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81화 (8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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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폭락으로 인해 연일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가상화폐 개발사인 WHTS컴퍼니가 초고가 빌딩을 사들여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해당 빌딩은 강남역 인근의 테헤란로에 자리하고 있으며 약 2000억에 달하는 가치를...

삑.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TV를 꺼버리고 밖을 내다본다.

창밖엔 줄줄이 늘어선 자동차들이 미니어처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그 외엔 어딜 보더라도 건물, 사람, 자동차 말곤 볼 게 없었다.

"이런 곳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군."

방금 뉴스에서 언급된 테헤란로의 2000억대 빌딩이 바로 이 건물이다.

본디 인천이나 경기 외곽의 한산한 곳에 사옥을 둘 생각이었으나, 그놈의 상징성이 뭐라고 강남 한복판에 빌딩을 사게 됐다.

똑똑.

문 너머에서 노크와 함께 목소리가 넘어온다.

"대표님,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새로 옮긴 대표실이 넓어서 그런지 비서 목소리가 작게 들리는 느낌이다. 아니면 문짝이 두꺼워서 그런가?

얇은 재킷만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주차장에는 고급스러운 대형 세단이 광택을 뽐내며 대기하고 있었다.

롤스로이스 팬텀.

이것 역시 비싼 차라는 상징성에서 선택됐다.

차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조차 비싼 차라는 걸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합격이다.

쿵.

차 문을 여닫는 데 무게감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자동차가 아니라 도로를 달리는 항공기를 타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건 돈값을 하네."

국내에서 손꼽히는 노른자 땅의 초고가 빌딩 매입, 이름만 들어도 안다는 초고가 자동차 구매.

이렇게 돈을 펑펑 쓰는 이유는 모두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행보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나 싶겠지만, 지금 가상화폐 판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런 짓이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더리움 ?86%, 비트코인 ?71%.

그 외에 잡코인들은 기본이 ?90%까지 갔고,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것도 수두룩했다.

애초에 돈이 몰렸던 이유가 가상화폐의 기술이나 비전 때문이 아니라 '누가 돈을 얼마나 벌었다더라' 같은 소문을 듣고 모인 투기성 자산이었으니, 가격이 폭락하면 돈이 빠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이대로 가상화폐 판에서 돈이 전부 빠져나가면 향후 3, 4년간은 암흑기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현상을 막고자 과소비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이다.

자, 보십시오. 회사가 돈을 이렇게 펑펑 써도 도토리코인 시세는 끄떡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도토리코인에 투자하십시오!

이름하여 '돈 지랄 작전'이다.

효과는 굉장했다. 다른 가상화폐에서 투자금이 줄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유일하게 도토리코인에만 투자금이 유입되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대로 흘러간다면 시가 총액 1위인 비트코인을 넘어서는 것은 무리일지 몰라도, 2위인 이더리움을 넘어서는 것은 확정이었다.

'한창 이더리움의 가치가 높았을 때 시가 총액이 4000억 달러 수준이었으니까... 도토리코인도 그 정도로 성장하게 되는 걸까?'

미래는 알 수 없다. 가상화폐 시장은 내가 가진 정보와 예측을 이미 넘어선 단계에 와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 * *

인천항에 정박한 호화 여객선, 일명 크루즈라 불리는 선박 앞에 대형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남녀가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다.

"선배님, 초대장에 적힌 행사장이... 설마 여긴가요?"

"아마 그런 것 같아."

"와, 이렇게 큰 크루즈를 빌려서 파티를 열다니 WHTS컴퍼니 스케일이 장난 아니네요. 진짜 대박입니다. "

놀람을 금치 못하는 두 사람은 내일경제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들이었다.

이곳에서 열리는 크루즈 파티는 본디 WHTS컴퍼니 임직원과 도토리코인 소유자 서른 명만 초대한 비공개 행사였다.

그런 행사장에 초대받아서 들어가게 됐으니, 기자들은 표정에서 흥분을 덜어내지 못한 채 크루즈에 올랐다.

빰! 빰빰빰! 빰! 빰빰빰! 빰!

승선과 동시에 흥겨운 클럽 음악이 이들을 맞이한다.

그렇게 크루즈의 갑판에 딱 올라서는 순간, 이들은 동시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와! 이게 뭔...?"

선상에는 정확히 반을 갈라서, 한쪽은 대형 공연장이, 다른 한쪽은 초대형 유수풀과 워터파크에서나 보던 물놀이 시설이 깔려 있었다.

