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95화 (95/174)

< 95 >

-일산에서 오성전자의 신형 스마트폰 노트7이 또 발화했습니다. 이번에도 배터리의 문제였는데요. 사용하던 30대 여성은 1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중국의 항공당국에선 노트7 기내이용 및 화물수송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에 오성전자 측은 일부 제품의 불량일 뿐이며, 불량 제품은 가까운 서비스센터에서 무상 교체가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오성전자가 이동통신 3사에 노트7의 입고를 중단했습니다. 이에 예약판매 물량을 받지 못한 구매자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으며...

지상파 뉴스에서는 오성전자의 스마트폰 배터리 결함 뉴스가 보도된다.

뉴스에는 녹아내린 노트7의 사진이 올라왔고, 나중엔 아예 제품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영상까지 보여줬다.

"노트7 결함 뉴스가 쏟아지네요. 저희가 오성전자 매장에 갔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옆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TV를 보던 이소영이 중얼거린다.

그녀의 말처럼, 불과 저번 주까지만 해도 노트7 배터리 결함은 인터넷상에서만 돌던 이슈였다.

그랬던 뉴스가 갑자기 댐의 수문을 연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뻔했다.

"오성 측에서 보도를 통제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해외에서도 관련 뉴스가 쏟아지니 더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거겠죠."

"통제라니... 너무 구식이에요."

"구식이라도 효과적인 방법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통제로 여론을 묶어두고, 그 틈에 문제를 재빨리 해결하면 소비자 대다수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지나갈 테니까요."

다만 이번 이슈는 재빠르게 해결될 수 없는 건이라는 게 문제지만.

"오성전자 분위기가 저러면 도토리코인 결제 서비스는 당분간 올 스톱이네요. 프로모션부터 열심히 준비했는데 너무 아쉬워요."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는 기존 계획대로 진행하세요."

"우리가 진행하고 싶어도 오성전자에서 그럴 여력이 있을까요? 대표님도 매장 상태가 어떤지 보셨잖아요."

오성전자 매장 상황은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AS 처리만으로도 사람이 미어터지는데 여기에 통신료 환불을 요구하는 사람,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청하는 사람, 그리고 이슈를 찍어서 퍼 나르는 유투버까지 모여들었다.

그게 일주일 전이었으니 상황이 심각해진 지금은 그보다 더 아수라장이 돼 있을 거다.

"포인트 연계 서비스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베타 버전은 테스트가 끝났다고 들었는데요."

"앱은 최종 검수까지 끝났어요. 언제든 사용 가능한 상황이긴 한데... 혹시 오성전자 포인트와 연결할 생각이세요?"

"그래야죠."

포인트 서비스는 타사 포인트를 도토리코인으로 간편하게 전환해주는 앱이다.

만약 오성전자와 제휴를 맺게 되면 오성전자 멤버십 포인트를 손쉽게 도토리코인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오성전자 제품을 쓰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들 중 일부라도 우리 쪽으로 끌고 올 수 있다면 효과는 엄청나겠네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 스마트폰 보유자의 약 20%, 7억 명이 넘습니다."

"그 사람들이 오성전자 포인트와 연동만 된다고 도토리코인을 쓸까요?"

"먼저 나서서 쓰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겁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쓰도록 만들어야죠."

이번 노트7 배터리 이슈는 늪이나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으니 살려보겠답시고 아득바득 버틸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이럴 때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준다면 다소 과한 조건을 내걸더라도 냉큼 붙잡고 올라올 수밖에 없을 거다.

* * *

오성전자의 중역 회의실에선 벌써 5시간째 릴레이 회의가 진행 중이다.

회의의 주제는 오성전자의 신형 스마트폰 배터리 이슈.

