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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고급 자동차의 이미지는 본디 독일 브랜드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배출가스 조작과 원인 불명의 화재로 독일 브랜드가 이미지 하락을 겪자, 그 대안으로 테슬라가 떠올랐다.
이런 와중에 WHTS컴퍼니가 공격적으로 테슬라 차량을 푸쉬하고 나섰으니, 대중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WHTS컴퍼니의 노림수 통했나? 전기차 예약 개시 2시간 만에 사전 예약자 6만 명 몰려.]
[테슬라모터스의 테슬라S 전기차 상륙 임박. 예비 오너들 기대감 UP!]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동차 예약 서비스. 예약자 간에 거래도 활발. 이미 웃돈 주고 거래되기도...]
[서울 한복판에 테슬라 전기차 전시장이 들어선다. 이미 상가 계약까지 끝내.]
언론사에선 연일 테슬라와 전기차 기사를 다뤘다.
해당 뉴스의 클릭 수가 잘 나오다 보니, 몇몇 언론사는 아예 미국의 테슬라 공장까지 찾아가서 특집 기사를 내기도 했다.
자동차 예비 구매자에겐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환영할 일이었으나, 이런 언론의 흐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김 기자, 내가 기사 이런 식으로 올리면 곤란하다고 했잖아. 조회 수가 잘 나와도 그렇지, 테슬라 기사를 메인에 올려버리면 어떡해?"
대현자동차의 상무, 고필근은 한쪽으론 통화하면서 다른 한쪽으론 상석에 앉은 상사의 눈치를 살폈다.
"아유, 걱정하지 말라니까. 우리가 어디야? 대현이야. 대현. 어련히 안 챙겨 줄까. 그래, 빨리 정리 좀 해 줘. 알겠지?"
그는 통화를 끝내고도 쉼 없이 다른 연락처로 전화를 건다.
테슬라 기사를 올린 언론이 한두 곳이 아니다 보니, 일일이 연락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뚜우... 뚜우... 뚜우...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는 동안, 상석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입을 뗀다.
"고 상무, 아직도 연락할 곳이 더 남았나?"
대현자동차의 사장인 이승훈이었다.
"요즘 인터넷 언론사들이 한두 곳이 아닌지라... 특히 자동차 관련 매체들은 영세한 곳이 많습니다."
"쯧쯧, 그렇다면 미리 관리를 해뒀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고필근이 어쩔 줄을 몰라하는 동안, 이승훈은 계속 통화음만 반복되는 휴대폰을 잡아다 꺼 버린다.
"그룹에서 전기차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고 있지?"
"인지하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선 사활을 걸고 준비하라고 하셨어. 사활을. 그런데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이 그 자릴 차지하면 어떻게 되겠나?"
대현 그룹에선 이번 테슬라 사태를 극도로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기차는 보조금 지원 형태로 구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차량가가 5천만 원이면 정부가 보조금 2천만 원을 지원해주는 식이었다.
지금까진 대현이 정부 보조금을 다 쓸어가고 있었는데, 테슬라의 등장으로 차질이 생겨 버렸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이미 전기차 보조금을 테슬라에는 지원하지 않는 법안이 제출됐습니다."
값비싼 전기차를 사는데 보조금이 사라지면 인기는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현 측은 다소 안일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이번 예약 사태를 겪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보조금 억제 정도로는 안 돼. 더 강력한 대응책을 써서, 처음부터 싹을 잘라 버려야지."
"더 강한 대응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아예 한국 땅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만들면 어떤가? 그럼 예약자가 몇만 명이든 소용없게 될 테니."
이승훈 사장은 테슬라의 한국 판매 금지를 원하고 있었다.
정치권과 밀접한 대현으로선 충분히 가능한 대응법이었다.
환경부의 배출가스 인증을 막아버리거나, 아니면 국토교통부의 제작사 인증 절차에 제약을 걸어 버려도 됐다.
"출시 자체를 막아버리면 테슬라 예약자들의 반발이 거셀 수 있습니다."
"그놈들이 짖어 봤자 어쩌겠어? 한국 땅에선 우리 대현 차를 살 수밖에 없을 텐데."
국내에서 출시되는 전기차는 90% 이상이 대현의 차량이었다.
테슬라 출시가 막히면 사실상 국내에선 대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대현으로선 거리낄 게 없었다.
* * *
[테슬라를 사랑하는 한국인 여러분, 올가을에 만나 뵙겠습니다.]
테슬라의 CEO 엘론의 트윗을 시작으로 테슬라 전기차는 본격적인 한국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먼저 청담동 한복판엔 테슬라 전시장이 들어섰으며, 동시에 테슬라 임원들이 속속들이 한국에 도착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에 테슬라 예약자들은 엘론의 트윗처럼 올해 가을에 차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끓어 올랐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뉴스가 발표됐으니.
[인증의 벽을 넘지 못한 테슬라모터스. 제작사 인증과 배출가스 인증 통과 못 해... 테슬라 CEO 엘론 "납득할 수 없는 결과. 재인증받겠다."]
오매불망 출시 날짜만을 기다리던 예약자들에겐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인증 절차가 밀리면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도 차를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이미 관련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고, 인터넷 기자들까지 나서서 이번 사태를 파고들었다.
그러다 엘론의 추가 트윗이 달궈진 여론에 기름을 붓게 된다.
[한국 통신사는 애플폰 출시를 막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트윗은 대놓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테슬라의 출시를 막았다는 의미였다.
한국에서 테슬라 전기차의 출시를 막아서 이득 보는 집단은 딱 한 곳밖에 없었다.
"우혁아. 자동차 동호회 게시판 확인해봤어? 하루 사이에 발칵 뒤집혔다."
휴대폰을 보던 박태식이 호들갑을 떨어댄다. 나는 살펴보던 보고서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해준다.
