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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94화 (9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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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그룹과 손잡은 테슬라는 한국에서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막대한 광고료를 퍼부어서 드라마와 예능에 모습을 비추는가 하면, 광역시마다 테슬라 전시장과 시승 센터를 개설했고, 전용 충전소도 우후죽순처럼 늘리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터줏대감인 대현그룹에선 비상이 떨어졌다.

"테슬라가 공식적으로 밝힌 국내 예약자는 6만 명입니다. 이들에게 차량 인도가 시작된다면 전기차 점유율을 역전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대현에게 부정적인 보고서가 발표되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불과 저번 달까지만 해도 테슬라는 아마추어 회사로 치부됐었다. 출시국의 정부조차 컨트롤 못하는 어설픈 모습을 보였으니까.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한정으론 그 어떤 회사보다 영향력이 큰 오성과 손을 잡아 버렸으니.

대현의 가장 큰 위협으로 성장한 것이다.

"국내에서 아방떼가 연간 5만 대 팔려. 그런데 1억 원에 달하는 고급차가 6만 대나 예약됐다는 걸 믿으란 건가?"

"예약자 6만 명은 과장됐습니다. 대부분이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성 예약자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실제 판매량은 얼마 나오지도 않겠군."

"별것도 아닌데 고평가됐을 뿐입니다."

대현의 임원들은 여전히 테슬라를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작년 테슬라의 판매량은 겨우 8만 대 수준으로, 한해 100만 대를 팔아치우는 대현과는 어른과 아이 수준의 격차가 존재했다.

바로 그때, 아까부터 말없이 앉아 있던 이태석 회장의 일갈이 터져 나온다.

"지금 뭣들 하는 게야?"

그는 서로 떠들어 대던 임원들의 얼굴을 쭉 둘러본다.

"별 것 아니라고? 그런 안일한 생각이 기업을 썩게 만든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을 했거늘!"

이태석 회장은 손가락으로 임원 하나를 콕 집어낸다.

"분석팀에서 첫 보고를 뭐라고 했어? 테슬라 예약자가 백 명도 안 될 거라고 했었지?"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어떻게 됐어? 허수가 섞이고 뭐고 간에 6만 명이 계약했다잖아! 6만 명이!"

이번은 그 옆에서 잔뜩 목을 움츠리고 있는 임원을 가리킨다.

"오 상무."

"예, 옙!"

"너는 테슬라를 국내 시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꼴이 이게 뭐야?"

"그랬어야 했는데 오성과 손을 잡는 바람에..."

이태석 회장은 책상을 '쾅!' 소리 나게 내리친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 결과만 보란 말이야! 결과를! 그것들이 우리 안방에 들어와서 저러고 있는데 별 것 아니란 소리가 나와?"

임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회장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이태석 회장은 그런 임원들에게 혀를 차며, 보고를 이어가라는 손짓을 보낸다.

"당장 테슬라에게 전기차 점유율을 내주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중형 세단의 점유율 잠식입니다."

"중형 세단은 왜?"

"내년이면 테슬라의 신형 전기차인 테슬라3가 출시됩니다. 테슬라3는 보급형 전기차 포지션으로 5천만 원대로 출시된다고 합니다."

"전기차가 겨우 5천만 원으로 출시될 수 있는 게야?"

"올해 초 테슬라의 발표로는 그렇습니다."

이태석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표정이 일순간 심각해진다.

만약, 5천만 원으로 테슬라3가 국내에 출시된다면,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받아서 실 구매가는 2천만 원대까지 내려가게 된다.

"해외 수입차가 나라에 세금까지 타 먹으면서 팔리다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군."

이태석 회장은 혼자서 코웃음을 치다가 말을 잇는다.

"정부 쪽에 연락해서 테슬라에 들어가는 보조금을 전부 끊어 버리라고 해."

"그게... 오성이 테슬라의 뒤를 봐주고 있는 터라 쉽지 않습니다."

"국토부에 있는 것들은 전부 우리 쪽 사람이잖아?"

