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82화 (8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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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로 출근하다가 러시아워에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하고 다니려니 적응이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차가 워낙 크고 비싼 놈이다 보니, 앞을 막거나 끼어드는 차가 없어서 운전이 편하다는 정도일까.

출근 장소와 출근 방법이 달라져도 업무는 방식은 달라진 것이 없다.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예, 좋은 아침."

아침부터 대표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책상 위에 가득 쌓인 보고서 뭉텅이다.

내가 일을 미뤄서 보고서가 쌓인 게 아니라 새벽에 새로 들어온 보고서가 이렇게 많은 거다.

"어디 보자."

언론 동향 보고서부터 살핀다. 밤사이에 언론사들이 보도한 가상화폐 기사를 요약한 보고서였다.

[도토리코인 기념 파티에 세계적인 팝스타 레이디 뮤즈 등장! 레이디 뮤즈 "나도 가상화폐 투자자로서 파티에 참여했다."]

[도토리코인 개발사의 호화 파티 소식에 투자 손실을 본 투자자들 황당! 분통!]

[가상화폐 투자 주의. 개발사의 사치 행보에 제동 걸 법적인 장치 없어. 투자금이 어디 쓰이는지도 오리무중.]

파티 소식을 드라이하게 다루는 언론사도 있었지만, 무슨 가상화폐가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물어뜯는 언론사도 있었다.

어쨌거나 가상화폐 뉴스가 언론사에서 다뤄지는 것 자체가 이득이었다.

만약 언론사에서 관련 뉴스가 자취를 감춘다면, 가상화폐는 대중에게 '실패한 투기 자산' 정도로 인식되곤 잊힐 것이다.

"다음으론... 음?"

보고서를 대충 훑어보고 넘기려던 차에, 특이한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WHTS컴퍼니는 대폭락을 미리 알고 있었다? 폭락 직전에 대량의 가상화폐를 매각한 정황이 드러나.]

기사를 올린 곳은 미국의 지방 언론사였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가상화폐 폭락 직전, WHTS컴퍼니가 가상화폐 수십억 달러를 팔아 치운 것은 수상하다. 사전에 폭락 정보를 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였다.

"쯧. 내가 폭락 정보를 미리 받았으면 다 털고 공매도에도 몰빵했겠지."

나는 추측성 기사에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보고서를 옆으로 치워버리고 다른 서류를 펼쳐 든다.

그렇게 보고서를 거의 다 쳐냈을 때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아침 회의 시간이 됐나 보다.

"들어오세요."

작은 체구의 여인이 품에 서류를 낀 채로 힘겹게 문을 밀고 들어온다.

"넬라? 왜 혼자 왔습니까? 다른 팀장들은요?"

"급히 보고할 일이 있어서 저 먼저 왔어요."

그녀는 체중을 실어서 다시 문을 닫고는 종종걸음으로 테이블 앞까지 도달했다.

"밤사이에 도토리코인의 전송 프로토콜과 보안 허브를 노리는 공격이 다수 포착됐어요."

"포착된 걸 보면 잘 막았나 보군요."

넬라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인다.

"막았으면 급히 보고할 내용이 아니잖습니까? 평소에도 가상화폐를 노린 공격은 종종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이번은 달라요. 많아야 십여 번 정도 들어오던 공격이 어젯밤 사이에만 3만 번을 넘겼어요."

"3만 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혼자서는 힘들어도 누군가 좌표를 찍고 공격 지시를 내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에요."

좌표를 찍고 조직적으로 공격했다니,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의아해서 인터넷을 뒤졌더니 가상화폐 채굴자들 트윗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녀가 들어오면서 품고 왔던 서류철을 내게 보여준다.

서류철에는 어젯밤 트윗 사용자들이 주고받은 메시지가 갈무리 돼 있었다.

-이봐, 친구들. 너희가 가상화폐 투자로 잃은 돈. 전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지 않아?

-모두가 돈을 잃었을 때 유일하게 잃지 않은 놈이 다 가져간 거야.

┗도토리코인?

┗빙고. 그가 범인이야.

