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84화 (8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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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 무성하던 이더리움의 하드포크가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하드포크가 적용된 이더리움은 기존의 보안 취약점을 해결하고, 전송속도를 개선했으며, 안정성까지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기존의 구버전 이더리움 보유자에게 신버전 이더리움을 1대1로 배포하겠습니다.]

하드포크 발표와 동시에 거래소에선 기존 이더리움의 거래가 중지됐고, 신버전 이더리움의 거래가 개시됐다.

가상화폐 역사상 처음 맞이하는 대규모 하드포크다.

도중에 어떤 변수가 터져 나올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모든 가상화폐 관계자가 숨을 죽인 채 이더리움의 행보를 주시하는 가운데.

WHTS컴퍼니의 자산관리팀 역시 이더리움의 상태와 시세 변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신형 이더리움에서 특별한 버그나 오류 사항은 보고된 바 없습니다. 기존에 드러났던 보안 취약점도 대부분 해결된 것 같습니다."

"가상화폐 채굴 연합에서 신형 이더리움 지지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투자자 여론도 우호적입니다."

"이더리움 7% 추가 상승! 국내 거래소에서는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곧 300달러를 넘어설 듯합니다."

모든 정황이 이더리움 하드포크의 성공을 가리키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변수 없이 하드포크가 종료되면 대량의 공매도를 걸었던 WHTS컴퍼니는 수천만 달러의 손실을 떠안게 된다.

"..."

이소영은 상황실에 앉아서 말없이 차트를 응시 중이다. 모르는 사람이 그녈 봤으면 밀랍인형을 앉혀 뒀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책임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옆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엠버스 헤지펀드 측에서도 신형 이더리움을 지지했습니다."

"연이은 호재에 이더리움만 3% 추가 상승 중입니다."

가끔 들려오는 속보를 제외하면 상황실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른다.

이런 분위기를 참다못한 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이소영 자리로 다가간다.

"팀장님."

밀랍인형처럼 앉아 있던 이소영의 입이 열린다.

"말씀하세요."

"이미 손실만 800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이젠 저희도 출구 전략을 생각할 시점이 아닌지..."

"괜찮아요. 우린 계속 현 포지션을 유지합니다."

추락하는 칼끝이 면전까지 다가왔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예 설득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하락 포지션에 불리하게 흘러간다.

"이더리움 개발진에서 새로운 트윗을 올렸습니다."

이소영은 미리 띄워둔 모니터에서 트윗을 확인했다.

트윗의 내용은 '이더리움의 하드포크는 성공적이다.' 사실상 승리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화답하듯 찔끔찔끔 오르던 이더리움 시세가 고갤 훅 쳐든다.

"국내 거래소에서 이더리움 300달러 선 돌파했습니다!"

"해외 거래소도 300달러를 넘길 것 같습니다. 앗! 넘었습니다! 302달러, 305달러... 시세가 계속 올라갑니다."

방금 찾아왔던 직원이 이소영을 돌아본다. 지금이라도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소영은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러레이터를 선택했다.

"여유분으로 공매도 주문을 추가로 넣으세요. 시세를 꽉 눌러서 여기가 상승의 마지노선이라는 시그널을 줘야 합니다."

대응팀 직원들은 공매도 주문을 물처럼 쏟아냈으나 받아먹는 매수 주문이 너무 많아서 시세가 잡히질 않는다.

이젠 망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한두 푼이 아닌, 1000만 달러 대의 손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해킹 악재로 빠져나갔던 투자자들이 돌아오면 버티는 건 불가능합니다. 빨리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이쯤 되자 돌부처처럼 버티던 이소영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머리는 빨리 털어버리라고 소릴 지르는데, 가슴은 끝까지 신우혁을 믿고 버티자고 매달린다.

'만약... 대표님이 예상한 대로 일이 안 풀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구형 이더리움이 얌전히 폐기되면 신형 이더리움은 기존 시세인 900달러를 회복할지도 모른다.