"전기차 보조금은 환경부 관할입니다. 그쪽은 오성 쪽에서 심은 사람도 많은지라..."

"그럼 더 윗선을 찾아서 움직이면 될 것 아냐. 장관, 아니면 총리라도 찾아서 보조금 못 주게 막아! 알겠어?"

지시를 받은 임원들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낀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오성과 로비력으로 맞붙어서 이기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의실에서 지시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현그룹에서 이태석 회장의 말은 곧 법이었기에, 그의 지시가 떨어지면 하늘의 별을 따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 * *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없는 느지막한 아침, 오피스텔에서부터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회사 입구에 보안팀 직원들에게도 손을 흔들어 준다.

콧노래는 로비를 거쳐서, 대표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때까지도 계속됐다.

"좋은 아침."

대표실 입구에 비서에게도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든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표정이 엄청 밝으시네요."

"좋은 일이야 많죠."

도토리코인, 와츠, 그리고 테슬라까지.

손댔던 사업들이 하나둘 안정권에 접어들어서 근심과 걱정을 덜 게 됐으니 아침부터 계속 콧노래가 나올 수밖에.

삑.

대표실로 들어가서 먼저 향한 곳은 커피머신 앞이었다.

커피쯤은 누군가에게 부탁해도 되지만 내가 직접 내려서 먹는 편이 취향을 맞추기도 편했다.

드르르륵. 드르륵.

먼저 로스팅된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잘 분쇄한 뒤, 예열한 커피머신에 넣고 추출을 시작한다.

그러다 향긋한 커피 내음이 대표실을 채울 때쯤이면 문 너머에서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이소영이 문을 밀고 들어온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양손에는 서류와 봉지들이 가득 들려 있었다.

"와! 냄새가 너무 좋아요. 평소랑 향이 살짝 다른 느낌인데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원두입니다."

"어쩐지 더 달콤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내가 커피를 잔에 담아가는 동안, 이소영은 들고 온 조각 케익과 빵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이젠 이렇게 아침을 먹는 게 익숙해져서 빵이 없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음. 음."

이소영은 케익을 한 입 먹고, 커피를 홀짝이고, 다시 케익을 밀어 넣는다.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다른 한 손으론 부지런히 서류를 갈무리해서 내게 넘겨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제저녁 늦게 오성그룹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도토리코인을 천만 개 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달라는 만큼 새로 발행해서 내주시면 됩니다."

"이미 대표님과 협의가 있었나 보네요."

"전기차 부품 공급 계약을 맺었을 때, 조건으로 달아둔 겁니다."

케이크 위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이소영의 포크가 멈춘다.

"오성과는 전기차 규제 철회로 딜을 했던 게 아니었어요?"

"테슬라의 전기차가 팔려야 오성도 부품을 공급합니다. 서로 좋은 일은 딜이 아니라 협업이죠."

"아하.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네요."

내가 전용택에게 제안했던 조건은 오성그룹의 이름을 내걸고 도토리코인에 투자해 달라는 것.

"오성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투자가 들어오면 도토리코인의 신뢰도가 대폭 올라갈 겁니다. 그만큼 투자도 많이 들어올 거고요."

"안 그래도 투자금이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요. 이젠 이자를 대폭 낮춰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될 정도로요."

도토리코인은 매주 월요일마다 새로운 이자율을 공시하고 있었다.

초창기에 도토리코인의 이자가 15% 수준이었다면, 최근엔 점차 낮춰서 10%대 초반까지 내려둔 상태였다.

"당분간은 지금 수준을 유지하세요. 너무 낮아지면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이자율 10%를 유지하려면 사업으로 매년 10% 이상의 성장이 가능해야 하잖아요."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날고 긴다는 증권사 선수들도 누적 수익률은 한 자릿수를 간신히 유지하는 정도였으니까.

나 역시 가상화폐 사업만 했다면 이자율의 압박으로 매일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했을 거다.

하지엔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자 걱정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이미 WHTS컴퍼니는 두 자릿수 성장을 위한 준비가 끝났으니까요."