"대현자동차 욕하는 게시글이 도배되고 있겠네."
"엥?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커뮤니티 게시판 보고 있었어?"
"안 봐도 뻔한 거 아니냐."
대현자동차는 그간에 고객 응대 불량, 내수 차별, 품질 문제 등의 각종 구설수로 인터넷에서 안티가 많은 회사였다.
그런데 대놓고 욕할 거리가 생겼으니 인터넷에서 난리가 날 수밖에.
사락.
내가 보고서를 살피는 동안, 박태식이 바로 옆까지 다가와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너, 알고 있었냐?"
"뭘?"
"이번에 대현이 나설 거라는 거."
나는 두루뭉술하게 '글쎄'라고 대답했지만, 박태식은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게 아니고서야 올해에 차가 한 대도 안 들어온다는데 이렇게 평온할 수 없는 거잖아."
"이번 건은 대현이 막든, 안 막든 상관없는 건이었어."
"무슨 소리야? 대현이 방해하지 않았으면 지금 게시판에 올라오는 욕이란 욕은 전부 우리가 먹고 있었을걸."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잘 생각해봐. 대현이 안 나섰어도 정부가 인증을 거절하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하긴, 대현의 평소 이미지라면 안 나섰어도 막았다는 음모론은 나왔겠네."
음모론 정도가 아니라 인터넷 분위기는 지금과 똑같았을 거다. 억울하게 욕먹냐, 아니면 진짜 나쁜 짓을 하고 욕먹냐의 차이만 있을 뿐.
"처음부터 대현을 방패막이로 삼을 생각이었구나."
"당연하지. 공짜로 쓸 수 있는 방패를 마다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물론 언제까지 대현을 방패 삼아서 버틸 순 없는 노릇이었다.
대현을 향해 있는 분노가 사그라들 때쯤이면, 예약자들도 테슬라의 생산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테니까.
* * *
미국 네바다주에는 얼마 전 테슬라모터스의 대형 생산 공장이 완공됐다.
일명 메가 팩토리.
말 그대로 초대형 생산 공장이며, 여기서 테슬라의 배터리와 모터, 기타 전기차 부품이 생산된다.
"여기가 우리 테슬라의 자랑인 메가 팩토리입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배터리가 전 세계의 생산량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죠."
엘론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그의 눈빛 이미 미래를 향해 있었으며, 행동거지는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
나는 기계가 훅훅 돌아가는 공장의 면면을 살피다가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네바다주의 공장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가정했을 때, 내년 전기차 생산량은 몇 대로 예상하십니까?"
"본래 예상치는 10만 대였습니다만, 자금의 여유가 생긴 덕분에 16만 대까지도 생산할 수 있어 보입니다."
내가 테슬라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10억 달러 수준이다. 나머지 돈은 캐피털이나, 헤지펀드가 쥐고 있던 지분을 회수하는 데 쓰였다.
그럼에도 테슬라의 자금이 풍족한 이유는 얼마 전, 예약자들에게 받은 보증금 덕분이었다.
한국에서 예약받은 테슬라S의 차량 가격은 약 9만8천 달러.
보증금 20%는 약 2만 달러였으니, 그걸 총 6만 명에게 걷으면 12억 달러의 자금이 들어온 셈이다.
"16만 대면 아직은 조금 아쉬운 수준이군요."
"아쉽다뇨? 올해 예상 생산량의 2배나 되는 숫자입니다."
"한국에서 예약자만 6만 명입니다. 살 사람은 줄을 섰는데 생산량이 못 따라주니 아쉽다고 말한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잖습니까."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엘론을 돌아본다.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겁니까?"
"우리가 보유한 공장의 생산량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공장 생산량의 한계가 있으면, 공장을 더 늘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간단하지 않나요?"
내 말을 들은 엘론은 황당하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간단하지 않으니까 문제입니다. 이만한 공장을 더 지으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십니까? 적어도 수십억은 더 필요합니다."
"돈이 더 필요하면 저번처럼 예약자에게 보증금을 받으면 그만입니다."
"예?"
"뭘 그리 놀라십니까? 제가 장담하는데 다시 예약을 시작하면 10만 명쯤은 우습게 모일 겁니다."
예약자 10만 명이면 보증금으로 20억 달러가 들어온다. 그 정도면 메가 팩토리 정도는 짓고도 남을 돈이었다.
그러나 엘론은 선뜻 수긍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인다.
"혹시, 생산량을 끌어 올릴 자신이 없으십니까?"
"무슨 소릴. 공장만 지으면 생산쯤은 일도 아닙니다. 다만..."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퉁명스럽게 중얼댄다.
"이런 거대 공장을 짓는 데는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환경 평가도 있을 것이고, 세금 협상 또... 정치적인 문제도 살펴야 하죠."
"정치적인 문제가 뭐죠?"
"말 그대로 정치입니다. 민주당에 유리한 지역에 지으려면 공화당에서 문제 삼고, 공화당에 유리한 지역이면 그 반대가 되는 식이죠."
미국은 정치적으로 한국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엘론의 말을 듣고 나니 지금껏 쌓아온 환상이 깨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예약자의 보증금을 받아서 쓰는 형편입니다. 최대한 빨리 공장을 짓고 생산에 들어가야 할 텐데, 정치적인 이유로 공장 건설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해지겠군요."
"그러니 최소한 이번 선거는 끝난 뒤에 움직이든 해야 합니다."
그의 입에서 '이번 선거'라는 말이 나오자 머릿속에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불쑥 솟아오른다.
"그 문제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결하다뇨? 대니얼은 한국인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한국인이 어떻게 미국 정치 문제를 해결한다는 거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가 드러날 정도로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제가 잘 아는 미국 정치인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이번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