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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보다 더 이른 아침 시간.
오성전자 사장실에선 격양된 목소리가 쏟아진다.
"어째서 안 된다는 겁니까? 제가 생각할 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방안입니다!"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안 된다는 뜻으로 드린 말이 아닙니다."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오성의 전용택 부회장과 김승조 사장이었다.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김승조는 최대한 오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해명에 나섰다.
"부회장님이 제안하신 가상화폐, 그 도토리코인이 차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단 말입니까? 저는 이해가 안 되는군요."
"도토리코인이 여타 가상화폐처럼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이야기는 저번에 결론이 났을 텐데요."
오성전자는 테슬라와 부품 계약을 체결하면서 도토리코인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그러한 결정이 나오기까지 오성 내부에서도 치열한 논의가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김승조 사장 역시 도토리코인의 안정성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제안을 끝까지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부회장님,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무리 가상화폐 업체가 협조한다 해도 전량 환불은 손실이 너무 큰 선택입니다."
"손실을 보더라도 기업 이미지를 생각하면 빨리 수습하는 쪽이 옳습니다."
"저도 부회장님의 의견을 따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 하지만 손실액이 무려 2조 원입니다. 이것도 최저로 잡은 거라, 실제론 4조를 넘긴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오성이라 할지라도 단기적으로 4조 원의 손실을 맞으면 뿌리째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전용택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무작정 전량 환불을 밀어붙일 순 없었다.
"저... 부회장님. 이미 불량품의 회수는 빠르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개선품으로 교환만 끝나면 사태는 빠르게 진정될 것입니다."
"개선품은 문제가 없는 게 확실합니까?"
"현재까지 불량으로 보고된 배터리는 저희 측 공장에서 제조된 배터리입니다. 개선품은 전량 중국의 ZAT사의 배터리가 들어가니 문제가 생길 수 없습니다."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 전량 환불로 이미지를 챙길 것이냐, 아니면 교환으로 손실을 최소화할 것이냐.
전자는 확정적인 수조 원의 손실이 생길 것이고, 후자는 다소 모호한 이미지 타격이 발생한다.
현실적인 방안은 당연히 후자였다. 이건 김승조 사장뿐만 아니라, 어떤 경영인이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병상에서 의식이라도 돌아왔다면 물을 수 있겠으나 지금의 전무홍은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전용택은 답답한 마음에 크게 한숨을 토해낸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개선품으로 교환해주십시오."
* * *
-신 대표님의 제안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최종적으로 환불이 아니라 교환을 진행키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앞으로도 양사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가 끝났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쯧쯧'하고 혀를 찼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기회였건만, 제 발로 복을 걷어차다니."
나는 책상 서랍에 넣어뒀던 휴대폰을 꺼내 놓는다.
하늘색 물감과 은색 물감을 반반씩 섞어 바른 듯한 컬러, 이번 사태의 주인공인 노트7이었다.
외형만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스마트폰이지만 지금은 배터리 이슈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취급을 받고 있었다.
"알아서 하겠지. 내가 오성까지 신경 써줄 이유는 없으니까."
오성 측에서 제안을 거부했지만 계획이 아예 틀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 씨앗은 오성 내부에 심어졌다. 그러니 때를 기다렸다가 자체적으로 일을 진행하면 그만이었다.
삑삑.
인터폰으로 이소영을 호출한다. 그녀는 내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호출하고 1분도 안 돼서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세요."
이소영은 언제나처럼 양손 가득히 무언가를 가지고 들어온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다가 말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 의아하다는 듯 물어온다.
"대표님, 커피는요?"
"이번은 같이 커피 마시자고 부른 게 아닙니다."
"아..."
그녀는 실망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봉투를 내려놓는다. 안에는 호두 파이와 마카롱, 머핀 같은 간식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오성에서 답변이 왔습니다."
침울했던 그녀의 눈빛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뭐라고 하던가요?"
"거절당했습니다. 아무래도 환불에 필요한 손실액이 너무 커서 교환으로 가닥을 잡은 듯합니다."
"제품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교환하더라도 문제가 클 텐데요."
"그걸 고려하더라도 교환이 낫다고 판단한 거겠죠. 전부 환불해주려면 한두 푼이 아닐 테니까요."
문제의 제품인 노트7은 현재까지 국내에서 40만 대, 해외에선 130만 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물량이라면 회수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준비한 일들은 전부 붕 뜨게 생겼네요."
"오성은 오성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계획을 진행하면 그만입니다."
원래 계획은 오성전자가 노트7을 환급해주며 풀릴 포인트를 중간에서 낚아챌 생각이었다.
포인트를 도토리코인으로 교환하면 추가 충전을 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오성이 환불에서 교환으로 방향을 선회한 만큼, 그 계획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맞는 말씀이긴 한데... 열심히 공을 들인 것치곤 리턴이 없을 것 아녜요."
"소영 씨는 이번 사태가 교환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테이블 위에 휴대폰 2대를 나란히 내려놓는다.
"하나는 기존에 쓰던 제품이고, 하나는 이번에 개선품으로 받아온 제품입니다. 소영 씨는 구분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못하죠."
"그럼 둘 다 드릴 테니, 내일까지 어떤 게 개선품인지 알아 오세요."