"와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테슬라?"

"둘 다 해당됩니다."

전기차와 SNS는 미래 성장 포텐셜이 S+급의 사업이다.

두 사업이 모두 무탈하게 성장한다면 매년 10%가 아니라 30%씩 이자를 퍼 줘도 끄떡없을 거다.

"음... 그렇긴 한데..."

이소영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린다.

"왜요? 제 말을 못 믿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대표님 말을 안 믿으면 세상에 누구 말을 믿겠어요. 다만, 이렇게 도토리코인을 키워서 어디에 쓰실까 궁금해서 그랬어요."

"화폐의 성장은 곧 회사의 성장입니다.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이 세계 최강이듯, 도토리를 찍어내는 WHTS컴퍼니도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니,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이 안 되네요."

나도 상상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화폐를 자체적으로 찍어서 투자하는 기업이면, 껍데기만 기업이지 사실상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모습일지는 곧 보게 되겠죠."

탁.

나는 빈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커피가 남아있던 이소영은 어딜 가냐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저랑 어디 좀 가시죠."

"어디요?"

그녀의 손을 살짝 끌어당겨서 몸을 일으킨다.

"데이트하러요."

* * *

우리는 WHTS컴퍼니 사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오성전자 매장을 찾았다.

이른 시각임에도 매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었다.

내가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뒤따라오던 이소영의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뭐예요. 전자제품매장에 오려던 거였어요?"

"그럼 소영 씨는 어딜 기대했던 겁니까?"

"그야..."

그녀는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삐죽거린다.

"진짜 데이트를 하고 싶으시면 지금 같은 아침이 아니라 밤에 같이 가시죠."

"어째서 밤이죠?"

"밤이 되면 어른의 데이트를 할 수 있잖습니까."

이소영의 양 뺨이 빠르게 붉어진다. 나는 거기에 대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혹시 무슨 상상을 하셨습니까? 저는 호프집이나 바를 가자는 의미였는데요."

이번은 다른 의미로 뺨이 붉어진다. 아예 귓불까지 물감으로 칠한 것처럼 새빨갛다. 역시 놀리는 보람이 있다.

장난은 이쯤 하기로 하고, 다시 매장 안을 둘러본다.

"오, 저기 있네요."

오성전자 매장의 입구에 익숙한 기기의 모습이 보인다.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키오스크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곳에는 햄버거가 아니라 오성전자 제품을 살 수 있고, 결제방식으로 도토리코인을 지원했다.

툭. 툭.

직접 사용해볼 생각으로 키오스크를 조작한다.

그래도 전자회사라서 그런지 터치 조작감이 썩 나쁘진 않았는데, 마지막 결제 단계에서 막히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현재 도토리코인 결제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도토리코인 결제를 위해서 만들어진 키오스크에서 도토리코인 결제가 안 될 줄이야.

내가 선택을 잘못했나 싶어서 다시 처음 메뉴로 돌아가던 도중, 옆에서 매장 직원이 다가온다.

"손님, 죄송합니다. 아직 그 기기는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이상하군요. 분명히 오늘부터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요."

"다음에 다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화가 여기까지 흘러갔을 때, 직원이 깜짝 놀라서 내 얼굴을 쳐다본다.

"혹시, 신우혁 대표님이신가요?"

"맞습니다."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바로 지점장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나는 사색이 되어 튀어나가려는 직원을 막아 세웠다.

"저는 사람을 만나러 온 게 아니라 저희 키오스크를 확인하러 온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듣기론 도토리코인 결제는 한참 전에 테스트까지 끝냈다고 하던데, 왜 기기를 못 쓰게 막아뒀습니까?"

"저희 측에서 긴급한 일이 터져서 그렇게 됐습니다."

직원은 매장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킨다. 그곳엔 1층부터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저분들은 왜 아침부터 줄을 서 계신 건가요?"

"신형 스마트폰인 노트7의 고객님들입니다."

"노트7이라면...?"

"배터리에 작은 문제가 발견돼서 AS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벼락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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