이미 무대 쪽엔 음악에 취해서 몸을 흔드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기에, 기자들은 주류 테이블과 스낵바가 깔린 테이블 쪽에 자릴 잡았다.

"선배님, 여긴 완전히 딴 세상 같네요."

"후... 그러게. 나도 취재만 아니면 저기서 같이 놀고 싶을 정도야."

테이블에 앉아서 잠시 쉬는 동안 직원이 와서 간단한 디저트와 샴페인을 서빙해준다.

기자는 직원이 따라주는 샴페인 라벨을 유심히 살폈다. 보통 이런 파티에는 싸구려 술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방금 따라준 샴페인은 고가의 브랜드 샴페인이었다.

"병당 300만 원짜리를 샴페인을 막 따라주네."

"이 술이 300만 원이나 한다고요?"

"백화점에서 300만 원이고 클럽이나 술집에 가면 못 해도 병당 500만 원은 받을걸?"

"하... 얘네들, 이래도 되는 건가요? 지금 다른 가상화폐들은 폭락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잖아요."

선배 기자는 샴페인을 홀짝인 뒤, 디저트로 나온 송로버섯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위기니까 이렇게 돈을 막 써재끼는 거야. 그래야 투자자들이 환상을 갖고 몰려들 테니까."

"환상이라뇨?"

"나도 부자가 돼서 파티를 즐길 수 있다는 환상. 그런 거라도 있어야 뒤통수 깨진 개미들도 다시 투자할 거 아냐."

"아... 일종의 마케팅이군요."

"맞아, 만약 다른 가상화폐 업체처럼 비용 절감이니 뭐니 떠들었으면, 지금쯤 도토리도 시세가 저 아래까지 처박혔을 거야."

그렇게 잔이 반쯤 비어갈 무렵 음악이 뚝 끊긴다.

무대에서 클럽 음악을 틀어대던 DJ가 내려가고, 주변 조명이 일순간 꺼졌다.

"뭔가 하려나 본데요?"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이 한참 깔리다가 다시 조명이 무대 입구를 비춘다.

무대 위로 천천히 올라오는 인영 하나.

화려함으로 무대를 사로잡는 세계적인 팝스타 레이디 뮤즈였다.

"레이디 뮤즈? 그녀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런 행운이!"

"뮤즈! 팬이에요!"

"와아아아아!"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상까지 한 그녀였기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모두가 무대 앞으로 뛰어가서 소릴 지르며 몸을 흔들었고, 뮤즈도 거기에 맞춰서 곡을 뽑아낸다.

강렬한 비트에 파티장 전체의 분위기가 달아올랐으나, 기자들은 도무지 이런 분위기에 적응할 수 없었다.

"선배님, 무대에 저 사람 진짜 레이디 뮤즈가 맞나요? 진짜?"

"그럼 네 눈엔 저게 누구로 보여?"

"아니, 이런 선상 파티에 레이디 뮤즈를 초대할 수 있을 리가... 제 상식이란 놈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에요."

그러나 진짜 놀랄 만한 소식은 레이디 뮤즈의 무대가 끝난 뒤였다.

뮤즈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번 초청에 응한 이유는 저도 도토리코인의 투자자 중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도토리코인에 투자할 것이며, 도토리코인이 미래의 화폐가 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계적인 팝스타의 도토리코인 투자 선언.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믿기지 않는지 한동안 당황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뒤늦게 박수와 함성이 쏟아진다.

"완전 대박 터졌는데요? 팝스타 레이디 뮤즈의 투자라뇨! 앞으로 도토리코인은 진짜 크게 되겠습니다."

"립서비스 해준 거로 호들갑 떨지 마."

"이게 립서비스라고요?"

"생각을 해봐. 투자자가 뭐하러 무대에 올라가서 노랠 불러?"

후배 기자는 뒤늦게 이상한 점을 깨닫고는 제 이마를 때린다.

"그럼 이 무대 자체가 WHTS컴퍼니의 섭외라는 거네요?"

"당연하지. 섭외가 아니면 레이디 뮤즈가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올 리 있겠어?"

"그 말을 들으니 김이 팍 빠집니다."

"섭외라도 보통 일은 아니야. 레이디 뮤즈급은 섭외비가 기본 1000만 달러부터 시작하니까. 그리고 한국은 거리가 멀어서 더블은 줘야 할걸."

"2000만 달러면... 히익! 한화로 250억이나 줬다고요?"