-놈들은 폭락하기 직전에 모든 가상화폐를 팔고 손을 털었어. 지금 도토리코인이 시세를 유지하는 것도 그 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어쩐지 도토리만 멀쩡하다 했어. 그 돈으로 파티를 열고 레이디 뮤즈를 불렀군.

┗아주 개새끼들이네.

┗말이 안 되잖아. 그들이 어떻게 폭락을 알고 미리 대응했다는 거야? 예언자라도 있다는 소린 아니지?

-예언자가 아니라도 이번 폭락 사태를 미리 알아내는 방법이 있지.

┗뭔데? 나도 알려줘.

┗간단해. 그들이 이더리움을 무너트린 범인인 거야.

┗홀리 쉣.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저 말이 사실이라면 도토리는 모든 가상화폐 투자자를 엿 먹인 거야. 지옥에 떨어질 놈들.

-우리가 이더리움의 복수를 할 방법이 없을까?

┗도토리도 이더리움 기반의 가상화폐잖아. 그러니 이더리움이 털렸다면 도토리도 털릴 구멍이 있을 거야.

이후의 메시지는 도토리코인을 어떻게 공격해서 무너트리자는 선동글과 그에 호응하는 메시지가 쭉 이어졌다.

"이런 추측성 선동 게시글만 믿고 우릴 공격했단 말입니까?"

"선동 게시글치고는 공을 들였어요. 제시한 거래소의 가상화폐 거래 내역은 거의 99% 일치하는 수준이더라고요."

"거래소에서 정보를 빼돌렸군요."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거짓 선동이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번에 보여준 서류는 트윗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가상화폐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갈무리한 것이었다.

내용은 아까 트윗 메시지와 거의 흡사했다.

가상화폐 특성상 루머의 전파 속도가 빠른 건 알지만, 이번 건은 퍼지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게시글에서 누군가의 악의가 느껴집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짐작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넬라는 눈알을 시계방향으로 반 바퀴쯤 굴리다가 입을 연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번 공격자들의 흔적을 분석한 결과, 이더리움 채굴자들이 많았어요."

"쯧쯧, 제 밥줄이 끊겼다고 남의 집의 와서 화풀이라니."

이럴 때 여론 대응 전문가인 제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베네수엘라에 가 있었기에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제가 개인기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정면승부를 봐야죠. 거짓 선동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진화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 * *

-이더리움 해킹 사태의 배후에는 WHTS컴퍼니가 있다!

자극적인 루머는 또 다른 루머를 재생성하며 빠르게 몸집을 불려갔다.

증거라곤 사태 직전에 가상화폐를 대량 매도했다는 것밖에 없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루머 배포자들은 자신들의 투자 손실을 탓할 대상이 필요할 뿐이었다.

해당 루머가 퍼지고 이틀째가 되던 날.

가상화폐 전문 개발자, 유명 가상화폐 투자자, 가상화폐 분석가, IT 언론사에 초청장이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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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를 도토리코인의 새로운 보금자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WHTS컴퍼니의 대표 이사 대니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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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장에는 단순히 신사옥을 소개한다는 말밖에 없었지만, 초대의 진의가 뭔지는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해킹 루머를 잠재우기 위한 것.

그게 아니라면 초청장에 왕복 항공편과 호텔 객실까지 예약해줄 이유가 없었다.

초청 당일이 되자 인천 공항에 가상화폐 관계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공항에서 준비된 리무진을 타고 WHTS컴퍼니의 신사옥 코앞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무리에는 이더리움 개발팀을 대표해서 참석한 테일러와 뷰테린도 포함돼 있었다.

"아으, 피곤해. 너무 기대돼서 잠을 하나도 못 잤네."

"뭐가 기대된다는 거야? 사옥?"

"아니, WHTS컴퍼니에서 늘어놓을 변명."

테일러는 잠시 낄낄거리며 웃다가 말을 잇는다.