시세가 500달러까지만 올라도 강제 청산이 진행되기에 WHTS컴퍼니는 수억 달러의 손실을 떠안게 된다.

이소영은 그런 큰돈을 잃는다고 생각하자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믿고 버틴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신앙에 더 가까울 것이다.

꽈악.

이소영은 입을 꽉 틀어막고서 몸을 일으킨다.

대표실로 갈 생각이었다. 그녀에겐 믿음이든, 신앙이든, 마음을 다잡아줄 그의 말이 필요했다.

* * *

이더리움의 하드포크가 성공하고 바로 이튿날.

중국의 비트차이나에서는 이더리움 기반의 신규 가상화폐를 기습적으로 상장했다.

이름은 이더리움 클래식.

거래소는 이더리움 클래식을 신규 가상화폐라고 소개했으나, 이 가상화폐가 구형 이더리움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폐기했던 구형 가상화폐가 살아 돌아오자, 이더리움의 하드포크가 성공했다고 자축하던 개발진, 투자자, 채굴 업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더리움 개발진과 비탈릭 뷰테린은 신형 이더리움을 100% 지지합니다!]

[이더리움 채굴 단체는 신형 이더리움을 지지합니다!]

[이더리움 클래식은 인정받지 못한 아류 가상화폐입니다. 절대 투자해선 안 됩니다.]

뒤늦게 관계자들이 이더리움 클래식을 견제하고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점차 이더리움 클래식을 취급하는 거래소는 늘어갔고, 관망하던 투자자들도 점차 투자금을 늘리고 있었다.

삑. 삑. 삐빅-.

삐이....

대표실의 대형 모니터에는 가상화폐 차트가 떠 있다. 그중 이더리움 시세는 220달러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나는 옆에 앉은 이소영을 쳐다보며 씩 웃어줬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요."

"다행이에요.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한때 이더리움은 시세가 420달러까지 치솟았었다.

그 흐름이 조금만 더 이어졌다면 이더리움은 무난하게 500달러를 달성해서 우리에게 강제 청산을 안겨 줬을 거다.

'꽤 위험했지. 생각보다 이더리움 클래식이 등장하는 타이밍이 늦었으니까.'

정확히는 이더리움의 상승세가 내 예상보다 빨랐다는 쪽이 맞을 거다. 하루도 안 돼서 가격이 2배 넘게 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표님. 저, 이제 가보겠습니다."

"어디를요?"

"이득 봤으니까 빨리 정리해야죠. 이러다가 또 오를까 봐 겁나요."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어서 다시 옆자리에 앉힌다.

"잠시만 기다려 봐요. 재미있는 마술 하나 보여드릴게요."

"갑자기 웬 마술이에요?"

"일단 보세요. 제가 장담하는데 깜짝 놀랄 겁니다."

트윗의 WHTS컴퍼니 공식 계정으로 접속했다. 그리고는 즉흥적으로 짧은 메시지를 남긴다.

[신형 이더리움은 가상화폐의 순수성을 잃었습니다. WHTS컴퍼니는 이더리움의 초기 상태에 가까운 이더리움 클래식을 지지합니다.]

50자 내외의 짧은 메시지였지만 파급력 하나는 가히 핵폭탄급이다.

모니터 속의 이더리움 차트가 수직으로 하강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이소영이 입을 떡 벌린 채 외친다.

"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차트가 파랗게 질리는 마술입니다."

그녀는 내 휴대폰을 빼앗듯이 가져가서 메시지를 확인한다.

"아니. 무슨..."

"제가 놀랄 거라고 했죠?"

나는 장난처럼 히쭉 웃었으나 그녀는 진지함을 넘어, 정색하고 목소릴 높인다.

"대표님, 이러다가 나중에 무슨 말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말이 왜 나옵니까?"

"이건 저희가 공식적으로 이더리움 시세에 개입한 거잖아요. 이더리움 투자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가만있지 말라고 하세요. 저는 그러든 말든 이더리움 시세를 계속 폭락시킬 겁니다."