이미 배터리 쪽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으나, 향후 대응방식을 놓고 수 시간째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존에 결함이 발견됐던 제품은 빠르게 회수 중입니다. 최대한 속도전을 내면 이슈가 더 번지기 전에 수습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선 그게 가능하지만 해외 물량은 어쩔 겁니까? 이젠 유럽에서도 비행기 탑승을 금지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해외 물량도 회수될 때까지 시간을 버텨 봐야죠. 피해자에게 당근을 주면서 회유하면..."

"그것 때문에 멀쩡한 휴대폰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더 난리가 났단 말입니다!"

시시각각 사태가 커지고 있었기에, 회의장에도 날 선 반응들이 쏟아진다.

예전 같았으면 어느 정도 논의가 이뤄지다가 결정이 났겠지만, 지금의 오성그룹에는 최종 결정을 내려줄 전무홍 회장이 부재중이었다.

"..."

상석에 앉은 전용택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회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용택이 오성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은 경영진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실제로 그가 결정을 내리고 밀어붙일 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아무 말 없이 회의장에 앉아만 있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떤 의견을 따라야 하는 걸까. 그보다 비전문가인 내가 결정을 내려도 되는 건가? 만약 결정을 내렸다가 잘못된다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고뇌는 항상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만약,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전용택은 아직도 전무홍 회장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의 총수 자리를 덜컥 맡아 버렸으니, 아무런 부담감 없이 일을 척척 해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그래도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는 터라, 전용택은 고심 끝에 의견을 낸다.

"불량 제품을 전량 환불해주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놀라울 정도로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전부 그걸 의견이라고 냈냐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그러다 오성전자의 사장인 김승조가 답변을 내놓는다.

"이미 노트7은 150만 대가 넘게 판매됐습니다. 이 많은 제품을 전량 환불해버리면 물류비와 각종 제반 비용을 제하고도 2조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합니다."

2조 원이라는 금액이 그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누가 2조 원이나 되는 손실을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전용택이 말을 못 하고 있자, 침묵을 지키던 다른 임원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한다.

"부회장님, 최선은 여론을 달래면서 최대한 빨리 개선품으로 교환해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전량 환불은 손실이 너무 큽니다."

"국내 물량의 회수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시지요. 해외 물량도 적절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면 해결될 일입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임원들은 그가 무슨 의견을 내든 벌떼처럼 들고일어나서 묵살해버린다.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험이 짧다는 이유로, 시기가 안 좋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의견을 냈어도 반응이 이랬을까?'

이런 의문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무홍이 될 수도 없고, 전무홍의 능력을 흉내 낼 수도 없었다. 그저 전무홍의 아들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 * *

오성전자 경영진의 길고 길었던 대책회의가 끝났다.

치열한 논의가 있었으나 결론은 내지 못했고, 인센티브 지급 액수만 소폭 조정하고 말았다.

전용택은 거의 파김치가 돼서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그런 그의 앞에 비서가 나타나서 일정을 알려준다.

"부회장님, 5시에 예정된 미팅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용택은 손목을 살핀다. 시계의 시침은 이미 숫자 7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은 쉬고 싶군."

"알겠습니다. 그럼 정중하게 돌려보내겠습니다."

"잠깐만. 이번 미팅 상대가 누구였더라?"

"WHTS컴퍼니의 신우혁 대표입니다."

전용택은 신우혁이라는 이름을 듣고 태도를 바꾼다.

"그는 어디 있지?"

"사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다. 바로 내려간다고 전해둬."

일전에 만남이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그와 만난다고 생각하니 피로 대신에 긴장감이 솟아났다.

전용택은 힘든 것도 잊고 한달음에 그가 기다리는 응접실로 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회의가 길어져서 좀 늦었습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니 어쩔 수 없지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악수와 함께 인사말을 나누고는 자리에 앉는다.

"신 대표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허먼사 인수 건이 잡음 없이 마무리됐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뭘 한 게 있습니까."

"테슬라의 부품 계약이 없었으면 온갖 루머에 시달렸을 겁니다."