파티에 가수 한 명 초대하는 데 수백억을 쓰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데 WHTS컴퍼니의 대표는 그런 미친 짓을 별다른 예고도 없이 질러버렸다.

'셀럽 섭외에 거액을 썼다가 시장 반응이 안 좋으면 어쩌려고 막 지르는 거지?'

그러나 이런 생각은 기자 혼자만의 기우일 뿐이었다.

이미 파티장의 투자자들은 휴대폰을 켜서 부지런히 도토리코인 매수 주문을 넣고 있었다.

심지어 옆자리에 앉은 후배 기자조차 코인 거래소에 접속하기 바쁘다.

"야? 너, 뭐해?"

"도토리 사야죠. 이거 뉴스 뜨면 100% 떡상입니다. 선배님도 빨리 사세요."

* * *

도토리코인 소유자가 참석한 선상 파티는 뉴스를 타기도 전에 큰 화제를 모았다.

대형 크루즈 파티도 놀랄 일인데 초대 가수가 무려 레이디 뮤즈였으니, 이미 SNS에선 관련 소식이 도배되고 있었다.

-영상에 나온 사람이 진짜 레이디 뮤즈야? 믿기지 않아.

-너무 부러워. 나도 도토리에 투자할걸.

-저기 참석자들 돈 쓴 보람이 있겠다.

도토리코인 소유자는 이번 파티를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었고, 타 코인 투자자도 침체된 가상화폐 판에 돈이 들어온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더리움 개발팀의 테일러는 도토리 파티 소식을 접하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게 부러워? 다들 미친 거 아냐? 전부 너희들 투자금으로 하는 짓이라는 걸 모르는 거야?"

수백억 달러나 되는 돈을 다른 자산에 투자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룻밤 파티에 써버리다니.

더 황당한 사실은 투자자들이 이번 도토리 파티를 호재로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저건 호재가 아니라 악재야. 저러다 보유 투자금이 다 떨어지는 순간, 너희는 다 좆된다고!"

테일러는 그 후에도 한참이나 도토리 파티의 위험성을 알리는 트윗을 게시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너희나 잘하라는 식의 비꼬는 댓글이 전부였다.

"쒯! 멍청한 것들! 다들 도토리랑 손잡고 지옥에나 떨어져라지."

그가 씩씩거리는 동안, 옆으로 한 사내가 다가와 앉는다. 같은 개발실의 동료이자 프로젝트 치프인 비탈릭 뷰테린이었다.

"이봐, 테일러, 대낮부터 왜 그리 열을 내고 있어?"

"멍청한 놈들이 조언을 해줘도 못 알아먹으니까 그렇지."

"조언? 무슨 조언을 해줬는데?"

테일러는 뷰테린에게 트윗의 게시글을 보여준다. 그곳엔 무려 10페이지에 달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뷰테린은 댓글을 대강 훑어보더니 짧은 한숨을 내뱉는다.

"테일러. 네 마음을 알겠지만 도토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무슨 소리야? 그 자식들은 투자자들의 돈으로 시세를 떠받치고 있어. 그러니 돈이 떨어지는 순간 게임은 끝이라고!"

"그 돈이 엄청 많다면 어떡할래?"

"뭐?"

뷰테린은 두꺼운 서류뭉치를 그에게 건네준다. 서류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넘겨받은 거래 장부였다.

"WHTS컴퍼니는 그 사고가 터지기 3주 전부터 보유한 가상화폐를 현금화하고 있었어."

"사고 3주 전이면... 거의 고점일 때 아냐?"

"그냥 고점도 아니고 최고점일 때지. 그때 시장 분위기가 좋았는데도 시세가 쭉 횡보했었잖아? 그게 녀석들이 대량의 가상화폐를 시장에 쏟아내서 그랬던 거야."

테일러는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폭락 직전, 최고점에서 모든 가상화폐를 털고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설마... 그 새끼들, 사고가 날 줄 미리 알았던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지? 아! 어쩌면 이번 사고를 놈들이 기획했을지도 몰라."

테일러는 고릴라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모니터 앞에 앉았다.

"우오오오! 이 새끼들 가만 안 두겠어. 감히 이 몸을 건드려?"

"어쩔 생각이야?"

"어쩌긴. 똑같이 돌려줘야지. 어차피 도토리도 이더리움 기반의 가상화폐잖아. 전송 코드 쪽을 파보면 취약점이 있을 거야."

평소의 냉철한 뷰테린이었다면 테일러를 만류했을 거다. 아직 그들이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도 마음속으론 이더리움을 앞지르는 도토리코인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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