송 아닌가요?"

"언론에서 팍팍 밀어주면 우리 쪽엔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도 무슨 종편 뉴스도 아니고 지상파에서 이런 뉴스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이들은 WHTS컴퍼니의 가상화폐 개발팀이다.

TV 뉴스에서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가상화폐 포인트 서비스'가 나오자 이렇게 놀란 반응을 보인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하고 있어요?"

팀장인 이소영이 뒤늦게 휴게실로 들어온다. 직원들은 우르르 그녀에게 들러붙어서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팀장님, 뉴스 보셨어요? 우리가 개발한 가상화폐 결제 기기가 뉴스를 탔어요! 그것도 메인에 나왔다니까요!"

"이거, 오성에서 대놓고 우릴 밀어주는 거죠?"

"혹시 전용택 부회장님이 우리 회사에 왔다 간 것과 관계가 있나요?"

이소영은 쏟아지는 질문에 난처하다는 듯 손을 내젓는다.

"저는 그쪽 일은 잘 몰라요. 전부 대표님이 하시는 거예요."

"에이, 그래도 팀장님은 저희보다 조금은 더 아실 것 아녜요."

그러다 뒤이어 또 다른 사람이 휴게실에 등장한다.

방금의 질문을 확실히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신우혁 대표였다.

"소영 씨, 입구에서 왜 이러고 있습니까?"

"아, 그게... 질문을 받아서요."

"질문?"

그가 직원들 쪽을 쳐다본다. 그러자 일순간 침묵이 찾아왔다.

"무슨 질문이었습니까? 말해보세요."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직원 중에 가장 젊은 직원이 용감하게 손을 번쩍 들었다.

"이번에 오성에서 저희를 밀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젠 전용택 부회장님도 다녀가셨다고 하던데... 혹시 오성과 어떤 계약을 맺은 게 아닌지 궁금합니다."

"음? 그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군요."

그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내뱉는다.

"오성전자의 주식과 도토리코인을 일정량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오늘 내로 오성 측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겁니다."

"헙!"

직원들은 물론이고 이소영도 놀라서 헛숨을 들이 삼킨다.

그는 사람들의 놀라는 반응을 즐기듯,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이번 건이 성사된다면 가상화폐 역사상 최초이자, 최대의 주식 스왑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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