이후에도 전기차 방면에서 이야기가 짧게 이어진다. 그러나 대화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고.

"그보다 무슨 일로 저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저번에 맺었던 계약 건이 이행되지 않았더군요."

"계약 건이면 가상화폐 투자 건을 말씀하시는지?"

"투자는 잘 받았습니다. 제가 말한 부분은 그다음입니다."

테슬라 부품 계약 건과 맞바꾼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오성그룹의 이름을 걸고 직접 가상화폐에 투자해줄 것.

둘째는 오성전자 제품의 결제수단에 가상화폐를 추가해줄 것.

"아하. 가상화폐 결제를 말씀하시는 거였군요. 그 일은... 아시다시피 저희 쪽에 사고가 하나 터져서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사고라면 스마트폰 배터리 건입니까?"

상대는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미소지으며 말을 잇는다.

"그래서 회의를 이렇게 길게 하셨군요. 결과는 잘 나왔습니까?"

"그건..."

"아 차, 이런 건 외부인인 제가 물을 이야기가 아니었군요.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회의라고 해봐야 원안대로 진행하자는 결론이 나왔을 뿐입니다."

"원안이라면 교환입니까?"

전용택이 천천히 고갤 끄덕이자, 상대가 아쉬움의 목소리를 내놓는다.

"아이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 드는군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부회장님 같으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물건을 쓰시겠습니까? 호주머니에, 차 안에, 머리맡에 계속 두고 다녀야 할 텐데요."

당연히 답은 '아니다'였다. 하지만 현재로선 개선품으로 교환해주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상대는 이런 전용택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그 점을 콕 짚어낸다.

"이미 노트7은 폭탄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건 개선품을 내놓는다 해도 바뀌지 않을 테니, 오성이 스마트폰 사업을 하는 내내 꼬리표가 따라다닐 겁니다."

"그럼 어째야 한단 말입니까?"

"최선의 방법이 뭔지는 부회장님도 알고 계실 텐데요."

전용택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명확한 해결 방안을 알고 있음에도 2조 원에 달하는 손실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전용택이 고민하는 사이에 상대가 불쑥 고갤 들이민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드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도와주다뇨? 어떻게..."

"환불에 사용될 금액의 10%를 저희가 메꿔드리겠습니다."

2조 원의 10%면 무려 2천억 원이다. 그런 큰돈을 떡하니 대준다고 하자, 전용택의 눈이 커다랗게 떠진다.

"조건이... 뭡니까?"

"노트7을 환급해 줄 때, 오성전자 포인트로 환급한 고객만 인센티브를 얹어 주십시오. 이때도 10% 정도면 되겠군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오성전자 포인트는 도토리코인으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도토리코인은 오성전자 제품을 살 수 있고요."

결국은 도토리코인으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10%를 부담하겠다는 뜻 아닌가.

이런 조건이면 나쁠 게 없었다. 어차피 환불 고객에게 인센티브는 줘야 했고, 혜택을 많이 줄수록 타사로 이탈을 막을 수 있었으니까.

"좋습니다. 최대한 빨리 실무진을 보내겠습니다."

"결정이 시원시원하십니다."

전용택은 상대가 생각을 바꾸기라도 할까 봐, 얼른 악수를 청하고 자리를 파한다. 한시라도 빨리 전량 환불을 진행하고 이번 사태를 매듭짓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포인트 구조에서 전용택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환불받은 포인트로 오성전자 제품을 사면 다시 오성전자의 매출이 되는 게 맞다.

환불 -> 오성전자 포인트 -> 도토리코인 -> 오성전자 제품

하지만 구매자가 그 돈을 바로 쓰지 않고 가상화폐 상태로 모아둔다면 어떻게 될까?

환불 -> 오성전자 포인트 -> 도토리코인 -> 계속 보유

이렇게 되면 오성의 환급금은 사실상 WHTS컴퍼니의 쌈짓돈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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