"여기까지 불렀으니 뭔가 대단한 변명을 준비했겠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

"오우, 제발 그런 수준 낮은 변명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아니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들은 로비에서 보안검사를 받은 뒤, 승강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은 넓게 개방된 사무실이었다. 근무하는 직원만 대략 80명 정도. 이더리움 개발팀이 겨우 20명 남짓인 걸 생각하면 제법 큰 규모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의 안내를 맡게 된 개발 팀장 이소영입니다."

이소영은 이미 가상화폐 포럼 등지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몇몇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먼저 이곳은 도토리코인의 핵심인 소셜 채굴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소셜 채굴은 기존의 작업 증명 방식의 채굴과 동일한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그녀의 설명을 듣고 개발자들은 깜짝 놀랐다. 80명에 달하는 직원이 모두 도토리코인의 '채굴'만 관리하는 인원이었다니.

궁금증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질문을 던진다. 이더리움 개발자인 뷰테린이었다.

"이 많은 인원이 전부 채굴만 관리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부정한 방식으로 채굴된 보상 코인은 모두 여기서 걸러지게 됩니다."

"그럼 다른 파트 개발진은 어디 있습니까?"

"조급해하지 마세요. 한 층씩 올라가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4층, 5층, 6층.

층마다 3층과 비슷한 규모의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초대받은 이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가상화폐 개발은 기껏해야 작은 사무실 규모였는데, WHTS컴퍼니는 이미 대기업처럼 전문화된 서비스 환경을 구축하고 있었다.

"와우. WHTS컴퍼니가 이렇게 큰 회사였군요. 한국이라는 나라에 있어서 전혀 몰랐습니다."

"가상화폐뿐만 아니라 와츠라는 SNS도 같이 서비스하니까 그럴 겁니다. 그걸 감안해도 규모가 큰 편은 맞지만요."

"개발팀 규모가 이 정도면 보안에도 투자를 많이 했겠어요."

"해커들이 그 난리를 쳤는데도 못 뚫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WHTS컴퍼니의 규모에 감탄하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도토리코인을 고깝게 보던 이더리움 개발자들도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7층부터는 자산관리팀, 가상화폐 운영팀, 보안팀 사무실입니다. 여긴 보안 영역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릴게요."

이소영은 자연스럽게 손님들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응접실에는 먼저 와서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여러분,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WHTS컴퍼니의 대표 이사 대니얼 신입니다."

방금까지 감탄하기 바빴던 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이번 초대의 진짜 이유.

그것이 지금부터 나올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초대한 이유는, 최근 가상화폐 업계에 도는 루머... 다들 아시죠? 그것에 관한 이야길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그는 씩 웃으며 책상 옆에 놓인 노트북을 가리킨다.

"최대한 많은 분께 가공되지 않은 토론 과정을 들려드리고자, 모든 대화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방송 송출을 원치 않는 분은 퇴장해주십시오."

생중계까지 준비했다면 해명할 자신이 있다는 뜻.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가 떠올렸다.

'멍청한 놈. 제 무덤을 파는구나. 사정없이 물어뜯어서 공개 처형을 해주마.'

방송 시작과 함께 참석자들의 짧은 소개가 이뤄진다.

차례가 한 바퀴 돌고, 다시 대표가 말할 차례가 됐을 때, 테일러는 냉큼 끼어들어서 민감한 질문을 던진다.

"신 대표님, 이런 자리에 초대해주신 것은 감사하나, 건설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논란부터 해명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논란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참석자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테일러는 똑똑히 들으라는 듯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WHTS컴퍼니는 이번 해킹 사태 직전에 가상화폐를 수십억 달러나 내다 팔았다고 들었습니다.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군요."

"무슨...?"

"저희는 폭락 직전이 아니라 3주 전부터 가상화폐를 매도했습니다. 그리고 매도한 액수도 수십억이 아니라 수백억이고요."

"어쨌든 해킹 사태를 사전에 알았으니 가상화폐를 매도한 것 아닙니까!"

테일러가 억지로 목소릴 높였으나 상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여유에 찬 미소까지 흘린다.

"맞습니다. 저는 가상화폐의 폭락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아, 정정하겠습니다. 정확히는 가상화폐의 폭락이 아니라 이더리움의 폭락이라고 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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