내가 노트7을 내밀자 이소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집에 가져가다가 불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하나는 불량품이라면서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외관만으로 개선품인지 아닌지를 구분 못 하는데, 비행기나, 배, 철도, 공연장에서 노트7 사용자를 입장 시키겠습니까?"
소프트웨어적으로 알리는 방법은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이다. 그것만으로는 대중의 불신을 가라앉힐 수 없다.
"그리고 교환해준 개선품도 배터리가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대표님은 노트7의 설계 오류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원래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안정해서 가끔 불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애플폰도 찾아보면 심심찮게 발화 뉴스가 올라오고 있죠."
그럼에도 노트7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발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
"아하. 개선품이 타사와 비슷한 비중으로 불이 난다고 하더라도 대중은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겠군요."
"민감한 정도면 다행이죠. 국내는 어물쩍 넘어가더라도 미국은 불이 나는 족족 줄소송이 걸릴 겁니다."
거기까지 가면 오성전자라는 브랜드 이미지는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경영진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터.
"오성이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우리는 그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 * *
2016년 9월 2일.
오성전자는 자사 제품인 노트7의 배터리 결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와 함께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개선품으로 교환을 실시했으며, 개선품은 문제가 된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아서 안전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오성의 발표와는 달리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지에서는 여전히 노트7의 화재 소식이 이슈화되고 있었다.
9월 11일.
항공사 3곳이 추가로 노트7의 탑승을 거부했다. 오성전자는 교환 받지 않은 노트7 사용자에게 사용 금지 권고를 내렸다.
9월 16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선품이 발화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오성전자는 외부의 충격에 의한 발화라고 발표했으나 바로 다음 날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발화 제품이 개선품인지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9월 20일.
중국에서 하루에 두 차례나 발화 사고가 발생했다. 발화 당시의 영상이 그대로 공개되면서 사용자들의 환불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9월 27일.
오성전자는 개선된 노트7에서는 단 한 건의 발화 사고도 나지 않았다는 입장문을 발표한다.
하지만 당일 밤,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교환 받은 노트7이 발화하면서 승객과 승무원들이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오성전자는 해당 기기를 수거해갔으나 별다른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다.
9월 28일.
미국의 온라인, 오프라인 쇼핑몰에서 줄줄이 노트7의 판매를 중단시켰다. 뒤이어 미국의 4대 대형 통신사들도 노트7의 개통을 중지한다고 공지했다.
9월 30일.
오성전자 사옥 앞에서 예고도 없이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장에는 오성그룹 부회장인 전용택이 직접 등장했으며, 그는 카메라 앞에 90도로 고개를 숙인 채 입장문을 읽어나갔다.
-먼저 오성전자 노트7을 믿고 구매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고갤 숙여 사과드리겠습니다. 안전과 품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 백번 질타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부로 저희 오성전자 노트7은 판매가 전면 중단되며, 보유하신 기기는 전량 환불 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오성전자 임직원들은 이번 사태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으며 다시는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더욱 철저한 품질 관리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언론사들은 재벌 총수가 직접 사과했다는 점, 그리고 전면 환불이라는 초강수를 내놨다는 내용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노트7을 실사용 중이던 사용자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기자회견 하루 전날까지도 오성전자는 '개선품은 발화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던 탓이다.
이런 혼선이 생긴 이유는 기자회견이 오성전자 내부에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전용택의 독단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부회장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전량 환불이라니요?"
오성전자의 김승조 사장은 회사 로비까지 뛰어나와서 전용택을 찾았다. 그는 전용택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지금 사태가 어떤지 모르십니까? 미국에서 줄줄이 판매 금지가 떴습니다. 이걸 더 버틴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인지라..."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늦었습니다. 너무 늦었다고요!"
평소 감정의 기복이 적은 전용택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화를 참지 못했다.
"그때 김 사장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개선품은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왜 말을 못 합니까? 변명이라도 해보세요!"
전용택은 후회하고 있었다. 차라리 교환이 아니라 처음부터 환불을 택했더라면, 그랬다면 이미지도, 금전적인 손해도 줄었을 것이다.
'환불이 결정된 이상 금전적인 손해는 피할 수 없어.'
이렇게 된 이상 브랜드 이미지라도 건져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매자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서비스나, 보상이 필요했다.
"환불 고객 전원에게 추가 포인트를 20% 지급하세요. 어떻게 해서든 타사로 이탈을 막아야 합니다."
20%라는 말이 나오자 김승조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직원들도 깜짝 놀란다.
"부회장님 모든 고객에게 20%나 보상을 줘버리면 손실액이..."
"시끄럽습니다! 지금 손실액을 걱정할 때입니까?"
이미 노트7 구매자들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런 이들을 달래서 다시 오성전자 제품을 쓰게 만들려면 20%도 적은 액수였다.
"최소치가 20%입니다. 최대 30%까지는 지원해야 고객들의 마음이 돌아섭니다."
"노트7 판매량이 400만 대입니다. 출고가의 30%를 보상으로 줘버리면 손실액이 조 단위가 넘습니다."
전용택도 여기서 더 보상을 얹어 주는 것은 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30%를 입에 담은 이유가 있었으니.
"20%는 우리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WHTS컴퍼니에 협조를 구해볼 생각입니다."
"그... 우리가 제안을 한 번 거절했는데 상대가 받아줄까요?"
전용택은 막막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부탁해보는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