이소영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거린다.

"이유가 뭐예요? 혹시, 이더리움에 원한이라도 있으세요?"

"원한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더리움 때문에 가상화폐가 내세우던 안전함의 이미지가 손상됐잖습니다. 저는 그래서 책임을 물리려는 겁니다."

관계들을 사옥에 초청해서 이더리움 개발진과의 격차를 과시한 것. 그들의 QA 시스템을 지적한 것.

모두 이더리움 개발진을 어설픈 아마추어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였다.

나는 이번 사태를 '가상화폐 전체'의 잘못이 아니라 '이더리움'만의 잘못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앞으로 대중이 가상화폐를 믿고 쓸 수 있을 테니까.

"시세를 얼마나 더 폭락시키실 생각이세요?"

"음... 글쎄요."

가능하다면 이참에 완벽히 눌러서 잡코인 수준까지 떨어트릴 수 있으면 베스트다.

굳이 이럴 필요가 뭐 있냐고?

이 세상에 도토리코인이 존재하는 이상, 비슷한 포지션인 이더리움은 방해가 될 뿐이다.

경쟁자 제거와 가상화폐의 신뢰성 회복.

이쯤이면 이더리움을 칠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 * *

이더리움 클래식 사태로 가상화폐 판이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동안, 도토리코인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특히 자산을 많이 굴리는 고래 투자자일수록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그들은 언제 반 토막이 날지 모르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들고 있기보다, 시세차익이 적더라도 안정적인 이자를 받는 도토리코인을 택한 것이다.

[모든 가상화폐가 폭락할 때, 유일하게 시세 하락을 버틴 도토리코인. 안정적인 가치 보존과 높은 이자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도토리코인의 시장 평가가 높아질수록 기존에 가상화폐를 등한시했던 금융사에서도 투자 문의가 들어온다.

그 금융사 중에는 세계적인 투자회사도 포함돼 있었다.

-신 대표, 잘 지내지?

소프트포우의 신정의 회장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예고도 없이 연락해왔다.

"예, 덕분에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별일은 아니고. 요즘 도토리코인이 잘 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서 연락했네.

"도토리코인은 요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항상 잘 나갔습니다."

-그놈의 입은 여전하구먼.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그의 껄껄거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서 말인데, 비전 펀드에서 추가로 도토리코인을 매입하기로 했어.

"아하, 잘됐군요. 얼마나 추가로 매입하시는 겁니까?"

-내 개인적으론 1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싶네.

도토리 코인에 100억 달러라는 거금이 들어오면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을 넘어서게 된다.

시가 총액 1위 가상화폐의 상징성.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나로선 벌써 입에 침이 싹 고였다.

-그런데 이사회 놈들이 또 훼방을 놓는단 말이지.

"이번에도 그 사우디 투자자입니까?"

-맞아. 고놈이 여간 깐깐한 게 아닐세. 이미 4배나 남겨 먹었으면 쉽게 수긍할 만도 하거늘. 쯧쯧.

"제가 그를 만나서 설득해야 합니까?"

-아니야. 설득은 내가 할 일이지. 그러니 자네는 내게 살짝 귀띔만 해주게나. WHTS컴퍼니가 100억 달러를 받으면 어디에 쓸지 말이야.

재차 100억 달러라는 말을 듣자, 뒤늦게 걱정이 밀려온다.

도토리코인은 매년 14.9%의 이자를 약속한 만큼, 내년이면 15억 달러에 달하는 코인을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자율 대폭 줄이더라도 SNS 광고나 송금 수수료로는 감당이 안 되는 액수야.'

코인을 10억 달러 넘게 찍어내도 멀쩡하려면 회사의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다.

미리 생각해둔 투자처는 많았다.

그중에 가상화폐와 연계가 가능하면서 미래에 큰 성장을 거두는 곳.

나는 짧은 고민 끝에 답을 내놓는다.

"앞으로 WHTS컴퍼니는 자동차와 게임 산업에 진출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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